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제 9문 (4)

★은하수★ 2009. 7. 1. 17:02

루시퍼에게 파에드니리아를 빌린 민혁은 곧장 김리궁에 있는 제 방으로 가서 우트가르드 로키의 아지트에서 찾은 것과 비교했다. 파에드니라아는 각각 ‘재주껏’ 베낀 사본이라서 한 쪽에 없는 것이 다른 한 쪽에 있거나 그 반대이거나, 한 쪽은 정확 자세한데 다른 한 쪽은 허술하다는 등 차이가 곧 잘 보였다. 그래도 우트가르드 로키가 가지고 있던 나가의 파에드니리아가 피류온에 가장 가까운 사본이라 -악마의 파에드니리아도 그에 못지않지만- 비교하는 보람을 딱히 못 느꼈다.

찢겨진 부분의 내용을 확인하는데 크게 손상된 부분 중 두 부분은 악마의 파에드니리아에도 있었지만 다른 한 부분은 언급조차 없었다. 감질나게 한 장씩 찢겨진 곳도 악마의 파에드니리아에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모두 미미르의 샘으로>

파에드니리아를 살펴보기 시작한 지 두 시간쯤 돼 갈 때 진원의 텔레파시가 전해졌다. 워낙 내용에 픙미가 생겨서 거기에 빠지는 바람에 찢겨진 곳이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였다.

<모두 미미르의 샘으로>

진원이 재차 텔레파시를 보내자 민혁은 서둘러 우트가르드 로키가 찢은 부분을 대충 알아봤다.

“이미르……와 공간 소멸법.”

민혁은 두 권의 파에드니리아를 모두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진원이 있을 미미르의 샘으로 갔다.

위그드라실의 세 개의 뿌리 중 하나가 뻗어있는 미미르의 샘에 어울리지 않는 독안개가 자욱했다. 민혁은 마력으로 육체를 보호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진원의 텔레파시를 받은 자나 텔레파시를 보낸 장본인이 있어야 할 텐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독안개 때문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미미르의 샘 수면이 워프로 변해있었다. 독안개를 내뿜는 워프가 수면에 생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워프의 크기가 샘 만해서 수면이 워프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워프 안이 시커메서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샘 주변에 독안개가 자욱한 걸 보니 워프 너머는 공기 자체가 독이 아닐까 싶었다.

“다들 여기로 들어간 모양이네.”

민혁은 수면의 워프로 조심스럽게 발을 올렸다. 몇 발자국 앞으로 들어가니 몸이 점점 워프 안으로 알아서 들어갔다. 워프를 통과하면서 건너편의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을 감았다.

발이 지면에 닳은 감촉이 느껴지자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저 어둠과 독안개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아공간 같았다. 그런데 아공간이라고 하면 만든 자의 마력이 감지되야 할 텐데 공간에 들어와 있는 신들의 마력 외에 아공간 생성자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마력을 감출 수 있는 자라면 한 명 뿐이지만 이 아공간은 ‘그녀’를 연상하기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야?”

진철이 요르문간드와 같이 아공간에 들어왔다. 그들도 민혁과 똑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사전 상의 ‘불쾌함’과는 미묘하게 다른 ‘불쾌함’이었다.

“일단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가보죠.”

“아, 너 민혁이 맞구나. 아직 앞이 잘 안 보여서.”

그들은 눈보다는 감에 의지해서 걸었다. 진원과 다른 신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그들의 마력에 의지하며 다가갔다. 다행히 도중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서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았다.

“마법으로 불을 만들면 안 돼?”

진철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게 상당히 답답했다.

“독가스가 가득 차 있어서 가벼운 라이팅을 써도 바로 폭발할 거에요.”

이간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르문간드는 독에 강한 피부를 갖고 있어서 직접 독가스를 접할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의 독에 필적하는 맹독이었다.

“이 근처를 밝게 만들 수 있다면 진원이 형이 진작 했을 거에요.”

“그렇겠지.”

어둠 속을 감으로 걸어 다니면서 가까스로 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진철도 슬슬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프레이르와 부딪히기 전에 걸음을 멈췄다.

“위그드라실에 이번이 생겼어.”

민혁이 묻기 전에 진원이 현재 상황을 짧게 말해줬다.

