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3 각성 ③

★은하수★ 2009. 5. 31. 14:03

때마침, 아주 시기적절하게 반가운 이들이 아지트로 돌아왔다. 천상계에 갔던 플릿과 재윤이었다. 그들의 마력이 체내 신경을 자극하자마자 시아와 민의 관심이 동시에 그리고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루시퍼가 들고 온 정보나 글라셰에 대한 정보나 미련 없이 두 번째로 밀려났다. 플릿과 재윤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집무실 내부는 긴장과 침묵으로 가득해졌다.

[똑똑, 달칵]

“어-서와.”

목 빠지게 기다렸다는 뜻이 다분히 녹아 있었다. 그런데 시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책상을 돌아서 출입구를 향해, 정확하게는 안으로 들어온 두 명을 향해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걸어가니 실로 무서웠다. 게다가 플릿의 코앞에 서서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는데 무서움의 연장선이었다. 두 손을 천천히 위로 올리더니 플릿의 양 볼을 감싸듯이 잡았다.

“보스?”

플릿은 영문을 몰라 시아를 가만히 내려다 볼 뿐인데 그녀의 눈이 뭐랄까 진지했다.

“누-구냐? 이, 이 고운 얼굴에 상처를 낸 녀석이.”

그가 아지트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반반하고 깨끗했다. 그의 왼 눈 아래에 사선으로 생긴 상처는 천사나 악마의 고유 무기로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처는 마법으로도 숨길 수 없고 치료도 할 수 없어 평생 추하게 보여야만 한다. 쉽게 말하면 일곱 바늘 정도 꿰매야 할 만큼 긴 상처가 플릿의 흰 얼굴에 옥의 티로 남게 생겼다는 뜻이다. 외모를 나무 보듯 하는 시아가 외모를 높은 가치로 쳐주는 몇 안 되는 플릿의 백옥화안인데 그 상처가 시아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지금 아지트 밖에서 보스가 나오길 기다리는 한 키메라의 짓입니다.”

크리세이스의 비서이자 중화제인 재윤이 큭큭 웃으면서 대신 고자질을 했다. 시아가 이토록 사소한 것에 화를 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재밌는 상황을 좀 더 즐기고자 그녀의 신경을 즉각 건드린 것이다. 효과가 있었다. 플릿의 엄마를 자처하는-플릿이 훨씬 나이가 많지만 민 만만찮게 곧잘 데리고 다닌다― 시아이거늘, 귀가 번쩍 뜨이는 게 당연했다.

“어떤 잘난 키메라인데 감히 이 진 시아보고 나오라해? 그리고 이 내가 아끼는 아들내미에게 이, 이, 이 짓을 해?”

“보스 진정하십쇼.”

“이 엄마가 그 놈 모가지를 비틀어 놓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건…… 곤란합니다. 보스께서 탐내는 놈을 겨우 데려왔단 말입니다.”

플릿은 조심스럽게 시아의 두 손을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새로 생긴 상처를 슬며시 만져보다가 괜찮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자칭 플릿의 어미 되는 자는 그 미소가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데려오느라고 시간이 걸린 건가요?”

민은 아지트 밖에서 초조하게 시아를 기다리는 중인 문제의 키메라를 슬쩍 보고 왔다. 천사가 오리지널인 경우는 아주 희귀하기 때문에 먼저 구경해 봤는데 일반 천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블랙 드래곤이 플러스고, 주박까지 각성했으면서 대담치 못했다. 아마 만날 상대가 그 유명한 진 시아이기 때문이겠지만 플릿에게 호되게 당한 것 때문인 듯싶었다. 성룡이 된지 2년 남짓 된 플릿은 레드 드래곤 일족 중에서 소수의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 측에 속하나 타고난 싸움꾼이라 이성의 끈을 놓으면 정말 가차 없이 상대를 짓밟는다. 아마 이 키메라는 레드 드래곤 순종에게서 공포를 봤을 것이다. 그 여운 때문에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것도 그렇지만 일단 천상계로 들어가는데 사흘이나 걸렸어.”

