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제 3문 (3)

★은하수★ 2009. 5. 7. 17:18

새턴 세쌍둥이는 집에서 개인 교습을 통해 바이올린을 배우는 중이었다. 마블이 연주를 마치고 이어서 매튜가 같은 곡을 연주했다. 마블은 매튜가 연주하는 동안 선생님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나갔다. 아직 손에 바이올린이 쥐어져 있었지만 그대로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마당 한 족 구석에서 웨어울프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블은 사방을 살펴본 후에 웨어울프를 불렀다.

“찾았어?”

웨어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 어디인지도 찾았지?”

마블의 붉은 왼쪽 눈은 한 층 더 붉어지고 웨어울프는 비겨도 안 될 만큼 공포스런 짐승의 눈으로 변했다. 웨어울프는 무릎을 꿇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복종이었다.

“좋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조금 후에 다시 올 테니까 아주 잠깐이면 돼.”

마블은 웨어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매튜의 차례가 끝나고 마야가 연주하고 있었다. 마블은 매튜의 옆에 다가가 섰다.

“웨어울프가 돌아왔어.”

“오늘은 어때?”

“찾았어.”

마블과 매튜는 시선을 마야에게 두면서 서로에게만 들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블이 가져온 희소식에 매튜의 입가에는 미소가 비쳐졌다. 마블 역시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마야까지 연주가 모두 끝났다.

“역시 너희 셋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선생님은 열심히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짐을 챙기고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할 때까지 아부처럼 들리는 칭찬만 잔득 내뱉었다. 셋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마중할 뿐이었다.

“영사의 자식들이라고 저러는 거라면 곤란해.”

마야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안 보이자마자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로 가자. 웨어울프가 왔어.”

마블이 앞 서 가고 매튜와 마야가 나란히 뒤를 따라갔다. 웨어울프는 뒷마당 구석에서 무릎 꿇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셋의 모습이 보이자 천천히 일어섰다. 셋의 왼쪽 눈은 점차 본 색으로 진해졌다.

“로키님을 찾은 거야?”

마야가 마블의 뒤에 서서 물었다.

“응. 집까지 다.”

“굉장한 걸.”

마야는 웨어울프에게 다가가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셋에게 웨어울프는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애완용 늑대에 불과했다.

“그럼 이제 로키님의 집이 어딘지 가르쳐 줄래?”

마야가 오른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웨어울프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마야에게로 내밀었다. 마야는 웨어울프의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마야의 마력이 웨어울프를 감싸다가 마야에게로 돌아왔다. 웨어울프의 기억을 읽어낸 것이다.

“됐어. 수고했어.”

마야는 웨어울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마블이 웨어울프의 목에 걸려있는 쇠사슬에 손을 대자 웨어울프가 사라졌다. 마블과 마야가 웨어울프와 있는 동안 매튜가 피류온과 작은 금속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역시 매튜 오빠야. 벌써 다 챙겨왔잖아.”

마야는 피류온을 받아들었다. 그 때 마블이 금속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매튜, 이게 뭐야?”

“로키님께 드릴 선물이야.”

매튜는 상자를 소중한 보물 마냥 꼭 끌어안았다.

“어떤 선물인데?”

마블은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야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상자의 윗면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로키님은 마력의 봉인을 찾지 못하셨을 거야. 그러면 이게 꼭 필요하실 거야.”

매튜는 상냥한 말투에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물건이 있어?”

“나중에 보면 알아.”

마블과 마야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매튜는 수줍게 웃었다. 로키를 어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그 얼굴에서 묻어나왔다.

“일단 아빠께 허락받고 다녀오자. 멋대로 나가면 전에처럼 화내실 테니까.”

“응. 그러면 곤란해.”

마블이 한숨 쉬며 제안하자 마야도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에 마력을 모았다. 중간에 가정부 아줌마의 인기척이 나서 멈칫 거렸지만 곧 다시 마력을 활성화했다.

“대지여, 나에게 길을 인도해 주기를, 워프.”

마야가 워프를 열자 마블과 매튜가 먼저 들어갔다. 마야는 가정부 아줌마의 눈치를 보고 나서 워프로 들어갔다. 워프로 나온 곳은 주한 영국 영사관 내의 1층 복도였다.

