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둘이자 하나인 보석
샤샤와 네리는 점심 식사 시간인데도 식당으로 가지 않았다. 어차피 리벤은 왕궁 기사단의 오전 훈련을 마치고 그곳에서 기사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기 때문에 쌍둥이에게 점심을 먹으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쌍둥이를 열심히 칭찬했던 사용인들이, 어쩐 일인지 하나 둘 쌍둥이에게서 거리를 뒀다. 변덕이 심하면서 까탈스러운 주인을 상대하는 것처럼 슬금슬금 피했다.
“헤르겔 할아버지 말씀대로 왕성 창고에는 모든 게 다 있어요.”
“책에서만 봤던 것들도 있었죠.”
네리와 그녀의 탄생정령은 두 팔 가득 책과 재료를 들고서 복도를 걸었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였다. 타고난 기억력과 제약 센스 덕분에 초급 지식과 기술을 스펀지로 물 빨아 들이듯이 익혔다.
“왕성에서 지내는 동안 서고에 있는 책을 전부 마스터할 거예요.”
“서고지기의 말에 의하면 마법약에 관한 책이 약 3만 8천 권이랬어요.”
“3만8천2백7십5권이에요. 부지런하지 못하면 B2급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네리는 수많은 책과 재료들을 접한 뒤로 의욕이 펄펄 솟았다. 누가 봐도 물 만난 물고기였다. 그녀가 연신 싱글벙글 이니 실피드도 따라서 수줍게 기뻐했다. 옆에서 더 많은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
방 문 앞에 도착했는데 네리나 실피드나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서 문을 열 수 없었다. 문고리를 당기면서 오른쪽으로 돌려야하기 때문에 몸으로 밀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실피드가 짐을 바람으로 공중에 띄우고, 여유로워진 두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샤샤? 밖에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긴 내 방이에요.”
먼저 안으로 들어간 네리가 카펫 위에 엎어져 있는 샤샤를 발견했다. 그의 옆에는 그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목검과 그의 머리만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샤샤가 네리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 거리자 자루도 꼬물꼬물 움직였다.
“기다리다 지쳤어요.”
“창고가 멀어서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안에 든 건 뭐에요?”
네리와 실피드는 다리가 짧은 의자에 가져온 것들을 올려두고 샤샤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자루가 더 심하게 움직였다.
“성 북쪽에 있는 사냥터에 들어가서 잡았어요. 페리아 숲에 없는 동물이라서 보여주려고요.”
샤샤가 조심스럽게 자루의 입구를 열었다. 1/3만 열고 잠시 기다리니 여우라고 생각되는 동물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샤샤는 입구를 열면서 그 동물을 천천히 정성스럽게 꺼냈다. 귀 모양부터 꼬리 모양까지, 몸 전체가 ‘나는 여우에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얼굴형이나 눈 모양, 그리고 털색이 특이했다. 얼굴형이나 눈매나 일반 여우보다 둥글둥글하고, 털은 윤기 나는 짙은 홍색이었다.
“새끼 여우! 귀여워!”
“자, 안아 봐요.”
조그만 동물은 거부하지 않고 샤샤에게서 네리로 옮겨갔다. 동그란 눈을 또렷하게 뜨고서 네리와 똑바로 마주봤다. 끝부분의 5cm정도만 새하얀 탐스러운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면서 네리의 무릎을 간지럽혔다. 네리가 가슴으로 폭 끌어안자, 그 따뜻한 체온이 마음에 들었는지 몸을 웅크리며 그녀에게 가까이 붙었다.
“어쩜 좋아. 너무 귀여워요.”
네리는 볼을 붉히면서까지 좋아했다. 실피드도 조그만 동물의 머리를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여우를 닮았는데 정확하게 무슨 동물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귀여우면 그만이에요.”
“하긴. 그러네요.”
샤샤는 무척 기뻐하는 네리를 보면서, 이 조그만 동물을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 직후에, 한 메이드의 실수로 네리의 소지품(화약, 물약 등) 중 하나가 터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린애가 위험물을 당연하다는 듯이 갖고 있어서 모두가 네리를 보는 시선이 안 좋게 변해버렸다.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껄끄러워하는 시선들이었다. 네리는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샤샤는 쌍둥이 여동생의 속마음을 꿰뚫어봤다. 그리고 어머니 리벤에게서 네리를 챙겨주라는 부탁도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반쪽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우울해진 네리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꺄-.”
여우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 네리의 손과 볼을 연신 핥았다.
“배고픈가 보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도 점심 안 먹었죠?”
“네. ……. 꺄-. 실피드, 애가 먹을지도 모르니까 책이랑 재료들을 침대 위로 옮겨주세요.”