재윤은 말도 말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원래 그렇습니까?”

“어이, 너 결박 끊고 가지 않았어?”

민과 시아가 거의 동시에 재윤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누가 몇 년을 같이 지낸 친구 아니랄까봐, 고개를 갸웃하는 타이밍까지 거의 일치했다. 그럴 리 없단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아니, 뭐…….”

두 사람에게 밀린 재윤은 민망해졌다. 차마 천사계로 통하는 천상계의 문을 여는 비밀 룰이 순간 기억나지 않아서 헤맸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침 지상계에 잠시 방문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해서 갈 수 있었다는 것도 말할 수 없었다. 말했다간 시아가 비난을 몇 바가지 퍼부을 게 분명했다. 어디가 유능한 비서고, 어디가 주천사냐는 둥 말이다. 우리의 보스가 정말 그런 비난을 밖으로 표출할 위인인지는 고찰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재윤은 보스의 말보다는 눈이 무서운 것이다.

“중간 과정이 어떻든 밖에 녀석이 있단 거지?”

“네, 보스.”

시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아무 말 없이 그 키메라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날개를 얌전히 접은 역천사가 아지트의 입구에서 대략 50m 정도 떨어진 불량 철제 건조물 뒤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는 시아가 갑자기 나타나서 흠칫 놀랐지만 나리에서 일어서지는 않았다. 긴장 때문에 몸이 굳는 바람에 일어서지 못한 것이라고 보자.

“네가 수룡왕의 레어를 뒤집어엎은 녀석이냐?”

“그렇습니다만…….”

그는 시아가 자신보다 한참 어리단 걸 알지만 그녀가 반말을 하고 자신이 경어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악마계에서 엄청난 실세를 쥐고 있고, 키메라 사이에서 탑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자신과는 격이 확연히 달랐다. 인간의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는 소문보다 더 살 떨리게 강했다.

“그래? 플릿 엑서스엘과 싸워본 소감은?”

“강했습니다.”

“그의 얼굴에 상처를 낸 너도 강하단 뜻인가?”

그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조그만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카리스마와 숭고함이 무한히 뿜어져 나와 자신의 경외감을 글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자는 자신을 아주 쉽게 굴복시킬 수 있고 자신은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와 같이, 거스르면 안 되는 순리처럼 와 닿았다.

“그건 유감이라 생각합니다.”

“흐응……. 머리가 좋네. 와인드 급에 타고난 혈통, 수룡왕을 갖고 노는 배짱, 시시각각 적절하게 판단하는 두뇌, 마지막으로 크루세이더가 아닌 여기를 택한 점. 오늘 부로 넌 가디안스 소속이다.”

다른 이유는 다 맞지만 마지막 이유는 억지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플릿과 재윤에게 끌려온 것이다. 그것도 보스가 원해서. 가입하겠냐고 권유하지도 않고 곧바로 강제 가입까지 시키니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플릿의 얼굴에 상처를 냈지만 그의 말대로 유감일 뿐 그것가지고 계속 꼬투리 잡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아가 그리 속 좁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야 이미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보스, 바로 스카우트하시는 거에요?”

“응.”

“저분의 의견도, 4천왕의 의견도 모두 묵살하고서요?”

“응.”

민은 시아가 어찌 대답할지 알면서도 꼭 한 번씩 확인을 했다. 혹시나 시아가 간과한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만, 실은 다른 4천왕이나 길드원이 합당한 이유를 대라고 추궁할 때 ‘보스가 그렇게 정했다’라는 변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면이 더 크다. 자신은 보스에게 물어봤고 대답도 들었다는 것에 형식적인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 잠깐. 난 당신의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역천사는 그제사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아의 폭탄성 발언에 놀라 벌떡 일어선 것이다. 시아는 그를 흘겨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뭘 모르나 본데, 여긴 내 길드가 아니야. 길드 크루세이더에 대항할 수 있는 자들의 길드야.”

