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 폴 나이티! 작아지다!
“역시 기습은 미끼였어.”
심판단의 메인 아지트로 혈안왕이 안내했습니다만 텅 비어있었습니다. 깊은 밤중에 서른 명쯤 되는 하프 데몬 무리가 쳐들어왔었는데 나머지 심판단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한 근사한 덫이었던 겁니다.
처음 그들을 상대할 때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심판단은 거의 대부분이 몬데비언족과 소울족의 혼혈인데, 그들은 뉴노멀족과 소울족의 혼혈, 딥데어족과 뉴노멀족의 혼혈, 몬데비언족과 뉴노멀족의 혼혈 등 처음 보는 구성의 하프 데몬이었습니다. 혈안왕이 말한, 비스 성녀가 억지로 가입시킨 자들일 겁니다.
대부분 중상으로 끝냈는데 알고 보니 최면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가입 때부터 최면에 걸려있던 자도 있었고, 이번 야간 기습 직전에 걸린 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면이 풀린 후 원하는 자에 한하여 지브릴과 캐스트가 치료해줬습니다. 자존심이 대단한 하프 데몬에게 바라지 않는 친절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안색이 안 좋아.”
이동할 때부터 폴이 신경 쓰였는데 메인 아지트를 둘러보고 나니 완전히 중병 환자가 돼있었습니다.
“제길.”
폴은 가슴을 움켜쥐고 두 눈을 곽 감았습니다. 이마엔 식은땀이 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지브릴도 가까이 다가와서 폴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폴에게 쏠리는 순간 폴은 땅 위로 쓰러져 몸을 파르르 떨며 괴로워했습니다.
“폴, 폴 나이티.”
“언제부터 아팠던 거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아야 할 거 아냐.”
“폴, 폴…….”
패시가 폴의 상체를 일으켜 자신에게 기대게 했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안정을 되찾아가더니 기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폴이 점점 작아지는…어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하필 이런 때……”
지브릴은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10살 만하게 작아진 폴도 지브릴을 따라 한숨을 쉬었습니다. 통증은 없어진 모양입니다. 작아진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더니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지신이 얼마나 작아졌는지 가늠해봤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현상에 킬 씨는 매우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도 폴이 드렌필드의 아들이란 사실은 티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특정한 때에 작아진다는 이야긴 못들은 겁니다. 솔직히 이 전에는 티가 그걸 말할 필요가 없었죠.
뭐, 저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크던 녀석이 제 허리를 조금 넘는 정도가 됐으니 익숙해지려면 꽤 걸리겠다 싶었습니다.
“여, 혈안왕. 석관을 부순 곳도 여긴가 보지?”
“어떻게 알았지? 모든 흔적을 확실하게 지웠는데.”
세상의 온갖 기이한 것들을 보고 살아온 방랑자는 폴의 역성장을 보고도 담담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세상만사를 초연히 바라보는 무적의 경지에 오른 걸지도 모릅니다. 다른 말로는 재미없는 녀석이 된 거죠.
“날 작게 만든 건 드렌필드의 힘이거든. 그곳으로 가기 전에 여기 어딘 가에 힘을 숨겨둔 거야. 안 그래도 그린이 죽어서 신경 쓰였는데.”
“그린이 죽었다고?”
“한 시간도 안 됐어. 윌랜드가 체이서스를 유지하려고 그린에게 주던 생명력을 끊은 거야. 성전 중 둘 씩이나 당했으니 별 수 없었겠지.”
시종을 잃는 일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닌데 무척이나 쓸쓸한 얼굴을 했습니다. 겨우 숨을 쉬는 그린을 챙겨줄 때 폴에게 들었습니다. 그린이 역대 시종 중에서 유일하게 폴의 마음을 잘 읽었다고. 그러니 표정을 감출 수 없었을 겁니다.
“안가 봐도 되겠어?”
“어차피 시체도 없을 텐데. 드렌필드에게 목숨을 맡긴 자는 죽으면 재조차 되지 못하고 허무한 ‘무’가 돼버리니까.”
패시의 조심스런 위로에 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곧 상당히 언짢아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안 해도 될 일에 힘 배고 말이야. 작아지면 얼마나 불편한데.”
몸이 작아져서 그런지 꼭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들렸습니다.
“걸음을 쫓아오기 힘들면 말해. 어깨에 태워줄 테니까.”
“어린애 취급은 사양이야, 테스 슈볼츠아웃. 잡담 그만 하고, 혈안왕, 심판단이 어디로 갔을지 짐작 가는 데 있어?”
“없진 않아.”
혈안왕은 지브릴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선뜻 그곳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지브릴은 순간의 시선이 거슬렸는지 주먹을 우드득 쥐며 그를 옆으로 흘겨봤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제지간의 정을 싹 쓸어야할까?”
리바이브로 공포를 휘어잡는 혈안왕도 지브릴에겐 어쩌지 못했습니다. 두 형들한텐 주먹질 발길질 다하더니……. 약자와 강자의 부등호 수식을 멋대로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들으면 제일 먼저 길길이 날뛸 거잖아요.”
“대답을 질질 끌어도 마찬가지겠지.”
치니비도 혈안왕을 재촉했습니다.
“하……. 드렌필드의 원로회 회의장 지하에 마이너 아지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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