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것은 블리치 팬소설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커플링은 없다고 하겠으나 있다고 한다면 쿠로사키 이치고 x 쿠치키 루키아 라고 하지요.
4. 비정기 연재에다가 Feel이 올 때만 쓰는 돌발 소설입니다.
5. 애니메이션은 완결 나고 원작 연재도 최종장인 마당에, 이제 와서 소설이라니......
그대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
소울 소사이어티의 호정 13대. 만년 부대장 자리가 비어 있던 13번대에 드디어 새 부대장이 들어왔다. 아이젠 소스케를 필두로 일어났던 대대적인 사건으로 인해 아주 잠시 대장 자리가 3군데나 비어 있었지만, 13번대의 부대장 자리의 공석기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젠 13명의 대장과 13명의 부대장이 꽉 찼다.
“루키아. 부대장 완장이 그럴싸하다?”
6번대 부대장 아바라이 렌지. 붉은 머리칼과 문신이 오늘따라 더 요란해 보이는 그가 소꿉친구인 그녀를 놀린다.
“시끄러.”
부대장 취임식을 코앞에 두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탓일까, 렌지를 나무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희미하게 떨렸다. 렌지는 피식 웃었다. 소꿉친구로서 그 정도 미세한 차이는 식은 죽 먹기였다.
“소울 소사이어티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쿠치키 가의 귀한 아가씨잖아. 당당하게 굴라고. ‘내가 쿠치키 가 당주 쿠치키 뱌쿠야의 여동생인 쿠치키 루키아다.’ 라고 외치란 말이지.”
“그런 말을 함부로 외칠 리가 있냐?”
[퍽!]
13번대의 부대장이 될 그녀, 쿠치키 루키아는 렌지의 왼 다리 정강이를 향해 오른 다리를 힘차게 내찼다. 렌지는 억 소리도 나오지 않는 고통을 부동자세로 참고 참았다.
“후후. 자업자득이야, 아바라이 군.”
5번대 부대장 히나모리 모모와 3번대 부대장 키라 이즈루가 대기실에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루키아의 진앙영술원 동기들로, 그녀보다 먼저 부대장이 되었다. 또 한 명의 동기인 그녀가 자신들과 같은 부대장이 된다고 하니 축하해 주러 온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동기’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최근에 그녀가 아이젠 소스케 사건에 휘말리면서 사신대행 쿠로사키 이치고를 만나고 이러저러 다사다난했고, 그 노고가 지금 그녀를 부대장 자리로 이끌어줬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녀의 진급이 가진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소속 부대는 다르지만 한 가문에서 대장과 부대장이 동시대에 배출되다니, 쿠치키 가로서는 4대 가문 중에서 가장 어깨에 힘 들어갈 거야.”
“가장 약 오르는 건 같은 4대 가문의 시호인이겠지.”
렌지와 이즈루가 대기실 창문을 통해 수많은 참관인들이 모인 취임식장을 흘끗 내다봤다. 대장 취임식보다는 덜 하지만 장기간 공석이던 13번대의 부대장 자리가 드디어 채워진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참관인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그 영예를 휘어잡은 자가 쿠치키 가의 영양(아가씨)이라고 하니 귀족가 인물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즈루가 언급한 시호인. 은밀기동대 대장을 대대로 역임했으며 호정 13대에서도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했던 명문가였으나, 시호인 요루이치의 잠적 이후로 세력이 크게 꺾였다.
그에 비해 쿠치키 가는, 본디 그 명세가 맥맥히 이어져 왔으나 현 당주 쿠치키 뱌쿠야 대에 이르러서는 ‘외부인을 들였다’는 불명예를 오히려 명예로 바꾸는 등 다른 귀족가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선례를 세우며 전성기의 한 획을 그었다.
“쿠치키 가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오라버니는 내가 부대장이 된 것을 쿠치키 가에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거야.”
루키아는 양 손으로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뱌쿠야의 방에서 본 친언니 히사나의 영정이 떠오른 것이다.
모모는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루키아의 손을 꼭 잡았다.
“설마. 분명히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무뚝뚝한 분이지만 여동생인 널 얼마나 아끼시는데.”
“아아, 가문의 명예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하실 거라는 말이야.”
루키아는 생긋 웃었다. 모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젠 소스케의 모반으로 루키아가 쌍극에서 처형당할 뻔 했던 그 때 이후 쿠치키 가의 의남매가 서로 돈독해졌다는 것은 호정 13대 일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도 진앙영술원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 당시 루키아가 쿠치키 가의 양녀가 되면서부터 얼마나 뱌쿠야를 어려워했는지 실시간으로 봐왔던 것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최근에서야 나름 편한 사이가 되었기에 지난 50년의 기억이 아직 무채색으로 덮이지 않았다.
