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18 검을 목에 겨눈 이유

★은하수★ 2008. 3. 25. 16:46

D-18 검을 목에 겨눈 이유

 

주의 도움을 받아서 현무 정복을 입는 중이다. 성 안에 있을 때나 다른 성수를 만날 때만 입기로 했다. 문처럼 령의 상태가 아니라 아빠처럼 육체가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조심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 이런 옷을 입는 건 코스튬 플레이어뿐이니까 밖에서 이런 옷 입고 돌아다닐 순 없다.

“현무검은 여기에 있는데 굳이 제 1성에 가서 계승식을 올리시려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내 계승식. 아빠의 힘 덕분에 기억을 되찾고 나서 내가 현무라는 자각을 하고 있는 지금, 진자 성수 현무가 되기 위해서는 현무의 검을 들고 계승식을 올려야 한다. 물론 제 1성보다 제 2성이 실 권력지이고 중심지면서 현무검의 보관지이자 봉인지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제 1성이 성수들의 왕, 황룡의 본성과 가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형식상으론 제 1성이 본성이고, 그곳에 두령급 수호령인 찬과 아가 있기 때문에 역시나 형식적 절차인 계승식을 그곳에서 올려야 할 것이다. 은근히 자존심이 센 주가 납득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제도 말했지만, 이건 내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서 내린 결정이야. 도중에 수천파와 부딪힐 지도 모르지만 아빠와 문이 같이 가준다고 했으니까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을 거고. 계승식도 약식으로 빨리 끝낼 거니까 오늘 저녁 식사 전까지 여기로 돌아올 거야.”

“……알겠습니다.”

대답도 떨떠름하게 하고 표정도 떨떠름한 걸 보니까 나도 덩달아 떨떠름해 지는 것 같다. 아무튼 주는 살아온 세월에 비해 사고나 행동이 애 같단 말이야. 한 번 더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거나 다방면으로 생각하질 못한다. 그래도 명령은 끝까지 제대로 수행하니까 다루기는 편하다.

옷을 차려 입고 나서 성 한가운데에 있는 연못으로 나갔다. 이 연못은 천계와 지상계를 이어주는 문으로 성수들의 성에는 각각 이런 문이 존재한다. 같은 성수의 성끼리는 바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이 있지만 현무의 본성과 제 2성처럼 존재하는 세계가 다를 경우에는 그 세계의 입구로 간 후에 직접 성을 찾아가야 한다. 아빠와 문과는 천계의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이 연못을 통과하기만 하면 만날 수 있다. 참, 자도 데려가기로 했었는데.

“주, 자를 데려와.”

“네.”

어제 혈의 봉인이 풀려 현무의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번째로 한 일이 자를 수호령으로 임명하고 제 2의 성에 들인 것이었다. 천과 주가 반발하려고 했지만 내가 그 전에 힘으로 발언권을 묵살해 버렸기 때문에 나름 ‘평화적’으로 자를 수호령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아, 첫 번째로 한 일은 아빠의 얼굴을 향해 내 주먹을 시속 160km로 내지른 것이다. 나를 방치하고 내게 모든 걸 숨겨온 것에 대한 대가로 말이다.

“수호령 자, 여기 현무 정님 앞에서 인사 올립니다.”

“이제 천계로 가자. 주.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시간 때우기 힘들면 천과 차라도 마시고 있어.”

“여기서 정님을 기다리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다녀오십시오.”

주의 인사를 받은 후에 자와 함께 연못 위에 섰다. 보통 인간이 수면 위에 멀쩡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오, 신이다.’라며 기겁할까, 아니면 ‘마술인가 봐.’하며 신기해할까? 뭐, 내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개(開).”

