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크루세이더에서 선전포고를 하고 예고한 대로 일주일 뒤, 당시 제 12기사였던 오웰 슈나이더와 그 아래 일반 간부였던 포일러 미마이드가 초대형 군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전부 나가와 소드였다. 그것은 오웰의 플러스와 포일러의 플러스로서, 가루다와 필적하는 종족이다. 금수형 종족에서 가루다가 최상위라면, 파충류 종족에서 나가가 최상위 종족이고, 마족의 수많은 종족·계급 중 소드(S.O.D.)는 최상위에 해당하며 실력은 유사 신족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다. 지상계 키메라가 천상계 가루다에게 덤비면 얼마나 하겠느냐고? 키메라이기 때문에 앞날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대개 강해지기 위해 키메라가 됐다. 아무리 멸시 받아도 강하기만 하면 자신을 멸시한 종족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다. 키메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할 때는 이길 자신이라든가 묘책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천상계 종족이라도 전쟁을 앞두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상대가 분명하지 않은데 키메라라는 이유로 이를 경시했으니 나가·소드 연합군대가 등장하자마자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루다와 나가는 천성적으로 서로를 멸시한다. 서로를 증오하는 유전자가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가는 언젠가 가루다를 박살내겠다고 벼르던 차에 오웰의 제안을 기회 삼아서, 길드의 정의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참전했다. 가루다 왕가 혈통 몰살 작전이지만 상대는 왕족만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확실히 하고자 지상에 내려가 있는 상급 나가도 잔뜩 불러 모았다. 그러니 이미 나가만 해도 천상계 가루다의 수보다 우세했다.
소드는 신족에 의해 멸망할 뻔한 종족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소드를 긁어모아도 십의 자리 수를 채울까 말까했다. 앞서 유사 신족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이라고 했는데, 먼 과거에 신족과 대등하게 싸웠던 종족이다. 소드도 천상계에서 살 수 있다면 유사 신족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리고 가루다가 신체 특성상 물리적인 힘에 많이 의지하는데 비해, 소드는 신체적 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마법 구사 능력이 전 종족 최상위 랭크에 들어간다. 소드에게 있어 가루다는 메추리나 꿩처럼 조류 사냥감에 불과하다. 이번 전투에 포일러를 키메라로 만든 다섯 명만 참가했다지만 결코 작은 전력이 아닌 것이다.
“이야, 오웰 형. 많이도 데려왔네. 내 쪽이 빈약해 보이잖아.”
포일러는 이복형 호일러프와 나이가 비슷한 오웰을 거리낌 없이 ‘형’으로 불렀다. 그들끼리 알아서 뭉친 것이 아니고 크루세이더의 이름으로 팀이 짜인 것이지만, 구성 종족과 개인적 협동력이 팀 구성 시 결정적인 요건이라서 자연스럽게 친한 이들끼리 한 팀이 됐다.
“내가 데려온 거 아니야. 나가의 왕이 전적으로 밀어주는 거야.”
“그 정도로 설득한 건 오웰 형이잖아. 능력자라고. 정말 대단해.”
나가·소드 연합 군대는 가루다의 영역 외곽에서 대기했다. 이미 진형은 갖췄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꼼꼼히 포위했다. 그리고 언제든 밀고 들어갈 수 있게 마력에 시동을 걸었다. 가루다의 영역으로 오면서 몸풀이를 마쳤기 때문에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나가든 소드든 마력으로 체력의 열세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루다가 무슈후슈처럼 마력을 깨부술 만큼 체력(물리력)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누려 의기양양하게 가루다의 영역을 얕봤다. 함정도 없고 복잡한 구조도 아니라서 보면 볼수록 만만하고 가소로웠다.
“왕이시여, 적입니다. 무려 나가 일족과 소드입니다.”
“알고 있네.”
“대체 크루세이더란 어떤 길드입니까? 어떤 수로 저들을 군대로 부리는 겁니까?”
“갓블러드의 충고를 무시한 짐의 불찰이오.”
가루다 킹은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미래에 세계를 제패할 크루세이더에서 대자연의 대변인 성령사도를 죽인 대죄인을 단죄하겠다.」
하찮은 미물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크루세이더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조직인지는 몰라도 세계를 뒤흔들 힘이 잠재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눈앞에 있는 군대가 그 잠재력의 실체 중 일부건만 무엇을 더 의심하겠는가. 크리세이스의 말대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나가와 소드를 동시에 군대로 부리는 터무니없는 존재가 이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짐이 공주의 반만큼이라도 갓블러드를 믿었다면 조금이라도 준비했을 것을.”
