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보석전쟁록

한 달 간의 보석전쟁록 : D-28 파수꾼 보석

★은하수★ 2010. 9. 25. 12:14

D-28 파수꾼 보석

 

이동 스크롤과 같은 편리성 마법 도구는 고유마력파장이 강한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우연히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엉뚱한 결과를 일으킨다. 포르포냐 가의 땅, 페리아 숲은 고유마력파장이 강하기로 트라움 폰 눌 사위 5위 안에 드는 장소다. 리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굳이 걸어서 숲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쌍둥이의 걷는 속도에 맞춰서 소풍 가는 느낌으로 천천히 길을 나선지 만 하루가 되었다. 드디어 페리아 숲의 경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숲에서 가장 높게 자란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줄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를 푸른 반딧불이 떼 지어 날고 있었다. 밖에서 안으로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과 안에서 밖으로 함부로 나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형상이었다.

“진짜 멋있어요.”

“숲에 이런 곳도 있었어요?”

쌍둥이는 눈앞의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 탑처럼 높고 곧고 길게 뻗은 나무들이며 난생 처음 본 푸른 반딧불이며,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에 정신을 빼앗겼다. 저도 모르게 그것들을 향해 뜀박질했다.

“애들 냅둬도 괜찮아? 서서히 ‘녀석’이 나올 때가 됐잖아.”

뒤를 엄호하던 윌이 팔짱 낀 채 리벤의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앞을 향해 보며 멈춰 섰다. 마침 리벤도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경계한다기 보다는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숲을 나가려는 자. 그대들은 누구인가?”

“아, 나왔다.”

무거운 목소리가 걸쭉하게 울렸다. 윌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쿵. 쿵.]

발소리도 무거웠다. 키가 리벤의 다섯 배 이상 되는 골렘이었다. 회색 바위가 줄줄이 그리고 단단히 붙어 있고, 바위 틈새와 그늘진 면에 짙은 녹색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바위 골렘과는 다르게 인상이 선했다.

“으……. 으으……. 으아아아아아아…….”

쌍둥이가 리벤을 향해 허겁지겁 돌아왔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리벤의 등 뒤로 쏙 숨었다.

“인간? 포르포냐인가?”

“오랜만이야, 파수꾼.”

리벤은 자신들을 확인하기 위해 허리와 고개를 숙인 골렘에게 오른손을 높이 들어 인사했다. 골렘은 리벤을 알아보고는 천천히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키도 크고 몸집도 거대해서 조그만 동산이 새로 생긴 느낌이었다.

“리벤. 이게 얼마만이지? 잠깐, 내가 생각하지. ……. 그래, 그대가 이 페리아에 들어오고 처음이니까, 거의 8년만이군.”

“역시 파수꾼이야. 제대로 맞혔어.”

“테스탈로차가 색시를 데려온 날을 잊을 수 있나.”

바위 골렘은 오래 산 노인처럼 껄껄껄 웃었다. 그 흔들림에 맞춰 그의 몸에 붙어 있는 이끼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봐, 나도 기억해?”

윌이 골렘의 눈높이까지 빠르게 날아올랐다.

“리벤의 정령, 빛의 윌-오-더-위스프. 내가 아는 빛의 정령 중에서 가장 발랄한 정령이거늘 기억 못할 리가 있다.”

“헤에.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구나. 오랜만이야, 파수꾼.”

“다시 만나서 반갑네.”

골렘이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윌에게 내밀었다. 윌은 두 손으로 그의 손가락 끝을 잡고 천천히 악수했다.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꽤 친해 보였다.

“어머니, 누구에요?”

쌍둥이는 여전히 겁을 먹은 채 리벤의 등 뒤에 있었다. 네리의 정령도 뒤쪽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페리아 숲의 경계에서 문지기를 맡고 있는 포르포냐 가의 파수꾼이야.”

“저 바위덩어리가…….”

“포르포냐 가의 파수꾼?”

“아차. 너희 골렘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샤샤, 네리. 저 파수꾼이 책에서 봤던 2차 종족 골렘이란다.”

