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드는 응급처치는 끝났지만 충격 때문에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우르드가 편하게 잠들 때까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우트가르드 로키를 도와줄 신은 우르드 뿐이니 토르 때문에 어이없도록 쉽게 잃을 수 없었다.
[부슥]
잠든 지 반 시간 정도 됐을 때, 우르드는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도무지 편하게 잘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서 금방 깨버린 것이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웨어를 만들고 있었다.
“또 그 짓이야? 지겹지도 않아?”
우르드는 상체를 일으켜 세운 다음에 그를 향해 돌아봤다. 이미 수십 기의 D-웨어가 몇 줄로 나란히 서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켄타우루스로 그 종족의 한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온 듯했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지금 만들고 있는 D-웨어도 켄타우루스였다.
“상대방이 수적으로 우세하면 자신도 그에 맞춰 아군을 늘린다. 당연한 술책이잖아.”
우트가르드 로키는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우르드에게 다가갔다.
[탁]
우르드는 우트가르드 로키가 내미는 손을 모질게 뿌리쳤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무식한 토르한테 밀린 게 그렇게도 분해?”
“쓸데없는 소리.”
시선은 회빛 시멘트벽에 고정됐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웃는 얼굴이 저를 비웃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토르는 전투형 신이고 난 그거랑 삼천광년 이상 멀다고.”
“그거 유행 지난 비유법인 거 알지?”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장난조로 치고 나오니 우르드의 날카로운 시선이 곧장 우트가르드 로키의 눈을 찔렀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우르드가 소녀마냥 뚱한 표정을 지었다가 화를 냈다가 하는 게 귀엽게 보였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우르드는 그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고. 내가 왜 너랑 손잡았는지 모르겠어.”
“사- 랑하잖아.”
[꾸우욱]
“아-.”
우르드는 주먹으로 우트가르드 로키의 머리를 사정없이 짓이겼다. 그의 이마가 침대 시트에 닿을 때까지 짓누른 다음에 손을 떼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대로 침대 시트 위에 엎드렸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
“그래서 한숨 쉰 거 아니야.”
“그럼?”
“이렇게 장난치고 농담하고 있으면 그냥 짓궂은 동생 같은데 그 속이 거인족의 마법왕, 우트가르드 로키라는 게 안타까워서.”
우르드는 말하면서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회빛 벽만 쳐다봤다. 그 벽에 얼마 전에 본 타로카드 배열이 어른거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친 거였는데 너무 충격적인 점괘가 나와 대뜸 테이블을 엎었었다. 진정하고 다시 차분히 쳐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점괘 생각을 하니 눈물이 자동으로 흘러내렸다.
“말했잖아. 신 중에서 날 송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은 너밖에 없다고. 내가 널 우르드라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너도 날 우트가르드 로키라는 걸, 그 자체를 생각하지 마.”
우트가르드 로키가 우르드를 안아주며 달래는데 그녀도 그를 꽉 안았다.
“그러니까 더 안 된다는 거야.”
혼자만 알고 있는 점괘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보려고 스스로 우트가르드 로키를 찾아왔던 것인데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그와 같이 행동하고 나니 더 심란해졌다.
“채린씨. 1년 반이 지나서야 전처럼 날 다시 편하게 대해주는데 도로 딱딱하게 변하면 진짜 슬프다고.”
이 순간만큼은 우트가르드 로키가 아닌, 인간 송준으로서 우르드… 진채린을 대했다. 우르드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충분히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가 우트가르드 로키라는 사실이, 그 인식이 자꾸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의 마음을 거부했다.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요즘 들어 마력이 계속 불안정해지고, 몸도 안 좋아져서 각혈도 했었잖아.”
우르드는 우트가르드 로키를 밀어내고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우르드의 눈 주변과 뺨에 가득인 눈물을 손으로 닦아줬다.
“지금 대화에서는 시점이 빗겨간 말 같은데?”
