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제 7문 (4)

★은하수★ 2009. 6. 12. 18:09

 

뜻하지 않은 프레이르의 호출에 그에게 갔던 민혁은 인철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묠니르. 토르의 기억의 봉인과 엮어져 있는 묠니르가 프레이르의 수중에 있었다.

“저 녀석, 저걸 어떻게 찾은 거야?”

“글린부르스티를 찾다가 우연히 찾은 걸 거에요.”

민혁은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했다. 그 며칠 동안 프레이르를 놀려 먹는 중이라 그걸 즐기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프레이르가 거물을 찾아버려서 그가 쓸데없는 짓 못하게 철저하게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무슨 소리야?”

“하. 일단 저거부터 확보하고 나서 말할게요.”

민혁과 인철은 프레이르와 대치하고 서서 마력으로 기싸움을 했다. 인철이 헤임달의 마력의 봉인을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프레이르와 만만할 수 있었다. 민혁은 자기 보호에 급급한 정도의 마력 박에 없었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봉인을 풀 심산이었다.

묠니르는 본 크기로 프레이르의 마력에 의해서 보호막에 싸여 공중에 떠있었다. 묠니르는 토르의 솔릭이기 때문에 프레이르가 직접 손 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위험했다. 프레이르의 마력과 묠니르가 가까이 있어서 그 반발로 토르의 마력의 봉인이 풀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기억의 봉인도 자동으로 풀려서 토르가 폭주할 게 뻔했다.

“내 글린부르스티를 내 놓으시지.”

프레이르는 다짜고짜 민혁에게 내노라 했다. 민혁은 절대 인철의 눈치를 보지 않았지만 인철은 프레이르와 민혁을 한 번씩 보고 나서 감이 확 왔다.

“며칠 전에 프레이르랑 내기했다고 얘기했는데, 그건 거야?”

인철의 타고난 직감은 역시나 자타가 공인한 능력이었다. 민혁이 긍정의 표시도 부정의 표시도 하지 않자 인철은 한숨을 한 번 수고서 프레이르를 경계했다. 그의 손에는 자동적으로 하드 메탈 소드가 들려 있었다.

“너랑 프레이르의 일이니까 내가 끼어들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중간 매개물이 워낙 거물이라 별 수 없이 도와주는 거야.”

“알고 있어요.”

만약에 진원을 불렀다면 진원이 무슨 사정이 있던 간에 묠니르를 확보하기 위해 곧장 프레이르의 움직임을 막았을 것이다. 무분별하게라든지 생각없이라든지 대책없이라든지 그렇게 행동하는 위인은 아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비교적 냉정한 인철을 부른 것이었다. 다른 이유에서는, 묠니르에 있는 토르의 마력의 봉인이 타 마력에 자극을 받아 봉인이 풀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나마 마력이 적은 조력자를 부르는 게 나았다.

“너희가 토르를 데리고 있으면서 이건 필요하지 않은가 보지?”

[파직]

묠니르와 보호막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프레이르는 토르의 봉인에 대해서 모르고 있지만 민혁과 인철은 불안한 마음에 프레이르보다 묠니르에 정신을 쏟았다.

<선배, 프레이르의 주의를 끌어줘요. 내기에 양보하는 건 분하지만 글린부르스티를 넘겨줘야겠어요.>

인철은 민혁에게서 텔레파시를 받고 하드 메탈 소드를 잡은 손을 까딱 움직였다.

“토르가 누군지 알고 있나보지?”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에 프레이르는 발근했다. 인철과 마주친 적이 이번이 겨우 두 번째인데 그에게서 그런 눈으로 목격되는 게 불쾌했다. 뭐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지금 상대는 로키인데 티르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례한 발언을 하니 불쾌할 수밖에.

“신이 신을 알아보는 것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건가?”

“우리가 데리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걸 아는 건 우트가르드 로키 하나뿐인데……. 프레이르와 프레이야가 헤임달을 뒤이은 우트가르드 로키의 개가 됐을 줄이야.”