정언을 읊자 연못이 밝게 빛나고, 나와 자는 자연스럽게 연못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못을 완전히 통과하고 나니 바로 천계가 두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얼마 만에 천계로 와 보는 거지? 엄마가 내 바로 앞에서 자룡의 손에 죽임을 당하던 날이 내 마지막 천계 외출이었으니까…… 한 7, 8년 됐구나. 잠간 제 1성에 다녀오는 중에 자룡이 자신의 제자들과 기타 성수들 몇몇(그 성수의 제자는 당연히 포함)이 한꺼번에 엄마를 기습했었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싸웠다. 괜히 현무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바보같이 자룡한테 붙잡히는 바람에 엄마는 분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또 다시 바보같이 기억과 혈이 봉인됐다. 음…… 봉인 당시의 충격으로 잠깐 기절했었는데 뒤늦게 천계로 온 아빠와 문, 호원 진(皓猿 眞)이 날 데리고 지상계로 돌아갔다고 한다.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뭐 잊은 게 있으십니까?”

“아니야. 그 반대야. 그저 옛날에 여기에 왔을 때가 생각나서.”

자는 수호령의 지위를 다시 얻은 후부터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어제 딱 반나절 내게 마구 반말을 하더니,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완벽하게 날 존대하는데 본인은 어색하지 않을까?

“정아, 어서 오너라.”

아빠도 천계에 올 때는 정식으로 차려입고 오나보다. 평소의 반쯤 나사 풀린 얼빵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흥, 네가 오기 전에 앞마당 좀 열심히 쓸었다고.”

아빠와 문이 미리 천계에 와서 진치고 있던 수천파 몇몇을 쫓아버렸나 보다. 자룡이 죽었는데도 수천파 쪽에서 내가 봉인이 풀린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성수가 있나? 아… 백호랑 빙황이 지상계에 있었으니까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방심하면 안 돼는 성수들이다.

“제 1성으로 가는 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그럼.”

현무인 내가 그걸 잊어먹을 리가 있겠는가. 아빠는 쓸데없는 걱정을 일부러 한다. 계승식을 하기도 전에 이 현무검에게 주인이라고 인정받은 몸인데 말이지.

“그런데 아빠. 그 옆의 둘은? 제자? ……아, 지인(智刃)이랑 지검(智劍)이구나. 깜빡했어.”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정님.”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분명히 아빠가 집에 오지 말라고 막았을 테니까요.”

내가 기억이 봉인되기 전까지 아빠의 제자인 지인과 지검이 우리 집에 허구한 날 놀러왔었다. 아니 뭐, 놀러 왔다기 보다는 스승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그걸 보고하기 위해 오는 거였지만 항상 나랑 놀아 줬어서 난 놀러온 거라고 기억하고 있다. 엄마 제자 중에 희금(熙禽)이란 사람도 가끔 집에 왔었는데, 엄마가 죽은 후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스승에게서 이름을 받은 제자라 수천파의 표적물일 게 뻔한데 말이지.

“흥, 구름의 강을 타고 오니까 역시 빠르군. 문인, 잘 봐둬라. 저게 바로 현무 제 1성이다. 흥.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영광적인 날이란 거야.”

문의 말대로 현무 제 1성이 벌써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의 강 중 황룡으 l본성을 향하는 중심 흐름을 타면 현무 제 1성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 그리고 성이 보일쯤에 이렇게 지류로 바지면 유유히 성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다.

“수(守).”

일행을 투명한 구에 감싸지 않으면 현무성으로 데리고 갈 수 없다. 다른 성수의 불법침입을 막기 위한 장치라서 손님을 대접할 때는 꼭 주인이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번거로워도 어쩔 수 없다. 요즘 같이 성수계가 시끄러울 때는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현무님의 입성을 경하 드립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수호령 찬과 아가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수호령은 세월이 지나도 외모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찬이고 누가 아인지 내 기억 속에서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다. 둘 다 남성이지만 짧은 머리칼에 은회색 눈동자를 가진 이가 찬, 허리까지 오는 적색 긴 머리에 다홍빛 눈동자, 하얗고 뽀얀 피부의 예쁘장한 이가 아이다.

“계승식 준비는 마쳤나요?”

“네. 완전히 끝났습니다. 현무께서 말씀하신 대로 양식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성수와 그 아래 수호령은 서로 공명할 수 있기 때문에 어제든 명령을 내릴 수 있으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도록! 찬과 아가 각각 좌우로 물러나면서 내가 손님들을 이끌고 성 깊숙이 들어갔다. 언뜻 본 표정인데 맨 뒤에서 걷고 있는 찬과 아는 내 바로 뒤에 있는 자가 정말 못마땅한 가 보다. 표정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친숙한 표정이지만 그 내면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비쳐 보인다. 한 번 파문됐던 수호령이 다시 돌아왔으니 환영받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너무 반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야……역시 제 2성에 있는 벽화보다 훨씬 크고 멋있잖아.”

