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제 9문 (1)

★은하수★ 2009. 7. 1. 17:00

~제 9문. 부활? 각성? …금기의 ‘그’ 그리고 위그드라실

 

4대 보물의 현황을 정리해 보자. 민혁네에게 완전한 엘리멘탈 프린트와 김리궁의 열쇠 조각 한 개. 우트가르드 로키에게 스피릿 크리스털과 아스가르드의 열쇠 조각 한 개. 아이네에게 김리궁의 열쇠 조각과 아스가르드의 열쇠 조각 두 개 씩. 이로써 숨겨져 있던 조각들은 모두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봤자 별 쓸모없는 조각들. 마력만 증폭시켜줄 것이다. 이제 서로의 조각을 뺏기 위한 사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녀’가 부활했으니까 조각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다수인 상태.

조각을 뺏는 싸움이라고 해도 ‘그녀’의 지배의 힘은 절대적이라서 일방적으로 뺏길 게 분명했다.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4대 보물을 만든 장본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유권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 보물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녀’가 4대 보물과 완전히 관련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갖고 있는 것을 지킬 방법을 강구할 가치가 있었다.

“아이네의 마력을 뛰어 넘으면 지배를 당하지 않는 거 아니야?”

“아이네의 마력은 모든 마력의 원천이자 원형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니까요.”

“뛰어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건가…….”

진원과 진철은 민혁이 다니는 대학교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숍 안에 있는 사람들은 둘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동안인 진원은 부드러운 미청년이고 일생의 대부분을 운동으로 보낸 진철은 건장한 호남이라 둘이 같이 있으면 으레 눈에 띄었다. 여기에 장난기 있는 것 같으면서 차가운 카리스마를 방출하는 민혁이 가세하면 아마 미연시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도장 사범이 이 시간에 커피숍에서 카페모카를 홀짝 거리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여-. 어서 와. 네가 보기엔 이게 홀짝 거리는 거냐?”

진철은 자기 옆에 앉은 민혁의 목을 팔로 감아서 꽉 끌어당겼다. 로키와 토르의 연은 질길 대로 질긴 건지 우연히 제 3의 세계에서도 죽이 잘 맞는 건지 진철은 친동생 인철보다 민혁을 끔찍이 귀여워했다.

“오늘 도장에 유능한 누님이 오셔서 일일 사범을 하신대.”

“혹시 인철 선배가 지독하게 무서워하는 둘째 누님?”

“그래, 하인 누님은 우리 6남매 중에서 최고거든.”

민혁은 인철이 도장에 가서 둘째 누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경기를 일으킬 것처럼 심하게 놀란 다음에 얼음이 돼서 사고를 잠깐 끊어주고, 상황 파악을 한 다음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누나가 돌아갈 때까지 초긴장상태를 지속할 것이다. 민혁뿐만 아니라 진원, 진철도 똑같이 생각했다.

“그런데 진원이 형. 오늘 누구 만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소개팅? 미팅?”

“아뇨. 전 그런 거엔 관심 없어요.”

“헤? 그 얼굴이면 어디 나가든 제대로 한 건 할 텐데?”

“정말 관심 없어요. 한 번 도 나간 적도 없고.”

진철은 ‘설마’에서 ‘아깝다’까지 다양한 표정을 연속으로 보여줬다. 그 때 민혁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진철에게 문자를 보여줬다.

“……! 잠깐, 이건 당연하잖아.”

진철의 급냉랭한 표정에 진원은 민혁의 핸드폰을 가져가서 문자를 읽어봤다. 진원의 입가에 미소가 가늘게 생겼다.

“역시 미나구나.”

며칠 전에 나간 소개팅이며 오늘 나간 미팅이며 제대로 대어를 낚았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왕년에 미의 여신 프레이야였고 진원에게서 브리싱가멘을 돌려받았으니 미나의 아름다움이 만발하는 건 당연했다.

“오늘 만날 사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더니 벌써 부모님 회사 일을 맡으신 거에요?”

“그것도 아니야. 그저 개인적으로……. 만나야했는데 내 기척을 알아채고 도망가 버렸어.”