이제는 한심함을 넘어서 경멸한다는 듯이 프레이르를 쳐다봤다. 이제 프레이르의 시선은 확실하게 인철에게 꽂혔다. 덕분에 민혁은 프레이르의 시야에서 벗어나 그 자리에서 조심스레 사라질 수 있었다.

민혁은 건물 뒤로 돌아가서 뤼폴을 불렀다. 민혁의 왼쪽 눈은 피보다 붉은 색으로 변해 심상치 않은 마력을 풍겼다. 뤼폴은 민혁에게 정중하게 절하며 민혁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철저하게, 지독하게 두려운 마력이 주위를 압도했다. 덕분에 주변에 옅게 깔려있던 프레이야의 마력이 상쇄돼 버렸다. 민혁은 날카로우면서 압도적인 눈으로 뤼폴을 내려다봤다.

“나의 시종 뤼폴. 가서 프레이르의 글린부르스티를 가져와 주인에게 돌려줘라. 그리고 토르의 묠니르를 받아내 티르에게 전해 줘라.”

“명령에 따르겠나이다. 나의 주인이시여.”

뤼폴은 체이스홀을 통해 유유히 사라졌다.

“그래도 한 때 쌍둥이였다고 몸소 나서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숭고한 아름다움의 프레이야.”

숨어있던 프레이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양 팔목에 엑셀 암렛이 채워져있었다. 입수 경로야 관심 외이므로 상관하지 않겠지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서 민혁의 관심을 끌었다. 프레이야의 목걸이, 브리싱가멘을 진원이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프레이야는 그녀만의 마법을 쓸 수 없다. 마력의 봉인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프레이야가 지금 하고 있는 목걸이는 이둔의 목걸이였다. 프레이야가 이둔의 결혼 선물로 준 목걸이였다. 그 안에 이둔의 마력의 봉인이 있었다.

“하지만, 비열한 전쟁의 수호자, 고양이 마차의 프레이야. 이둔의 목걸이를 하고 계시군요.”

상대를 도발하는 그 입담에 프레이야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책감을 갖고 있는 물건을 상대가 너무 빨리 알아차려버렸다.

“어차피 내가 이둔에게 줬던 거니까 상관없잖아.”

“줬다 뺏는 것만큼 야비한 것도 없습니다만.”

프레이야는 말문이 막혔다. 도저히 말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제압하자니 방금 전 민혁의 마력이 생각 외로 강했다. 얼굴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불안했다. 자신이 꼼짝없이 당할 것만 같았다.

“김리궁에 있어야할 이둔이 친히 미드가르드에 온 건 아닌 것 같고……. 그렇군요. 절친한 친구 프레이야를 지키기 위해 이둔이 보낸 선물이군요. 제멋대로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우트가르드 로키의 새로운 방패, 프레이야.”

민혁은 일부러 프레이야를 도발했다. 여지없이 걸려든 프레이야는 발끈해서 이둔의 마력을 끌어내 엑셀 암렛을 통해 증폭시켰다. 민혁은 여유 만만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기다렸다. 민혁은 그저 체내의 마력을 활성화 할 뿐이었다.

[콰앙!]

인철과 프레이르가 있는 곳에서 멋진 폭발음이 들렸다. 이건 누구의 마력도 아니었다. 묠니르에 봉인돼 있던 토르의 마력이었다. 프레이야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힘에 눌려서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마력은 폭발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제길.”

민혁은 프레이야를 지나쳐서 인철에게 뛰어갔다. 프레이야는 무서워서 민혁을 붙잡지도 못했다.

“어떻게 된 거에요?”

“글린부르스티 자체에 마력이 있잖아. 그래서 저 악마가 그걸 가져오고 프레이르한테 넘겨주자마자 묠니르가 폭주하기 시작한 거야. 원체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진원이 형이 알면 엄청 잔소리 듣겠군.”

