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은 레이가 평소엔 하지 않던 행동을 하니까 의아해 하면서 딴에는 걱정했다. 잘 몰라도 착실하게 수업에 임하는 착한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면 주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기 마련이다. 베일리야 뭐, 조는 모습을 가끔 보이기 때문에 오늘 존다고 이상할 게 없지만, 아침 한 시간만 졸지 지금처럼 오전 내내 꿈나라도 가 있던 적은 없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려도 레이와 베일리는 고개를 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레이의 상태가 염려스러워 레이의 반에 찾아온 인철은 레이가 자고 있는 걸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혼자 고민하면서 자기 머리를 괴롭히는 것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꿈을 꾸는 게 더 나았다. 소꿉친구가 평생의 적이라는 사실은 쉽게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배신감과 함께 끊이지 않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인철은 시간이 흘러도 레이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아물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잘 자네. 오늘은…… 별 일 안 일어나겠지.”
인철은 베일리도 정상이 아닌 걸 본 후에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인철은 마야가 직접 손쓰지 않아도 기억의 봉인을 풀 수 있었다. 레이와 베일리의 마력에 자극을 받아서 조금씩 각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뛰어난 직감도 한 몫 했다. 기억의 봉인을 풀기 전에 마법을 사용한 건 각성의 속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새턴 세쌍둥이와의 대면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동안 잘 지냈나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인철을 불렀다. 제 3의 세계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지만 인철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성 중에 이런 미성을 가지고 있는 건 딱 한 명뿐이었다. 물론 로키도 미성이지만 그의 미성은 교활한 미성이다. 게다가 지금은 환생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전혀 다르다. 타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인철이 아는 선에서 발데르뿐이었다.
“예의상 잘 지냈다고 대답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못 지냈다고 대답할까?”
인철은 교실 창문에 가까이 가서 밖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철은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없지만 상대가 발데르라면 (텔레파시를 사용하지 못하는 어느 누구라도)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다. 광명의 신 발데르가 내미는 빛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티르.>
발데르는 미안하다는 듯이 인철을 불렀다.
<내가 여기서 해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것 같군요.>
“아니,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지.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것 자체도 고마운 일이니까.”
<역시 티르는 성품이 고결하시네요.>
발데르의 칭찬에 인철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나 인철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서 화제를 깊게 밀어 넣었다.
“너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김리궁과 미드가르드 사이에 통로가 열렸다는 뜻이겠군.”
<네. 바로 저번 밤부터…….>
“김리궁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 살아남은 신들이 살고 있으니까 깨끗하고 풍성한 곳이겠지?”
인철은 자기 멋대로 머릿속에서 김리궁의 모습을 그렸다. 청춘을 유지하는 황금사과의 나무를 정성스레 키우는 이둔의 모습과 발데르의 햇살, 난나의 축복 그리고 브라기의 노래에 맞춰 김리궁이 푸르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아스가르드도 한 때 그랬었지 라는 생각에 곧장 모든 상상이 깨져버렸다. 파괴되는 아스가르드가 돌연 눈앞에 비치더니 아홉 세계를 뒤덮는 불꽃과 시체, 피바다가 슬픔과 분노를 자극했다.
<괜찮나요, 티르?>
발데르는 인철의 상태가 편치 못하다는 걸 감지했다.
“내가 나 스스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모든 게 깨끗하게 끝나야만 할 거야.”
인철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기억하고 나니 현기증이 일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난 너처럼 낙천적이질 못해서 말이야.”
<정의의 신, 티르. 자기 모순된 말을 하는 군요.>
‘티르’는 전쟁의 신이기도 하지만 정의의 신이기도 하다. 에시르 신족의 일원으로서 전쟁을 관장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전쟁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그름을 배척하거나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전쟁을 주도한다. 어느 한 쪽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유일한 신이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부정하다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신이기도 하다. 조금은 부정적으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도 저도 아닌 신’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인철이라는 인간은 티르라는 신이 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그래.”
인철은 피식 웃었다.
“지금 김리궁은 어때?”
<잔인한 안부 인사네요.>
“이 쪽 만큼 할려구.”