진원의 대답을 들은 진철은 약간 벙- 한 표정으로 진원을 쳐다봤다.

“그렇게 배실배실 웃으면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도 진철은 진원의 미소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편이라 민혁, 진원 등 다른 신들의 표정관리에서 진의를 뽑아내지 못했다. 뭐, 민혁과 인철이 옆에서 보조해주니까 혼자 실없이 오버하는 일은 없었다.

“세상엔 동생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싫어하는 형이 있을 수 있죠.”

[빌과 회니를 찾아냈군요.]

민혁은 커피숍 내의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말과 텔레파시를 따로따로 사용했다. 진철도 금방 일을 파악하고 돌려 말하기로 말을 맞췄다.

“형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그런 걸 거야.”

“그럴 지도요. 꽤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제 2의 세계가 시작하자마자 모습을 감췄으니 지금도 마찬가지죠.]

오딘이 제 2의 세계를 열면서 신계를 꾸리긴 했지만 제 2의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만든 장본인이 오딘의 두 형, 빌과 회니다. ‘그’와 ‘그녀’를 적으로 삼고 당당히 싸운 영웅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서 말한 4대 보물을 만든 장본인. 하지만 제 1의 세계와 제 2의 세계의 경계에서 큰 전투 후 모습을 감춰버렸다. 드러내지 않고 세계의 질서를 만들었다.

“형이 있으면 일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그 때 둘이 어떻게 한 덕분에 ‘그’와 ‘그녀’를 봉인할 수 있었는데.]

“예전처럼 지금도 형이 직접 하는 건 바라지도 않겠지? 어차피 가능성이 적으니까. 노하우만이라도 전해주면 대단히 감사… 라는 이야기겠지.”

“지금은 얼굴 보는 것만도 감사에요.”

[튀고 숨는 데엔 천재들이라니까요.]

진원은 살짝 삐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공들여서 겨우 위치를 찾았는데 진원의 기척을 알아채고 곧바로 도망가 버린 빌과 회니가 조금은 실망 겸 원망스러웠다.

“평소에 잘 해주지 그랬어요.”

[필요할 때 찾으니까 괘씸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옛날부터 줄곧 날 피했거든.”

[내가 제 2의 세계에서 널 시켜서 선물을 보내려 했던 건 기억 안나나 보지?]

“속세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걸까요? 대단한데요.”

[아주 지극정성이셨죠. 그래도 이토록 필사적인 건 처음이잖아요.]

민혁과 진원 마주 보면서 후후- 웃고 있었지만 기싸움은 불꽃 튀도록 격렬했다. 누구든 약 올리고 깎아내리고 보는 로키의 본성과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 오딘의 본성이 팽팽하게 서로를 밀어댔다. 진철은 항상 그렇듯이 조용히 둘의 기싸움을 피부로 감상했다. 전투 본능 때문인지 누군가의 기싸움은 자신에게 덧없이 이로운 자극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건 지금은 그 형님이 필요하단 거잖아. 그러면 미끼를 던져서 스스로 나오게 할 수도 있지 않아?”

“그렇게 쉬운 사람이라면 옛날에 나왔겠죠.”

[별별 수단을 다 써봤지만 점점 더 잘 도망친단 말입니다.]

“옛날에 잘못한 게 있는데 사과를 안 했다던가.”

진원은 진철의 눈을 또랑또랑하게 똑바로 쳐다봤다.

“제가 그럴 위인입니까?”

“이 세상 어떤 피조물도 완벽할 순 없잖아.”

진철도 순진무구한 눈-오히려 단순한 쪽에 가까운 어린아이의 눈-으로 진원의 눈을 쳐다봤다. 간만에 바른 말에 진원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물론 네가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지혜롭고 슬기롭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잘 안하는 게 있다면 뒤를 돌아보는 거야. 한 번쯤 과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제일 기피하지.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봐. 무슨 일이 없었는지.”

진철이 훈화를 막힘없이 슬슬 말하자 민혁이 커피 잔을 입에 살짝 댄 채 진철을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진원도 진철의 말에 공감하는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시선을 낮게 깔고 생각에 빠졌다.