“아무 대책 없이…….”

묠니르에서 사방으로 뿜어지는 토르의 마력은 제 2의 세계에서 거대한 몸집으로 거인족과 맞서 싸우던 용맹한 토르를 연상케 했다. 할 줄 아는 마법은 그닥 없어도 가지고 있는 마력이 상당했음을 제대로 재인식시켜줬다.

“이, 이게… 어떻게…….”

프레이르는 뒷걸음질쳤다. 토르의 마력을 직접 느끼는 게 실로 오랜만이라 심히 놀란 모양이었다. 뤼폴은 어느새 반지로 변해 민혁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형… 그래, 형! 지금쯤 기억의 봉인이 풀려서 난리 났을 텐데. 젠장.”

“레이 혼자선 무리에요. 여기엔 어차피 진원이 형이 올 테니까 선밴 토르에게 가세요.”

민혁이 묠니르를 향해 두세 발짝 다가가자 인철이 붙잡았다.

“어쩌…….”

<제 봉인을 풀 거에요. 엘리멘탈 프린트까지 부활할 테니 세 개의 마력이 충돌할 거에요.>

“알았어. …조심해라.”

인철은 붉게 변한 민혁의 왼쪽 눈을 보고 나서 진철이 있을 만한 곳으로 서둘러 갔다.

“하-. 후-.”

민혁은 숨을 크게 한 번 쉰 후에 자신이 지금 슬 수 있는 모든 마력을 왼쪽 눈에 집중시켰다. 마력의 봉인이 풀리는데 그리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약간의 자극만 있으면 바로 풀리게끔 몇 단계의 봉인을 미리 손 봐 논 덕분이었다.

[쿠과앙!]

마력의 봉인이 모두 풀리고 엄청난 마력이 폭발적인 힘을 과시하며 민혁을 중심으로 위로 치솟아 올랐다. 누가 봐도 장관이라 할 만큼 민혁, 로키와 토르의 거대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토르의 마력은 지금 제어해 줄 주인이 없어서 중구난방으로 뻗쳐나갔다. 민혁은 그것을 재주껏 한 곳으로 밀어 붙이며 엘리멘탈 프린트의 아홉 조각이 모두 이 한 곳에 모일 것에 대비했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갖고 있던 한 조각, 우르드가 가지고 있던 한 조각, 스쿨드가 가지고 있던 한 조각,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여섯 조각이 제각각 워프를 통해 민혁의 머리 위에 모였다. 그리고 민혁의 마력을 매개물로 삼아 강렬한 빛을 내며 하나로 합쳐졌다.

엘리멘탈 프린트가 최초의 모습으로 합쳐지는데 민혁의 마력을 너무 소비하는 터라 토르의 마력이 그 틈을 잡아 다시 뻗어나가려 했다. 민혁은 거대한 양의 마력을 갑자기 쓰고 있어서 이것저것 모두에 신경 쓰기 힘들었다. 토르의 마력이 민혁이 쳐 놓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는 때에 또 다른 강한 마력이 토르의 마력을 구속했다. 언제나 타이밍이 좋은 진원이었다.

“이 묠니르는 도대체 누가 가져온 거야? 설마 저기 자빠져 있는 프레이르야?”

사용한 단어는 고급스럽지 못하나 그의 미소는 언제나 그렇듯 고급이었다.

“어서 오세요.”

“묠니르는 나한테 맡기고 넌 엘리멘탈 프린트를 확보 해.”

“아주 반가운 소리에요.”

토르의 마력을 억제하던 힘은 차근차근 진원의 마력으로 바뀌고 민혁은 엘리멘탈 프린트에 집중했다. 좋은 먹잇감을 그냥 지나치는 맹수는 없는 법. 우트가르드 로키가 민혁과 진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목적은 분명히 완전한 엘리멘탈 프린트였다.