길드는 보스의 소유물이고 보스는 길드의 주인이라는 순환 논리를 간단히 격파하는 시아의 지론이다. 길드원들에게 있어 시아는 절대적인 존재지만, 시아에게 있어 길드와 구성원 각각은 자신과 동등하고 자신은 그저 그들을 대표하는 상표 같은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사고방식의 차이다. 조금은 시아가 억지로 자신을 낮추는 경향이 있지만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이 지론이 역천사에게 얼마나 납득될지 모르지만 그는 납득해야만 하고, 최소한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인생을 편히 사는 법이라고 해두자.

“이해가 안 됩니다.”

“뭐가?”

“난 수룡왕의 레어를 침입한 자입니다. 그리고 길드 크루세이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흐음. 그 머리는 장식? 아니, 이미 파악했잖아. 가입을 거절할 그럴듯한 이유가 없어서 그런 치졸한 핑계를 대는 거야?”

이미 그 자를 포섭하기로 결심한, 말로는 벌써 포섭한 시아에게 그의 심리를 간파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녀에게 찍힌 자, 절대 그녀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진리가 입증되는 순간일 것이다.

역천사는 시아가 자신을 가디안스에 억지로라도 넣으려는 이유를 눈치 챘다. 수룡왕이 노발대발하는 건 그녀와 상관없었다.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군지 판가름하는 건 무용이라는 뜻이다. 그저 대담하게도 수룡왕의 레어를 휩쓴 실력을 높이 산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만한 실력자는 드물다. 한 길드의 보스가 탐낼 만하다. 그리고 크루세이더와 무관하다? 키메라인 이상 누구든 크루세이더의 표적이 된다. 이 세상 모든 키메라가 그 길드와 엮일 수밖에 없는데 자신만 무관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발언은 시아의 말대로 치졸한 핑계에 불과했다.

“내가 비록 키메라지만 긍지 높은 천사입니다.”

“알아.”

“아무리 플러스가 블랙 드래곤이지만 천계를 드나들 수 있고 직급도 있는 역천사란 말입니다.”

“그게 뭔 문제라고.”

쌈박하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당연하다. 가디안스에는 이미 천상계의 종족이 몇몇 있지 않은가. 제 아무리 역천사라 해도 그 신분이 거절의 이유가 될 수 없을 만큼 가디안스에 있는 천상계의 종족은 신분이 높기까지 하다.

“그런…….”

“혹시 속박당하는 게 싫은 거라면 염려 놔. 여긴 갈 곳 없는 길드원만 아지트에 머무르는 거고, 나머진 다들 자기 집에서 살면서 텔레파시로 전달사항을 주고받으니까 네 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유롭다고.”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겠으니 얌전히 길드원 기록에 이름을 적으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어떤 이유도 핑계도 애원도 통하지 않는 강제에 역천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압도’를 경험했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제거하겠다.’라는 말이 환청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미스터 카마엘은 캡틴 브롤의 진격 부대에 딱이겠는데요?”

“오, 카마엘 계통이었어? 흐음……. 확실히 진격 부대가 잘 어울리겠어.”

본인은 가입을 승낙하지도 않았는데 시아와 민은 벌써 소속 부대까지 (역시나) 멋대로 정해버렸다. 역시 가디안스의 보스와 제 1천왕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여기서는 확실하고 대담한 추진력을 칭송해야할 것이다.

“내가 이 길드에 들어가면 수룡왕의 화가 여기로 뻗을 겁니다.”

“까짓거 상대해주지.”

일전에 밀리엄의 말을 떠올려보자. ‘이미 훌륭한 먼치킨이야, 보스-.’ 그렇다. 이 듬직한 보스는 수룡왕도 만만히 보는 용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시아는 인간이지만 악마이기도 하다. 그것도 스스로 엄하게 단련하여 악마왕도 두려워하는 후작급 악마다. 드래곤 일족쯤이야 에이션트 급만 아니면 자기 몸에 상처 하나 허락하지 않은 채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다.