“진철 형은 인간이다. 인간은 사고를 하는 생물이다. 생물은 진화한다. 고로 진철 형도 진화한다.”

“뭔 뜻이냐?”

민혁이 감탄의 투로 중얼거리는 걸 들은 진철은 큰 손으로, 그것도 한 손으로 민혁의 머리를 콱 움켜잡았다. 악력이 보통이 아니라서 힘 조절을 했는데도 민혁이 느끼는 통증은 대답 대신에 비명을 내지를 뻔 할 정도였다.

살기가 가득한 마력이 주변을 가득 채운 덕분에 진철의 우악스런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 마력 때문에 기분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신의 마력이 아니라면 보통 우트가르드 로키가 보낸 것이지만 이번엔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도 아니었다. 세 명의 신은 조용히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옆 건물의 옥상이 마력의 근원지였다.

“헤-. 어쩔 거에요?”

“어떤 녀석인지 확인해야지.”

“그러면 가 볼까요?”

길거리의 사람들이 보든 말든, 진원이 만든 워프를 통해 마력의 근원지로 접근했다. 꽤 잘생긴 켄타우루스 다섯 명이 검, 화살 등 제각기 무기를 들고 살기를 무성하게 뿜었다.

“딱 봐도 P-웨어인데요?”

켄타우루스의 상태를 한 눈에 파악한 민혁은 주위를 살펴봤지만 우트가르드 로키나 다른 조종자의 낌새를 찾을 수 없었다.

“웨어면 조종자의 마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죄다 켄타우루스의 마력뿐인데.”

진철도 웨어테이머 정도의 웨어 조종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웨어를 파악할 수 있었다.(물론 기초 마법과 더불어 제 3의 세계에서 민혁에게 배운 것이다.)

“네. 테이머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마스터도 조종자의 마력을 이렇게 감쪽같이 숨길 순 없어요. …마력을 이렇게까지 감출 수 있는 건 ‘그녀’… 아이네 뿐인데 말입니다.”

불안한 예감이 민혁을 휘감았다. 상대가 정말 아이네라면 귀찮게 위어를 슬 리가 없는데 웨어를 보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네의 머릿속은 도저히 알 수 없는데다가 지금 그녀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니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진원이 형. 조각은 다 형한테 있죠?”

“이 몸속에서 잘 활용하고 있지. 왜?”

“가끔 아이네가 왜 당장 조각을 강탈하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도 이상한 짓을 하네요.”

민혁은 켄타우루스가 달려들기 전에 섀도우 테크닉으로 몸 전체의 움직임을 붙잡았다.

4대 보물은 조각이라 해도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 소유자는 조각에서 생산되는 마력을 빌려 쓰거나 조각을 증폭기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민혁과 진원은 다른 신들은 흉내도 못 낼 정도의 마력을 방출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네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들을 내버려뒀다.

“그건 얘네를 돌려보낸 다음에 생각하자. 힘을 등에 업은 자여, 어둠 속에서 헤매는 자여, 마음의 공명, 육체의 정지, 그대여 눈을 뜨고 돌아가라, 이그자너레이션.”

진원은 몸속의 조각을 활성화 한 후에 궁니르의 머리로 켄타우루스를 가리키며 웨어 해제 마법을 사용했지만 마법이 들지 않았다.

“섀도우 테크닉은 되는데 해제 마법은 안 되는 거야?”

진원도 진철 만만찮게 이 상황에 당황스러워했지만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

“뭐, 당연할지도. 웨어 자체를 막는 섀도우 테크닉과 웨어 마법을 해제하는 이그자너레이션은 사용법이며 발동 대상이 다르니까요.”

“그게 뭔 말이야?”

“민혁인 그저 웨어의 움직임을 붙잡은 거고, 전 아이네의 마력과 직접 부딪히는 거란 얘기에요.”

“성가신 일이란 거로 이해해도 괜찮지?”

진철은 아이네의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지자 묠니르를 꺼내 들었다. 조용히 숨어 있던 아이네의 마력은 기척을 드러내자마자 민혁의 섀도우 테크닉을 걷어내 켄타우루스가 자유로워지도록 했다.