“얼른 집무실로 가자.”

마블이 먼저 발을 떼는데 엄청난 살기와 마력이 느껴졌다. 셋은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 마력을 살폈다.

“영사관 밖이야.”

“나가 보자.”

셋은 허둥거리며 영사관 밖으로 나갔다. 마력이 점차 강해졌다.

[쿠왕!]

엄청난 폭발소리가 났다. 영사관 앞의 큰 길까지 나온 세쌍둥이는 승용차 세 대가 박살나서 불에 휩싸인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저건 마력으로 일으킨 불이 아니야.”

매튜는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상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조심해.”

다시 마력을 감지한 마블이 눈을 매섭게 떴다. 매튜와 마야도 몸 안의 마력을 활성화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펑! 쿠왕!]

영사관 주변에 있는 한 건물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졌다.

“마법으로 부순 거야. 어디지?”

세쌍둥이는 건물이 부서진 모양으로 위치를 추측하여 그 부근을 주시했다. 마력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정밀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강의 위치는 확보할 수 있었다.

“마력을 개방하고 지원군을 불러야겠어.”

“안 돼.”

마야가 머리핀에 손을 대려 하자 매튜가 그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영사관 앞에서 마법을 쓰면, 우리를 아는 누군가가 그걸 볼 게 뻔해.”

매튜의 말에 마야는 이를 악 물고 손을 내렸다. 자신들은 누구에게 보이건 말건, 뭐로 취급 받든 상관없지만 아버지인 영사마저 곤란하게 할 수는 없었다.

“저 위에……. 가면을 쓴 남자야!”

마블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흰 가면을 쓴 헤임달이 한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헤임달의 양손은 불로 휩싸여 있었다.

“음. ‘범브’였구나.”

마야는 헤임달이 사용하고 있는 마법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게 어떤 마법인데?”

마블은 자신이 사용하는 특수 마법 몇 가지를 제외하면 아는 마법이 거의 없었다. 그 특수성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화이어 볼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덩어리라기보다는 투척용 폭탄이라고 보는 게 나.”

“아마 사람들은 테러라고 생각할 거야. 그걸 노리고 일부러 ‘범브’를 선택한 걸 거야.”

마야의 간략한 설명 후에 매튜가 부가 설명을 했다. 매튜 역시 마블처럼 특수 마법 밖에 할 수 없지만 다른 마법을 따로 공부해 왔기 때문에 마법의 특성이나 공략법 정도는 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마블은 순간적으로 왼쪽 눈이 붉게 변했으나 다시 옅은 갈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 주변에 퍼진 마력을 살펴 자신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낯익은 마력이었던 것이다.

“뭐야. 잘 아는 녀석이잖아.”

마블은 이를 악 물며 말했다. 그러자 매튜가 마블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누군지 알아?”

“알지. 너희도 잘 알거야. 비프로스트의 파수꾼. 걀의 소리.”

매튜도 마야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접해 보는 헤임달의 마력이었기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설치고 있는 걸 보아 하니 헤임달은 마력의 봉인을 찾은 상태였다. 그를 막으려면 그와 맞먹거나 그 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자가 필요했다. 마야는 결국 머리핀을 뺐다.

“저 헤임달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막아야 돼.”

“마야!”

마블과 매튜가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마야는 헤임달이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거리는 이미 원인불명의 폭발 사고로 어수선했기 때문에 마야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기 살길 찾기 바빠서 주위에 어린 아이가 울고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였다. 마블은 헤임달과 마야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아빠가 알면 화낼거야. 일단 다른 곳으로 가 있자.”

매튜가 마블의 팔을 끌어당겼다. 마블은 한 번 더 헤임달을 쳐다 본 후에 매튜를 따라 갔다.

[쾅! 쾅!]

다시 폭발 소리가 두 번 연달아 들렸다. 마블과 매튜가 뒤돌아보니 영사관 앞길에 새로 패인 자국과 함께 연기가 나고 있었다. 헤임달은 다시 양손에 ‘범브’를 만들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마블은 헤임달을 노려봤다. 그 때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숨 막힐 정도로,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마력. 지금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두려운 마력. 마야의 마력이었다. 그 동안 숨기고 있던 마력을 개방한 것이었다.

