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4 각성 ⑦

★은하수★ 2009. 11. 4. 17:13

로키의 보물은 제각기 마력을 내뿜으며 시아를 살폈다. 새 주인이 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실력가인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뱀의 혓바닥처럼 마력이 조금씩 그녀를 핥더니 긴 뱀의 요염한 몸짓처럼 그녀를 천천히 휘감았다. 보물의 마력이 공중분해 되면서 진자색 빛가루와 암청색 빛가루가 순백의 공간을 아름답게 꾸몄다. 로키의 보물은 모든 마력을 거두고 시아의 손에서 얌전히 잠들었다.

“제가 갖고 있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얼음의 대지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곧 새벽이 될 겁니다. 가서 쉬시죠.”

시아는 얼음의 대지를 한 번 더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지 쪽에서 두 번째를 거부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대지의 구현화에 가까이 가면 서로 속성이 다른 마력끼리 충돌하여 상당히 피곤하다. 그리고 내심 대지의 구현화와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웠다.

“얼음의 대지는 밤이 짧은 가요? 벌써 새벽이라니.”

필츠가 만든 게이트를 통해 단번에 필츠의 구역 안으로 이동했다. 가디안스의 진격부대와 메이, 이안, 폴은 시아와 필츠가 외출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메이는 얼음의 대지가 기억을 깨끗하게 지운 후였다. 자신이 시아와 필츠의 뒤를 밟았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슈바르체트라움에서 세 시간씩이나 있으셨으면서 그리 말씀하십니까?”

“저 겨우 3분……. 맙소사.”

“역시 시공이 뒤틀린 곳 답습니다.”

“알면서 일부러 비꼬신 거죠?”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둘은 응접실에서 마주 보며 앉아 차를 마셨다. 장미 기름으로 향을 듬뿍 키운 실론티였다. 매일 밤 부지런하게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몸이기 때문에, 차 한 잔으로 모두가 일어나길 느긋하게 기다렸다.

“바르베리트-진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필츠는 손님방 쪽을 흘끗 쳐다봤다. 가장 먼저 일어난 메이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하지만 필츠는 조그만 토끼를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몰만이 아니라 이안도 같이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하마터면 입 안으로 막 들어간 홍차를 밖을 뿜을 뻔 했다. 시아는 어렵게 목구멍으로 따뜻한 액체를 넘겼다. 액체가 아니라 고체를 넘긴 것처럼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늑대처럼 생긴 글라셰 순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고 다른 이안이 있습니까? 보아하니 순종도 길드원으로 받으시는 것 같던데 제가 잘못 본 겁니까?”

“아뇨, 제대로 보셨어요. ……. 네, 순종도 길드원으로 받아요.”

시아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비쳐 나왔다. 바보 같은 얼굴을 내보이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표정을 솔직하기 드러낸 것 이상으로 당황한 모양이다. 필츠는 시아의 얼굴을 감상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왼손은 흰 모피 망토를 오른쪽 가슴 부분만 쓰다듬듯이 만지작 거렸다. 전체적으로 수상한 분위기도 아니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안을 독립시키고 싶습니다.”

“듣기 불편하네.”

메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에서 완전히 깼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필츠를 경계하는 듯이 마력을 서서히 풍겼다. 의자 하나를 당겨 시아의 왼쪽에 바짝 붙어 앉았다.

“뭐가 불편하다는 거지? 마야라임. 너 때문에 이안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쯤은 모두가 다 아는 명백한 사실이잖아.”

필츠는 메이의 경계에 걸맞은 응수를 했다. 메이가 그에게 경계심을 드러내고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한 만큼, 그도 불쾌한 심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냈다. ‘명백한 사실’을 강조해서 말하는 것도 고의적인 수법이었다.

“성(姓)도 없는 불완전한 아이를 돌봐주는 게 잘못 됐다는 거야?”

“돌봐줘? 육아? 양육? 사육? 어느 쪽도 아니잖아.”

‘사육’이라고까지 말한 건 도가 지나쳐 보인다. 그런데 글라셰의 기본 형태가 동물이다 보니 사육한다 해도 언어 오용은 아닐 것이다.

후작급 악마는 글라셰 순종 두 개체의 신경전 사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묵묵히 차를 마셨다. 메이가 귀여운 외모에 비해 속이 복잡하고, 굳이 따지자면 악의 축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친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메이가 필츠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만큼 필츠도 메이를 불신했다. 손님 앞에서 예의를 거스를 만큼 둘 사이가 위태해 보였다.