“우, 우- 와-.”

쌍둥이는 긴장을 조금 풀고 호기심 왕성한 눈으로 바위 골렘을 올려다봤다. 오늘 보는 것들이 전부 난생 처음 보는 것투성이라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쁨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아이들이 새로운 포르포냐군. 샤샤와 네리.”

“우왓! 네.”

아이들은 골렘이 자신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역-시 파수꾼이야. 포르포냐 가에 대한 거라면 뭐든 알고 있구나.”

“숲에서 일어난 일이면 뭐든 알고 있다.”

“정말 대단해. 나보고 파수꾼을 하라면 도망가 버릴 거야. 못해 못해.”

윌은 어느새 바위 골렘의 왼쪽 어깨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가 자연의 현신인 ‘정령’이고 포르포냐 가에 속한 ‘리벤의 파트너’이기 때문에, 골렘은 그녀의 제멋대로 행동에도 불쾌해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모든 것을 거북해하지 않았다.

“실피드-. 너도 이리로 와. 굉장히 기분 좋아.”

윌이 멀리서 눈치 보고 있는 바람의 정령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나 네리의 탄생정령은 어색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쌍둥이처럼 골렘을 실제로 보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한 것이다.

“바람의 하급정령. 그러면 네리의 탄생정령이군.”

“맞아. 네리의 하나뿐인 파트너야.”

윌과 골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벤은 쌍둥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쌍둥이는 어린 마음에 너무 놀란 나머지 리벤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골렘의 앞을 지나가기는커녕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도 못할 것 같았다.

“포르포냐 가의 아이들이 포르포냐 가의 파수꾼을 무서워하면 안 되지. 1천 년 넘게 포르포냐 가와 페리아 숲을 지켜온 파수꾼에게 실례야.”

쌍둥이는 골렘이라는 존재에 호기심이 있어도 무지막지 거대한 존재에 친근감을 갖는 것은 어려웠다. 숲에서 아무리 위협적인 생물들과 여러 번 마주쳤어도 파수꾼에게 접근하는 것은 느낌이 너무 달랐다. 차라리 적대심을 가진 상대가 대응하기 쉬웠다. 파수꾼은 자신들을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다가가는 것을 망설였다.

“후우-. 파수꾼은 너희를 괴롭히지 않아. 숲을 지키고 너희를 지키기 위해 열심이잖아.”

“됐어, 리벤. 억지로 친해질 필요 없어. 안 그래도 은퇴할 생각이니까 더더욱 말이지.”

“은퇴라니?”

리벤과 윌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2차 종족 골렘이 은퇴를 선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긴 시간을 살았으니 어느 정도 지성이 생겼겠지만 은퇴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베시릴 타운이 숲으로 들어오는 걸 막지 못했어. 그 결과 테스탈로차가 죽었어. 난 이미 은퇴했어야 돼.”

포르포냐 가의 파수꾼은 2년 전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자신을 만든 선대에게 몇 번이고 대답을 구했을 것이다.

“잠깐만. 분명 베시릴 타운이 들어오기 했지만 푸른 울타리를 넘기 전에 쫓아냈잖아. 테스탈로차가 죽은 건 녀석의 저주 대문이야. 저주는 누구도 막을 수 없어. 파수꾼은 충분히 일을 해낸 거야.”

리벤은 황급히 바위 골렘을 진정시켰다. 참고로 ‘푸른 울타리’란 현재 이들이 있는 곳으로서, 높게 자란 나무와 푸른 반딧불이 밀집해 있는 페리아 숲 최외각 지대를 말한다.

“리벤. 솔직하게 대답해주게. 난 아직 이곳에 필요한 존재인가?”

“물론이지. 너만한 파수꾼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난 여기에 더 있어도 되는가?”

“그럼. 내 아이들과 그 다음 세대 아이들과 또 그 다음 세대 아이들을 지켜봐 줘.”

“나도 리벤의 말에 절대 공감해. 파수꾼은 내가 아는 골렘 중에서 최고야.”