네리는 동물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껴서 높이 들어올렸다. 그는 가만히 축 쳐졌다.
“식당에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올게요.”
“우리가 다 같이 내려가는 편이 낫잖아요.”
“그 애를 데리고요?”
샤샤가 조그만 동물을 가리켰다. 네리는 자신의 눈높이로 그를 내려서 빤히 쳐다봤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지만 성 내에서 발견되면 주변 사람들이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거울 거예요.”
“괜찮아요.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많아요.”
샤샤는 밝게 웃으면서 방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네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잠깐 생각하는 듯싶더니 실피드에게 냅다 동물을 맡겼다.
“둘이 같이 놀고 있어요. 난 샤샤롤 따라 갔다 올게요.”
실피드는 네리의 말을 고스란히 들었다. 조그만 동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변에 바람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가 마음껏 뛰면서도 물건을 망가트리지 않게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바람 울타리 안에 있는 거라곤 조그만 동물뿐이지만, 혹시 모르기에 마음을 놓지 않았다.
네리는 샤샤를 뒤쫓아 뛰어갔다. 세계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덕분에, 평소 운동량이 터무니없이 적어도 일반인의 보통 수준 이상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이 어린 여자 아이치고 달리는 속도가 빨랐다. 샤샤를 금방 따라잡았다.
“역시 샤샤 혼자 보낼 수 없어요.”
“네리?”
“그 애는 실피드에게 맡겼어요.”
“아휴. 나 혼자서도 괜찮다니까요.”
“내가 안 괜찮아요.”
샤샤로서는 네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을 따라온 그녀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포르포냐 가의 두 꼬맹이잖아. 너희도 밥 먹으러 온 거야?”
제 2왕자 에드워드가 쌍둥이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쌍둥이도 그를 알아보고 고개를 까딱 끄덕였다. 예의 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을 미리 들어서 매순간 편한대로 인사를 골랐다.
“방에 가지고 가서 먹을 거예요.”
“사용인들한테 시키면 가져다 줄 텐데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야?”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하니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둘이 똑같이 대답하니까 기분 묘하군.”
에드워드가 식당으로 들어가자 사용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그들은 식당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이 꽤 많이 지난 터라 식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왕자님.”
“아니. 이렇게 된 거, 나도 이 애들처럼 방에서 먹지. 우리 세 명 분을 각자 방에…….”
“빵이랑 우유면 충분해요. 그냥 저희가 가져갈게요.”
쌍둥이가 급히 에드워드의 말을 가로 막았다. 사용인이 음식을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가 조그만 동물을 보게 된다면 성가신 일이 일어날 게 틀림없었다. 그러면 쌍둥이가 일부러 식당을 찾아온 노고가 뭐가 되겠는가.
“나도 빵이랑 우유만. 지금 줘.”
에드워드가 상당히 산뜻하게 명령했다. 사용인들과 주방장이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에드워드는 모든 말을 묵살하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요구한 것들을 얼른 달라는 뜻이었다.
“최소한 저희가 방까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됐어. 그냥 줘.”
주방장은 하는 수 없이 바구니 세 개를 꾸렸다. 각 바구니에, 우유가 든 뚜껑 달린 유리병 한 병과 넓은 접시 한 개, 버터 모닝빵 두 덩이, 바게트 두 조각, 그리고 카스타드 세 조각을 넣었다. 생크림이나 잼은 셋 다 거절했기 때문에 넣었다가 다시 뺐다.
“방에 보물이라도 숨겨놨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드워드가 시험 삼아 말을 툭 던졌다. 포르포냐 쌍둥이는 작은 도발에 그대로 넘어갔다. 너무 티 나게 어깨를 움찔 거려서 에드워드가 쿡 하고 웃고 말았다.
“아침에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그것 때문에 눈치 보는 거라면 그만 둬. 남의 물건에 손댄 메이드가 잘못한 거야.”
에드워드도 아침에 성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이 성의 다음 번 주인이 될 몸이다 보니 모든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그에게 전해졌다. 가끔 전달자가 자기 판단을 섞어서 보고하지만 그런 건 듣자마자 흘려 넘겼다. 일종의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그 메이드, 많이 다쳤다고 들었어요.”
“멋대로 약에 손댄 벌이야.”
“꼬마가 마법약이라든지 화약을 갖고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아니.”
“다행이다.”
네리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그녀는 에드워드의 즉답을 듣고 안심했다. 가족이기에 당연히 할 위로를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들으니 몇 배로 위안이 됐다.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 새 네리의 방 앞에 도착했다. 샤샤는 그곳에 볼 일이 있지만, 에드워드는 위층 반대쪽 방향에 방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방문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었다.
“저기 에드워드 왕자님?”
“난 끼면 안 돼?”