<역시 나타났군.>

<절대 넘겨주지 않을 거에요.>

<마력의 봉인을 풀었지만 지금 너무 많이 소모하고 있잖아. 무리야.>

<헤. 엘리멘탈 프린트는 다른 세 개의 보물과 다르게 소모성이 아니잖아요.>

<그렇군.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민혁의 마력 중 반 이상이 엘리멘탈 프린트를 복구하는데 소모되었다. 하지만 엘리멘탈 프린트는 자신의 수호자와 사용자를 힘들게 하는 보물이 아니었다. 4대 보물 중 유일한 비소모성. 자신을 위해 사용한 마력은 그대로 되돌려 주는, 마력을 생산하는 보물이었다.

엘리멘탈 프린트의 복구가 끝나고 민혁의 마력이 잠잠해졌다. 엘리멘탈 프린트도 민혁의 머리 위에서 오른손으로 얌전히 옮겨졌다.

“저에게 그걸 주셨으면 합니다만.”

“프리그에게서 스피릿 크리스털을 빼앗을 때도 그랬어?”

민혁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노련한 우트가르드 로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우트가르드 로키.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전 로키께 뵐 일이 있어서 온 것이니 괜한 오해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프레이르의 말은 곧바로 제지당했다. 프레이야는 어느 새 프레이르에게 꼭 붙어있었다.

“있지. 이건 내 수호물이야.”

[쿠앙!]

민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멘탈 프린트에서 민혁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민혁에게 일제히 흡수됐다. 이제 민혁은 마력을 거의 소비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엑셀 암렛이라는 증폭기, 엘리멘탈 프린트라는 또 다른 도구. 지금의 우트가드르 로키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역시 프리그보다 어려운 상대군요.”

스피릿 크리스털을 가지고 있는 거인 마법왕 우트가르드 로키와 엘리멘탈 프린트를 가지고 있는 사신 로키의 대결 구도는 그저 그럴싸한 모습이 아니라 진실로 대단한 위압과 분위기를 풍겼다.

<프레이르와 프레이야는 이제 그만 가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휘말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장애물이나 되는 것 마냥 말하는 게 분하지만 현실을 받아드려야 했다. 마력이 완전한 프레이르도 민혁과 우트가르드 로키, 그리고 진원과 토르의 마력 속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몸을 떨면서도 용케 버티고 있는 프레이야를 데리고 주변을 살피며 사라졌다. 이런 때에 그 약자에게 비굴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생각 없는 바보 같은 놈이라 불릴 것이다.

 

“저거 평범한 죽도 맞아요?”

“무기란 사용하는 이에 따라서 효율이 달라지니까.”

인철이 도장 근처 공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철과 레이가 한바탕하고 있었다. 레이는 마력이 제로에 가까운 진철에게 차마 활을 쏘거나 마법을 쓰지 못하고 무식하게 폭주하는 진철을 이리저리 피할 뿐이었다. 마구잡이로 죽도를 휘두르는 것 같지만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정신이 돈 것 치고는 눈매가 비상하게 살아 있잖아.”

토르의 폭주라 해서 진철이 미친 인간처럼 날뛰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참된 싸움꾼, 진정한 검사의 모습이었다. 죽도를 휘두르는 자세며 인철과 레이를 노려보는 눈이 일품이었다. 미쳤다고 말하기엔 너무 실례인 것 처럼.

“곤란한 건 자신이 남진철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거에요. 완전히 싸울 줄 밖에 모르는 토르에요.”

진철이 기억의 봉인이 풀리고 폭주하면 아무 것도 머리에 남는 게 없을 거라 예상하긴 했다. 그래도 친동생인 자신을, 제 2의 세계에서는 이복동생이었지만 제 3의 세계에서는 친동생인, 끈끈한 형제 관계에 매어 있는 자신을 조금은 기억하고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택도 없는 바람이었다. 진철의 두 눈에 보이는 인철과 레이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적일뿐이었다.

