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 요람을 흔들어 주는 이유
오늘은 특별히 아주 일찍 일어났다. 잠이 거의 없는 기가 성불 대상을 찾았다며 날 새벽 6시 조금 전에 깨운 것이다. 옷을 대충 차려 입고 겉에 두툼한 잠바를 걸치고 기를 따라 나섰다. 우리 집에서 한 블록 차이 나는 작은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갔다.
“이번엔 어떤 귀신이야?”
“엄마 귀신 정도?”
흐응. 엄마 귀신이라면 아직 아이들은 살아 있고 엄마가 그 아이들 주위를 맴돌고 있을까? 어제 내 기억을 되돌릴 방법을 찾지 못해 류등과 백호를 어색하게 돌려보냈지만 그 전에 엄마는 성수기 때문에 죽을 때 영 자체가 사라지는 앞으로 엄마를 만날 일은 없다고 가르쳐줬다. 솔직히 엄마 잃은 아이 입장에서 죽은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귀신이 된 엄마는 무섭기 전에 너무 슬프다.
“갓난아기를 빼앗긴 엄마인 것 같아. 그런 경우 종종 있지. 나도 그런 귀신을 여러 번 만나보고 성불도 시켜봤으니까.”
기는 한 건물 안에 들어가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게 왼손을 내밀었다.
“사람이 말짱하게 살고 있는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도둑 취급을 받을 테니, 산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주술을 걸고 나서 들어가자.”
그런 주술도 있구나. 하긴, 폐가나 공터에만 귀신이 있는 건 아니니까 제자를 데리고 다니는 성수는 그런 주술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난 기의 손을 잡고 기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성수가 인간이 모습일 때는 성수가 따로 신경 쓰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건 이 팔찌 덕분이다. 그래서 조금은 귀신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기의 체온은 따뜻하다.
“3층이니까 걸어가도 괜찮지?”
“이 정도는 괜찮아.”
기는 내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평소에는 소리도 잘 지르고 잘 때리고 해서 몰랐는데 은근히 내가 무리하지 않게 보조해 줬다. 지금도……. 인간의 모습이니까 표정에서 티가 나서 새의 모습일 때보다 성격 좋아 보인다.
“새의 모습에선 주술을 못 거는 거야?”
“그 때는 본체 축소판이라 성불 주술 밖에 못 해. 인간형은 이 자체가 본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술을 쓸 수 있어.”
“그렇구나.”
3층에 금방 도착하고 귀신이 있다는 집 앞에 가서 섰다. 왼 손을 들어보니 팔찌엔 아직 반응이 없다.
“아, 아악! 여보!”
기가 문을 열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는 중에 집 안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귀신의 모습을 본 게 아닐까? 난 기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갑자기 ‘전설의 교향’이 생각나서 그와 같은 이야기가 진행될까봐 좀 무섭다.
“들어가 볼까?”
“지금?”
기가 현관문에 손바닥을 대니까 잠금장치가 일제히 풀렸다. 집 안 사람들은 듣지 못하도록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했다. 기는 집 안 분위기를 파악하며 잠깐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
이건 분명히 야간주거침입죄다. 심장의 빠른 박동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기도 들어오고 나서 문을 닫았다. 귀신을 성불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오는 건 보통 대담하지 않으면 못 할 것이다. 지금이야 기가 날 붙잡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주술을 할 수 있다 해도 혼자서는 절대 남의 집에 못 들어간다.
“이제 좀 진정해. 아까 다시 보니까 없었잖아.”
큰 방 족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비명을 질렀던 여자를 달래는 중인가 보다.
“아기 방이야.”
기가 끌어당기는 곳으로 따라갔다. 방문이 열려 있어 안이 다 보인다. 아기를 위한 방이라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방 한 쪽에 흔들침대가 있고 거기에 돌이 안 된 듯한, 끽해야 이제 막 돌을 넘긴 아기가 누워 있다. 그리고 귀신이 아기가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 흔들침대를 흔들고 있다. 이거야 말로 텔레비전으로 많이 본 괴기 소재다.
“딱 봐도 어떤 사정일지 감이 오지?”
“뭐, 거의 뻔하다고 할까?”
이 귀신은 분명히 아기의 친엄마일 것이다. 혹시 대리모일까? 말이야 허울 좋은 대리모지, 옛날 씨받이와 다를 게 없다.
“내가 아기를 빼앗긴 엄마로 보이나요?”
귀신은 요람을 흔들며 우리 쪽을 쳐다봤다. 심기가 많이 불편한 마님의 표정이다. 우리가 너무 멋대로 넘겨짚은 모양이다.
“그러면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
기가 위엄 있게 물어보자 귀신은 피식 웃어버렸다.
“여긴 내 남동생의 집이에요. 나대신 살아 있는 내 딸을 기꺼이 키워주고 있는 착한 동생이에요.”