인철은 뒤로 돌아서 창틀 벽에 기대서서 양 팔꿈치를 창틀 위에 올려 교실 내를 보며 발데르와 대화를 계속했다. (발데르의 빛은 어느 곳에나 비출 수 있기 때문에 대화하는데 특별한 장애가 없다.)
“미드가르드와 김리궁 사이의 통로를 김리궁에서 솔선해서 열 정도면 김리궁 내부 상황은 그닥 나쁘지 않을 텐데.”
점심시간의 교실 안은 고2의 교실 치고는 시끌벅적했다. 물론 고등학생이라고 무조건 공부하거나 조용히 할 필요는 없지만 인철네 반은 오늘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아마 거대한 말벌이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일 것이다. 이게 인철의 생각이었다. 뭐가 어떻든 덕분에 인철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 놓고 혼잣말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실은 김리궁에서 미드가르드를 도우려고 통로를 열었는데 생각지 못한 세력 때문에 저희도 위험해져 버렸어요.>
“우트가르드 로키 말고 성가신 녀석들이 또 있단 거야?”
생각에 빠진 인철의 표정은 심각하진 않지만 무게가 잡혀 있었다. 진지하게 자기 생각에 빠진 미소년은 그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인철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드래곤 일족 중 일부가 레시 가를 중심으로 연합을 만들어서 김리궁을 위협하기 시작했거든요.>
드래곤이란 말에 인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 2의 세계에 있던 무수한 종족 중에서 거인족보다도 더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종족이 드래곤이었다. 스스로 지혜롭다 자부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데다가 손쉽게 영지를 획득하고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서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티르도 드래곤 한 가문을 통째로 없앨 수 있을 정도로 강했지만 공작·후작은 거드는 것 자체를 꺼렸다. 레시 후작 가라고 하면 ‘그’를 깨우려는 야망을 가진 가문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아스가르드의 경계 대상 1호에 해당했다. 티르도 개인적으로 그들을 특별 감시 대상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레시 가……. 그래, 그 녀석들이 있었어.”
인철은 신 티르로서 레시 가의 은퇴한 가장(전 후작)을 죽인 적이 있다. 귀한 신분과 재물을 앞세워 선량한 인간들과 엘프, 드워프 등을 비인도적으로 괴롭힌 때문이었다. 전(全) 드래곤의 수장이기도 한 스쿨드가 오딘에게 은밀하게 레시 가의 전(前)후작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자(스쿨드는 차마 자기 손으로 드래곤을 죽이지 못한다. 힘이 약한 것도 그 이유가 된다.) 오딘은 로키와 티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드래곤 가문에서 은퇴한 가장이라 하면 고룡급 드래곤으로 현 가장보다 그 힘이 강하다 봐도 좋다. 혼자만 갔으면 애 좀 먹었겠지만 둘이었기 때문에 쉽게 일을 끝냈다.
<지금 김리궁에는 그들을 막을 만한 신이 별로 없어요.>
아스가르드에서 강했던 신들은 라그나로크로 목숨을 잃고 제 3의 세계에 환생한 터라 김리궁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신이 대부분이었다. 발데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력은 강해도 전투용은 아니었다.
“토르의 아들인 마그니와 모디가 전부겠지. 아, 오딘의 막내아들 발리도 있으려나?”
오딘, 로키, 토르, 프리그 등을 초대 신이라 하면, 마그니, 모디, 발리 등을 후대 신이라 할 수 있다. 마그니와 모디는 토르와 거인 야른작사의 두 아들이고, 바리는 오딘과 린트(땅과 풍요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토르의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빼닮아 장사로 소문난 신이고, 발리는 처음부터 복수의 신으로 태어난 몸이다. 가한 신이 될 거라 촉망 받는 어린 신이었다.
<지금은 장성해서 가장 믿음직스럽고 늠름한 분들이지요.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분들이라 지금 이 사태에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분들이기도 하지요. 아마 그것 때문에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잘 적응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조건이 평범하지 않아 미적지근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면, 오딘에겐 이야기 했어?”