“아니, 지금 해야 할 말이야. 우트가르드 로키의 과한 욕심 때문에 송준이 죽을 지도 모르는데.”
[와락]
두 사람이 서로의 체온을 절달하면서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미안해.”
우트가르드 로키는 우르드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촉촉하게 남아있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뺨에는 그의 눈물이 흘렀다. 뒤로 돌아서 D-웨어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하려던 그는 우르드의 눈물로 젖은 셔츠의 가슴 부분을 콱 쥐고 한 동안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있지, 우르드. 오늘 로키가 미드가르드에 있었던 슬픈 사랑 얘기를 해줬어.
바닷가에 살고 있던 한 아가씨가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나그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고 해. 그 나그네는 바닷가 마을의 날씨 때문에 일주일, 이주일을 머물렀는데 아가씨가 사는 집에서 창문으로 내다보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대. 나그네가 떠나고 그 아가씨는 매일 그의 얼굴을 그리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나그네가 다시 나타났대. 적국의 병사들을 이끌고 마을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대. 이래저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가씨는 심장이 터져서 죽었다고 해.
안타까운 짝사랑 이야기지?
우르드. 더 안타까운 건 먼 미래에 우르드가 슬픈 사랑을 하게 된다는 거야. 상대도 우르드를 끔찍이 사랑할 거야. 하지만 서로가 그 사랑이 끝까지 가지 못할 걸 알아. 그리고 더 안타깝고 슬픈 건 우르드가 사랑의 상대 손에 죽는다는 거야.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르드. 나의 미래안에 그런 모습이 보일 줄이야. 우르드. 친애하는 우르드. 차라리 아무도 사랑하지 마. 그걸 후에 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걸 생각하니 지금 당장 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나의 자매 우르드. 어째서 나의 미래안에는 행복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슬프디 슬픈 미래들 중에 지극히 아끼는 자매의 미래가 가장 슬퍼. 이건 내게 견디기 힘든 악몽이나 마찬가지야.
-우르드의 미래를 본 스쿨드의 비요(悲謠)
민혁은 밀가루 폭탄을 피해 학교 옥상에 올라가 허옇게 변해가는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벌써 3년 더하기 반년 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나 졸업식을 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변한 건 거의 없다. 4대 보물의 조각 중에 더 찾아낸 건 여태껏 하나도 없고 우트가르드 로키의 잔병들만 실컷 구경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다양한 군사들에 매번 감탄하기 바빴다.
세연의 발작은 점점 심해졌다. 우르드가 신들의 눈을 피해 세연에게 접근했었지만 민혁과 진원, 그들이 바쁠 때는 스쿨드가 세연을 지켰다. 프레이르와 프레이야까지 세연이 제 1의 세계에서의 ‘그녀’라는 걸 알게 됐고, 우트가르드 로키의 목적은 원체 눈치 채고 있었으니 진원의 설득에 못 이겨 아스가르드 측에 다시 끼게 됐다. 다른 세계와의 통로도 모두 개방돼서 김리궁의 신들과 협력하여 4대 보물의 조각을 찾는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먹는 거 갖고 장난치면 벌 받는데 말이지.”
마력의 봉인을 찾은 프레이야가 워프를 통해 민혁의 뒤에 나타났다. 우연찮게 민혁, 세연, 프레이르, 프레이야가 다 같이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돼서 같이 졸업하게 됐다.
“그러게.”
바람이 불면서 셔츠의 칼라가 펄럭거리니 1년 전의 사건을 떠올리는 증거가 보였다. 민혁의 목에 그어져 있는 붉고 굵은 세 줄의 손톱자국은 이제 흉터로 남아서 오래 전부터 민혁과 함께였던 것 마냥 자연스러워졌다.
“세연인 아직도 양호실에 있는 거야?”
“뭐, 졸업식 날까지 일관적인 모습이잖아. 딴에는 유종의 미라고 좋게 해석할 수 있겠지.”
“용케도 끝까지 다녔어.”