“그러면 자존심을 굽히고 길드 가디안스에 도움을 청하십쇼. 굳건한 가루다의 영광 넘치는 왕이시여.”
크리세이스가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얇지만 몇 겹으로 제작한 가죽 상하의와 고위 사제가 걸칠 수 있는 민소매 롱 로브(직사각형의 긴 천에 머리 구멍만 뚫려서 위는 어깨까지 덮고 펄럭이는 천히 몸의 앞뒤를 가리는 간단한 형식)가 그녀만의 격식을 갖춘 무장이었다. 게다가 그 자체가 하갈의 갓블러드 중 각성한 전사만 입을 수 있는 제복 겸 전투복이었다. 새하얀 실크로 만들어진 롱 로브는, 진갈색 무명천으로 만든 하갈의 심볼이 앞뒤에 하나식 중앙을 차지하여 소박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추구했다. 크리세이스가 각성한 갓블러드임을 새삼 다시 인식시켰다.
그녀는 멜로즈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우연히 나가·소드 군대가 가루다의 영역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뛰어난 판단력으로 망설이던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녀는 가루다의 영역에 돌아가지 않고 가디안스의 아지트로 가서 가입 의사를 밝혔다. 가입 절차는 어렵다든지 복잡하지 않았다. ‘가입 하겠다.’, ‘알겠다.’ 두 마디면 끝이었다. 가디안스에 친분을 쌓아 온 덕분에 멜로즈를 쉽게 맡기고 가루다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멜로즈가 자신도 싸우겠다며 고집을 부리는데 은룡왕의 도움으로 겨우 떼놨다. 가루다의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왕위 계승 제 1순위를 데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가디안스에서 용병을 데려왔다. 보스는 방금 가입한 신입 길드원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길드 크루세이더와 관련 없는 일이라도 너무 오지랖 넓은 참견이 아니라면야 얼마든지 도왔을 것이다. 아직 4천왕을 정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실력의 순위가 자리매김한 길드 가디안스. 상위 실려가 수 명이 크리세이스와 동행했다. 종족을 간섭하는 일이니만큼 보스가 당연히 따라왔고, 보스만 따르는 잔혹한 전사 류 민, 길드 생성 전부터 시아와 어울렸던 길드 창설 멤버 디레스 엑서스엘, 플릿 엑서스엘, 신 휴, 구 화타. 이 6명이 당시 정예 멤버였다.
“멋대로 영역 안에 발을 들였지만 가루다 킹이 허락하지 않으면 일절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울테이커급 키메라는 위대한 순종마저 위축시켰다. 가루다는 자신들이 신 외의 존재에게 경외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외모는 후작급 악마라도 분위기와 마력은 종족을 초월한 위대함을 품고 있었다. 과연 절대 키메라에 가까운 존재다웠다.
가루다 킹은 가디안스의 용병들을 둘러봤다. 시아에게 할 대답을 생각하는 듯 싶더니 크리세이스에게 시선이 향했다.
“공주는?”
“가디안스의 아지트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데려오게. 공주는 일족의 최후를 지켜 볼 의무가 있어.”
“왕이시여!”
그 자리에 있는 가루다 모두 경악했다. 가루다 왕가 혈통뿐만 아니라 천상계 가루다가 전부 몰락할 수 있는 시점에 정통 후계자를 전쟁터 한복판에 들이는 것은 자멸을 감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훗날 지상계 가루다를 이끌어 재번성하기 위해서라도 공주가 무사해야 했다.
“공주를 데리고 있는 길드원에게 속히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보스.”
크리세이스는 시아와 일동의 태연한 얼굴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침착한 표정 속에서도 눈에는 가루다의 왕에 대한 존경이 드러나 있었다.
“크리세이스 하갈. 지금의 가루다 킹은 폭군으로 기록될지언정 왕의 그릇으로서는 손색이 없어. 도리어 너무 큰 나머지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났을 뿐. ‘뿐’이라고 표현하자니 안타깝지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든 진실이 지금의 가루다 킹을 오명에서 씻어줄 거야.”