쌍둥이는 방문을 열 수 없었다. 마침 방 안에서…….
[쿠당탕탕]
사정없이 물건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 함정이라도 설치했어? 혹시 네리의 정령이 폭주라도 하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쌍둥이는 소란을 피우는 범인이 누군지 의심할 필요 없었다. 그리고 마침 실피드의 ‘그러면 안 돼’라는 말도 들여왔다. 하급 정령인 만큼 마력이 약해서, 발보둥치는 동물을 오래 꽉 붙잡기 힘든 모양이었다. 특히 배고픈 동물은 더 감당하기 힘든 법이다.
“안에 누가 또 있나봐? 안 도와줘도 괜찮아?”
“끄응-.”
“안 혼낼 테니까 어서 들어가.”
에드워드는 방주인의 등을 떠밀었다. 네리는 샤샤의 눈치를 한 번 본 다음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뀨!”
조그만 동물이 네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네리가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그녀의 다리와 팔을 타고 올라 머리 위에 웅크려 앉았다. 꼬리를 아래로 내려서 시계추처럼 흔들기도 했다.
“롯 푹스(rot-Fuchs)? 아니야. 헤르프스트 볼프(Herbst-Wolf)잖아. 굉장히 희귀한 종류인데 이걸 어디서……. 키우는 거야?”
“희귀한 동물이에요?”
에드워드는 에드워드대로, 쌍둥이는 쌍둥이대로 깜짝 놀랐다. 의도치 않은 침묵……. 그들이 잠시 말없이 서있을 때 복도 저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에드워드가 먼저 ‘핫’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쌍둥이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이, 거기.”
“네, 왕자님.”
빈 방을 청소하러 온 사용인이었다. 포르포냐 가의 쌍둥이보다 겨우 두세 살 많아 보이는 소녀였다.
“식당에 내려가서 삶은 달걀이랑 설익힌 스테이크를 2인분씩 가져와줘.”
“삶은 달걀과 설익힌 스테이크 2인분씩 말씀이십니까?”
“들은 대로 해.”
“알겠습니다.”
어린 메이드는 청소도구를 빈 방 앞에 세워두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왕자는 복도며 맞은편 건물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네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쌍둥이는 카펫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먹을 것을 꺼내지 않고 에드워드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아까 반응을 보니까 그거 애완용이 아니지?”
“제가 오늘 북쪽 사냥터에서 잡았어요.”
“엄청 운이 좋네. 부유의 상징인 헤르프스트-볼프는 클라마 전체에서도 그 개체수가 극히 적어. 북쪽 사냥터는 물론이고 왕성 소유 사냥터에서 이게 발견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에드워드는 샤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샤샤의 목이 그가 쓰다듬는 방향대로 까딱까딱 움직였다. 샤샤와 마주보며 네리의 다리 위에 앉아 있던 조그만 늑대도 따라서 머리를 흔들었다.
“어우가 아니라 늑대였군요.”
“굉장히 귀여운 늑대도 있구나. 처음 알았어요.”
“왕성은 정말 처음 보는 것들뿐이에요.”
네리와 실피드가, 누가 파트너 아니랄까봐, 같이 들떴다. 그리고 앙증맞은 동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기심 넘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그만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똑똑]
에드워드가 부탁한 것들이 도착했다. 그는 문을 약간만 열고 그것들을 받았다. 그리고 메이드를 입단속 시켰다.
“헤르프스트-볼프에게 빵을 먹일 순 없지. 육식 동물에게 어울리는 식사는 이쪽 아니겠어?”
음식을 접시에 담아 늑대 앞으로 밀어 넣었다. 조그만 늑대는 음식 냄새를 맡더니 꺼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불에 익힌 것들뿐이라서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설익힌 스테이크 쪽에는 한 번 더 코를 가져다 댔다. 피가 배어나오고 생고기 냄새가 남아 있기 때문에 삶은 달걀보다는 식욕을 돋웠다.
“우유먼저 마실래?”
샤샤는 자기 몫의 우유를 자기 접시에 반 정도 부었다.
[할짝할짝]
샤샤에게 익숙해진 늑대는 그가 준 생우유를 경계하지 않았다.
“배가 많이 고팠나봐요.”
네리가 늑대의 등을 쓰다듬었다. 벌써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이번엔 에드워드가 내민 접시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가더니 설익힌 스테이크에 한 번 더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것을 반복했다.
[덥썩]
프르포냐 쌍둥이와 에드워드가 간단한 점심 식사를 시작한 것은, 조그만 헤르프스트-볼프가 설익힌 스테이크를 베어 문 때부터였다. 바구니를 열자마자 구수한 냄새가 서서히 퍼졌다.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한달간의보석전쟁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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