중앙 회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정면에 보이는 현무 그림(벽화)이 웅장한 자태로 우리를 맞이했다. 진짜 멋- 있다.

“정님, 저 제단에 현무검을 꽂아 놓으시고 모든 절차를 생략한 후 현무임을 인정받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차대 현무의 계승식을 주관하는 찬이 내 계승식의 약식 절차를 알려줬다. 본래 같으면 찬이 축전을 읽고, 수호령 모두에게서 한 명씩 인사를 받고, 선대 현무를 위한 축문을 외고, 황룡에게 인사를 다녀오는 것까지 해야 한다. 이 중간과정과 마지막 과정을 싹 다 생략하고 막바로 현무검에게서 인정받기만 하면 된다.

“흥, 이미 예전에 인정받은 현무니 완전 속전속결로 끝나겠군.”

그렇다. 현무검에게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면 인정받기 위한 시간이 좀 길 것이다. 그런데 난 엄마가 살아있을 때부터 현무검에게 차대 현무 대접을 받았으니…….

“지. 현무 정님은 아무리 봐도 현무 희님을 배다 박았어요.”

“그치? 완전 판박이라니까.”

“저기, 지. 그럴 때는, ‘아니야 어디는 나 닮았어.’라고 해야 하는 거에요.”

등 뒤에서 여러 말들이 오간다. 모두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말들이 수십 마디씩 귀를 지나가도 별로 상관없다. 그저 한 순간에 흘러가는 한 마디에 불과하니까. 어느새 내 손은 현무검을 제단의 구멍에 꽂고 있다. 사람은 사고와 행동을 따로 할 수 있다고, 내 몸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정말 충실하다. 그에 비해 내 사고는…… 뭐 아주 다른 걸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데.

“나 현무 정은 여기서 현무의 계승식을 거행한다. ……. 현무검이여, 나 현무정이 그대에게 걸맞는 성수인지 시험할 지어다.”

[드드드드드드]

현무검이 제단에 꽂힌 채 강하게 진동하고 있다. 내 심장도 그처럼 떨리는 것 같다. 이런 기분이 ‘공명’이라는 거구나. 전에는 별 생각 없이 현무검의 빛에 반응했었는데. …저절로 손이 현무검의 손잡이를 잡아 쥔다. 그 순간 현무검의 진동이 멈추고 아주 쉽게 뽑아졌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네요.”

손님들과 수호령들을 향해 뒤돌아 본 다음에 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검 집에 꽂아 넣었다. 이럴 때…… 왜 이럴 때 항상 아빠 얼굴이 맨 처음으로 눈에 들어올까? 사람이 말이야, 피에 약하고 피는 못 속인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아빠가 맨 먼저 보인다. 하긴, 근 7, 8년을 우리 부녀가 서로 의지하고 살았었으니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봉인 돼 있던 다를 나름 잘 키워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아빠가, 좀 바보 같은 위인이래도 좋은 사람이니까.

[쿠과왕!]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성 밖에서 들려왔다. 성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결계에 뭔가 강하게 부딪힌 것 같은데 결계에는 별 이상이 없다. 그래도 결계를 좀 더 강하게 쳐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상대가 백호니 더 강한 공격이 가해질 게 뻔하다.

“백호도 냄새 맡을 줄 아는 짐승이라고 아주 빨리 왔네요.”

“짐승이라니. 정아, 표현이 좀 뭐하다.”

아빠도 참 새삼스럽게. 이 정도면 양호하게 말한 건데 뭘. 백호는 성수라 해도 ‘호랑이’아닌가. 그러면 짐승이지. 것도 후각이 좀 받쳐주는 맹수류의 짐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크. 이 말은 성의 면전에 대고 바로 말해야 하는 건데.

“흥. 빙황에 비룡까지 왔군. 문인. 저 떨거지들을 상대하러 나가자.”