[부웅]

인철에게 처음으로 죽도가 스쳐지나갔다. 인철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적당히 휘두른 듯싶었다. 인철은 일부러 멀찍이 피했다. 지금 진철은 거의 아니 완전히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무기의 차이도 본능으로 알아 차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철의 검이 최적의 약탈 대상이었다.

[휙]

인철이 너무 여유있게 피하자 두 번째 것은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진철이 겨우 한 발짝만으로 가까이 붙어서 바로 목 가까이로 죽도를 휘두르자 인철은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용케 피했다. 그 때 멀리서 진원의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잠깐 불안정하던 토르의 마력이 얌전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우트가르드 로키의 마력이 약하게 걸렸다. 진철은 그 마력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 묠니르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들이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만 했다.

[팍]

기회를 엿보고 있던 레이가 이때다 싶어서 진철의 목을 향해 손날을 쳤지만 진철의 죽도에 가로막혔다.

[붕, 팍]

진철은 죽도를 유연하게 놀려서 레이의 옆구리를 가격하고-레이가 진철의 뒤에서 공격을 들어갔기 때문에 진철은 전혀 레이를 보고 있지 않다- 묠니르가 있는 곳을 향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형!”

인철이 앞을 가로 막았지만 진철은 날렵했다. 쉽게 인철을 제치고 곧장 달려갔다. 아무리 광기의 상태지만 육체가 워낙 잘 단련돼 있던 터라 보통 사람을 막는 것 하곤 차원이 달랐다.

“역시 진철이네요.”

“응. 이제껏 형을 이겨본 적이 없는데 오늘처럼 치욕스러운 적은 없었어. 그나마 그래도 형이 봐줬었지만…… 이렇게까지 실력차이가 날 줄이야. 아, 아까 맞은 데는 괜찮아?”

“아슬아슬하게 막았어요.”

레이가 하드 메탈 보우를 들어보였다. 각성한 사냥의 여신이 그 정도에 당할 리 없다는 듯 했다.

“다행이네. 우리도 얼른 가자. 지름길이 있으니까.”

“지금의 진철이면 동물적 감각으로 지름길을 택했을 거에요.”

“그렇겠지. …서두르자.”

인철과 레이는 서둘러 묠니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진철의 육체에는 마력이 거의 없어서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묠니르 주변에 엄청난 마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마력들의 영향이 실로 대단했다. 주변의 모든 마력을 압도하는 듯 했다. 심지어 인철과 레이도 집어삼킬 듯 했다. 레이야 자신의 마력이니까 버틸 만 했지만 인철은 헤임달의 마력을 쓰는 중이라 가까이 갈수록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괜찮아요?”

레이가 인철의 상태를 살폈다.

“지금은 형이 우선이야. 어른스럽고 자상한 형이 저 모양으로 날뛰는 꼴은 못 봐.”

자기에게 엄하고 둘째 누나 못지않게 무섭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상형이고 아버지보다도 존경하는 형이었다.

“폭주해도 진철답게 냉철하고 절도 있던 걸요.”

“묠니르를 잡고서도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문제의 장소에 가까이 갔을 쯤에 도중에 멈춰선 진철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민혁의 마력이 급상승하고 있었다.

“토르는 역시 로키에게 약한 걸까요?”

인철과 레이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철에게 다가갔다. 진철의 맞은편에 누군가 서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까 금발의 시프였다. 민혁의 마력 때문이 아니라 시프에게 가로 막혀서 멈춘 것이었다.

“그래도 시프를 지나치진 않았네.”

진철에게 약간은 이성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하는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진철은 시프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기보다 약한 상대라는 결론이 나자마자 주저 없이 지나쳐갔다. 시프는 진철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고, 그를 붙잡는 건 더 할 수 없었다.

“정말 별 볼일 없군. 옛날 형수님.”

인철은 시프를 지나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레이는 시프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쿠과앙!]