“마야가 홀을 들었으니, 상황 종료네.”

“아직 몰라. 완전 개방한 게 아니잖아. 가뜩이나 전체 마력의 반을 엘류드니르에 봉인해 놓고 와서 지금 있는 마력을 다 개방해도 좀 힘들 거야.”

마블은 헤임달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박았다. 헤임달의 등 뒤로 긴 홀을 든 마야가 나타났다. 헤임달은 마야를 알아차리고 뒤로 돌았다. 매튜는 금속 상자를 꼭 껴안고서 마야와 헤임달을 주시했다.

마야는 자신의 마력으로 주변이 뒤틀릴까봐 마력 개방을 제어했다. 본 모습으로 돌아온 검은 색의 ‘데스 홀’은 마야의 키 두 배 이상으로 길었다. 데스 홀의 머리에는 마야의 왼쪽 눈보다 더 어둡고 깊은 검은색의 수정 구슬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붉은 색 천이 한 바퀴 감겨 있고 탁구공만한 검은 구슬이 그 천 끝에 달려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헤임달.”

마야는 싸늘한 눈초리로 헤임달을 쳐다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헤임달을 불렀다. 헤임달은 만들고 있던 범브를 도로 거둬들였다.

“You're not korean. are you?(한국인이 아니구나. 그치?)”

헤임달은 마야의 외모를 본 후에 영어로 상대했다.

“You're not Hadal who I've known. Why do you this?(당신은 내가 알던 헤임달이 아니에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에요?)”

“You don't need to know.(알 필요 없어.)”

[쉬익]

엄청난 속도의 바람이 마야를 엄습했다. 마야는 홀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홀에 박혀 있는 검은 수정 구슬에서 태양의 코로나와 같은 빛이 났다.

“데스 커튼.”

마야의 주변에 검은 장막이 생성됐다. 헤임달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바람은 마야의 장막을 뚫기 위해 맹렬하게 부딪혔다. 그러나 마야의 검은 장막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림자에서 손이 올라와 헤임달의 양쪽 발목을 붙잡았다.

“Foolish!(바보 같은!)”

헤임달은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마야는 헤임달의 집중력이 떨어져 바람이 잠잠해진 틈을 타 장막을 거두었다.

“숨을 쉬지 않는 영혼이여,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는 이여, 내 부름에 따라 빛을 가로지를 힘을, 다크 애로우.”

마야는 헤임달을 향해 홀을 휘둘렀다. 헤임달은 양손에 마력을 모아 다크 애로우를 향해 범브를 날렸다.

[쿠와앙!]

허공에서 시원스런 폭발소리가 났다. 마야는 폭발로 인한 연기 사이로 헤임달이 끼고 있는 장갑을 보게 되었다. 갈색 가죽 장갑으로 손바닥에 특이한 문양이 수 놓여 있었다.

“역시 화력 계열의 장갑이군요. 바람 계열인 당신이 범브를 사용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마야는 홀로 발 앞에 오각별을 하나 그렸다.

“하지만 그 장갑은 일회용이라 조만간 못 쓰게 될 거에요. 소울 스탬프.”

[탁]

마야는 시동어를 외우며 홀로 별을 찍었다. 그러자 헤임달의 발밑에도 커다란 오각별이 생기고, 점차 헤임달의 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오각별이 지난 신체부위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으윽.”

오각별이 목까지 다다랐을 때 헤임달은 낼 수 있는 대로 마력을 방출해 오각별의 상승 진행을 막았다. 이로써 마야와 헤임달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확실히 유리한 건 마야 쪽이었다. 헤임달이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는 것에 비해 마야는 홀을 짚고 서서 싸늘한 눈초리를 일관하며 헤임달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지?”

헤임달은 가까스로 버티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거든요.”

마야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는 헤임달의 몸 구석구석을 쑤셨다. 근육이 수축되고 뼈마디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야의 마력이 그 통증을 증가시켰다.

“우트가르드 로키와 한 편입니까?”