이런, 이런. 문이 나보다 한 술 더 뜨네. 떨거지라……. 성에서 나가는 건 자유롭다지만 저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야? 갑자기 공격당하면 어쩌려고. 문인도 말이야 아무리 스승의 말이라지만 그렇게 냅다 따라 가냐? 으음. 스승의 말이니까 군말 않고 따르는 거겠지. 어쨌든 저 둘만 성 밖으로 내보내는 건 좀 위험해.

“아빠, 우리도 나가자.”

“괜찮겠어? 너 몸, 함부로 쓰면 안 되잖아.”

기억과 혈의 봉인은 풀렸지만 저주는 그대로라 아직 시한부로 살고 있다. 그래도 내 힘으로 육체의 통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날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간만에 잘난 기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 날 철저하게 속인 그 버릇없는 병아리! 이 몸이 성수의 제자가 되는 평생의 수치를 안겨준 대담한 녀석에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 지 심히 고민된다.

[크아앙!]

[콰광!]

[쾅!]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엄청난 괴성과 폭발음이 주변을 압도한다. 주작, 백호, 빙황, 비룡이 모두 거대한 본체로 있어서 이거 싸우는 모습을 한 눈에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자는 제자끼리 붙었는데…… 문인이 상대하고 있는 건 류등의 아버지고, 비룡의 제자 두 명은 현재 관전 중. 아니, 한 명이 끼어드는 군. 빙황의 제자였.었.던.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저쪽은 별 볼일 없고.

“성수끼리 3대 1이라니, 너무 하잖아. 막강 현무도 아니고.”

아빠는 청룡의 대검을 꺼내 들고 주작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용은 원래 날개가 없어도 날 줄 아니까. 아니, 성수는 술법으로 어느 정도 부양이 가능하지만. 내가 바로 그런 성수다. 지인과 지검도 아빠를 뒤따라 가다가 문인을 도우러 방향전환. 각자 제 상대랑 싸우는 통에, 내 상대는 저기 구석에 살짝 밀려 있는 푸른얼음 빛의 빙황인가? 성수계의 이단아군. 상대 성수가 본체라 해도 인간형일 때 전혀 불리하지 않다. 어차피 축소판만 아니라면 쓸 수 있는 주술은 ‘모두 다’니까 문제될 게 전혀 없다. 그리고 성수 본체의 튼튼한 육체 대신에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 역시 밀릴 리가 전혀 없다. 게다가 내가 상대해 줄 녀석이 이단아, 빙황이라면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저런 녀석에게 나, 순혈이 질 순 없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너무 안이하게 구경하고 있는 거 아니야?”

황룡 다음으로 청룡과 현무가 순위를 다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봉․황은 그 다음이니…….

“송… 송지희!”

순간 이동으로 기의 등에 올라타서 척추 뼈가 지나가는 뒷목에 검 끝을 갖다 대니 기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같은 봉황류래도 빙황은 황룡보다 강한 존재인데 이렇게 물러 터져서야 어디다 써먹어? 하긴, 이 녀석은 이단아니까.

“매너가 없군. 이 몸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니 말이야. 무방비한 것도 잘못이지만 예의가 없는 건 그 보다 더 잘못된 거란 사실을 잊지 말도록. 이. 단. 아.”

[쾅!]

크읏. 연기. 기의 정수리를 향해 기포를 제대로 가격했는데 털끝하나 못 건들인 것 같다. 뭐, 성수의 육체는 워낙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해서 진짜 허점 찌르는 기습이 아니고서야 공격이 먹히질 않는다. 쳇. 그러니 공격 강도를 높여서 그 보호막을 부숴버리는 수밖에.

“봉인돼있던 새에 기의 흐름이나 힘이 훨씬 강해졌구나. 현무 지보다 훨씬 강한 현무가 됐어.”

“내 나이가 어리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돼지. 빙황이면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단아가 감히 순혈 성수에게 말이야. 너랑 나는 급이 다르다고.”

“며칠 못 본 새에 많이 컸구나.”

[쾅!]

[콰광!]

[쾅!]

