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25 성불을 하는 이유

★은하수★ 2008. 1. 25. 10:39
 

D-25 성불을 하는 이유


 어제는 새벽을 새고 시험을 봤는데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에 공부해 둔 보람이 있다. 오늘 시험도 평소만큼 괜찮게 봤다. 실은 어제 집에서 한 번 씩만 훑어본 게 다라서 조금 걱정했는데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더 잘 본 것도 있다. 이번 시험이 쉽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내일 시험도 적당히 봐야지. 아, 수학은 좀 풀어봐야겠다. 마지막 시험을 우울하게 끝내는 것도 좋진 않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아빠는 성적에 대해서 자유방임을 고수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내 자신이 찝찝하다. 조만간 죽는다고 막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일이 시험 마지막 날이지?”

 “응.”

 기는 책상 위에 앉아서 내가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공부하고 있을 때 누가 빤히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좀 익숙해져서 그런대로 괜찮다. 중간에 기가 나가버릴 테니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유종의 미라는 건가…….”

 기의 말에 갑자기 심장이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유종의 미’라니. 난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으면 죽는 거지 죽기 전이라고 이것저것 챙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건 그냥 내키기 때문이지 조만간 죽을 거니까 좀 더 나은 삶 살아보자고 공부하는 게 아니다. 왠지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손에 들고 있는 샤프를 놓고 싶다.

 “그런 거 아니야.”

 난 기를 쳐다보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며 반박했다. 기는 나가지 않고 내 모습을,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만 쳐다봤다. 평소 같으면 금방 자리를 뜰 텐데 오늘은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앉아있다. 내가 빨리 공부를 끝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뭐 할 일이라도 있어?”

 풀던 문제를 마저 다 풀고 샤프를 내려놓은 후에 기를 쳐다봤다.

 “나 혼자 돌아다니면 뭐해? 제자를 두고 있는 스승 입장에서 스승 단독 행동은 제자 유기나 마찬가지야.”

 기의 목에 은근슬쩍 힘이 들어갔다. 나 참.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 잘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하긴, 스승 되는 이가 제자를 가르치지 않고 혼자 일을 다 해 버리면 제자를 키운다는 의미가 없어진다. 어떻게 보면 그 제자는 키울 가치가 없소이다 정도 될 것이다. 히익. 난 그런 버림받은 제자가 되고 싶지 않다. 반 강제로 제자가 된 거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다.

 “나한테 가르쳐 줄 게 많은 가봐?”

 “그럼.”

 기는 짧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속전속결로 가르치려면 부지런해야 한단 말이지.”

 나한테 가르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아주 많은 텐데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다 가르치려 하는지 좀 부담스럽다. 뭐, 나도 욕심나지 않는 건 아니다. 이것저것 되도록 많이 배우고 싶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어떤 한 가지에 이토록 열심히 였던 적이 있었나? 여태껏 살면 사는 대로, 시간이 지나면 가는 대로 엉성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뭔가에 대해 열정적이진 못해도 열심히 했던 적이-내 기억에 의하면- 없었다.

 “그러면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

 기는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거침없이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그러면 마음 편하게 말해도 되겠지.

 나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교과서와 공책들을 모조리 덮고 한 쪽에 차분히 쌓아놓았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아 기와 마주봤다. 기는 가만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성수 중에서 귀신 성불을 맡고 있잖아. 그리고 나를 제자로 두었고. 또, 나한테 가르친다는 건 귀신 성불이고.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인 내가 귀신을 성불시킬 수 있는 거야?”

 이 질문을 실은 첫 날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계 수호, 요괴 퇴치, 귀신 성불 등 성수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고 하는데 한 성수에 꼭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으나 한 가지에 좀 더 치중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맡든 성수는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모두 제자를 둘 수 있다고 한다. 성수들이 미처 손대지 못하는 곳에 성수가 양성한 제자를 배치하여 세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기가 주로 맡고 있는 일은 귀신 성불이고 나를 제자로 두었다. 아니, 그러니까 정리해서 요점만 일컬으면, 성수가 하는 일을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뭐야?”

 “그러니까 인간이 성수의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거냐고.”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성수는 자연의 혼령이 수십, 수백 년에 걸쳐 뭉쳐져 만들어진 신적 존재니까 그 능력이 거의 고유, 독자적이지. 하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그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음. 성수의 능력을 일부분만 사용할 수 있다는 거구나. 그거야 인간은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으니까 성수와 같은 힘은 낼 수 없겠지. 하지만 성수의 제자가 된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이 일부라도 성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일 것 같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가 열심히 배운다고 해도 얼마큼 해 낼 수 있을지……. 성수의 능력을 쓸 수 있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제한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공혈(空穴), 양혈(陽穴), 음혈(陰穴), 유혈(流穴), 영혈(靈穴). 이 다섯 개의 혈이 닫혀 있어. 이것들이 열리면 인간이라 해도 성수의 능력을 쓸 수 있지.”