길드 가디안스의 어린 보스는 왕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그녀를 따라온 용병은 모두 그녀 못지않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간파하는 눈이 뛰어난 만큼 언제나 침착했다. 그러나 겉은 침착해 보여도 속은 상대를 더 알고 싶어서 무한히 뜨겁게 끓어올랐다. 싸움에 임할 때의 잔인함과 결단력이 그 뜨거움의 증거다.
“뭐, 내 사람에게 공주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직접 받은 것도 있으니까 아지트든 여기든 그 약속은 지켜야지.”
“보스는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아. 안심해, 신입.”
시아를 구세주로 맹신하는 플릿이 시아의 말을 보증했다. 크리세이스는 그간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신용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가디안스에 들어가고 멜로즈를 맡겼던 것이다. 그래도 멜로즈의 신변을 재차 확인 받으니까 순간 경직됐던 몸이 풀리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더불어 지금 당장 싸울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생겼다. 이래서 길드가 좋구나 싶었다.
“소인도 부탁하겠소이다.”
“왕……이시여!”
가루다 킹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시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댔다. 신하들이 달려들기 전에 시아와 휘하 길드원 전원이 무릎을 꿇었다. 크리세이스도 가디안스의 일원으로서 행동했다. 시아는 가루다 킹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생판 처음 보는 자에게, 그것도 경시하는 키메라에게 굴욕을 아끼지 않았다. 나약한 것도 경솔한 것도 야비한 것도 아니다. 누구도 꺾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영혼을 가졌다. 이만한 각오를 가진 자다. 시아는 그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미천한 지상계 존재가 가루다 킹의 옥체에 손댈 수 없습니다. 일어나 주십쇼.”
유수와 같이 잔잔히 스며드는 목소리가 주변 모두에게 전달됐다. 대자연의 의지를 깨닫지 못하면 범접할 수 없는 경지, 소울테이커. 깊은 바다에 비유되는 성령사도와는 다른 대자연의 대변인이었다. 실제로 소울테이커가 대자연의 의지를 대변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한 존재는 성령사도 뿐. 허나, 그만큼 시아의 존재감이 강렬했다.
“자긍심이 걸린 싸움에 저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쯤은 압니다. 저희는 당신들의 긍지를 직접 보고 느낀 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루세이더가 관여한 일인 만큼 저희의 인내심이 얼마나 발휘할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가와 소드를 제외하고 크루세이더의 일원이 직접 수를 쓰려하면 저희 역시 독단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그것이 당신들의 사명이라면 당신들이 우리의 궁지를 존중한 만큼 우리도 그 사명을 존중할 것이오.”
가루다 킹은 신뢰를 표명하기 위해 거대한 본체로 되돌아간 후에 맹세의 언약처럼 읊었다.
불순분자를 제외한 천상계의 모든 가루다가 왕의 뜻을 받들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크루세이더에서 이미 ‘왕’을 단죄하고 ‘왕가 혈통’을 끊기 위해 나타났음을 알렸기 때문에 왕에게 반기를 든 자들이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가 일족이 자신들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자존심을 상당히 긁어내서 가만히 있어도 되는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길을 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종족을 배신하지 않는 일이라고 위로했지만 찜찜한 구석이 사라지지 않았다.
훗날 ‘가루다 명예 전쟁’이라 명명될 전쟁이 시작됐다. 크루세이더에서 내세운 것은 가루다 왕가 혈통 몰살 작전이었지만, 천상계 가루다라고 하면 왕족이 아니면서 참전하지 않은 자들도 확실하게 죽였다. 즉, 무관계한 가루다도 죽인 것이다. 이것은 가루다 내부 불순분자가 일족의 존속을 위해 참전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됐다. 두 번째 이유는 가디안스가 들춰낸 진실 그 자체가 됐다.
“시아, 시아. 앞으로 보스라고 부를게. 아바마마를 도와줘. 모두를 구해줘. 제발, 보스, 제발. 보스는 할 수 있잖아. 모두를 구할 수 있잖아.”
“멜로즈, 이리 와.”
“싫어, 놔. 보스, 보기만 해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했잖아. 긍지는 무슨 긍지야. 다들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게 긍지야? 정의야? 일족이 단체로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완전 바보짓이라고. 날보고 이 한심한 꼴을 보라는 거야?”
[짝!]