세연은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잘 발작을 일으켰다. 억제하다가 중간에 쓰러져서 민혁이 마저 진정시키거나 겨우 스스로 억제하고 나서 쓰러지거나. 중학생 시절보다 더 자주 학교 양호실을 애용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의미 있는 날을 망치려는 작자는 어떤 부류의 생물이라고 해야 가장 잘 어울릴까?”
운동장의 상공에 떠있는 우트가르드 로키가 눈에 들어왔다. 답지 않게 정장을 입은 모습이 조금은 불쾌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스런 자태에 말쑥한 정장은 영 그림이 맞지 않았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운동장을 내려다보다가 민혁 쪽을 쳐다봤다. 그의 마력을 느낀 프레이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세연을 데리고 새턴 세쌍둥이 네로 향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녀’를 옮기는 프레이르의 마력을 감지했지만 평소처럼 쫓아가지 않고 여전히 민혁과 대치하며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만 사용했다.
“설마 지금 싸움 걸지 않겠지?”
프레이야가 민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혁은 우트가르드 로키를 주시하다가 그냥 뒤로 돌았다.
“할 일 없으면 얼른 가지? 네가 있는 거 자체가 불쾌하니까.”
“졸업 축하 인사하러 온 건데 매정하게 사람을 쫓아내는 군요.”
“네가 그런 기특한 일도 할 줄 알아?”
민혁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며 다시 우트가르드 로키를 향해 돌아 섰다가 그의 나름 상큼한 미소를 보고 말았다. 왠지 피가 머리 쪽으로 치솟아 흐르는 것 같았다. 프레이야도 그의 미소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웃을 때면 항상 사건이 일어나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제 동생이 티르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졸업하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 아쉬운 마음에 동생 대신 로키님의 졸업식에 온 겁니다. 밀가루를 뿌리는 풍습은 변함이 없군요. 저도 거의 한 푸대를 뒤집어 썼었답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옛날 생각에 좀 더 활짝 웃었다.
“저 자에게 학창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상상이 안 가.”
프레이야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 때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챙!]
마력의 봉인을 찾은 프레이야에게 순발력은 제대로 물올라 있었다. 우르드의 검을 그녀의 자랑인 마린 사브르로 능숙하고 여유 있게 막았다.
“우르드는 축하 인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는데? 둘이 맨날 붙어 다니더니 웬일이야?”
프레이야의 비꼬는 말투에 우르드가 검을 프레이야 쪽으로 세게 밀었지만 평범한 검이 마력으로 생성된 검을 이길 리가 없었다. 마력 컨트롤 능력이 뛰어난 프레이야는 팔의 완력 대신에 마력으로 우르드를 막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군요. 전 그녀하고 같이 오지도, 그녀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우트가르드 로키야 말로 당혹스러워 했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어.”
“아닙니다. 전 정말 순수하게 당신의 졸업을 축하하러 온 겁니다.”
민혁은 우트가르드 로키를 살짝 떠 보고서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우르드를 보니 프레이야와 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여유로워 보이는데 그녀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민혁과 우트가르드 로키는 프레이야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유를 알아차렸다.
“우르드에게 검을 가르친 게 너야?”
“제 검이 저렇게 이상합니까? 그리고 우르드는 원래 무기라는 걸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저런 이상한 폼으로 검을 멋대로 휘두르는 거지?”
검을 휘두르는 우르드의 몸은 ‘기괴하다’라는 말이 제격일 정도로 이상했다. 보폭도 일정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팔의 움직임도 그저 제멋대로였다. 몽유병에 걸린 환자라도 돌아다닐 때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지금 우르드는 흡사 위에서 실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스스로의 의지로 그렇게 움직일 리 없었다.
“저기 지나가는 영혼이여,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겠나. 디트롤.”
프레이야는 디트롤을 써서 우르드의 움직임을 붙잡았다. 우르드는 움찔 거리면서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대체 어떤 무모한 놈이 우트가르드 로키의 그녀를 조종해서 이 프레이야를 건드리는 거야?”
