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28 이야기가 시작하는 이유

★은하수★ 2008. 1. 4. 15:50

D-28 이야기가 시작하는 이유

 

「내 이름은 송 지희. 나이는 15세. 중학교 2학년이다. 성별은 생체학 상으로는 ‘여자’인데 성격이나 행동으로는 ‘남자’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신체 미발육도 아니다. 확실히 ‘여자’티 난다. 혈액형은 B형. 생일은 11월 20일. 전갈자리다. 좋아하는 색은 깊은 바닷물 색. 싫어하는 색은 내 머리색이다. 남들과 같은 검은 머리는 싫다.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만든 카레라이스. 싫어하는 음식은 아빠가 만든 카레라이스. 아빠가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니다. 유독 카레라이스만 꽝이다. 장래희망? 없다. 좌우명? 남은 인생 평범하게 살자.」

이건 내 블로그에 한 달 전까지 게시해 놨던 내 프로필이다. 지금은 블로그를 폐쇄했다.

세 달 전에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다. 난 그 전날 무리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평소에 질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 날 체육 시간은 뜀틀을 하고 있었고 9월 초였던 것에 비해 별로 덥지 않고 바람도 잘 불었다. 그런데 구령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순간 심한 현기증과 함께 다리 힘이 갑자기 풀리면서 쓰러져 버렸다.

눈을 떠 보니까 흰 천장이 보였다. 머리는 깨지도록 아팠다. 옆에 아빠가 있었다. 병원이었다. 그 날 몇 가지 검사를 받고 바로 퇴원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추가로 몇 가지 검사를 더 했다. 검사 결과가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시한부. 병명은 모른다. 아니, 들었어도 관심 없었다. 3개월 후에 죽는다는데 병명이 뭔 상관이야. 아무튼 그 후 2개월 동안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다. 죽는 날까지 한 달 남은 지금,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생각 해?”

지금 내 옆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옅은 푸른색의 참새. 이 녀석이 나타났다. 이틀 전에 갑자기 내 방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박고 떨어져 버렸다. 우리 집이 1층이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새’이면서 추락사라는 불명예를 가졌을 것이다.

“멍하게 있으면 귀신들한테 먹힌다.”

그렇다. 어제부터 나는 자신이 빙황(氷凰)이라고 우기는 ‘기(綺)’와 같이 ‘귀신 성불’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던 나에게 죽기 전 대단한 기억 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이 근처에는 없으니까 괜찮아.”

나는 기에게 흰 팔찌를 찬 왼쪽 손목을 들어 보였다. 이 팔찌가 붉은 색으로 변하면 근처에 귀신이 있다는 표시다. 그리고 이걸 차고 있을 때 귀신을 볼 수 있고 귀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어제 나타났던 녀석은 정말 약했어.”

아무래도 기는 무섭고, 영력이 강한 귀신과 싸우고 싶은 모양이다. 이렇게 작으면서.

“눈물이 많은 여학생이었으니까. 난 첫 경험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해.”

“아, 넌 어제가 처음이었지.”

기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쿠션 위에 올라섰다. 내가 마련한 기의 특별석이자 침대다. 기의 말에 의하면 지금 기는 200살이 조금 넘었고 ‘귀신 성불’경험이 상당하다고 한다. 하긴, 어제 그 여학생 귀신의 머리 위에 살포시 착지하자마자 성불이 끝나버렸다. 초보자인 내 눈에도 능숙해 보였다.

“그래도 말이지, 첫 제자라고 정해진 것이 수명이 이리 짧아서야…….”

그렇다. 나는 지금 기의 제자다. 성수가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제자를 둘 수 있다고 한다. 성수마다 하는 일이 가지각색이겠지만(내 추측에 의하면) 귀신 성불은 여러 성수가 맡는 모양이다. 어제 기에게서 갖은 성수의 이름을 들었었는데 역시 너무 어렵다.

“하지만 열심히 할 거야.”

“오, 어제보다 각오가 좋은 걸. 그래. 내가 너를 단기간에 성숙한 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새의 모습이라 표정을 잘 알 수 없지만 즐거워하는 것임은 느낄 수 있다. 자기도 제자 양성은 처음이면서 꼭 베테랑인 것처럼 말한다. 그래도 성수가 200살 조금 넘긴 나이면 어린 축에 속하는 거 아닌가?