<사신을 보냈어요.>
인철은 발데르의 대답에 조금 놀란 것 같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오딘에게는 네가 직접 얘기해야지. 이거 주객이 바뀌었어.”
인철은 발데르가 오딘이 아닌 자신에게 직접 소식을 전한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발데르는 아버지 오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잘 따르며, 오딘은 아들 발데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존중하지만 부자지간으로서 서로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두 신 사이에는 벽이 존재했다. 오딘에 비해 발데르가 너무나 깨끗한 신이기 때문일까. 발데르는 일부러 피를 대지에 뿌리는 오딘을 가까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티르는 달랐다. 서로 대화도 잘 통하고 전쟁을 보는 시각이 비슷해서 로키와 토르 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가 되었다.
<오딘은 이해해 주실 거에요.>
발데르의 순진한 미소를 연상케 하는 따뜻한 빛이 인철을 비췄다. 그 때 인철은 발데르의 마력과 함께 또 다른 마력을 찾아냈다.
“발데르. 혹시 배달 수행원 엘프가 김리궁에서 빠져나왔어?”
<그녀가 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레시 가가 움직이는 거겠죠.>
발데르도 자신의 빛을 자극하는 마력을 파악했다. 살기나 공격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거슬렸다. 배달 수행원 엘프가 미드가르드에 있다는 것은 그닥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누굴, 뭘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배달 수행원 엘프가 단순히 산책하는 중이라 해도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스파이는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결정적 한 방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스쿨드는 이미 레시 가에서 데려갔어요.>
“스쿨드?”
<모르셨나요? 스쿨드가 드래곤 일족의 수장이에요.>
인철이 알 리가 없었다. 스쿨드가 전 드래곤의 수장이라는 사실은 정말 극소수의 존재들만 알고 있는 것이다. 신 티르가 드래곤을 상대할 때면 언제나 오딘이 중간에서 청탁을 전달한 것이니 진짜 명령자를 아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감히 ‘스쿨드’를 연상할 수도 없었다.
“음. 그러면 스쿨드도 미드가르드에 있었다는 거네. 그 스쿨드를 데려갔으니 미드가르드에 볼 일이 없을 거면서 그녀가 여기 있다면, ……뻔하잖아. 4대 보물을 찾는 거겠지.
인철은 새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에 감탄하는 건 뒤로 미루고 이성적으로 차근차근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뭔가를 깊게 생각했다.
<티르.>
“미안, 발데르. 오딘과 얘기 좀 해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이제 막 기억을 되찾아서 갑자기 많은 일을 겪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어.”
<네. 그러면 다음번에 서로 좋은 소식을 전했으면 하네요.>
발데르의 마력이 사라졌다.
인철은 웨폰 배틀을 끝내고 나서 우트가르드 로키 세력은 진짜 상대가 아니라 판단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를 빼고는 오합지졸이라 오딘이 제대로 맘만 먹으면 자기들을 이끌고 그들을 깨부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인질 때문이었다. 프리그만 무사히 데려올 수 있으면 우트가르드 로키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분명히 ‘그’를 노리는 제 3의 세력이 나타날 거라 대강 추측만 하고 있었다. 그 때 때마침 레시 가의 소식을 듣게 되자 현실은 정말 잔인하도록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남인철. 면회.”
교실 뒷문 쪽에서 친구가 인철을 불렀다. 인철이 그 쪽을 보니 베일리가 무표정으로 서있었다. 마력이나 살기는 전혀 없었다.
“뭐야?”
인철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교실에서 잘 자고 있던 어제의 적수가 인간답게 나타나자 무슨 얘기가 오갈지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
“Do you know who it is?(누군지 알아?)”
베일리는 상당히 띠꺼워했다. 자는 도중에 배달 수행원 엘프의 마력을 감지하고 불쾌감 때문에 일어난 듯 했다. 그녀의 마력은 아직도 옅게 주위를 배회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Deliver of Elf. It may be and and find something or someone.(배달 수행원 엘프. 아마 시프일 거고, 뭔가나 누군가를 찾고 있겠지.)”