“신족은 아니면서 마법에 능숙한 녀석이겠지. 섀도우 테크닉.”
민혁은 자신의 그림자를 쭉 늘려서 우르드의 그림자에 붙였다. 민혁이 우르드의 상태를 보고 있을 때 프레이야는 오른팔을 툭 털면서 사브르를 해제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도 옥상 위로 올라와 대기 중의 분위기나 낌새를 살폈다. 민혁과 우트가르드 로키는 오래지 않아 거의 동시에 숨어 있는 진범을 알아차리고 서서히 마력 방출량을 늘렸다. 프레이야 역시 전쟁의 여신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모모한 놈’의 정체를 파악했다. 게다가 오딘 다음으로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을 정도니 그녀가 개방하고 있는 마력 역시 만만찮게 위압적이었다. 이 세 마력에 눌려서 인지 숨어 있는 자는 들켰다는 걸 알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례하군. 감히 엘프 주제에 신을 농락하다니.”
“으아악.”
[질질질]
하이 엘프로 보이는 엘프 하나가 섀도우 테크닉에 잡혀 강제로 끌려나왔다. 나이를 꽤 먹었는데 갖고 있는 마력이 엘프치고는 상당했다. 마력이 빈약한 우르드가 당할 만 했다.
“어떻게 우르드를 만나서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지?”
신족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던 우트가르드 로키는 엘프에겐 바로 반말을 사용했다.
“여자에게 민감하다니……. 마법왕의 ‘왕’이란 이름이 아깝군.”
엘프는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우트가르드 로키를 비웃으며 제 명을 재촉했다.
“그 긴 수며이 과하게 마음에 안 드나 보군. 그렇다면 내가 친절하게 거둬주지.”
“크윽.”
엘프를 칭칭 감고 있는 검을 그림자가 점점 죄어들었다. 단순히 위협용이기 때문에 목을 조르진 않았다.
“우르드, 우르드.”
우트가르드 로키는 우르드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디트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없는 것을 보니 조종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바로 감이 왔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분노로 마력을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빌어먹을 엘프. 우르드에게 뭘 먹인 거야?”
마력은 사방으로 열렬하게 뻗어나갔지만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엘프는 육체가 괴로운 중에도 큭큭 거리며 웃었다.
“먹이다니?”
“우르드는 마법에 걸린 게 아니라 특수한 약을 먹은 겁니다.”
“맞아. 이런 종류의 약은 대부분의 것이 대부분의 종족에게 금기로 정해졌어. 그 대표주자게 엘프라고 알고 있는데 정말 실망이야.”
“크억.”
조금만 더 조이면 살이 터지고 뼈가 굽을 것 같았다. 고고한 하이 엘프를 고문하는 것도 금기에 가까운 일이지만 지금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금지된 약 때문에 자기 조절을 못하는 우르드에게 빨리 해독제를 먹여야 했다.
“지금 해독제를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민혁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는데도 엘프는 키득거릴 뿐이었다. 제 목숨에 미련이 없는 건지 아니면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억압도 회유도 엘프에게 먹히지 않았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슬픈 눈으로 우르드를 응시하다가 엘프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멱살을 잡았다.
“우르드에게 먹인 게 대체 뭐야?”
“큭큭. 당신은 해독제를 만들 수 없어.”
“뭐야?”
그 때 강력한 마력이 나타나 프레이야의 디트롤을 너무 쉽게 해제하고 우르드를 해방시켰다. 몸이 자유로워진 우르드는 민혁과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우르드… 우르드.”
[휘익]
우르드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순순히 검에 맞을 리가 없지만, 대신, 자기도 인정하는 자신의 약점인 우르드가 저에게 공격을 하니 충격을 좀 많이 받았다.
“내가 이런 말하기 불쾌하지만, 우트가르드 로키의 조합 실력은 최고야. 그가 해독제를 못 만들 리가 없어.”