“아, 이거 안 풀려.”

난 지금 수학 숙제를 하고 있다. 못하는 건 아니다. 시험 보면 80점대 정도 되는 평범한 실력이다. 그래서 교과서 안에 있는 문제 중에서도 간혹 안 풀리는 문제들이 있어서 곧 잘 자습서에 손이 가곤 한다. 보고 공부하면 좋을 텐데 답만 베끼니까 성적이 제자리인 것이다. 어차피 우리 집은 방임주의라서 신경 안 쓰지만.

이미 내 손은 자습서에 닿아 있다. 그리고 금세 내 눈은 교과서의 쪽수를 확인하고 자습서에서 답은 찾고 있다. 아, 찾았다. 뭐야, 30? 난 왜 10만 나왔지? 알게 뭐야. 이번에도 역시나 답만 베껴 적고 있다.

[콕]

“앗!”

기가 내 손을 쪼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세게…….

“그러면 공부가 되냐?”

“이것도 공부하고 있는 거야.”

“답만 베끼는 것이?”

아…… 설마. 인간이 공부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귀신 성불 때문에 자주 인간을 보는 입장이라면 알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그렇지 손등에 상처 나도록 쪼아 버리다니.

“매사에 성실히 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그러께까지의 나였다면 쓸데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저 말에 조금은 동의한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죽은 후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까 그렇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등이 쓰리다. 피…….

“야, 피나잖아.”

“아, 미안.”

본의 아니었다는 듯이 말하는 저 태도. 얄밉다.

“정찰 갔다 오마.”

기는 혼자 창문에 딸려 있는 방충망을 열고 날아가 버렸다. 상처를 낸 것에 대한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

“방충망은 좀 닫지.”

난 방충망을 닫고 약상자를 가지러 거실로 나갔다. 거실의 탁자 위에 있는 엄마의 사진. 내가 7살 때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엄마. 난 어리다고 엄마의 시신을 보지 못하도록 제지당했다.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약상자를 열고 연고를 꺼냈다. 연고를 바른 순간 상처가 쓰리다. 으휴. 정말 아리다. 밴드를 붙이니까 좀 난 것 같기도 하다. 혹시나 하는 거지만 귀신을 성불하는 도중에 귀신에게 공격당해서 다칠 수 있나?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심하게 다칠 횟수나 확률이…… 확실히 높다. 누가 보면 사서 고생하는 것 같지만, 맞다. 사서 고생하는 거다.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사서 고생하는 일은 없겠지.”

약상자를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고 엄마 사진과 마주보며 탁자 앞에 앉았다.

“엄마는 귀신이 안 되고 곱게 저 세상에 갔을 거야.”

난 엄마 사진을 손으로 천천히 만져보았다.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졌다. 언제나 날 따뜻하게 불러주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다행이야. 엄마는 내가 아프다는 걸 모르고 죽었으니까. 한 맺힐 일이 없잖아.”

[뚝]

아, 눈물. 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엄마 사진 앞에서 엄마 생각을 하는 건 막을 수 없고, 엄마 생각을 할 때 울지 않는 건 어려운 모양이다. 눈물이… 정말…… 사정없이 흐른다.

“미안해. 엄마. 맨날 울어서.”

그래도 아빠가 집에 있을 때는 울지 않는다. 정말 현대 이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진한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아빠는 당황스러워 하다못해 제 탓인 줄 알아버린다. 사람이란 이유 없이 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아, 이제 좀 진정된다.

“엄마, 나 소일거리 찾았어. 음. 소일거리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귀신 성불이야. ‘기’라고 하는 푸른색 새 한 마리가 찾아왔거든. 성수 ‘빙황’이래. 200살 좀 넘었고. 나, 기의 제자가 돼서 어제 처음으로 귀신 성불하는 걸 봤어. 신기했어. 아, 그리고 나 좀 더 있다가 귀신 성불하는 법 가르쳐준대. 열심히 할 거야. 죽기 전에 최소한 특기 하나는 있어야 하잖아.”