“그러면 난 뭘 하면 됩니까?”

시아의 막나가기에 밀려 결국 손 들었다. 시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자, 뭘 하면 될까? 응? 제 1천왕.”

“지금은 저분이 할 만한 일이 없으니까 신상 정보만 기록하면 되요.”

“아니지. 신입 환영회를 해야지.”

말 되는 얘기였다. 민은 어련하시겠냐는 투로 피식 웃었다. 지원과 세나가 금세 체인급이 되면서 어엿한 정식 길드원으로 등록했고, 피리오도 가입한지 닷새쯤 됐으니 신입 환영회를 하기 적당했다. 안 그래도 밀리엄이 얘기를 꺼냈었는데 때마침 카마엘을 찾아냈으니 드디어 시아가 그 무지막지한 신입환영회를 결심한 거다.

신입들까지 합쳐 약 100명. 이 모든 길드원이 전부 아지트에 모여서 떠들썩하게 즐기는 유일한 행사가 바로 신입 환영회다. 귀차니즘 때문에 필요한 업무 외에는 손대지 않는 시아가 (또) 유일하게 적극 챙기는 행사이기도 하다. 보스가 부르는데 안 오고 뻐길 길드원 없겠거니와, 워낙 유쾌한 볼거리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훗날이 후회스러울까봐 알아서들 찾아온다.

“설마 오늘 밤에 하실 건가요?”

“아니, 그러면 순찰 나간 두 부대에게 실례지. 여유롭게 내일 밤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민이 먼저 아지트 안으로 돌아갔다. 신입 환영회를 열거라는 멋진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크고도 작은 축제 소식에 -신입은 빼고-모두 흥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항상 크루세이더와 얽힌 쓰고 어두운 일에 매어 있는 중에 간간히 찾아오는 단비와 같은 것이니 어찌 들뜨지 않겠는가.

“장기 하나 정도는 있지?”

시아는 카마엘을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대했다. 그는 시아의 놀라운 친화력에 당황했다.

“아니, 됐어. 앞으로 잘 부탁해. 귀한 전력이 될 인재를 찾아내서 진심으로 기뻐.”

“아…….”

카마엘은 적당한 응수를 찾지 못했다. 차신을 향해 내밀어진 그녀의 손이 민망하지 않게 같이 악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주잡고 있는 그녀의 손은 어떤 자비로운 천사의 손보다 따뜻했다. 도저히 악마로 각성한 그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초면에 통성명도 안 하고 대뜸 길드에 들어오라고 해서 미안해. 새삼스럽지만, 난 진 시아. 이곳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야.”

보통 10대 소녀가 자신이 유명한 조직의 우두머리라고 하면 장난이겠거니 하거나 마냥 귀여워 보일 텐데, 시아는 타고난 보스감이라 그런지 몰라도 후광이 나고 분위기가 남달랐다. 그래서 철없게 들릴지 모르는 그 말이 진지하게 들릴 수 있었다. 카마엘은 자신과 마주보고 있는 소녀가 누군지 다시 한 번 상기하고 나서 마른 침을 삼켰다.

“전 크림슨 카마엘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역천사-블랙 드래곤 키메라입니다.”

“좋아, 그러면…….”

[우웅-!]

“읏!”

시아는 넘쳐나는 마력을 발산해서 크림슨 카마엘을 몰아붙였다. 살기도 없고 적의도 없는 순수한 마기인데도 뼈에 사무칠 만큼 무서웠다. 아마도, 네가 이제껏 살아온 세계는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계에 비하면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몸으로 깨우치게 하려는 의도이리니, 마기의 압박은 신체적으로도 견디기 힘들지만 심리적으로도 그 압박이 실로 대단했다. 아지트 안에 있는 길드원들도 느낄 수 있는 이 기운은 너희의 보스는 이런 자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역할도 했다. 이러니 보스의 절대 추종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 녀석의 실력은 이러저러한 정황으로 가늠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

“크억!”