“글쎄.”

헤임달은 대답을 꺼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건 긍정의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야는 소울 스탬프를 좀 더 위로 올렸다.

“흐억.”

헤임달은 목이 확 감기는 느낌에 숨이 턱 막혔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건 일종의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노리는 것은……!”

마야가 다른 질문을 하기 전에 또 다른 강한 마력이 주변을 휘감았다. 마야는 누구의 마력인지 알고 있었다. 기습에 대비해 소울 스탬프를 유지하면서 체내의 마력을 좀 더 활성화했다.

“이거 유감이군요. 여왕님.”

검은 가면을 쓴 우트가르드 로키가 헤임달의 둥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마력을 농축시킨 오른손을 소울 스탬프에 대자 잠깐의 저항이 일어나고 곧 소울 스탬프가 사라졌다.

“역시 온 힘을 다 해 쓴 마법이 아니었군요.”

우트가르드 로키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얘기했다. 헤임달은 비틀거리긴 했으나 버틸 만 했는지 두 다리로 서 있었다. 그러나 우트가르드 로키가 억지로 헤임달을 부축하고 다른 손에 마력을 모았다.

“퀵 볼.”

마야는 농도 8C의 퀵 볼을 우트가르드 로키를 향해 날렸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곧바로 실드를 형성했다.

“퀵실드.”

[쾅!]

퀵 볼과 퀵실드는 상쇄되어 사라졌다. 마야는 멈추지 않고 공격을 강행했다.

“숨을 쉬지 않는 영혼이여,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는 이여, 내 부름에 따라 빛을 가로지를 힘을, 다크 애로우.”

“대지여, 나에게 길을 안내해 주기를, 워프.”

마야가 주문을 외우는 동안 우트가르드 로키는 헤임달을 데리고 워프를 통애 이동했다. 다크 애로우는 목표물이 사라지자 허공을 뚫고 날아가 자동 폭파되었다. 마야도 워프를 열어 영사관 근처로 이동했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아직 이 근처에 있어.”

마야는 주변의 마력을 살펴본 후에 손에 들고 있던 피류온을 펼쳤다. 룬 문자를 비롯해 여러 가지 마법진 그림이 실려 있었다. 피류온을 부지런히 넘기다가 한 부분에서 멈췄다.

“죽은 자의 영혼과 정령의 마법, 원소 마법을 융합하는 마인올 마법. 이거면 우트가르드 로키를 추적할 수 있을 거야.”

마야는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마력을 모았다. 마력은 모두 데드 홀의 검은 수정에 집중되었다. 수정은 잘 갈은 칼날보다 더 서슬 퍼런 빛을 발했다. 마야의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난 직후에 마블의 마력이 마야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려 마법진이 사라져버렸다.

“왜 방해하는 거야?”

마야는 양 볼이 크게 부풀었다.

“피류온은 금단의 마법을 모아 놓은 비서 중 하나라는 건 잘 알잖아. 그 안에 있는 마법을 쓸 생각이라면 내가 용서 안 해.”

“마력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단의 마법을 사용하면 육체에 심각한 피해가 온다고. 이것 역시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마블과 매튜가 마야를 말렸다. 마야의 마력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피류온을 펼쳐 들고 있는 마야가 보여서 바로 제지를 한 것이었다. 마야는 거칠게 피류온을 덮었다.

“경찰하고 군대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데. 함부로 움직여서 눈에 띌 필요는 없어.”

마블이 이만 가자는 투로 말하는데 머리 위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마하 포이즌.”

매튜가 머리 위로 마법을 써서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법을 상쇄시켜 막았다. 폭발 소리는 나지 않고 옅은 풀색의 수증기만 퍼졌다. 마법마저 녹이는 독성의 효과 때문이었다. 수증기가 거둬지자 공중에 떠 있는 검은 가면의 우트가르드 로키의 모습이 보였다.

“제 계획을 방해하지 말아주십쇼.”

우트가르드 로키는 정중한 말투로 경고했다. 그걸 곧이 들을 세쌍둥이가 아니었다.

“지금 어디서 민폐를 끼치는 거야?”