우트가르드 로키와 민혁의 마법이 충돌해서 주변에 대규모의 파장이 강하고 넓게 퍼졌다. 엘리멘탈 프린트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인철은 그곳의 모든 상황이 한 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에서 재빨리 다음 움직임을 계산했다.

“레이. 여기서 대기하다가 형이 묠니르를 잡기라도 하면 바로 양다리를 얼려버려. 지면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알겠어요.”

레이는 다른 게 나타날 걸 대비해 화살을 활에 걸어 놓고서 기다렸다. 인철은 진철이 묠니르 가까이까지 간 걸 보고서 진원을 향해 소리쳤다.

“오딘! 토르를 막아요!”

[쿠과앙!]

인철의 목소리가 진원의 귀에 닿고 나서 그 일대에 또 한 번의 폭발음이 일어났다. 인철이 1초라도 늦게 소리쳤으면 진원이 뒤늦게 대응했을 것이다. 진원은 진철이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진원은 마력의 봉인을 모두 찾은 게 아니라서 토르의 마력을 겨우 막고 있었다. 그래서 궁니르를 가지고 물리적으로 진원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콰광!]

하지만 평생을 운동에 바쳐온 진철에게 진원은 별 거 아닌 상대였다. 뭐, 먹은 밥그릇 수도 진철이 훨씬 많긴 하지만 그게 여기서 문제도리 바는 아니다. 아무튼 진원은 진철에게 너무 쉽게 길을 내줬다.

“대지여, 그대를 딛고 있는 자에게 족쇄를, 홀드.”

진원은 급한 마음에 마법으로 진철의 발을 묶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토르의 마력이 빈틈을 찾아 강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이번엔 묠니르가 진철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진원의 이마와 관자부위는 일찍이 땀이 가득했다.

[쾅!]

[챙]

토르의 마력이 우트가르드 로키 가까이에 폭격을 날렸고, 묠니르는 겨우 시간을 맞춰 달려온 인철에게 막혀 부르르 떨었다. 상대는 토르의 묠니르 인철의 하드 메탈 소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걱정됐다. 신의 무기라 해도 솔릭이 아닌 티르의 검이 솔릭 묠니르를 상대하는 건 좀 무리였다. 그래도 인철은 깡으로 막았다.

“인철아!”

“신경 쓰지 마세요.”

인철의 발이 점차 뒤로 밀렸다. 진철도 묠니르도 서로에게 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투르가 모두를 고생시키는 군요.>

우트가르드 로키가 민혁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민혁은 대답을 농도 9C의 스톰 범브로 대신했다.

[쿠왕!]

민혁의 스톰 범브와 우트가르드 로키의 스크류 메탈 실드가 상쇄됐다. 그 때 토르의 마력이 다시 한 번 우트가르드 로키의 바로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쾅!]

<토르의 힘은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엘리멘탈 프린트는 나중으로, 마지막으로 미뤄야 겠습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판단하고 미련 없이 사라졌다. 어차피 보물의 수호자를 죽이거나 재기 불능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보물을 지배할 수 없으니 처음부터 적당한 대에 돌아갈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닌 거고.

민혁은 보물의 수호자로서의 특권, 엘리멘탈 프린트를 육체에 흡수하고 나서 곧장 진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철이 곧 뿌리쳐낼 정도로 인철이 잔뜩 밀려있었다. 진원은 진철을 붙잡으랴 마력을 붙잡으랴 멀티 플레이 중이라 힘을 거의 소진한 듯 했다. 자기가 도와봤자 결국엔 진철이 묠니르를 손에 넣을 것 같았다.

<둘 다 그만두고 거기서 나와요.>

<무슨 말이야?>

“미쳤어?”

민혁의 말이 어이없는 것도 당연했다. 진철이 묠니르를 잡는 순간 진철은 자멸의 길을 가기 때문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는 것인데 그걸 그만 두라니, 납득할 수 없었다.