“아무리 뛰어나 봤자 거인. 큭큭. 주인님의 뜻을 거슬러 해독제를 만들 수 없어.”
프레이야는 디트롤이 해제된 순간부터 임자 모르는 마력의 행방을 좇았다. 하지만 마력이 주변에 산재돼 있을 뿐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옥상에서 발생한 마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르드, 정신 차려.”
우트가르드 로키는 우르드의 두 팔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약의 효과 때문인지 우르드의 힘이 전보다 세진 것 같았다. 원래 우트가르드 로키와 우르드가 물리적으로 맞부딪히는 일이 적으나 간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우트가르드 로키가 확실히 우세했다. 하지만 지금은 둘이 서로 비등하게 힘겨루기를 했다.
“약의 이름은 알고 있잖아. 얼른 불어!”
민혁은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하지만 엘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인님의 마력으로 만든 약에 해독제가 있을 리가 없지.”
엘프도 우르드가 먹은 약이 어떤 약인지 몰랐다. 이제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남은 방법은 두 가지로 줄어버렸다. 우르드를 데려가서 직접 약을 분석하고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 우르드를 죽이는 방법. 우트가르드 로키가 선택할 건 불 보듯 뻔했다. 우르드가 죽으면 그에게 약점이 없어지니 특별히 걸릴 것 없이 편해지겠지만 그의 손으로 우르드를 죽이는 일은 그 스스로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르드는 제가 데려가서 어떻게든 할 테니 로키님께서 그 엘프를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누구 맘대로!”
[파지직!]
엘프는 온 몸으로 마력을 발산했지만 민혁의 마력에 의해 저지당해서 방류 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엘프는 이를 악 물면서 계속 저항했다. 이 엘프가 단순한 엘프가 아니라 하이 엘프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만 했다.
“주인님이 선택한 자를 그 누가 데러가!”
[파지직!]
“크윽.”
엘프의 방류된 마력을 느껴서 일까, 그의 목소리를 들어서 일까. 우르드를 디트롤에서 해방시켰던 마력이 다시 나타났다. 민혁, 프레이야, 그리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마력 탐색을 시작했다.
“뭐, 뭐야.”
이번엔 민혁의 섀도우 테크닉이 주인 모르는 마력에 의해 해제되려 했다.
“젠장.”
민혁은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그 마력’에 저항하기 힘들었다. 민혁의 마력이 ‘그 마력’에 저절로 복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민혁은 억지로라도 마력을 유지했지만 상대는 너무 쉽게 민혁의 마력을 그야말로 무효화했다.
“오! 주인님!”
섀도우 테크닉에서 벗어난 엘프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그 순간 우르드와 엘프가 동시에 사라졌다. 워프나 다른 것을 이용한 이동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라진 것’이었다. 두 손으로 우르드의 양 팔을 붙잡고 있던 우트가르드 로키는 약간 멍했다.
“마력의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 우리보다 더 강한 이가 아니면 이런 일은 불가능해.”
프레이야는 엘프가 있던 자리에 슬며시 손을 대 보았다. 엘프의 마력만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흔적 조차 없어.”
‘그 마력’은 아예 남질 않았고 엘프와 우르드는 증발해 버렸으니 추적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민혁은 제 마력이 다른 마력에 복종하면서 스스로 해제하는 느낌이 가히 불쾌해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피가 배어나오기 직전가지 깨물었다. 우트가르드 로키도 우르드를 잡고 있던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르드를 찾으러 갈 거야?”
“네. 혹시라도 그 엘프를 찾으시면 제게 알려주십쇼.”
우트가르드 로키는 필요한 말만 짧게 하고 워프를 통해 바로 사라졌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저렇게 무력해 보이는 건 처음이야.”
“어. 그런데 오늘은 우리도 다 무력했어.”
민혁의 분노와 살기에 프레이야는 소름이 끼쳤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공포는 매번 사람을 위축시켰다.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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