“아이네가 저들을 수호하고 있다면 마법은 웬만해선 안 먹힐 거에요.”

“그럼 육탄전이겠네. 하압!”

민혁은 켄타우루스를 향해 돌진하는 진철을 붙잡지 못했다. 그냥 켄타우루스라면 진철이 이길 수 있겠지만 지금 켄타우루스는 아이네에게 조종당하는 P-웨어이기 때문에 그 실력을 감히 추측할 수 없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조차 못하면서 무작정 상대에게 뛰어드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퍼억!]

[카앙!]

[퍽!]

[캉! 캉!]

진철은 켄타우루스 다섯을 상대로 묠니르를 그 이름 아깝지 않게 휘둘렀다. 켄타우루스가 들고 있던 무기들은 묠니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죄다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신체에 타격을 직접 받은 자는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졌다. 하나는 머리에 제대로 맞아서 머리통이 박살난 채 곧바로 숨이 끊어졌다.

“흐음……. 저 녀석들 웨어에서 벗어났잖아.”

민혁은 진철을 미끼(?) 삼아서 켄타우루스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가설들을 굉장히 다량으로 뽑았다.

[석!]

진철의 등 뒤에서 발굽을 들어 올려 진철을 짓밟으려 한 녀석의 몸이 가로로 두 동강이 났다. 다크 헐버트를 손에 쥔 민혁의 실력이었다.

“항상 이렇게 몸 먼저 나갔다간 언젠가 한 번은 호되게 당할 거에요.”

“흐응. 그 때는 그 때지.”

진철은 지금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지만 켄타우루스 정도는 육탄전으로도 충분히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혼자 네 명을 죽이고 자신은 상처하나 없었다. 켄타우루스 정도에게 상처를 입는 건 자존심상 허락이 안 된다는 의지 같았다.

“이거 D-웨어로 재활용 못 하겠네요.”

시체는 본 형상을 추측하기 어려울 만큼 피범벅에 여기저기가 짓이겨 있었다. 그나마 가장 깨끗한 시체는 민혁에게 당한 것뿐이었다. 진철이 휘두른 묠니르는 ‘망치’니까 시체가 흉측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그 순간 곳곳에서 워프가 열리더니 엄청난 수의 켄타우루스가 쏟아져 나왔다. 신들이 있는 옥상뿐만 아니라 지상의 평범한 거리에도 다른 건물 내에도 켄타우루스가 나타났다. 대부분이 맨 정신이고 몇몇은 아이네의 P-웨어였다. 웨어가 된 소수가 무리의 우루머리인지 켄타우루스 전부 그 소수의 명령에 따라 주변의 것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다.

“상당한 악취미야.”

신들은 옥상에 새로 나타난 녀석들을 빨리 제거한 다음에 지상에 내려가서 흩어졌다. 켄타우루스의 시체와 피가 거리를 뒤덮어 나갔다.

“꺄아악!”

“괴물이야!”

“꺅! 사람 살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쏟아졌다. 켄타우루스가 활개 치는 소리, 신들에게 당하는 소리 등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신들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쾅!]

웨어가 아닌 것들은 마법으로 빨리빨리 처리했다. 가끔 아이네의 힘 때문에 마법이 무효화 되면 구현화한 무기를 끝장을 봤다. 그저 물건이 타는 냄새는 그러려니 했지만 살이 타는 냄새, 피 비린내 등은 고역이었다.

“보통 켄타우루스 무리는 3~40 아니야? 이거 대체 얼마나 불러낸 거야?”

시체 위에 새로운 켄타우루스가 등장하고, 이미 정리를 끝낸 곳에서 다시 워프와 켄타우루스가 감지됐다. 다른 건 없이 오로지 켄타우루스만 줄창 쏟아져 나오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인간의 체력으로 세 명이서 그들을 상대하는 건 점점 어려워졌다.

“세이테.”

“뤼폴.”