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말하다가 이렇게 특별한 일을 말하니까 왠지 색다르다. 내가 정말 변한 것 같다. 물론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변한다는 건 있을 수 없지만 그냥 느낌상 그렇다는 거다.

“위험한 일 한다고 걱정하지 마.”

그 다음에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기랑 같이 있으니까’라고 말하고 싶은데 기의 진짜 실력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자니 좀 찔린다. 물론 어제는 진자 쉽게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러면 기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다. 남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기의 멋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기의 실력을 의심할 지도 모른다.

[뻐꾹. 뻐꾹…….]

거실 벽에 자리 잡고 있는 시계가 요란하게 운다. 혼자 집에 있으면 무서울 거라면서 아빠가 달아 놓은 건데 저 소리가 오히려 소름끼친다. 밤에 저 소리를 들으면 실사판 괴기 영화…… 표현이 좀 아니네. 아무튼 저 시계가 정말 싫다는 거다. 근데 지금이 6시 라는 건 천천히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데, 뭘 할까?

“오늘 아빠는 늦는다고 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까 어제 저녁에 만들어 놓은 반찬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냉동실은…… 밥이 1인분 좀 안 되게 남은 것이 있었다. 뭐, 이럴 때는 한 가지 밖에 없다. 언 밥을 해동해서 모든 반찬을 넣고 비비는 것. 내일 아침에 먹을 것 정도는 내일 30분 일찍 일어나서 잽싸게 만들면 되니까.

우선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놨다. 언 것이 좀 풀리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고, 싹 다 비비면 끝이다. 어차피 7시쯤에 먹을 거니까 그 때까지 플스나 하고 있어야지.

[탁 탁 다탁]

방에서 플스를 설치하는 데 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기는 저녁밥을 어떻게 할까? 모르겠다. 게임이나 골라야지.

“뭘로 하지? 음…. 눈 감고 하나 집자.”

그 때 창문 쪽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지희야, 가자.”

“에?”

생각보다 기가 일찍 돌아왔다. 난 플스와 그 기타 부류들(?)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팔찌가 손목에 잘 차여 있는지 확인했다. 생명만큼 소중히 여겨라. 기가 이렇게 말하면서 준 팔찌다. 물론 나야 목숨이 일찍 끊어지든 길게 가든 상관하지 않지만 기의 말은 ‘엄청 소중히 여겨라’라는 뜻일 테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밖으로 나가서 아파트 건물 뒤쪽으로 달려갔다. 조금 밖에 뛰지 않았는데도 현기증이 난다. 내 방이 보이는 곳까지 가기 전에 기를 만났다. 내가 달려오는 게 보이니까 기도 내 쪽으로 온 것 같다.

“찾은 거야?”

난 손을 심장 위에 대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이런 자세가 돼 버린다. 이럴 때는 의식적으로 손을 떼기가 힘들다.

“찾았으니까 부른 거지. 따라와.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까.”

기는 내 자세를 보고 내 상태를 알아차렸다. 기는 천천히 날았다. 앞으로 죽 날아가다가 다시 뒤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길을 안내했다. 정말이지 기도 사서 고생이다. 그렇게도 제자를 두고 싶은가? 뭐, 지금 물어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나이 든 할머니야. 그래도 말솜씨나 염력은 꽤 괜찮은 편이야.”

제자를 키운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어제도 귀신을 직접 보기 전에 귀신에 대한 기초 정보를 알려주었다. 귀신 성불 경력이 화려하다더니 그건 정말인가 보다. 한 번 본 것뿐인데도 그 귀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야 힘들 것이다.

“그 귀신, 어디에 있어?”

기는 계속 좁은 골목길을 골라 날아갔다. 조금씩 재개발되는 중이라 아파트도 많지만 이런 갑갑한 골목길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골목길을 절대로 어느 누구도 개발할 수 없는 저주받은 골목길. 여기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있다. 어디까지 가야…….

“변하고 있어.”

팔찌의 색이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귀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기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걸 보니 이 근처가 맞나보다.

“어디쯤에 있는 것 같아?”

“조금 더 들어가자. 그러면 볼 수 있을 거야.”