주변 학생들의 이목을 고려해서 목소리를 작고 낮게 줄이고 영어로 말했다. 어차피 신경 쓰는 학생들도 없겠지만 혹시나 우연찮게 듣는 이가 있을까봐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I know. Why is it here?(나도 알아. 왜 여기 있는 거야?)”
“Maybe……. Thor.(아마……. 토르겠지.)”
이 근처에 4대 보물의 조각이 있다면 환생한 신들이 벌써 찾아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달 수행원 엘프가 이 근처를 배회하는 건 그녀가 개인적으로 찾을 게 있다는 뜻이었다. 인철은 그녀가 찾을 법한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Is he here? Wow, Loki will be happy like puppy.(토르가 여기 있어? 로키가 강아지처럼 엄청 좋아하겠군.)”
베일리에게 토르는 별 영향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민혁이 토르를 만나서 좋아할 걸 생각하니 조금 거치적거렸다. 로키의 행복이 헤임달의 불행이라는 건 본능같이 여겨졌다. 인철은 베일리의 그런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피식 웃었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도무지 그들이 한바탕 크게 싸웠던 사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제 2의 세계에서는 같은 아스 신족이었던 지라 마찰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면 옛 정을 좇아 편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 학교에 같이 다니는 선후배로서 으르렁 거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레이가 사이에 끼어 있어서 억지로라도 마찰을 일부러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인철에게 문자를 받은 민혁은 진원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인철에 도장 앞에 모였다. 인철과 레이는 마지막 일반부에서 수련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모인 것도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아 민혁과 진원은 도장 앞에서 기다렸다.
“배달 수행원 엘프가 미드가르드에 나타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됐네요.”
그동안 신들은 제각기 수련을 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며 다녔다. 정보라고 해봐야 특별할 만 한 건 없었다. 그래도 건져낸 게 있다면 배달 수행원 엘프가 신들의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우트가르드 로키 쪽의 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레시 가는 아직 움직이고 있지 않아. 스쿨드의 안전을 확인할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일부러 그 쪽을 건들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배달 수행원 엘프가 대놓고 돌아다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임시 휴교가 끝나고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민혁은 세연과 같이 다니면서 자신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배달 수행원 엘프 때문에 계속 신경을 곤두 세워야 했다. 세연도 덩달아 그녀를 경계해서 둘 다 노이로제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민혁은 내가 이기나 에가 이기나 보자 식으로 그녀를 경계하기만 할 뿐 직접 찾아가 상대하지는 않았다. 이 엄청난 신경전에서 먼저 움직이는 쪽이 패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자신이 찾고 있는 걸 대신 찾아달라는 거겠지. 자신은 중간에 낚아채버리면 그만이고.”
진원의 눈에 배달 수행원 엘프가 노리는 것이 대강 보였다. 아니, 확실하게 보였다.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최소한 그녀 한 명은 확실히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그녀에게 그녀가 찾는 것을 뺏기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
“그나저나 토르도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전혀 낌새를 못 잡아서 여기엔 없는 줄 알았거든요.”
민혁은 토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살짝 들떠있었다. 솔직히 자기는 ‘제 3의 세계의 장민혁’이라 우기고 있었지만 영혼이 ‘제 2의 세계의 로키’이기 때문에 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토르를 찾아다녔고, 다른 신이 곁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빈 마음을 채워 줄 단짝이 드디어 나타난다는 기쁨은 포커페이스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티르도 몰랐는데 토르는 더 모를 수밖에. 아무튼 메인은 거의 모인 셈이 되겠어.”
신들이 하나씩 깨어나면서 진원은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 신이 깨어난다는 건 현실이 종말을 향해 가까워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어서 일까. 점차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의 흐름은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시간마저 긴장감이 겉돌게 했다.
“메인…… 이라고 하니까 현실의 무서움이 새삼 다시 느껴지네요.”