 ‘혈’이라는 건 보통 무협지 같은 데에 많이 나오는 말인데 말이지. 한약방에서도 종종 쓰는 것 같고. 인체에 ‘혈’이 정말 있나 보네. 그것도 다수로.

 “그 혈은 모두 성수가 열어주는 거야?”

 “아니, 혈의 상태로 정해지는 게 몇 가지 있어.”

 닫혀 있는 혈도 각각 상태가 다른가? 아마도, 내 생각이지만, 혈로 판단해서 재능 있는 인간을 솎아 낸다거나, 재능의 종류를 파악해서 가르치는 게 다른가 보다.

 “대충 알아차렸겠지만 다섯 개의 혈은 척도야. 대부분 다섯 개가 모두 닫혀 있지만 가끔씩 양혈이나 음혈이 열려 있는 인간이 있어. 둘 다 열려있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인간이 성수의 제자가 될 수 있어. 정말 극소수지. 하지만 이것도 혈이 닫혀버리는 인간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거야. 그래서 열린 혈 외에 열릴 기미를 보이는 혈이 하나 더 존재하는 인간이 그 혈의 종류에 따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갈려서 성수에게 배정 돼.”

 인간을 혈에 따라 나눠서 ‘배정’을 한다는 건, 나도 혈이 열려 있어서 기에게 배정됐다는 거잖아. 그러면 인간을 파악해서 성수에게 그를 알려주는 임무를 가진 성수도 있겠네. 아무튼 기랑 만나게 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는군.

 “그러면 너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나를 맡았다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뭔가 서의 없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런 셈’은 무슨 대답인지.

 “배정 되도 성수나 인간 중 한 쪽이 거절하면 장땡 아니야?”

 성수든 인간이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제자를 두는 게 일손 부족한 성수의 사정을 수월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라는 건 잘 알겠지만, 그 제자 양성이 억지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물론. 선택은 당사자 자유야. 하지만 너처럼 시작한 녀석은 주도 하차가 안 돼.”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이군.”

 나야 아직 중도 하차할 생각은 없는데 강도가 점차 올라가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중도 하차 하고 싶은 마음은 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끽해야 한 달이니까 중도에 그만 둘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이런 일을 선택하는 데 신중하게 생각할 게 뻔하다. 그러니 중간에 그만 두는 건 최대한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난 좀 쉽게 결정한 편이지만.

 “넌 무슨 혈이 열려서 나한테 맡겨졌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혈 이야기가 나올 때 내 혈에 관해서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당연히 궁금하지.”

 난 양혈이 열려있을까, 음혈이 열려있을까? 양이니 음이니 하는 건 음양오행도의 양성, 음성 같은데, 내가 여자니까 음혈? 귀신 성불을 맡게 되었으니까 음혈일 수 있지만, 팔찌가 없으면 귀신이고 유령이고 다 볼 수 없으니 양혈일 지도 모른다. 감 잡기가 힘드네.

 “넌 아주 특이한 아이야. 아니, 특별한 아이지. 1000년에 한 번도 나오기 힘든 인간이라고나 할까?”

 “특별하다고? 내가?”

 “응. 정말 대단한 인간이야. 양혈하고 음혈이 모두 열려있을뿐더러 유혈도 열려있어. 공혈과 영혈은 열릴 기미를 보이고 있고. 천성적으로 이런 인간은 성수들도 보배라 여기고 있지.”

 양혈하고 음혈, 유혈이 열려 있고……, 공혈과 영혈이 열릴 기미를 보인다면……. 그 다섯 개 혈 전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었다는 거야? 다섯 개 중 하나라도 열려 있는 자가 소수인데, 난 세 개나 열려 있고 두 개도 준비 중이라니. 쉽게 말해서 가능서이 높은 인간이라는 뜻. 에이, 설마. 그렇다면 팔찌를 차지 않아도 일찌감치 귀신을 볼 수 있었어야지. 난 지금 팔찌가 없으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걸. 기가 장난을 치는가 싶지만 기의 말투는 장난스러운 게 아니라 진지하면서 기쁨에 들뜬 그런 투였다.

 “하지만 난 이게 없으면 보통 인간하고 똑같은 걸.”

 “그게 문제야.”

 아, 역시 뭔가 걸리는 게 있었구나. 혈이 열려있는 상태가 특이하지만 다른 문제가 걸려 있어서 제 구실을 못한다는 이야기……. 내가 무슨 영화나 만화 속의 비련의 주인공도 아니고 특이한 전개로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어.

 “네 혈은 분명 천성이야. 하지만 그 주변에 봉인 괘가 쳐 있어서 모두 닫힌 것처럼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봉인 괘가 쳐 있다는 건 열려 있는 혈이 닫힌 것처럼 봉인돼 있다는 거겠지. 혈이 열려있거나 닫혀있는 건 천성이겠지만 봉인 괘는 그 이름에서부터 뭔가 인위적인 것 같아. 흐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혈이 봉인 당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걸 당한 기억이 없는데.

 “난 그닥 특별한 일을 당한 적이 없어.”