진원과 민혁은 마야에게서 받은 악마들을 불러냈다. 수준 높은 하급 악마라고 해도 켄타우루스와의 육탄전은 무리였다. 되든 안 되든 몇몇 자잘한 공격 마법으로 천천히 하나씩 상대했다.

[파바바박박박!]

“머릿수가 늘었어도 저 녀석들 별 도움이 안 되잖아.”

순간 동시에 10명의 켄타우루스가 급소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리켄의 체이스 홀을 통해 나타난 레이였다.

“이거 제 때 나타나셨어.”

“오랜만이에요, 진철군.”

마야가 준 리켄으로 언제든 신의 무리에 합세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리켄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자신도 미국에서 이것저것을 찾아다니느라 신들과 거의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찾았는지 아니면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야 합세하게 됐다.

“사냥꾼이 아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죠.”

진원도 미소로써 레이를 반겼다.

“천적이 아군이라도 괜찮은 전력이겠죠?”

마블과 매튜도 도착했다. 민혁이 부른 조력자였다.

“마야는?”

“라그나로크의 시작접이 니플헤임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니플헤임이 먼저 붕괴되지 않게 여왕님이 힘 좀 쓰고 있죠.”

마블의 기운이 주변으로 확산되자 켄타우루스의 움직임이 멈칫 멈칫 하면서 조심스러워졌다. 지금의 켄타우루스는 펜리르의 힘을 전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야수왕 펜리르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에 쉬이 저항하지 못했다. 웨어 상태인 켄타우루스만 파괴 활동을 계속했다.

“일단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부터 제거할까?”

신들은 제각기 흩어져서 펜리르의 기척에도 굴하지 않고 아이네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켄타우루스를 하나씩 제거했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D-웨어로 쓰지 못할 정도로 흉측하고 처참하게 죽였다. 다른 켄타우루스는 저들의 수장이 불명예스럽게 죽는 걸 보면서도 펜리르를 두려워하는 본능 때문에 신을 막지 못했다.

“너희들은 뭘 믿고 겁도 없이 여기에 나타난 것이냐?”

마블의 목소리가 마력을 따라 켄타우루스의 사이사이를 훑어지나갔다. 켄타우루스는 압도적인 경외감에 꼼짝도 못했다. 매튜의 힘도 한몫했다.

“너무하는 구나. 이 여린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몰아붙이느냐?”

제 1의 세계에서의 ‘그녀’의 모습과 거의 비슷해진 아이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아이네를 본 진원은 아이네가 ‘그녀’의 본모습과 너무 흡사해서 소름끼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이들이 잘못한 게 없다고? 하긴, 당신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니까.”

“역시 내게 당당하게 대드는 건 로키뿐이구나.”

“칭찬 받았으니 더 대들어 보지. 어째서 아홉 세계를 뒤죽박죽 섞어놓는 거지?”

“섞다니? 난 그저 세계를 본래대로 만드는 것일 뿐이야. 본디 하나이던 세계를 너희가 멋대로 아홉으로 나눠버렸잖아.”

“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제 3의 세계는 시작할 때부터 아홉 세계였어.”

역시 ‘말’과 ‘머리’에 있어서는 민혁이 절대 밀리지 않았다. 민혁은 아이네의 행동이며 말에 화가 나서 이를 바드득 갈며 포커페이스를 깨버렸다. 사신의 죽음과 같은 살기와 숨이 막힐 듯이 강력한 마력이 주위를 압도했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거역할 수 없는 강박관념을 심장으로 곧장 느꼈다. 민혁의 마력에 거스르며 받아칠 마력을 내뿜지 못했다.

“그래. 아홉 세계로 나눠져 있어야 세계가 안정적이지. 비슷한 종족끼리 한 곳에 모여 살면서 행복학세 살아야지. 그런데 이걸 알까? 더 행복해 지려면 한 번 쯤은 불행해져야 하는 거.”

[딱!]

아이네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에 거대한 워프가 생겼다. 이곳의 신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조사를 하던 신들도 아이네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신들은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네가 이 한 순간에 아홉 사계 곳곳에 거대한 워프를 동시에 열어서 본격적으로 세계를 섞기 시작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