<내 말대로 해요.>

여기서는 제일 어려도 명색이 머리 쓰는 데엔 귀재인 로키다. 진원과 인철은 못미덥지만 막던 모든 것을 던져두고 묠니르와 진철 사이에서 떨어져 나왔다. 홀드가 풀리고 진철이 묠니르를 쥐어 잡는 순간 민혁은 인철에게 재빠르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토르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저하고만 있는 것처럼 해주세요.>

인철이 일루션 아이로 진철의 감각을 지배한 순간 레이가 진철의 두 다리를 지면에 고정시켰다. 민혁은 레이의 움직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일이 잘 됐다는 표정이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말솜씨가 모든 걸 좌우하게 되었다.

“오랜만이야, 토르.”

모든 마력을 육체에 받아들이고 주변이 좀 정리된 후에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를 향해 본 진철은 살짝 놀란 듯 했다.

“로… 키…….”

“응. 나야.”

그 방대한 양의 마력이 말금히 사라지고 멋대로 날뛰던 묠니르가 얌전히 진철의 손에 있으니까 진철은 그저 평범한 남자로 보였다. 물론 눈매나 풍기는 분위기가 좀 무겁긴 했지만 위협적이진 않았다.

“여전히…… 작아… 로…… 키….”

“토르의 단짝, 로키가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어.”

진철의 몸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마력이 점점 고요해졌다. 그래도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진철이 억누르는 듯 했다.

“나랑 시프는 못 알아보더니 민혁은 단번에 알아보잖아.”

인철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로키 없는 토르는 묠니르 없는 토르랑 비슷하잖아요.”

“민혁이 여기서 실패하면 그 땐 토르의 영혼 자체를 잃게 될 거야. 막을 방법이 없어.”

다들 잔득 긴장하면서 민혁과 진철을 지켜봤다.

진철이 민혁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지 다리를 움찔 거렸다. 레이는 민혁의 눈짓을 받고 마법을 해제했다. 다리가 자유로워진 진철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을 억누르면서 민혁에게 다가갔다.

“로… 키…….”

민혁의 눈에 왠지 모르게 진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이 다 보이는 듯 했다. 민혁은 진철이 볼 앞에 올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진철이 자기를 향해 묠니르를 들어 올릴 때 진철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철은 제 머리까지 묠니르를 들어 올린 채 동작을 멈췄다.

“내가 배신해서 슬펐구나. 그리고 네 손으로 내 아들을 죽였다는 게 괴로웠구나. 니플헤임에서 내가 모른 척하니까 더 힘들었지? 나도 그랬어.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널 어떤 얼굴로 마주봐야 할 지 모르겠더라. 내가 이기적이었어. 네가 이렇게까지 괴로워 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토르.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친구, 토르. 이 약삭빠르고 얄미운 작은 친구, 로키를 용서해 주겠어?”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하나씩 전부 진철의 귀를 통해 머리와 마음에 전해졌다. 진철은 묠니르를 내리고 멍한 눈으로 민혁을 내려다봤다. 성장 중이라 아직은 민혁이 진철보다 작았다. 아니, 성장이 끝나도 진철이 워낙 큰 키라 민혁이 그보다 작을 것이다.

<이제 그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인철은 민혁이 시키는 대로 일루션 아이를 거뒀다. 그리고 민혁은 손가락으로 인철을 가리켰다.

“티르는 여전히 네 동생이던데? 대단한 형제야.”

진철은 느린 동작으로 인철을 쳐다봤다. 인철을 비롯한 그곳의 신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슈우우우]

진철의 몸과 묠니르에서 김이 나더니 주변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기억과 마력의 봉인에 억지로 얽혀있던 폭주와 광기의 매듭이 풀린 것이었다. 토르의 환생, 진철로 그곳에 서있었다. 진철은 민혁을 한 번 보고 나서 인철과 레이를 자상한 눈으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