기는 다시 앞장서서 날아갔다. 나는 붉기가 짙어지는 팔찌를 꼭 붙잡고 기의 뒤를 따라갔다. 골목길 양쪽에 다 집이 있고 폭도 좁아서 다른 곳보다 더 어두워보였다. 다른 귀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불쑥!]

“아…….”

담장에서 갑자기 팔이 튀어나왔다. 귀신의 팔이었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실제로 보니까 기분 진짜 이상하다.

“무시해. 괜히 저러는 거야.”

“저 귀신은 성불 안 시켜?”

“돌아오는 길에 하자.”

기는 내 주위를 한 바퀴 돈 후에 다시 앞으로 날아갔다. 지금 이렇게 기를 따라가고 있으니까 내가 담이 크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보통 애들이라면 이런 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허리 펴고 어깨 펴고 걸어가고 있으니 보통 담이 큰 게 아니다. 새삼 내 자신이 놀랍다. 그러나 저러나 언제 도착할라나.

“지희야. 절대 할머니의 말에 넘어가면 안 돼.”

“응.”

기가 저렇게 말하니까 진짜 사부 같다.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니, 아무리 말솜씨가 좋아도 귀신이니까 말 들어주기가 껄끄러울 텐데. 혹시 귀신은 말로도 사람을 홀릴 수 있는 건가? 할머니 귀신이니까 심리적으로 약해질지 모르니까 일단은 조심해야겠다.

“도착했어.”

나름대로 깔끔한 집이다. 팔찌를 확인해 보니 이미 피처럼 붉게 변해있었다.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건데, 집 안? 집 밖? 귀신이 보이지 않고, 팔찌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지희야. 네 몸 어디가 제일 서늘해?”

“서늘하다니?”

지금 몸이 서늘한 게 왜 나오는 거지?

“서늘한 쪽에 귀신이 있는 거야.”

으음. 그런 뜻이구나. 내 신체가 귀신을 찾는 나침반이라는 거잖아.

“잠깐만.”

나는 조심스럽게 내 몸을 더듬었다. 서늘한 곳이라면…… 아…… 만질 필요가 없었다. 그냥 느낌으로 찾을 수 있었다.

“오른쪽 어깨가 가장 서늘해. 조금 시린 것 같아.”

느낌이 그닥 깔끔하지 않다. 귀신이 있는 방향을 나 스스로 알 수 있다니 앞으로 길 다니기 힘들겠다.

“음. 감이 좋구나. 제대로 방향을 짚었어.”

내 눈 앞에서 날던 기는 내 오른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다시 살짝 위로 올랐다. 나는 기가 보는 방향에 맞춰 시선을 옮겼다. 맙소사. 어깨보다 좀 더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고 옷 역시 단추 하나하나 단정하게 맨 할머니가 담장 위에 서있었다. 서있다기 보다는 아주 약간 공중에 떠 있는 것이라 해야 정확할 것 같다. 할머니는 무표정으로 기와 나를 내려다 봤다.

“죽은 지 30년도 더 됐는데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걸 보면 조금은 요력을 가졌을 수도 있어.”

요력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건 위험하다는 뜻인데 기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이건 이거란다’하고 가르쳐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영력과 요력은 뭐가 다른 거지? 단순히 질이 좋고 나쁜 걸 뜻하는 건가? 지금은 이런 걸 질문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아까부터 우리를 내려다보는 할머니의 눈이 심상치 않다. 어제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 집은 절대 못 줘.”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내 귀에 전해졌다. 여기가 할머니의 집이라는 얘긴데, 지금 당장이라도 이사 와서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고 예쁜 집이 죽은 할머니 때문에 이렇게 남겨져 있는 건 왠지 서글프다. 이 집에게도 영혼이란 게 있다면 산 사람과 같이 지내길 바랄 것 같다.

“재산 때문에 한 곳에 묶여 있는 귀신이라. 나 참. 전형적인 지박령이잖아.”

그렇구나. 지박령이라고 하면 어디선가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귀신 중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는 귀신을 지박령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원한이 가득하면 지박령이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할머니는 이 집에 미련이 가득한가 보다. 성수들이 몇몇 찾아왔겠지만 30년씩이나 여길 지키고 계시다니 놀랍다.

“성불할 수 있겠어?”