마블이 우트가르드 로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세쌍둥이 모두 우트가르드 로키를 노려봤다. 왼쪽 눈은 제각기의 색으로 제각각의 공포를 풍기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들이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보면 참 뻔뻔하다고 말할 정도로 대담한 발언이었다.

“뭐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우트가르드 로키는 마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내려와 그들 앞에 섰다. 양 쪽 다 마력을 주위에 흩트리며 기싸움을 했다. 주변에 쓸데없는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력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고서를 가지고 계시군요?”

“처음 보는? 웃기는군.”

마야는 코웃음을 쳤다. 우트가르드의 속셈은 다 알고 있다는 투였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가면 속에서 싱긋 웃고 있는 듯 했다.

“그걸로 뭘 하실 거죠?”

“알거 없어.”

“뭐, 당신들이 그걸로 뭘 할 건지 관심 없긴 하죠.”

세쌍둥이가 우트가르드 로키를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는 반면에 우트가르드 로키는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의 주도권을 거의 우트가르드 로키가 쥐고 있는 셈이었다.

“헤임달이 어째서 네 편인지 모르겠지만 로키님은 절대 네 쪽으로 넘어가지 않으실 거야.”

마야는 두 눈을 부릅뜨며 협박조로 말했다. 그 말은 로키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미 로키와는 만났습니다. 불행히도 저와 적이 돼서 곤란할 뿐이랍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때 멀리서 다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우성치는 소리도 곧 이어졌다.

“그만 둬. 이런 식으로 해서 뭘 얻으려는 거야?”

매튜의 얇은 목소리는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어린 아이가 투정부리는 걸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 마력을 봉인한 당신들은 별로 무섭지 안답니다. 물론 상대하긴 벅차겠지만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죽어! 마하 블러드!”

우트가르드 로키의 비꼬는 듯한 말에 마블은 피가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덩어리를 날렸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잽싸게 공중으로 올라가 마하 블러드를 피했다.

[푸억]

마하 블러드와 부딪힌 곳은 심하게 파이고 주변에 피가 흥건했다.

“제 계획에 당신들은 없었는데 말이죠…….”

우트가르드 로키는 마하 블러드의 흔적을 보며 고민하는 듯 싶더니 이내 마력을 모았다.

“일단 지금 계획한 일 먼저 끝내고 천천히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아이와 놀아주셨으면 합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발밑에 거대한 소환 마법진이 그려졌다. 마블이 그 마법진을 알아봤다.

“지배 소환 주문이잖아.”

“역시 알아보시는 군요. 페후 페르쓰(Fehu Perth). 소환.”

마법진이 호아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짐승의 모습도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베히모스? 귀찮게 시리.”

마블은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야생 짐승의 본성이 곧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매튜는 감정을 절제하고 우트가르드 로키를 주시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가면을 벗기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다.

“그럼 저는 일을 마무리하러 가보겠습니다.”

베히모스가 그 거대한 형체를 모두 드러내자 우트가르드 로키는 워프를 통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소환된 베히모스는 세쌍둥이를 보자마자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이번 베히모스는 레이에게 나타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컸다.

“빨리 없애버리지 않으면 일이 커져버릴 거야.”

“나도 알아. 뒤로 좀 가 있어.”

마블은 마야를 뒤로 보내고 마력을 서서히 개방했다. 마블의 목걸이 펜던트인 투명한 유리 구슬이 가운데서부터 점차 붉어졌다. 매튜 역시 마력을 개방하기 시작했고 매튜의 펜던트는 암녹색으로 변해갔다.

[크릉]

베히모스는 마블과 매튜의 마력에 기가 눌려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괴수의 거대한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 괴수를 억압하기에 충분했다.

“오빠들. 설마 괴수로 변하려는 건 아니겠지?”

마야는 혹시나 하며 물어봤지만 마블과 매튜는 대답이 없었다. 마야는 홀로 마블과 매튜의 머리를 한 대씩 제대로 때렸다.

[딱. 딱.]

“아야.”

“오빠들이나 눈에 띄는 짓 하지 마!”