확실히 우리가 너무 극단적으로 넘겨짚었다. 귀신은 자기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한이 있어서가 아니라(한이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그저 아기가 보고 싶어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죽었어도 엄마는 엄마, 아기는 아기, 끊을 수 없는 혈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아기를 낳는 도중에…….”
“네. 정확하게는 낳자 마자에요. 무책임한 남자는 이미 옛날에 사라졌고, 혼자 힘들어했죠. 갑작스런 산고에 집에서 병원에 전화도 못하고 쓰러져있다 시피 했어요. 양수와 피가 터지고…….”
산모가 산통이 시작되고 나서 산파나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방치되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목숨이 위험해 진다고 한다. 양수와 피가 계속 배출되는데 아기는 나오지 못해 둘 다 괴로워하다가 점차 죽어간다는 것이다. 이 귀신은 자신은 죽어도 아기를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아기를 이렇게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뭐가 어떻든 아기를 키우지 못한 한인가?”
널 꼭 데려가야겠다는 의미가 가득한 기의 말을 잔혹하게 들린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동생 내외는 사람이 좋으니까 제 딸을 잘 키워줄 거에요. 지금도 잘 키우고 있고.”
“그러면 어째서 네 모습을 일부러 보인 거지?”
사무적이고 정 없는 말투긴 하지만 기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기를 키워주는 이들에게 불만이 없다면 그걸 그대로 봐주면 되지 일부러 겁을 주는 건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경고에요. 내 딸에게 소홀히 하거나 제대로 돌봐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라고 해 두죠.”
네 예상인데, 이 귀신은 살아 있을 적에 극단적인 성격이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이건 도가 좀 지나치다. 동생이 아기를 데리고 있는 걸 좋게 생각한다면 믿어 줘야지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내 시각에서-뭔가 아니다.
“더 안 좋아질지도 몰라요.”
귀신은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귀신과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세게 콩닥 뛰어서 곧장 기의 손을 꼭 쥐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귀신이 아기를 데려온 후에 보이게 되면 아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아기를 잘 챙겨주지 않거나 보호원 등에 맡길 수도 있어요.”
“그러기만 해 봐!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내가 귀신의 화를 돋운 것 같다. 이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네. 성불 시켜야 할 걸 더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기에게 어떤 소리를 들어도 얌전히 들어야겠다.
“애앵, 으앵, 으앵.”
귀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곧장 큰 방에서 여자가 나와 아기를 달랬다. 배고파서 보챈 거였나 보다. 젖병을 물려주자마자 조용해졌다. 귀신은 그 모습을 슬픔이 섞인 따뜻한 눈으로 쳐다봤다. 화를 확 내다가 갑자기 누그러지는 것도 어찌 보면 신기한 기술이다.
“아기는 이 좋은 집에서 잘 자랄 거에요.”
이 정도면 귀신을 자극했던 내 말을 덮을 수 있을까? 아기를 볼 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으니 귀신이 아기를 보고 있을 때 좋은 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기의 눈치를 슬쩍 보니 기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200살 넘게 나이 먹도록 아기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테고……. 눈을 못 뗄 정도로 예쁜 아기는 아닌데. 그런데 기는 아기를 사랑스럽게 보는 게 아니다. 안타까워하고 있다.
“기.”
“오늘 밤에 다시 오자.”
기는 날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난 손이 기에게 잡혀 있었으니 그대로 따라가야만 했다.
“아까 그 아기는 오늘 내로 숨을 거둘 거야. 친어미는 그걸 모르고 있어. 살아서 같이 못 있었으니 죽어서라도 같이 있게 해줘야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벌서 죽다니……. 아기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기의 최대한의 대우인가 보다. 자식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부모에게 가슴 찢어질 일은 없겠지만, 성불 직후에 아기의 죽음을 아는 것보다 같이 성불하는 게 슬픔을 덜어주는 방법일까? 아기의 죽음을 알고 귀신이 시끄럽게 굴지 않을까 싶다. 살아서 안아보지 못한 아기, 요람을 흔들어주며 매일 얼굴을 봐 왔는데, 잘 자라는 모습이 아니라 죽는 모습을 봐 온 것이라 깨달으면 이성을 잃을 지도 모른다.
“귀신이 난동을 부리면 성이 손 쓸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응.”
기는 내 생각을 읽었나 보다. 물론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만 내 표정에서 확연하게 티가 났나 보다. 에…… 근데 여기서 왜 성의 얘기가 나오는 거야?
“성은 왜?”
새의 모습으로 돌아온 기를 두 손으로 잘 감싸서 집으로 향하는 중에 물었다.
“성은 우리처럼 성불을 하는 게 아니야. 난폭한 영혼을 귀신이고 유령이고 간에 포박해서 감금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소멸시키는 일을 해. 암렵(暗獵)이라고 해.”
그러니까 아까 그 귀신이 우리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횡포를 부리면 성이 암렵을 한다는 거구나. ‘거구나’가 아니라, ‘거야?’겠지. 최악의 결과는 아기만 성불하고 엄마는 영혼 자체가 소멸한다는 거잖아.