처음에는 프리그를 구출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런 것이 어느 새 4대 보물을 모으려는 우트가르드 로키를 저지하고, 새로운 세력인 레시 가를 견제하기까지 되었다.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세계가 평화로울 줄만 알았다.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은 겪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라그나로크가 예언에 올랐다. 점점 예언에 일치해가는 현실은 야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미리 다 알고 있는 게 가장 슬픈 거야. 그걸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꿀 수 없다는 게 비극 그 자체고. 뭐, 새삼 이럴 필요도 없지. ‘신’이었던 시절에 마저도 라그나로크는 막지 못했는데 지금은 더 무력하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야지.”
<그런 나약한 발언은 사절입니다.>
민혁이 하고 싶던 말을 우트가르드 로키가 먼저 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그래도 제 3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은 알아.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그거야.”
진원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민혁은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딱 진원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미소를 달고 다니는, 순수한 얼굴의 진원이었다.
<그러면 토르는 오딘께 양보해야겠습니다.>
“처음부터 토르에겐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괴력의 토르에게 관심이 없다면 전 아주 중요한 걸 포기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민혁의 말에 우트가르드 로키는 반 진심, 반 장난으로 대답했다. 일손이 부족하기는 우트가르드 로키도 마찬가지인데 토르를 노리지 않는 다면 거짓말이고, 토르가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악감정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는 건 뻔히 아는 사실이므로 노리지 않는 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슨 볼일이지? 이제 쌩쌩해졌으니 다시 건드는 건가?”
<가시가 잔뜩 입니다. 오딘.>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대로, 진원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말 자체에 ‘허튼 짓 하면 죽인다’의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지금 말을 걸어오는 건 너무 고의성이 강해서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과 냉기가 점점 짙어졌다. 도장 밖이지만 안에 있는 레이와 인철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레이의 기억의 봉인을 풀 때도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공격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그럴 심산인지 분위기가 영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바람아 춤을 추어라, 공간 경계.”
개인적인 사정으로 뒤늦게 도착한 세연이 공간 경계를 넓게 펼쳤다. 전통 한옥으로 되어 있어 아주 넓은 남가 도장을 통째로 감쌀 정도로 (공간 경계의) 규모가 대단했다. 진원 네에 전적으로 합류하겠다고 말한 후 우르드의 허무에 가득 찬 눈을 뒤로 하고 마력의 봉인을 풀어버린 것이다. 스쿨드가 강제로 레시 가에 납치돼 있는 이상 노른은 노른이 아니라 한명 한명의 여신이 되어야 했다. 세연은 비교적 빨리 자기 현실에 적응했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자기를 노리고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겁내지 않았다.
“대단한 걸.”
진원은 세연이 친 공간 경계를 보고 감탄했다.
“노른이 예언만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노른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상상 이상이라고요.”
베르단디의 마력을 모두 되찾은 세연은 거대한 공간 경계를 펼치고, 그걸 유지하는 데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아주 우스운 듯 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을 아주 쓸어버렸어. 장난 아니다.”
민혁도 세연의 공간 경계에 감탄했다. 마력의 봉인을 꽁꽁 숨기고 있어서, 초보적인 마법 밖에 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의 거대 공간 경계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민혁은 자기를 두르는 정도에 몇 분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급한 불끄기 수준이었다.
“이만하면 우트가르드 로키의 상대로 손색이 없지? 앙그르보다의 마력까지 되찾으면 더 굉장해 질 거라고.”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구나.”
“거의요.”
세연은 기억을 되찾고 일주일동안 전생의 꿈에 시달렸다. 덕분에 두 개의 기억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혼동하지 않고 기억을 되짚을 수도 있게 되었다. 제 1의 세계에서의 기억까지 되찾으면 세연은 ‘그녀’로서 완전히 각성하는 셈이었다. 지금은 두 개의 기억을 즐기고 있었다. 남들이 겪지 못한 걸 자기가 겪고 있다고 아주 좋은 방향으로 자신의 사고를 이끌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는 민혁의 공도 은근히 컸다. 제 2의 세계에서 앙그르보다와 베르단디를 모두 직접 상대해 봤기 때문에 각각의 기억을 재치 있게 언급할 수 있었다.
“앙그르보다는 약간의 예언과 저주술이 고작이잖아.”