내심 걱정된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 귀신은 상대하기 힘들 거란 얘긴데…….

“무조건 해야지. 더 질질 끌면 영력이 문제가 아니라 요력이 세져서 곤란해 질 거라고.”

으음. 역시. 영력과 요력의 차이를 모르니까 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앞으로 배워야 할 건가 보다.

“거기 처자.”

“듣지 마.”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려 하자 기가 바로 막았다. 할머니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의 경고가 다시 떠올랐다. 음. 마음 굳게 먹어야지. 할머니를 불상하게 여기면 성불시킬 수 없다. 그동안 열심히 버티신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하셔도 괜찮지 않을까? 에…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몇 백 년 묵은 귀신 이야기가 나오긴 하나 그건 아주 아주 극소수라고 기가 가르쳐 줬었지. 하. 기는 저 인상을 보아하니-새라고 할지라도 분명 표정은 있다.- 할머니를 꼭 성불시킬 것이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그 말. 딱 어울린다.

“내 아들이 올 거야. 아들이 다음 주에 올 거라고 편지를 보냈어. 난 아들을 기다려야만 해. 내 집은 절대 못 내줘.”

할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셨구나. 군대에 갔었을까? 막노동? 하지만 그 아들은 이제 중년이거나 노년의 남서일 것이다. 아니면 아들이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들도 죽었다는 말이 된다. 후자 쪽 같다.

“기, 성불하는데 얼마나 걸려?”

아들이 먼저 죽은 게 분명하다. 집에 돌아갈 거라고 편지를 썼다면 분명 이 집에 왔을 텐데 할머니는 계속 아들을 찾고 있다. 아들이 죽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할머니를 아들과 만나게 해 드리는 게 도리일 것이다. 성불해야만 한다.

“스스로 하길 원하면 금방이겠지만 거부하고 반항하면 좀 걸리겠지.”

기는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살포시 앉았다. 어제처럼 바로 성불할 상황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진정한 성불이 아니야. 억지로 성불을 시키면 한이 다른 곳에 묻어남아 요물이 될 수 있어.”

경력이 좋다고 주장하는 기라도 쉽게 성불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여러 가지 문제 사항을 감수하고 성불을 억지로 시도할 수 있겠지만 나를 가르치는 중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보면 성불은 본인이 원할 때 할 수 있다는 건데……. 물론 억지로도 가능하지만 ‘될 수 있으면 자기 의사에 맞춰서.’ 그런 걸까? 그러면 지금 이 할머니가 성불할 마음이 들도록 해줘야 한다는 건가? 30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온 분을 무슨 수로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산 사람도 자기 결심을 바꾸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데 한 가지 한 때문에 이승에 남아 있는 죽은 사람의 결의를 거슬러 돌린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성 싶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면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어떻게 할래?”

“응?”

갑자기 어떻게 할래 라니.

“할머니를 달랠 수 있겠어?”

혹시 나보고 이 할머니를 성불할 마음이 생기게 유도하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초보에게 뭘 바라느냐고 생각하지만 기는 진심인 것 같다. 기의 눈치를 살피다가 할머니를 올려다봤다. 할머니는 아까부터 계속 우리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여기서 못 비킨다. 썩 꺼져라. 이런 눈이었다. 우리가 뭐라고 말하든 듣지 않을 것 같다.

“가자.”

기는 갑자기 우리 집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자니… 할머니는? 난 기와 할머니를 번갈아서 쳐다보다가 기가 좀 멀어지자 기를 쫓아갔다.

“저 할머니, 무조건 성불해야 한다며.”

나는 기의 바로 뒤까지 따라 잡았다. 기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옆에서 튀어나온 팔위에 앉았다. 기의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희고 푸른 빛. 어제 봤던 광경이다. 성불의 순간이다. 기가 앉아 있는 귀신의 팔은 점점 흐려지더니 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성불이 끝나자 기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무조건 성불할거야. 하지만 방법을 달리 해야지.”

성불의 방법을 달리 한다는 건 할머니를 달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같다. 하지만 방금 전 귀신은 기가 멋대로 성불했는데 그 할머니는 그러면 안 되나? 안되니까 방법을 달리 한다는 거겠지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