시아가 크림슨의 가슴에 오른손을 대자마자 그의 마력이 급상승하고 심하게 몸부림쳤다. ‘가성 단계가 높은 키메라는 낮은 키메라를 강제로 각성 시키거나 각성을 구속체로 묶어버릴 수 있다.’ 자, 소울테이커급 시아가 와인드급 크림슨을 강제로 깨우는 것이다.

“좋아. 결박.”

가디언스의 보스는, 신참은 주박을 끊게 하더니 자신은 한 단계 아래인 결박을 끊었다. 그래도 시아가 그를 가지고 놀 게 분명했다.

블랙 드래곤의 거대한 육체가 창공에 날아오르더니 새카맣고 투박한 날개를 활짝 폈다. 시아는 우아하고 고상한 검은 날개를 조용히 양 옆으로 넓게 펼치더니 팔짱을 끼고 그가 공격하길 기다렸다. 그녀가 먼저 시작하면 1홉만에 끝날 텐데, 그러면 실력을 테스트하는 의미가 없다. 크림슨은 그녀의 바람대로 지상에 서있는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공격에 수월하도록 중간에 인간의 형상으로 폴리모프하고 손에 애검 ‘글로리아’를 소환했다. 첫 번째 공격은 너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헛손짓으로 끝난다 쳐도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까지, 물리 공격도 마법 공격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그녀를 스치지도 못했다. 근거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시야 밖에서 유유히 그의 헛공격을 구경하고 있었다. 실력차이, 경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녀는 피하기만 했는데 마치 한 번이라도 공격을 한 것처럼 심장을 옥죄는 공포가 느껴졌다. 오기로라도 더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될 거란 사실을 경험한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검을 든 팔이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좀 아쉽네.”

두 키메라가 모두 오리지널로 돌아갔다. 시아의 구속체는 바로 사라졌지만 크림슨의 구속체는 시간이 필요했다. 크림슨의 구속체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동안 시아는 그에게 부족한 것이 뭘까 고민했다.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운 뭔가가 있는데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탐났다.

“근데 수룡왕의 레어는 왜 그렇게 만든 거야?”

“그…게……. 뺏겼습니다.”

“어이, 밑도 끝도 없이 뺏겼다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시아는 허리 운동을 하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을 때 잠깐 멈췄다. 하지만 곧 다시 좌우로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전 제 동생을 뺏겼습니다. 그 아이는 순결을 뺏겼습니다.”

[빠직!]

크림슨은 시아에게서, 0.1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대량의 살기가 분출됐다가 억지로 거둬진 것을 느꼈다. 너무나 확실한 반응인지라, 그는 자신이 해선 안 될 말을 한 건지 혼동이 됐다.

“수룡왕 그 자식이 호색한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었냐.”

겁탈. 시아가 굉장히 경멸하는 몇 가지 단어 중 하나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가해서 명쾌한 뼈마디 소리를 냈다.

“레어만 박살낼 게 아니라 그 자식도 박살냈어야지. 아, 그 때 레어에 없었지. 운 억세게 좋은 자식.”

크림슨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천사들도 자신들을 위로해주지 않았는데, 오히려 괜히 천계에서 벗어나 죄를 입었다는 이유로 눈엣가시가 됐는데, 오늘 처음만난 자가 이토록 동조해 주다니 크게 위안 받는 것 같았다. 여동생도 시아의 말을 들으면 분명 가슴 속에 생긴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구원이었다.

“수룡왕, 그 녀석은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어. 네 속이 얼마나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성심성의껏 응징해줄게.”

“이제 막 제 보스가 되신 분께 그런 실례를 끼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어차피 그 할아범,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떻게 골려줄까 벼르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