“내가 돔에게서 이안을 구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안은 미쳤을 거야. 무력한 짐승 밖에 더 됐겠어?”

“돔은 이안의 양부야. 이안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훈련시키고 있는 중에 네가 납치한 거잖아. 얼음의 대지가 말리지 않았으면 넌 돔의 손에 죽었어.”

“돔 애쉬(Domm Ash)가 나한테 손 댈 수 있는 위치야?”

토끼의 겉모습으로도 충분히 거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세계의 일인자라고 거들먹거리는 태도에 필츠와 더불어 시아까지 속이 불편했다. 암만 얼음의 대지의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가 전력을 다한다 해도 시아나 필츠에게는 한 때의 유희 상대밖에 안 될 것이다. 자아도취에 빠진 약자는 강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더 이상 멋대로 그 입을 놀렸다간 찢어 죽일 줄 알아.”

필츠는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메이는 콧방귀를 끼며 그를 하찮은 피조물처럼 쳐다봤다.

“정도껏 해.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 토끼 주제에 너무 설치잖아.”

시아의 인내심이 필츠보다 먼저 끊겼다. 정확하게는 시아가 일부러 인내심의 한계를 대폭 줄였다. 왼손으로 메이의 얼굴을 가리고 살기를 다량으로 내뿜었다. 보스의 살기를 감지한 길드 가디안스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역시 4천왕 중 한 명, 밀리엄이었다. 막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하고 상큼한 모습이었다. 하이 엘프만의 가벼운 발랄함을 선보이며 시아에게 다가갔다.

“보스. 불렀어?”

“본의 아니게 깨웠네.”

“아니야. 보스의 호출인걸.”

밀리엄은 메이를 가린 시아의 손을 슬며시 내렸다. 메이와 마주보고 있던 필츠는 깜짝 놀랐다. 메이는 두 눈에 초점을 잃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신이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상태였다. 밀리엄도 그 눈을 발견했다.

“역시. 살기에 정신 마법을 섞었지? 토끼 아가씨가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됐어.”

악마족 특유의 정신 마법이었다. 공포에 취하여 스스로 나락에 빠지게 만드는, 꽤나 수준 높은 최면 마법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해 두자.

“흥. 이 정도도 대처하지 못하는 주제에 멋대로 까부는 녀석은 나와 동등하게 대할 필요 없어.”

마침 밖으로 나온 진격 부대 전원이 보스의 선언을 들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라는 존재는 존중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써, 일일이 예의를 지키지 말 것. 한 명도 빠짐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판단했다.

“바르베리트-진 씨. 성에 ‘-바이스’가 붙는 글라셰는, 얼음의 대지에게 대지의 수호를 받는 클래스입니다.”

필츠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페이스가 흐트러졌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래도 메이에게 화가 많이 났는지 그녀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가신 꼬맹이를 대신 벌 준 시아에게 감사했다.

이안과 몰도 일어났다. 자기들끼리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가 제정신이 든 건 그 때였다.

“후……. 판바이스 씨. 얼음의 대지가 이안을 내보내 줄 수 있나요?”

“이건 대지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동의했습니다.”

필츠가 말하는 ‘저희’란 얼음의 대지 최상위 글라셰 다섯 명을 뜻한다. 필츠도 그 중 한 명. 그것을 하는 시아는 그의 말을 믿고 충분히 수긍했다. 대지에서 맨 처음 만난 메이보다는 그들을 더 신뢰했다. 이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낱 거주민과 세력 있는 지도자 중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내가 싫어. 이안은 내가 키웠다고.”

메이가 발끈하며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야라임. 얼음의 대지가 직접 바르베리트-진 씨에게 부탁하는 거야. 몰 코톤과 이안을 데려가 남 부끄럽지 않는 위인이 되도록 키워줄 것. 대지의 결정에 글라셰가 반대할 힘은 없어.”

필츠는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시아는 그의 인성에 내심 감탄했다.

“싫어. 이안은 내 거야.”

“난 물건이 아닌데.”

흰 늑대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먼저 소파에 앉아있는 몰-인간의 모습-의 다리 앞에 편하게 앉더니 마족의 모습으로 변했다. 몰이 이안의 긴 머리칼을 슥슥 빗더니 솜씨 좋게 땋아줬다. 닮지 않았지만 닮아 보이는 두 청년은 사이에 메이가 끼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들에게 메이가 끼는 건 마치 ‘억지’ 같았다.