“어둠의 D-웨어 마스터이기도 하지.”
세연의 지적에 민혁과 진원은 아차 싶었다. P-웨어와 D-웨어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이를 웨어 마스터라 하며, 극소수다.(였다.) 그런데 예외의 마스터들이 있었다. 피의 P-웨어 마스터라 불렸던 티르, 어둠의 D-웨어 마스터라 불렸던 앙그르보다. 이 둘이 반쪽 마스터이자 스페셜 하프 마스터라 불렸다. 앙그르보다는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D-웨어를 이용해 자신과 괴물 삼형제의 적을 확실하게 해치웠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그런 앙그르보다의 능력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 대상으로 여겨 일찍이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괴물 삼형제에게는 각각 어울리는 임무가 있었지만 앙그르보다는 그저 거인족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르릉]
그들의 눈앞에 몸이 썩어가는 늑대가 누렇게 뜬 눈을 치켜뜨고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몸통에 단도가 여러 개 꽂혀 있었고 상처마다 황록색의 썩은 고름이 흘렀다. 다리에는 이미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우욱.”
세연은 헛구역질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휙 돌렸다.
“웨어일까요 인공합성생명체일까요?”
아무리 안면철판, 최고의 포커페이스 민혁일도 다 썩은 늑대를 눈앞에 두고 평탄한 얼굴을 할 수 없었다. 악취도 대단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인간의 인내심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웨어이면 공간 경계 안에 못 들어오거나, 들어와도 둔해질 거고, 인공합성생명체면 미친 듯이 대들겠지.”
“어떻게 저걸 보면서 그렇게 웃을 수 있어요?”
진원이 계속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세연이 ‘대단한 인간’이라고 도장 찍어 버렸다. 진원의 미소는 민혁도 일찍이 인정한 바 있었다.
진원이 일부러 표정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가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르릉]
늑대는 몸을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조금씩 천천히 다가갔다.
“세연아, 공간 경계를 거둘래? 우트가르드 로키의 텔레파시를 들을 수 없어서 말이야.”
세연은 진원의 부탁을 받고 공간 경계를 거두려는데 민혁이 갑자기 손을 잡아서 멈췄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이 공간 경계를 못 뚫는 다는 예기 같은 데요?”
“그게 어쨌는데?”
민혁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한 세연은 민혁에게 반문했다. 진원은 민혁이 말하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한 듯 했다.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마력의 봉인을 풀었다는 우트가르드 로키가 이 정도 공간 경계도 못 뚫는 다면 마법왕의 호칭이 아깝지.”
민혁은 재미있는 걸 손에 붙잡은 악담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신의 눈으로 늑대를 찬찬히 살폈다. 늑대는 민혁과 눈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신음소리만 냈다. 그리고는 사신의 눈을 이기지 못하고 몸 전체를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 마력은 약하지만 상대를 제압하는 눈은 야생의 것이었다. 그 어떤 야수, 맹수라도 그 눈을 피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 속에서 공간 경계가 통했었지? 마력을 섬세하게 다룰 줄 모르는 건가?”
진원은 바지 주머니에서 궁니르를 꺼내고 본 크기로 확대했다. 진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늑대를 다시 한 번 움츠리게 했다.
“이제 거둘게요.”
대충 상황을 파악한 세연은 공간 경계를 거뒀다. 그러자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이 곧장 밀려들어왔다. 늑대로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을 타고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기 시작했다.
“대지여, 그대를 딛고 있는 자에게 족쇄를, 홀드.”
[탁]
진원이 포획 마법을 외고 궁니르롤 땅을 한 번 두드리자 늑대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베르단디의 등장에 좀 당황했나? 우트가르드 로키라면 이 정도는 계산하고 있었겠지?”
민혁은 오른손에 마력을 모으며 주변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민혁이 알고 있는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보다 흐름이 불안정했다. 무거운 물건을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처럼 마력의 흐름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로키께서 선수를 치셨군요.>
“도박을 한 거야.”
우트가르드 로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세연은 민혁에게 꼭 달라붙었다. 진원과 비슷한 톤이지만 상대가 우트가르드 로키라니까 무섭게 들렸던 것이다.