“엄마가 슬퍼하는 건 당연하잖아. 암렵은 좀 심해.”
“감금하고 얌전해지면 조용히‘영토(성불한 영혼들이 사는 곳)’로 보내져.”
뭐. 암렵에는 감금도 있으니까. 에, 에 그 전에 무사히 성불할 생각을 해야지. 처음부터 최악의 사태를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런데 성이 암렵을 하고 있으면 류등이 암렵을 배운다는 거잖아. 위험도가 높은 귀신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매번 긴장 속에서 지내겠지.
“이봐, 돈 좀 있어?”
“꺄악!”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면서 오른쪽 어깨에 이상한 감촉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게다가 하마터면 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오른쪽 어깨뼈가 저릿저릿하게 시리다. 구신인 것 같아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지나가다가 장난친 모양이다. 진짜 간 떨어질 뻔 했네……? ……! 지금 내 눈 바로 앞에 두둥실 떠다니는 두껍고 투박한데다 심하게 부르튼 손은 누구의 손?
“기~.”
내가 하루에 보는 귀신이 100명이라 하면 그 중 신체 일부만 보는 경우는 두, 세 번 뿐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관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장난 아니게 무섭다.
[팍!]
기는 내 손에서 나와 날개로 손 귀신을 내리쳤다. 손 귀신은 땅에 떨어져 파르르 떨다가 내 쪽으로 기어왔다.
“싫어.”
난 손 귀신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손 귀신도 필사적으로 날 쫓아오다가 기에게 길을 가로막혔다. 기는 발톱으로 손 귀신의 손들을 할퀴어 얌전히 만들고 나서 성불시켰다. 사람은 토막 살인을 당해도 귀신은 온전한 상태라는데( 죽지 한참 전에 신체의 일부를 잃은 상태면 귀신도 그 상태다.) 가끔씩 부분만 돌아다니는 건 어떻게 된 거냐고. 정말 흉측한 귀신을 보지 못해서 비교하진 못하겠는데, 신체 일부의 귀신은 정말 징그럽고, 정말 싫다.
“어제 성이 날아다니는 머리를 잡았댔는데 요즘 이상한 녀석들이 눈에 자주 띈단 말이야.”
기도 신체 부분만 돌아다니는 건 싫은가 보다. 그러겠지. 보는 것만 해도 불쾌감이 밀려오는데. 으. 날아다니는 머리는 더 싫다. 눈을 꿈뻑거리고, 입을 움직이며 말을 하고, 머리카락이 제멋대로고. 아직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화 장면들이 쭉 생각나면서 나름 상상해 버렸다.
“기, 얼른 집에 가자.”
땅 위에 서있는 기를 두 손으로 감사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허벅지 근육이 딴딴하게 굳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심장가지 전달되었는데 별난 귀신을 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어차피 집이 코앞에 보이니까 조금 무리해도 괜찮다. 그래. 그 짧은 거리에서 내가 본 귀신이 10명이 넘는다. 몸이 불완전한 귀신이 하나도 없어서 다향이다. 한 번 더 봤다면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다 잊고 집까지 냅다 뛰어갔을 거다.
“지희야.”
“응?”
“아까 그 귀신은 자기가 살 수 있었는데도 아기를 살리기 위해 억지 부렸을 거야.”
뭐, 그거야 나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할 것 까지 없잖아.
“모성애란 죽음도 만만하게 보이는 안경이니까.”
엄마들의 자식을 향한 무한한 내리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제 눈에 안경’이다. 연인끼리의 ‘제 눈의 안경’은 변동이 심하다면 엄마들의 ‘모성애’라 불리는 안경은 불변, 절대적이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경스러운 감정인가.’라고 감탄할 만하다.
“현무 희도 널 위해 죽은 거야.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 네 기억 속에 희의 사랑과 희생이 있으니까. …….”
엄마 얘길 꺼내려고 분위기를 잔뜩 잡았던 거야?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사람, 너무 엄숙하게 굴 거 없잖아. 딸도 멀쩡한데. 물론 엄마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내지만 엄마와 관련된 얘기는 기분 좋게 하고 싶다.
“자랑스럽게 돌아가신 거라면 그걸로 됐어.”
죽기 전에 엄마가 누군지, 내가 누군지 알게 돼서 다행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된다 해도 원망 같은 거 안 한다. 태어나서 사랑받고 자라고, 이렇게 특이한 일을 하고 있잖아. 기와 성은 어제, 내가 기억과 혈에 걸린 봉인을 하루 빨리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조급하게 굴어봤자 일이 더 꼬일 뿐이다. 어차피 며칠 안 남은 내 생명. 그냥 지금까지처럼 지내고 싶다.
“아, 기. 아까 귀신은 아기가 죽으면 슬프긴 해도 크게 일을 벌이지 않을 거야. 아기의 영혼을 마음껏 안아줄 수 있으니까, 앞으로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슬프긴 해도 화내지는 않을 거야.”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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