“어이, 몰 코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라도이바이스보다 이안을 먼저 알았나?”

눈치 100단 낭인족도 메이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몰이 이안과 친하다는 것을 알고 몰을 떼어내기 위해 억지로 몰에게 친근하게 굴고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것 같았다. 낭인족도 이걸 눈치 챘는데 시아나 필츠는 오죽할까. 밀리엄도 마찬가지였다.

“네. 스승님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키메라가 되고 며칠 만에 만났습니다. 메이는 이제 반 달 정도 알고 지냈습니다.”

“역시.”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그냥. 둘이 친해보여서.”

“싱거운 질문입니다.”

“하하하하, 그러네. 싱거운 질문이었어.”

낭인족은 속 좋게 웃어넘겼다. 질문의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몰은 아무 의미 없이 따라 웃을 뿐이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다. 가디안스의 길드원들은 몰과 이안에게 편하게 다가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시아 네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몰과 이안에 대한 얘기가 더 진행될 차에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메이가 길드원들에게서 ‘자칭 그녀의 친구들’을 빼내기 위해 의자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밀리엄에게 붙잡혀 다시 의자에 앉혀졌다. 그가 양 어깨를 세게 눌렀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드래곤의 힘까지 느껴져서 더더욱 꼼짝할 수 없었다. 밀리엄이 손을 통해 드래곤의 마력을 여리게 발산하는 것이었다.

“이안에게 성이 없는 데엔 이유가 있나요?”

“성은 있습니다. 알릴 수 없을 뿐입니다.”

시아는 필츠의 미소를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성을 숨기는 것이니 시아가 이해해야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성은 몰라도 이름이 있고,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성을 알기 위해 집착하는 쪽이 더 귀찮은 일이었다.

“이안이 성도 있어?”

“당연히 있어.”

“뭔데?”

“일릴 수 없다고 했잖아.”

“알고 싶어.”

비정상일 정도로 집착했다. 메이는 ‘이안’이라는 존재 자체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 정도가 조금만 더 심해지면 그간 쌓인 정이나 좋은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질 것이다.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 정도껏 고집 부려. 이안의 성을 숨기는 게 누굴 위해서라고 생각해?”

두말할 것 없이 얼음의 대지를 위해서였다. 글라셰는 얼음의 대지를 위해 존재하고, 그들의 존재의의는 하나도 빠짐없이 얼음의 대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유치하고 사소해 보이더라도 얼음의 대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필츠의 무거운 타이름에 메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진격 부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안을 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집착을 끝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메이가 수준 높은 글라셰라지만, ‘집착’이라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다. 더 일그러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이미 이안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새 길드원을 영입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가 조건에 맞는다면 말이죠.”

시아는 비밀이 있는 예비 신입의 그 비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길드 가디안스에 걸맞는 실력을 지녔는지, 그 이상이라면 어느 정도까지인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길드 가디안스는, 키메라는 체인급 이상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가지면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순종은 지식이든 전투 능력이든 무엇 하나가 아주 특출하지 않으면 가입이 힘들다. 최소한 현 길드원 전원 중 반 이상에게서 ‘저 정도면 쓸 만하다’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잊지 말자. 가디안스가 엘리트 그룹이라, 길드원 개개인이 모두 눈이 높다. 드래곤, 가루다, 다크 엘프처럼 특수한 종족(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종족)이 아니면 힘들다.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으읏. 시아. 이안을 데려가면 안 돼.”

메이가 필츠의 말을 끊었다. 게다가 시아의 팔을 꼭 잡고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메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중에 끼어드는 건 예의가 아니야.”

“하지만, 이안은 안…….”

“조용히 해. 난 멋대로 끼어드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암만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정신 연령이 지극히 부족한 아이는 상대하지 않는 주의야.”

“너무해. 내 걸 뺏어가는 주제에. 시아 따위… 읍…….”

메이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밀리엄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숨 쉴 수 있게 코는 감싸지 않았지만 입은 확실하게 꽉 가렸다.

“보스의 화를 사지 않는 게 상책이야. 자, 꼬마 토끼 아가씨는 나랑 저쪽에 가서 놀자.”

[으득]

“앗!”

심하게 발버둥 치던 메이는 밀리엄의 손을 힘껏 깨물었다. 송곳니가 파고 들어가서 그의 흰 손에 구멍이 뚫리고 투명한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멀쩡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번쩍 들었다.