<제가 요즘 많이 나태해 진 것 같습니다.>
“경솔한 거겠지.”
민혁은 비웃는 듯이 입 꼬리를 양 옆으로 살짝 올리며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을 재깍재깍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늑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진원이 늑대의 발을 붙잡고 있었지만 늑대를 잡고 있을 뿐 인공합성생명체를 잡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진원도 마력을 계속 활성화하며 늑대의 움직임과 그 주변을 주시했다.
<로키는 언제 봐도 얄미운 분입니다.>
[파다다다다다]
늑대의 다리에 득실거리던 거머리들이 셋을 향해 빠르게 기어갔다. 늑대의 몸속에 구더기만 잔뜩 인지 다리의 구멍에서 끊임없이 기어 나왔다. 인공합성생명체답게 특이하고 비인도적인 뭔가가 있었다.
“화이어 볼.”
“화이어 로드.”
민혁은 엑셀 암렛의 힘을 빌려 농도 5C의 화이어 볼을, 진원은 화이어 로드를 사용했다.
[화르륵, 타닥 탁 탁]
구더기들은 화염 앞에서 점점 타들어갔다. 늑대의 썩은 내, 구더기의 누린내, 탄내가 섞여서 악취 중의 악취가 주위를 장악했다.
“우욱, 진자 토할 것 같아.”
세연은 얼굴이 노래져서는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왼손으로는 가슴을 쥐어 잡았다. 구더기가 화이어 로드에 앞길이 막혀 전전하지 못하자 민혁은 세연을 꼭 끌어안았다.
“조금만 참아.”
“우트가르드 로키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보낸 거야?”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처음으로 공격을 당하는 거라 세연은 당혹스러운 걸 떠나서 아주 불쾌했다.
“이런…… 독기야. 한꺼번에 태워버리려니 주변 이목도 있고. 곤란한데?”
진원은 타들어가는 구더기에게서 독이 배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독이 불에 의해 오나전히 타버리면 다행이겠지만 적절히 섞여서 독가스가 되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더 강한 화염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도장 앞이고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라서 큰 마법을 쓰기 곤란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도 위험했다.
“오딘, 불을 꺼요.”
레이가 도장의 담을 넘어서 밖으로 나왔다.
“북쪽의 정기를 이 손에 담고 스카디의 이름에 맹세한다.”
진원은 레이가 외우는 주문을 알아듣고 화이어 로드를 거뒀다. 독과 함께 뒤섞인 잿더미 뒤에서 우왕좌왕하던 구더기들이 잿더미를 넘어 맹렬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프리징.”
[쩌저저적]
구더기 무리는 물론이고 늑대까지 모조리 얼어버렸다. 그리고 레이가 마력을 좀 더 가하니 얼음 덩어리가 산산조각 나서 그 안에 갇혔던 것들이 모두 소멸되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군.”
진원은 레이의 깔끔한 일처리를 치하했다. 잔재가 모두 사라지고 나서 주변의 모든 마력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다시 잡무를 시작했나 보네요.”
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알 수 없는 실험체들을 앞으로 다시 더 상대해야 한다니 은근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선을 이런 데에 돌려 놔야 자기가 4대 보물을 모으기 쉬울 테니까.”
어느 샌가 인철도 밖에 나와 있었다.
“진철은요?”
“뒷정리 담당이니까 좀 기다려야 돼.”
인철이 도장의 정문을 활짝 여니 수련생들이 우루루 나왔다. 땀범벅인 수련생도 있었고, 말끔한 수련생도 있었다. 바깥의 소동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인철이 안에서 정문을 지키고 있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구 뒤섞여서 신들의 귀를 자극할 때 신들은 새로 나타난 마력에 집중했다. 그들이 절대 모를 리 없었다. 진원의 표정은 미소에서 근엄으로 변했고, 민혁은 방금 닫은 사신의 눈을 다시 개방했다. 레이는 차가운 표정을, 인철은 무와 균형의 표정을, 세연은 무와 달관의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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