마블과 매튜의 펜던트는 다시 투명하게 돌아갔다. 마야의 말대로 마블과 매튜가 마력을 해방하면 지금 있는 마력이 100%가 아닐 지라도 충분히 괴수로 변할 수 있다. 만약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다면 원인모를 테러 못지않게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셋이서 아옹다옹하고 있는 동안 베히모스가 셋을 향해 돌진했다.

“Run away!(튀어!)”

[퍽!]

한 여자의 외침과 함께 퀵 애로우가 베히모스의 왼쪽 앞다리로 날아와 적중했다.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베히모스는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돌진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셋은 그 틈에 베히모스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Are you okay?(괜찮니?)”

세쌍둥이 앞에 나타난 것은 큰 활을 들고 있는 레이였다.

[크엉!]

레이가 대답을 듣기 전에 베히모스가 다시 돌진해 왔다. 레이는 다시 퀵 애로우를 날렸고 마야가 실드를 펼쳤다.

[쿵]

베히모스는 앞으로 넘어지다가 실드에 부딪혔다. 마야는 충격의 반동으로 홀을 잡은 손과 팔이 떨렸다.

“Please break the shield.(실드를 풀어줘.)”

레이의 활에는 이미 농도 8C에 달한 화살이 걸려있었다. 언제 주문을 외웠는지 ‘프리즈 애로우’였다. 마야는 레이의 화살을 확인하고 실드를 거뒀다.

[슈욱, 퍽!]

[크엉!]

프리즈 애로우는 베히모스의 이마에 직격하여 깊숙이 꽂혔다. 프리즈 애로우가 꽂힌 곳을 중심으로 점차 살과 털이 얼어갔다. 베히모스는 통증으로 인해 몸부림쳤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기 위해 마블과 매튜도 마력을 모았다. 그리고 베히모스의 옆으로 가서 마법을 썼다.

“마하 블러드.”

“마하 포이즌.”

베히모스의 몸을 관통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장이 파손될 정도의 중상은 입힐 수 있었다.

“본체로 돌아가면 한 방 감인데.”

마블은 괴수로 변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베히모스는 심한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목표물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가래 끓는 소리만 냈다.

“이제 편하게 재워 줘야지.”

레이는 오른쪽 손목을 툭툭 턴 후에 마력으로 화살을 만들어 시위에 걸었다. 베히모스는 자신에게 공격할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오른쪽 앞발을 들어 레이를 향해 뻗었다.

“그러면 못 써.”

마야가 레이의 앞으로 가서 실드를 쳐 베히모스의 발을 막았다. 베히모스는 실드를 지긋이 밀다가 다리를 다시 뒤로 당겼다.

“한 번 더 휘감아 찰 거야.”

마블이 베히모스의 움직임을 읽고 경고하자 마야는 실드의 강도를 높였다.

[휘익, 퍽!]

베히모스는 처음보다 세게 앞발을 휘돌렸지만 실드를 깰 수 없었다. 대신 온 몸에 충격이 전해져 옆구리의 상처가 더 터져버렸다. 베히모스의 아래에는 피가 가득했다. 베히모스는 부상에서 오는 통증 겸 과다출혈로 인한 현기증으로 몸의 중심을 잘 잡지 못했다.

“트림헤임에서 휘날리는 눈발이여, 이미르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이여, 소용돌이치는 바람, 빛보다 날카로운 화살, 전쟁, 죽음, 공포, 모두 내 두 눈앞에서 붉게 얼어붙으리라. 프리즈 샤워.”

레이는 화살을 수직 위쪽으로 쏘아 올렸다. 그리고…….

[푸두두둑]

[퍼버벅 퍼벅 벅]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과 화살이 무수히 떨어져 베히모스의 몸에 박혔다. 더러는 관통하는 것도 있었다. 프리즈 샤워를 맞은 부위는 조금씩 얼어붙었고 얼음 조각들은 피에 의해 붉게 보였다. 베히모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쓰러졌다. 수적으로 우세한 것도 있겠지만 베히모스를 상대로 일이 빨리 끝난 편이었다. 피해 입은 것도 거의 없었다.

“마야, 뒤처리 좀 해 줘.”

주변 눈치를 보던 매튜가 말했다.