 “기억까지 봉인 당했으니 그럴 만하지.”

 기의 말에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내가 혈에 있어 특별한 인간이라는 것과 혈에 봉인 괘가 쳐 있다는 것, 기억이 봉인 당했다는 것. 지금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귀신을 성불하며 다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지만 지금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바로 내 이야기니 뭐랄까. 조금 무섭다. 믿어지지 않지만 기를 보아하니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시한부를 알기 전가지,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지상의 인간들 중 한 명이었다. 엄마와 일찍 사별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내 평범한 일상으로 커버할 수 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나 충격적인 일은 정확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나와 내 주변은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다. 혈과 관련된 기억 같은 건, 이상한 사람과 만난 기억 같은 건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기의 말대로 기억이 봉인 당한 걸까?

 하지만 왜 내 혈과 기억을 봉인한 거지? 혈이 열려 있으면 좋은 것일 텐데. 누가, 왜…. 전혀 모르겠다. 천성적으로 열려 있는 혈을 억지로 봉인 괘를 써서 무용지물로 방치하는 것이 더 해롭지 않을까 싶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인데, 봉인괘를 풀고 싶다. 혈이 열려 있으면 내 몸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아보고 싶다.

 “있지…… 기가 봉인 괘를 풀 수 있어?”

 기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네 몸에 있는 봉인 괘는 성수가 친 거야. 꽤 고난이도라서 풀기 힘들어.”

 귀신 성불은 베테랑이라며 자신 있게 돌아다니는 기이지만, 봉인 괘를 푸는 건 질적으로 다른 일이니까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힘든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시도해 볼만 하지 않나? 어차피 귀신 성불 수업을 받는 중이고, 성수의 능력을 쓸 수 있으려면 다섯 개의 혈이 열려야 하니까.

 “그래도 풀어주면 안 돼?”

 “아직은 안 돼.”

 그렇게 단호하기 거절할 것까지는 없는데.

 책상 위에 엎드려서 앞에 놓여있는 필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기가 이성적으로 냉정해지만 자기가 내린 판단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자기 판단을 확고하게 지키는 건 좋은데 말하는 거 정도는 부드럽게 해 줄 수 있잖아. 아니,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내 혈을 봉인한 거야? 기억은 또 왜?”

 모르는 이가 멋대로 내 몸에 손을 대는 건 역시 불쾌한 일이다. 혈이 열려 있는 인간은, 성수들에게 덧없이 유용한 존재일 텐데 일부러 봉인할 필요는 없잖아. 정말로 내 기억까지 봉인한 거라면 뭔가 숨기고 싶다는 뜻이다. 대체 내가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이없는 일을 당한 거야.

 “그것까지는 나도 몰라. 상부의 명령에 따라 널 맡은 거니까.”

 그런 대사는 회사나 군대 안에서 하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사고치고 핑계 댈 때 써 먹는 거잖아. 그냥 안 가르쳐 준다 아니면 못 가르쳐 준다고 하면 될 걸 어울리지 않게 돌려 말하고 있어. 그런데 성수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구나. 기는 ‘빙황’이니까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 성수일까? 물어보면 쓸 데 없는 거 묻는다고 하면서 대답 안 해줄 지도 모른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전화기가 울렸다. 이 시간 즈음에 집에 전화할 만한 사람이 없는데, 학원 홍보 전화일지도. 거실로 나가서 장식장 위에 있는 무선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치지지직, 죽… 치지지직 ……치지지직 …어서.”

 “여보세요? 잘 안 들려요.”

 잡음이 심하다. 전화기를 떨어뜨린 적도 없는데 왜 이러지? 아니, 아침까지는 멀쩡했으니까 상대편 쪽의 전화기가 이상한 건가 보다. 어쨌든 잡음 때문에 뭐라고 말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나 알 수 있는 거라면 ‘남자’라는 거다. 아, 이 잡음. 거 무지 거슬리네.

 “치지지직…… 도망…치지지직. 치지지직…… 안 돼…… 치지지직.”

 뭔가 이상한 단어가 하나 둘 들리는데 연결이 안 되니까 진짜 답답하다. 전화기 상태가 나쁜데 상대방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몰라. 에이, 그냥 끊자. 중요한 전화면 다시 전화기가 올리겠지.

 [띠디디디 띠디디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벨일 울렸다. 정말로 방금 그 전화야?

 “여보세요.”

 얼른 도망쳐, 너 죽을… 치지지직…… 성수 기… 치지지직……치지지직, 뚝.“

 이번에는 그 쪽에서 먼저 끊어버렸다. 일부러 끊은 건지 끈허진 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장난 전화이거나 잘못 건 전화라 하고 싶은데 중간에 ‘성수’라는 단어가 좀 찝찝하다. 에…… 그러고 보니까 이거 비슷한, 이상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몇 년 된 일인데다가 그 당시에 장난 전화라 여기고 무시했던 터라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죽지 말라’고 한 그 한 마디는 인상 깊었다. 그래, 그 전화와 이 전화의 목소리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