아주 쉴 새 없이 퍼붓는구먼. 하긴 나도 그만큼 퍼붓고 있으니까 공격 겸 방어로 당연한 행동이겠지. 그 큰 체격에서 부리와 발톱으로 이 조그만 나를 찍어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테지. 그래서 그런 허접한 날개 질이야?

“그깟 산들바람으로 날 날려버리겠어? 머리카락 한 올도 움직이지 않는 걸.”

기가 쓰는 보호막을 나라고 못 쓸까. 공격과 방어를 교묘하게 사용할 줄 아는 성수보고 ‘성수’라고 하는 거다.

심장이 욱신거린다. 역시 좀만 격렬하게 움직여도 이렇게 되는 구나. 주술로 통증을 줄이면서 싸움에 임할 수밖에 없다. ……이 두근거림은 분명히 현무검과의 공명이다. 그래. 현무검이 성수의 무기인 건 단순히 검의 기능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성수만을 위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걸 말할 수 있을 거다.

“투사수침격(透蛇水侵擊)!”

혈을 좀 개방해서 기를 활성화 한 다음에 그 기를 현무검에 모아서 주수로가 같은 공격을 하는 것. 그것이 현무검의 기능 중 하나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로 언뜻언뜻 보이는 두 마리의 뱀이 적을 향해 정확하고 맹렬히 달려들어 완벽한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투사수침격’이다. 현무 제 12주술로 그닥 센 공격은 아니지만 효율은 좋다. 굳이 현무검을 쓸 필요는 없지만 내 기를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폼 나잖아.

[콰과광!]

명중! 기를 제대로 친 감이 손끝에 느껴진다. 그런데 투사수침격으론 보호막만 깨지 별 상처 못줬을 지도……. 역시. 물안개가 사라지고 시야에 들어온 기는 깃털이 좀 망가진 것 빼곤 가히 무사해 보인다. 내 몸을 생각해서 약한 걸로 고른 건데, 그냥 한 방 세게 나갈걸.

“부활하자마자 대단한 신고식이네. 송. 지. �. 네가 감히 날 이단아라고 불러?!”

그렇게 큰 소리 치면서 화내봤자 안 무섭다네. 몸집만 컸지 정신은 쪼그만 병아리였을 때랑 다를 게 없잖아.

“내가 네 녀석의 제자였던 수치스런 며칠 동안 너의 그 윽박지름에 쫄았었는 줄 알아? 트라우마라도 생긴 줄 알아? 이 몸을 뭘로 보고 말이야.”

[콰광!]

[콰과앙!]

[쾅!]

[콰과광!]

여기저기에 먼지 풀풀 날리며 서로에게 열심히 퍼붓는 중이다. 난 기에 비해 몸집이 너무 작아서 이동 정도가 심히 크다는 게 불리하지만 대신 그만큼 내가 어디로 공격해도 거대한 기가 다 맞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이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에게 가까이 붙으면 기는 나를 찾기 좀 많이 힘들어진다. 체격차를 이용한 전술이란 바로 이런 거다.

[삭]

[취악]

“크으윽.”

기의 다리 바로 옆까지 접근해서 유유히 다리를 베어버렸다. 잘라버리진 못했지만 치명상은 입혔다. 그리고 기의 정신이 살짝 분산된 틈을 타 다시 한 번 긴 목에 검을 들이댔다.

“이단아는 순혈에게 이길 수 없어. 그것도 성수처형관 현무에게 말이지.”

이제 성수를 처형할 때 쓰는 주술을 사용하면 된다. 이 목을 베어버리면 끝난다. 그러기만 하면 내 부끄러운 열흘의 과거는 내 손으로 덮을 수 있다. 이 녀석과의 빌어먹을 연을 끊을 수 있다.

“왜 죽이지 않지?”

왜 죽일 수 없지?

“날 원망하는 거 아니었나?”

원망하잖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아픈 거야? 근육이 마비되고 심장이 욱신거리나?”

그렇지 않아. 아니…… 그렇다. 주술로 통증을 막아도 어쩔 수 없다. 내 육체에 걸려있는 ‘시한부’는 ‘저주’니까. 하지만 그 전에 기를 죽일 수 없다. 어째서……. 왜 지금 아빠에게 안겨서 지상계로 돌아가야 하는 거지? 심장이 너무 욱신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