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제 8문 (5)

★은하수★ 2009. 7. 1. 16:58

“설마, 아스가르드의 열쇠조각이 이런 데에 있으려고.”

“하지만 선우가 여기라고 했단 말이야.”

마야가 니플헤임에 잠시 가 있는 동안에 마블과 매튜가 폐허가 되어버린 아스가르드에서 아스가르드의 열쇠조각을 찾아다녔다. 스쿨드가 신들과 연락이 되지 않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대신 부탁한 것이었다.

“빌스키니르나 펜살리르 부근에 있을 거라더니……. 우리가 아스가르드의 지리를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빌스키니르는 토르의 궁전이고 펜살리르는 프리그의 궁전이다. 마블은 성의 이름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스가르드의 지리 자체를 모르니 성의 이름을 알아도 조각을 찾을 수 없어 화가 났다. 제 2의 세계에서는 요툰하임이나 미드가르드에서만 살았고 아스가르드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길을 헤매는 건 매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조각 근처에 다다르면 반응할 거라면서 줄마노가 박힌 상자를 줬잖아.”

“그러니까 그 근처가 어디냐니깐?”

마블은 이를 악 물고 매튜를 노려봤다. 매튜는 마블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스쿨드가 준 상자를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길도 모르는데 어딜 가?”

마블은 일단 둘이 떨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매튜를 바짝 따라갔다.

“아스가르드가 이 정도로 황폐해졌을 줄은 몰랐어.”

“이건 황폐보다는 부패에 가깝지.”

건물은 모두 무너져서 모래로 부서진 벽돌과 그에 덮여 모습이 많이 가려진 터만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그 일대에 자랐을 법한 나무나 풀 등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버렸고 독초만 몇 가지 겨우 자랐는데 그마저도 말라 비틀어져서 성터가 더 비참하게 보였다. 물웅덩이나 샘에는 악취와 독기를 풍기는 썩은 물이 주변의 땅까지 독으로 물들게 했다.

“살아 움직이는 건 우리뿐일까?”

“보면 몰라? 생명의 요람이라 불리는 펜살리르마저 이런 꼴일 텐데.”

“정말 비참하네.”

걷고 걸어도 나플하임보다 더 끔찍한 광경만 전개됐고 스쿨드-선우-가 준 상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스가르드의 열쇠조각이 이런 폐허 가운데에 숨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예전에 우르드가 엘리멘탈 프린트의 조각을 아스가르드에서 찾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스가르드의 현주소를 직접 보니 선우의 말 자체를 믿기 힘들었다.

그 때 멀리서 어떤 마력이 두 형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고 곧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지면을 드리우며 순식간에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화이트 드래곤 한 마리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블과 매튜를 벙- 뜬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부리나케 드래곤을 쫓아갔다.

“드래곤이 너무 빨라.”

“체. 나에게 충성을 바친 자여, 나에게 목숨을 바친 자여, 나에게 영혼 바친 자여, 내 목소리를 듣고 지금 내 앞에 나타나라.”

마블은 달리면서 특별 소환 주면을 외워 웨어울프를 불러냈다. 듬직하리 만치 큼지막한 체구의 웨어울프는 마블과 매튜를 제 어깨에 한 쪽씩 태우고 드래곤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맹렬하게 달렸다. 이제 10살이 된 어린애보다 확실히 빨랐다.

“아무리 세계가 다시 통하게 되었다지만 어째서 드래곤이 아스가르드에 있는 거지?”

“공작 급이라면 아스가르드의 구석 어딘가에 거처를 잡을 수 있지만 저 녀석은 암만 봐도 자작이나 남작 급이야.”

“우트가르드 로키가 드디어 드래곤에 손을 뻗은 걸까?”

“지금 그걸 물어보러 가는 거잖아.”

새턴 형제의 눈을 끈 화이트 드래곤은 어느 성터에 도착하자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곳 역시 아스가르드의 어떤 곳과 다를 바 없는 폐허였다. 그곳에 다다른 웨어울프는 새턴 형제를 내려놓고 한 쪽 무릎을 꿇어 앉아 대기했다.

“이봐, 너 뭐야?”

“마블. 다짜고짜 그러면 어떡해? ……. 저희는 지나가는 ‘몸이 작은 나그네’입니다. 이곳에서 길을 잃었는데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려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튜는 무조건 물어 늘고 보는 마블을 뒤에 두고, 자기보다 하류인 게 뻔한 그 드래곤에게 예를 갖춰서 말을 걸었다. 이렇게 바르고 곧은 아이가 제 2의 세계에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휘날렸던 요르문간드라고 감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전 스쿨드님의 명령을 듣고 온 프로이트 자작입니다. 프리그님의 성으로 두 분을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화이트 드래곤 계열에서 자작 급에 해당하는 프로이트가의 가주, 프로이트 자작이 새턴 형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둘은 프로이트 자작의 모습을 보고서 스쿨드가 드래곤족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렇군요. 봐, 선우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그래, 그래.”