“하긴 이런 짐승이 사람들 눈에 띄면 많이 곤란하지.”

마블은 베히모스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발로 툭툭 찼다. 신발에 피가 묻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떨어져 있어.”

마야가 가까이 가자 마블은 두 발짝 정도 뒤로 물러섰다. 마야는 홀로 원을 한 번 그린 후에 검은 수정 구슬을 베히모스의 시체에 살며시 갖다 댔다. 그러자 베히모스의 온 몸이 푸른 색 불로 뒤덮였다. 타는 소리도 나지 않고 타는 냄새도 나지 않는 악마의 불이었다.(혹은 죽음의 불이라 불리는 것으로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카디님.”

매튜는 레이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레이도 덩달아서 허리를 숙였다.

“아, 아니야.”

레이는 세쌍둥이가 누군지 그들의 마력과 사용한 마법으로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매튜가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환생 후에 받은 교육의 영향이 큰 모양이었다.

“스카디님은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오신 거에요?”

마블이 천천히 걸어오며 물었다. 마야는 마블의 뒤에서 홀을 다시 작게 만들고 머리에 꽂고 있었다.

“우투가르드 로키에게 휘둘린 거야. 텔레파시로 부르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는데 갑자기 ‘테러’를 막아보라는 거야.”

레이도 활을 작게 만들고 나서 팔짱을 꼈다. 우트가르드 로키를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세쌍둥이도 레이를 다라 일제히 팔짱을 끼더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진원과 민혁…… 아니, 오딘과 로키에게 알려줄 처지가 못 돼서 일단은 혼자 온 거야.”

“어? 로키님을 아세요?”

세쌍둥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레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셋의 왼쪽 눈은 이미 옅은 갈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레이는 그 눈이 부담스러워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응. 알아. 안 지 얼마 안 됐지만.”

레이의 대답에 세 명의 얼굴은 환해졌다. 마야는 레이의 다리에 착 달라붙어서 어린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레이를 올려다봤다.

“우리도 이제 로키님을 만나러 갈 거에요. 로키님은 잘 계신 거죠?”

“일단 지금은 잘 있지.”

레이는 예전의 삼형제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려서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세 쌍둥이가 거북했다. 그래도 너무 거리를 두면 아이들이 우울해 할까봐 일단은 가까이 붙어 있는 마야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벌써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나 봐요?”

매튜는 살짝 눈웃음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레이는 뻘쭘해 하며 손을 뗐다. 나름 신경서서 호의를 보인 것이었는데 세쌍둥이 역시 서양인이라는 걸 깜빡 한 것이었다. 서양의 영어권 국가는 대부분 가족 아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잘 하지 않는다. 아주 안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비해 조심하는 것이다. 레이는 어설프게 놀고 있는 손을 어찌하지 못하다가 그냥 팔짱 껴 버렸다.

“그런데 ‘로키님’이라니? 너네는 그렇게 부를 필요 없잖아.”

“에이. 지금 아빠랑 똑같이 부르면 헷갈리잖아요.”

“그리고 로키님은 아직 학생일텐데.”

마블과 매튜는 웃는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뭔가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눈동자에 비쳐있었다.

베히모스가 다 타버리고, 그 부근은 핏자국과 패인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주변에 산재해 있던 마력도 점차 옅어지더니 결국은 사라졌다. 폭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만 별의 별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영사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우트가르드 로키의 어처구니없는 폭발 행위에 관계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입었다. 폭발 사고에 휩쓸려 중상을 입은 사람들, 낙석에 의해 중·경상 내지 찰과상을 입은 사람들, 엄청난 재산적 피해, 원인 모를 폭발 테러에 투입된 인력.

영사관 근처에서 일어난 테러는 경찰, 군인, 구급 대원만 현장으로 모이게 한 것은 아니었다. 각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기자들, 카메라 기사들이 몰려와 특보를 취재하느라 바빴다. 뉴스에서는 저녁 뉴스를 기다릴 필요 없이 긴급속보로 사건을 내보낼 것이고, 신문에서는 1면 내지 특촬 기사로 정해질 것이 뻔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모인 통에 가뜩이나 어수선하던 곳이 더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