“동기인 쿠치키 씨가 13번대 대장이 돼서 기쁜 건 당연하지만, 누가 됐든 13번대 부대장 자리가 드디어 채워져서 다행이야.”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즈루의 눈이 향한 곳에는 13번대의 3석 코츠바키 센타로와 코테츠 키요네가 있었다. 다들 곤란하다는 듯이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키타케 대장님을 보좌하면서 대장님 대신에 13번대 전체를 통솔해야 하는 막-중한 부대장님. 3석이 저런 사람들이라 괜찮은 거야?”
“괜찮아. 내가 처음 13번대에 들어갔을 때부터 3석들이었으니까 이미 다 꿰고 있어. 저들은 오로지 우키타케 대장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 대장님 보좌는 저들에게 맡길 생각이야. 난 부대를 챙겨야지.”
“좋은 역할 분담이군. 애써라.”
렌지는 루키아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그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아끼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루키아는 알면서 모른 척했다. 지금 그가 하려는 이야기는 특히 그녀에게 있어 금기였다. 차라리 전 부대장, 시바 카이엔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다. 그의 죽음에서 극복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녀에겐 또 다른 응어리가 생겨버렸다.
“우린 이만 나갈게. 대장님 뒤에서 착실하게 보고 있을 테니까 힘내.”
모모와 이즈루는 자신들 역시 부대장이기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다. 렌지도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 나갔다.
쿠로사키 이치고
그가 만약 사신의 힘을 잃지 않았다면 루키아의 부대장 취임식에 참석했을까? 평범한 인간이 된 지금, 소울 소사이어티의 일을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함께 싸웠던 동료로써 그 의리를 이유로 알려줄 수는 있다. 그녀가 그에게 직접 알릴 순 없지만 사도 야스토라, 이노우에 오리히메, 이시다 우류를 비롯하여 우라하라 키스케 등 이치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전령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도 그의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치고는 자기 때문에 사신이 됐고 사신의 힘을 당연하게 구사하다가 이젠 그 힘을 잃었다. 그래도 전에는 주변의 령이 눈에 보이는 특이체질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안 된다. 너무 평범해져 버려서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에, 그녀는 그에게 아무 것도 전할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현세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더욱 아니게 되었다. 단지 그의 안부를 알기 위해 자리를 비워 현세로 가는 것을 누가 허락하겠는가. 그녀가 비록 그와 특별한 인연이라지만 소울 소사이어티는 그녀의 사사로운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현세에 있는 그에게 절대 닿을 리 없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그라면 렌지처럼 비아냥거림으로 시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축하해 줄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을 축하해주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평범한 인간이 된 지금이라도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할 것이다. 의심할 가치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에게 선뜻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시야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된 그 때부터 ‘이제 그는 과거의 인연이다’라고 스스로를 추스렸다. 그런 주제에 그에게 알리고 싶다니, 이걸 핑계로 그를 만나러 가고 싶다니, 웃기지도 않는 모순이었다.
결국 홀로 허공을 향해 몇 십 번 몇 백 번 반복할 뿐이었다.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이름을 부르면 그가 돌아볼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혼자일 뿐.
손을 뻗으면 그의 소매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허공에서 주먹 쥘 뿐.
말을 걸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혼잣말일 뿐.
“쿠치키 부대장님.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13번대 대원 중 한 명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식장엔 당당하게 들어갔는지, 취임식은 무사히 치렀는지, 연회는 즐겼는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부대장 완장을 매만지며 그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했지만 렌지와 뱌쿠야 오라버니에겐 분명 들켰으리니.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깊은 밤. 날이 지나기 전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저 멀리 현세에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축하해, 루키아.”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올린 그의 목소리로 십중팔구 그가 할 법한 대답을 만들어 본다. 그래도 진짜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이 마음은 만족하지 못하려는가. 그가 있는 척 스스로를 속일수록 공허함만 늘었다.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너 하나 없다고 이렇게 허전할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견딜 수 없었다. 이치고. 내가 카이엔님 다음으로 13번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다. 너와 마주 보고, 나를 보는 너에게서, 너의 목소리로……. 단 한 번만이라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왼팔에 찬 완장을 오른손으로 굳게 쥐었다. 시린 가슴 대신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괴로운 가슴은 아무리 붙잡아 달래려 해도 소용없다. 대신 다른 걸 잡고 매달릴 수밖에. 저릿한 응어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녀는 저무는 달을 보며 스스로에게 냉소를 지었다. 다시 그와 마주보게 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하고픈 이야기는 전부 빼고 하염없이 그의 이름만 부를 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