“이봐, 아가씨. 진심으로 맞장 뜨면 내가 이길 텐데, 한 번 해볼래?”

실버 드래곤의 독기로 그녀를 위협했다. 그녀의 민감한 피부가 위험을 감지했다. 살이 따끔거리면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놔, 놔!”

“너 까짓 게 우리 보스에게 덤비고 험담을 하는 건 가디안스의 4천왕으로서 용서 못해.”

“종족이 뒤섞인 잡종이 감히 태초의 땅에서……. 아…….”

시아, 밀리엄, 필츠가 거의 동시에 살기를 방출했다. 한 순간에 폭발적인 살기가 느껴지자, 진격 부대 및 이안과 몰은 대화를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저 살기가 아직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마른 침을 삼키고 상황을 지켜봤다.

“마야라임. 손님에 대한 예의를 다시 배워야겠군. 그대, 내가 인정한 그 마야라임 라도이바이스가 맞나?”

“최저 최악의 글라셰군. 네 까짓 게 얼음의 대지에서 태어난 글라셰야? ‘-바이스’가 성에 붙어? 대지가 딸을 잘못 뒀군.”

“보스가 없었으면 내 손에 죽었어. 토끼 아가씨. 내 글릭폰이 아가씨의 목을 베고 싶어 안달이야.”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 메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세 명에게 둘러 싸여서 와들와들 떨었다. 밀리엄에게 붙잡혀 있어서 도망갈 수 없었다.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찔끔찔끔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마력을 내뿜어서 살기에 맞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압박감이 실로 대단했다.

“메이가 뭘 잘못했나봐.”

“말실수라도 크게 했나보지.”

몰과 이안은 메이의 성격이나 행동거지를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그들이 화내는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를 구제하러 가지도 않았다. 신경을 따끔따끔하게 자극하는 요란한 살기 3화음을 느끼며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을 뿐이었다. 참고로 진격 부대는 보스와 캡틴의 일에 끼어들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한낱 길드원으로서 두 어르신의 일을 외면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얼음의 대지의 의지에 따라 이안을 바르베리트-진 씨에게 부탁할 거야. 넌 선택권도 간섭권도 없어.”

“생명은 모두 존귀한 것. 일방적으로 가질 수도 없고 멋대로 비하할 수도 없어.”

“약한 주제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저보다 훨씬 강한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인은 전혀 귀엽지 않아.”

필츠, 시아, 밀리엄에게서 점점 조여 오는 살기는 메이의 정신을 천천히 붕괴시켰다. 결국 동공이 풀리고 멍한 표정이 됐다. 눈을 뜬 채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허나, 3인의 살기는 금방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입 여부는 둘째 치고 이안을 반드시 메이에게서 떨어트려야겠군요.”

시아는 한껏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밀리엄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는 묵묵히 메이를 데리고 메이가 머물던 손님방에 들어갔다 왔다. 쇼크를 심하게 받아서 쉽게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안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그쪽이 서로에게 이득인데 거절할 이유 없잖아요.”

겨우 살기가 진정됐다. 하지만 두 개의 훌륭한 포커페이스를 깨부순 미간 주름은 여전히 얼굴에 머물렀다.

“휴-. 마야라임이 그렇게 극단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판바이스 씨의 진짜 위치를 알았더라도 저 성격은 그대로였을 걸요? 오히려 더 악랄해 졌을 지도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그걸 염려하여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성가신 타입이에요.”

메이의 모습이 학교에서의 어떤 학생과 겹쳐졌다. 충실하지는 못해도 나름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면서 별의 별 학생들을 경험했다. 그 중 자기 밖에 모르면서 자신이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고 굳게 믿는 성가신 학생이 있었다. 늘 시아와 민을 라이벌로 대놓고 지목하지만, 실은 어느 학생들이나 시아나 민을 지지하지 그 학생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그 학생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지목당한 시아와 민이 가끔 피곤했다.

“메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죠. 몰과 이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얘기 하는 쪽이 머리가 덜 아프겠어요.”

얼음의 대지에서의 일주일. 필츠가 책임지고 몰을 가르칠 때, 시아는 이안을 가르쳤다. 전투법과 대지 밖에서의 생활법 등을 골고루 교육했다. 그 동안 진격 부대는 밀리엄의 지휘 하에 특별 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인 것은 누구의 방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