크리세이스가 멜로즈를 붙잡고 있다가 따귀를 세차게 때렸다. 멜로즈는 맞은 부위를 매만져보지도 않고 크리세이스를 사납게 노려봤다. 눈동자가 가루다 본연의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틀린 말했어?”
“왕과 일족의 행동이 한심해 보인다면 그건 넌 아직 어리다는 증거야.”
“그래, 어려. 어리니까 해달라고 조르는 거야. 싫으니까 싫다고 하는 거야. 공주라서 참고 보라고? 피를 뿜어대고 몸이 찢겨나가는데, 구역질 날 만큼 무서운데, 나보고 참으라고? 내가 저들의 공주라서 저들이 죽는 게 싫은 거야.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죽어야 해?”
멜로즈는 털썩 주저앉고서 한이 가득 맺힌 목소리로 크게 울었다. 근 몇 십 분 동안 전쟁 중의 참상을 보면서 참았던 모든 것을 터트렸다. 크리세이스는 뺨을 때린 것을 후회하며 멜로즈를 힘껏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멜로즈, 미안해.”
멜로즈의 처절한 외침에도 꼼짝 하지 않던 시아는 나가 일족과 다섯 소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시아의 시야에서 크루세이더의 길드원은 보이지 않았다. 가루다 왕가 혈통 몰살보다는 유사 신족급 가루다 몰살에 가까워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일족의 존속이 걸린 싸움은 영 보기 껄끄러웠다.
“보스. 크루세이더 녀석들을 찾았습니다.”
보스가 신임하는 첩보원은 그 신뢰에 걸맞게 가장 먼저 오웰과 포일러를 찾아냈다.
“녀석들도 싸우고 있어?”
“아뇨. 뒷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 신전처럼 보이는 거대한 동굴 부근에서 소드가 플롯을 연주하여 보초를 재운 후에 나가가 강한 보호막을 해제했습니다.”
“말도 안 돼. 거길 어떻게 들어가?”
가루다 일족의 어린 공주가 시아와 플릿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잔뜩 찡그린 눈. 전혀 겁내지 않았다. 불안함 따위는 이미 다 날려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녀의 작은 몸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분노였다.
오웰과 포일러가 들어간 곳은 가루다 일족의 왕이 될 자만 출입이 허용된 성역이었다. 왕의 증거가 보관된 곳으로서 그곳에서 무사히 왕의 증거를 가지고 나오는 자가 왕으로 추대된다. 왕의 피를 이어받지 않으면 성역에 발을 들일 수도 없고, 왕의 그릇이 아니면 왕의 증거에 손 댈 수 없으며, 왕 외의 자는 누가 들어가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없다. 최소한 당분간 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한다. 가루다 중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엄격하게 제한되거늘, 다른 종족이 들어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런데 크루세이더 녀석들이 들어갔다. 오웰이 강해서 결계를 깼다? 성역 자체가 급속도로 약해진 것이다. 가루다의 왕이 위험을 감지하고 왕의 증거를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직 모르는 멜로즈로서는 성역을 침범한 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살생 본능이 천천히 이성을 잠식했다.
“꼬마 고주님. 내가 그들을 처리할게. 공주님은 내게 그 더러운 키메라들을 쫓아내라고 의뢰하면 돼.”
시아가 멜로즈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멜로즈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졌다. 덕분에 이성이 원상 복귀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가디안스 사람들에게 실례잖아.”
“그럼 어떻게 말해?”
“못된 크루세이더를 혼내줘.”
“좋아. 잠깐이면 돼. ……. 멜로즈, 여기서 기다리면서 일족의 왕이 될 각오를 다져. 서른 살은 인간에게 있어 충분히 훌륭한 성인이야. 어리광 따위는 한참 옛날에 졸업했을 나이지. 네가 아무리 인간으로써 6살이라도, 난 네가 어른으로 보여. 무슨 말인지 알지?”
“공주로 태어난 만큼 그 몫을 해야 한다……지?”
“훌륭해.”
가디안스의 보스는 가루다 일족의 공주를 크리세이스와 엘더에게 맡기고 드디어 전장에 뛰어들었다. 민, 디레스, 휴, 화타는 플릿의 텔레파시를 받고 성역 입구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나가 일족이나 다섯 소드에게 일절 손대지 않고 있었다. 가루다 일족의 장렬한 싸움 속에서 진실을 찾는 데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래도 몸이 근질거려서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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