윌이 열심히 리벤을 거들었다. 바위 골렘은 자신의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윌이 친 빛의 장막이 얇은 담요처럼 그를 감싸 안은 것이다. 그에게 심장이 없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나, 적어도 이 빛처럼 따뜻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역시 포르포냐의 사람들이 좋아. 이 못난 피조물을 천 년에 걸쳐 아껴주니 말이야.”

파수꾼의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그의 몸에 난 이끼가 더 파릇파릇해졌다.

“상냥한 분인가봐요.”

“그런가봐요.”

쌍둥이가 조금씩 바위 골렘에게 호기심 아닌 관심을 가졌다. 리벤의 등 뒤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고, 윌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골렘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가 너무 거대해서 다가가기 힘든 것뿐이었다.

“인사해보지 그러니.”

리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습적으로 쌍둥이를 앞으로 내보냈다. 쌍둥이는 당황해하며 급히 다시 숨으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리벤이 둘의 팔을 한쪽씩 붙잡고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손에 힘을 세게 줬다.

“너희가 먼저 파수꾼을 불러보렴.”

“그냥 파수꾼이면 되요?”

“따로 이름은 없어요?”

“응. 어차피 파수꾼은 저 골렘 하나뿐이야.”

쌍둥이는 리벤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골렘을 올려다봤다. 골렘은 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서 쌍둥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쌍둥이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었다. 골렘이 자신들을 빤히 보고 있으면 더더욱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았다. 조그만 가슴이 병아리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파닥파닥 뛰었다.

“파, 파수꾼!”

둘이 동시에 외쳤다. 잘 들렸으려나 걱정할 필요 없이 그들의 목소리는 바위 골렘에게 닿았다.

“무슨 일인가? 작은 포르포냐, 샤샤와 네리.”

쌍둥이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자신들을 향해 낮게 내려오자 흠치 놀랐다. 리벤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리벤의 팔을 꽉 잡았다. 처음 말문을 트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들은 긴장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 안녕하세요.”

“오오. 너희를 직접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샤샤와 네리는 긴장을 풀고 눈을 뜬 후에 활짝 웃었다. 드디어 리벤에게서 손을 놓고 편하게 골렘을 쳐다봤다. 실피드도 안심하고 네리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나 아직 윌처럼 골렘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실례가 되지 않을까 무척 조심하는 눈치였다.

“우리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숲의 지식과 기억은 전부 고스란히 내게 들어온다.”

“우- 와-.”

리벤은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쌍둥이를 보며 쿡쿡 웃었다. 조금 전까지 벌벌 떨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였다.

“정말이지 의외의 구석에서 애먹인다니까.”

리벤은 쌍둥이와 파수꾼이 좀 더 친해지길 기다렸다.

파수꾼은 아이들을 향해 큼지막한 손을 내려놨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다섯 손가락을 슬그머니 폈다. 쌍둥이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위 면을 만져봤다. 관절 사이에서 자라는 이끼도 쓰다듬었다. 평범한 바위와 이끼나 다름없는데도 골렘이기 때문에 마냥 신기했다. 파수꾼은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며 장난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이제 가야지.”

리벤이 쌍둥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샤샤와 네리는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생각해내고 골렘의 손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

“파수꾼. 우리는 오늘부터 조금 오랫동안 수도에 가 있을 거야. 그쪽 일이 정리되는 대로 돌아올 테니까 그 때까지 페리아 숲을 부탁할게.”

“역시 에드워드 왕자가 숲에 찾아온 건 예삿일이 아니었어.”

골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윌은 안타까우면서 섭섭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리벤이 있는 곳으로 사뿐히 내려갔다. 푸른 반딧불 대여섯 마리가 윌에게 다가가 반짝반짝 밝은 빛을 냈다. 숲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윌은 그녀의 희고 투명한 빛으로 반딧불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숲 걱정은 안 해도 돼. 난 언제나 이 자리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마.”

“고마워.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골렘이 응시한 곳에 길이 열렸다. 나무 사이의 수풀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푸른 반딧불 떼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빈 공간에 물안개가 차올랐고 저 멀리 조그만 빛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페리아 숲의 입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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