마블은 어느 샌가 웨어울프의 어깨에 올라타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프로이트 자작이나 펜살리르나 다 매튜에게 맞기겠다는 심산이었다. 매튜는 흥미가 좀 떨어지면 바로 손 놔버리는 마블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별 다른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여기가 프리그님의 성, 펜살리르입니다. 지금 서있는 곳은 정원 정도일 겁니다.”

프로이트 자작이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한참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역시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다만, 프로이트 가는 스쿨드에게 공작 급 가문보다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어서 그의 충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중 하나가 어린 선우를 등에 태우고 아홉 세계를 돌아다니며 조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략의 길잡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여기가 펜살리르라는 걸 알면 됐어요. 네……. 반응이 있네요.”

상자의 줄마노가 여린 빛을 냈다. 근처에 아스가르드의 열쇠조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매튜는 줄마노를 보면서 천천히 돌아다녔다. 빛의 세기가 바뀔 즈음에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거꾸로 돌아가 보기도 했다. 프로이트 자작도 들은 바가 있어서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고 어울리지 않는 뭔가나 수상한 게 없나 찾아다녔다.

“마력을 잘 다루는 마야가 있었다면 쉽게 찾을 텐데. 그치?”

웨어울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이트 자작, 저로부터 왼쪽으로 30m, 당신으로부터 앞으로 50m되는 곳까지를 찾아봐요. 그 안 어딘가에 있을 거에요.”

넓은 펜살리르의 터를 열심히 돌아다니던 매튜는 탐색 영역을 착실하게 줄여나갔다. 그리고 줄마노의 빛을 보면서 영역 안으로 대범하게 걸어 들어갔다. 조각이 마력을 불규칙적으로 발산하기 때문에 반응이 확실할 때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제 조금 남았어.”

줄마노의 빛이 선명해지고 탐색 영역이 반경 10m 이내로 줄어들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렇게 한 시간 즈음 돼갈 때 웨어울프의 어깨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마블은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그의 야생적 감각이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 있어.”

마블은 지면으로 뛰어 내리고 웨어울프를 돌려보낸 다음에 매튜 쪽으로 걸어갔다. 주변에 기척이나 마력은 없었지만 뭔가 나타날 것만 간ㅌ은 감이 마블의 감각 신경을 자극했다. 요즘에 있었던 일들을 미루어 짐작해 봐서 야생의 직감이 경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법 했다.

“어이, 백발. 임무는 안내까지잖아. 돌아 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프로이트 자작도 영문을 몰라 했다.

“쓸데없이 죽고 싶지 않으면 돌아 가. 네 녀석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

마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아이네의 마력이 주위를 뒤덮었다. 마블과 매튜는 왼쪽 눈에 봉인해 뒀던 마력을 개방했다. 나스트란드에 봉인했던 마력도 이미 체내에 가져온 상태기 때문에 둘의 마력은 프로이트 자작이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을 발휘했다.

“이게 무슨…….”

“스쿨드한테 가서 임무보고나 해.”

아이네의 모습이 눈에 보이자 마블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스쿨드는 대단하다니까. 우르드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보다 더 빨리 조각을 찾아내니 말이야.”

아이네의 모습이 조금 변한 듯 했다. 머리칼이 허벅지까지 오도록 길고 옷차림이 변한 것 정도로는 사람이 변했다고 할 수 없다. 눈매나 체형이 날렵해지고 갑작스럽게 성숙해진 분위기였다. 혼과 마력에 맞춰서 그릇인 육체가 변해가는 듯했다. 낯설어 보여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네가 내뿜는 포스에 새턴 형제가 마른 침을 삼켰다.

“나의 아가들아, 조각을 찾느라 고생한 것 같은데 이 엄마는 벌서 찾았단다.”

[츄아악]

넓은 연못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읏. 오자마자 알아냈단 거야?”

매튜는 자신의 노력에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능력의 차이를 직접 겪으니 분하기까지 했다.

“이거 병에 담아놔야겠네.”

썩은 물과 독으로 가득 차있던 연못에서 투명하게 깨끗하고 맑은 물만 정확하게 뽑아냈다. 4대 보물의 조각은 무형체로도 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연못에서 거둬진 물은 아이네의 왼손 손바닥위에서 공모양으로 뭉쳐져 고유의 마력을 발산했다. 마력의 성질이 맞지 않으면 마력 반발 때문에 손과 팔이 마비될 텐데 아이네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요르문간드. 덮치자.”

