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외전4]로키, 새로운 게임을 약속하다?
한 달 만에 나타난 실종자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잡아떼면 경찰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마계에 갔다 왔다고 말하면 두말 할 것 없이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텐데 내가 뭣 하러 자살 해위를 하겠는가. 그냥 내 머릿속에 숨겨두고 지금의 평범한 일상사를 즐길 뿐이다. 학교에서는 내가 외계인한테 끌려갔었다느니, 조직에 끌려갔었다느니, 마루타 실험에 투입됐었다느니 별별 소문이 떠돌았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 2년 반 동안, 잊을 법하면 회자되고, 또 언급되고 또 다시 수만 가지 상상이 펼쳐졌다.
덕분에 고교생 시절 내내 시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지루했다. 공부에 치이다가 소문에 치이다가. 그게 전부였다. 크게 몸을 쓸 일도 없이 책상 앞에서 24시간 중 18시간을 보내는 일이 부실, 허실한 나로서는 좋은 일이건만, 왠지 싫었다. 재밌는 일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신은 내 기대를 깡그리 무시했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시간만 흘러가고, 귀찮은 소문 말고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재미없는 시간만 존재했다.
대학 생활도 그리 재미나게 하는 편은 아니다. OT니 MT니 동아리니 활동적인 것은 일절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역시 몇몇 소프트웨어만 좀 다룰 줄 알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재택 알바를 하고 있다. 아무리 지루한 시간이 계속 되도 자발적으로 재미난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고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숨 쉴 따름이다. 이 얼마나 수동적인 삶인가. 하지만 불만은 없다. 지루함에 익숙해져서는 똑같은 일상이 계속 되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편지?”
초대장에나 쓰일 법한 가로형 봉투. 그 가운데의 붉은 봉랍을 보자마자 내 입술이 가로로 길게 늘어난다. 2년 반이 지났지만 봉랍이 문장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절대 잊을 리 없다.
「오랜만이야.
나로서는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인 찬필 군에게는 나름 긴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렇게 인사하는 편이 자연스럽겠지.
지금 마계는 루시퍼의 빈자리에 겨우 적응했다네. 솔직히 말해서 5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그 반 밖에 걸리지 않아서 놀랐어. 더욱이 네 마왕이 워낙 부지런해서 내가 따로 손을 댈 필요가 없었네. 구경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너무 열심히 이해도 피곤하고, 너무 열심히 구경해도 피곤하지. 피곤하다기 보다는 몸에서 기운이 나지 않고 만사가 귀찮아지며 심지어는 나태해지더군. 그래서 뭔가 팡 터뜨리고 싶은데 도저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숨바꼭질은 벌써 오랫동안 했지 않나.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군. 그래도 겨우겨우 없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새로운 놀이를 고안했다네.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눈치 챘겠지?
자네를 다시 한 번 마계로 초대하네. 마왕들을 쥐고 흔들 만큼 머리가 특출한 찬필 군이 가세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아직 아이들에게 않았네. 자네가 몰래 와서 먼저 얘기를 듣고 내 게임을 손봐줬으면 해. 편지 위에 있는 마법진을 방문이나 창문에 붙이면 저절로 워프가 열린다네. 내 방으로 통하니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해. 될 수 있으면 빨리 와주게.」
마계의 언어로 길면서도 짧게 작성된 ‘강제’ 초대장이다. 거부권이 없는 초대장인데 불쾌하기는커녕 흥미롭다. 단조로운 일상에 강렬한 불꽃이 터진 기분이다.
로키님이 새로운 일을 계획했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할 일 없는 방학이다. 배낭여행 간다는 핑계로 마계에 다녀와야겠다. 로키님과 머리를 맞대고 벨제뷔트님, 바알님, 피브리조님, 레플리카님, 그리고 휘하 여러 마족들을 놀래킬 재밌는 일을 꾸밀 거다. 최솬 인간계에 있을 때보다 재미있을 것이다. 무미건조했던 시간에 자극적인 양념을 칠 때가 됐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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