“응. 저건 뺏기면 안 되지.”

주변에 퍼져있던 마력이 두 형제의 몸에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괴물 늑대 펜리르와 미르가르드를 한 번 휘감고도 제 고리를 물 정도로 긴 요르문간드가 그곳을 꽉 채웠다. 새턴 세쌍둥이는 여하 신들처럼 환생한 게 아니라 마력을 분산 봉인하고 육체마저 작은 꼬마 인간형으로 봉쇄한 것이라 봉인만 풀면 언제든 당당한 풍채를 내보일 수 있었다.

아이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본 모습이라도 자신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지 여유롭게 웃었다.

“마하 블러드!”

“마하 포이즌!”

[쿠광!]

펜리르와 요르문간드의 공격이 거의 동신에 아이네에게 직격했다. 하지만 실드에 흠집하나 내지 못했다.

“엄마를 공격하다니 못된 애들이구나.”

아이네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그들을 바라봤다.

“엄마 좋아하시네!”

[캉!]

펜리르는 앞발을 휘둘렀으나 역시 실드에 가로막혔다.

“너희의 생모, 앙그르보다는 내 분신. 그러니까 난 너희의 엄마가 맞아.”

“시끄러워!”

[캉! 파지직]

“크읏.”

요르문간드가 입을 크게 벌려 아이네의 실드를 깨물어 부수려고 했지만 실드에 송곳니가 닿는 순간 강한 전기가 흘러들어왔다. 다행히 입 안의 연한 살이 다치지 않았다.

[쾅!]

곧이어 펜리르가 실드에 몸을 날렸다. 두, 세 번 그렇게 전력으로 몸통박치기를 하니까 실드에 잔금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네는 여유롭게 지켜보다가 실드를 손쉽게 고쳤다.

“엄마 눈에는 너희가 재롱부리는 걸로 밖에 안 보여.”

“그렇게 자꾸 엄마, 엄마하고 강조하시면 재롱부리는 자식들에게 조각을 양보하시죠.”

“위험한 물건을 자식 손에 쥐어주는 엄마가 세상에 어딨니?”

“그럼 생땡깡을 부리면서 뺏어야지!”

[쾅! 콰광! 쾅쾅!]

마법이며 물리적 공격이 난무했다. 펜리르의 발톱, 요르문간드의 꼬리의 위력은 주변을 울릴 정도로 대단했다.

“엄마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을 줄 몰랐어. 실드를 몇 번이나 다시 만들었는지 몰라. 정말 믿음직스럽게 컸구나.”

아이네는 요르문간드의 꼬리치기 일격으로 반 정도 날아가 버린 실드를 복구했다. 이 정도의 공방으로는 어느 쪽도 지치지 않았다. 그저 준비 운동일 뿐.

“그런데 엄마는 더 이상 너희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 나중에 또 보자.”

“무슨 소리야?”

[챙!]

펜리르의 발톱은 아이네가 사라지기 전에 남긴 실드를 부쉈다. 펜리르와 요르문간드는 아이네에게 손끝하나 못 대보고 조각을 뺏겨 버렸다.

“처음부터 우릴 갖고 놀았어.”

[쾅!]

요르문간드가 꼬리를 세게 내리쳐 다 썩은 대지에 깊숙한 절벽을 만들었다.

아이네는 아스가르드의 열쇠 조각을 손에 넣고 나서 바로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실드의 보호 속에서 펜리르와 요르문간드의 온갖 공격을 다 받아줬다. 이에 두 형제를 확실하게 자존심이 구겨졌다.

강하고 굳센 펜리르야, 지혜롭고 강인한 요르문간드야, 명석하고 아름다운 헬아, 나의 사랑스런 아이들아. 거인족에서도 신족에서도 괄시받고 자란 것도 모자라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얼음산에도 갇혀 보고 이제는 오딘의 지휘 아래에 멋있게 제 몫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아이들아.

아스가르드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너희 아버지도, 요툰하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펜리르도, 미드가르드이 깊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는 요르문간드도, 니플헤임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헬도 나를 잊어만 가는구나.

어차피 난 헬과 같이 있을 몸.

너희를 내 품에서 뺏어간 오딘을 저주한다. 날 이렇게 비참하게 내버려둔 로키를 증오한다.

아이들아. 너희들이 살 너희들의 세상을 만들어라. 셋이 함께 이 타락한 세상을 부숴버리고 새 세상을 만들어라. 누군가 한 명이 지배하는 이런 죽은 세상은 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지킬 세상을 만들어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절벽 위에서 외친 앙그르보다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