“그러면 이건 위그드라실이 만든 건가요?”

“일단은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그래도 뭔가 이상해서 모두를 부른 거야.”

모두를 불렀다지만 아직 다 도착하진 않은 것 같았다. 뒤에서 레이와 인철의 마력이 감지됐고 워프 부근에서는 펜리르와 선우 등 몇몇 신의 마력이 추가로 느껴졌다. 모이는 걸 보아하니 니플헤임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현재 존재하는 모든 신은 다 부른 것 같았다. 누구도 진원의 처사가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다들 죽고 싶은 거야?”

아이네가 빌과 회니를 데리고 텔레포트를 통해 나타났다. 그들은 몇몇 희귀품들을 갖고 있었다.

“오딘. 어째서 내가 한 말을 따르지 않은 거지?”

“전 당신의 명령을 들을 위치가 아닙니다.”

아이네는 추궁하듯이 밀었지만 진원은 미동하나 보이지 않았다. 떳떳하게 아이네에게 거역했다. 아이네가 지배의 힘을 사용하면 별 수 없이 굴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얼마든지 대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거 따졌다간 다 개죽음이라고.”

“흐응. 우주의 피조물이 고상한 표현도 다 하는군.”

민혁이 비꼬는데 아이네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답지 않게 화를 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

빌이 아이네의 입을 막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달래지 않았더라면 왕년에 세연이 그랬던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을 지도 모른다. 빌이 진정시키긴 했지만 아이네는 생각보다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가벼운 이유에 금방 화를 내고, 도화선이 짧다면 짧은 단순한 인간이 돼 버린 것 같았다.

“설마…….”

민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을 옆으로 살짝 밀치고 대신 아이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미안, 다신 안 그럴게.”

세연을 달래던 방법이었다.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외칠 정도로 아이네가 금방 얌전해지고 이성을 찾았다. 민혁이야말로 아이네의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처음 나타났을 때의 말투부터 지금 행동 모두 윤세연과 똑같아서 소름끼치기까지 했다.

흥분을 추스르고 나서 몸에 힘이 빠진 아이네는 빌에게 기대섰다. 본인은 자신의 행동변화를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표정도 우주의 피조물 ‘그녀’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의 것이었고, 빌에게 기댄 모습도 가련한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기… 이거 혹시 퇴화인 거야?”

충격을 받았다면 받은 민혁은 회니를 돌아보며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윤세연을 아는 환생한 신 모두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퇴화라기 보다는 혼동이야. 아직 ‘그녀’로 각성을 끝낸 게 아니거든.”

“잠깐, 회니.”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각성을 시작한 때부터 줄곧 우리가 보살펴왔어. 벌서 제 4자아인 인간의 자아가 ‘그녀’를 많이 침식해서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어 제 4자아를 재우지 않으면 ‘그녀’는 스스로 분열될 지도 몰라.”

이보다 황당한 사실은 없을 것이다. ‘그녀’로 각성하고 ‘그녀’로 사는 줄 알았는데 그간 언행이 모두 불완전한 ‘그녀’가 한 것일 줄이야.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상상조차 못했으니 알아채지 못한 건 당연하겠지만 이건 상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사실이었다.

“자아가 불안정하다면 마법도 불안정하다는 얘기잖아.”

이성을 빨리 회복하고 사태를 정확하게 보는 민혁이 빌과 회니의 걱정을 제대로 집어냈다. 그들은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우주의 피조물인 ‘그녀’가 아군이라면 절대적인 승리를 확실할 수 있다. 지배의 힘과 무한한 마력, 제한이 없는 마법,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등 현존하는 피조물 중에서 ‘그녀’는 위그드라실과 함께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데 자아가 불안정하면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손대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우트가르드 로키를, ‘그’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쿵-]

멀리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공간을 지배하는 마력이 누구 것인지 모두 깨달았다.

“여긴 대체 어딥니까?”

아공간의 창조자와 지배자가 다르다는 걸 안 진원은 불안감에 궁니르를 꽉 쥐었다. 신들 모두 제각각 긴장하고 있어서 회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의식적으로 길게 느껴졌다.

“모든 세계가 창조되고 나서 남은, 버려진 공간. 그래도 옛날엔 긴눙가가프의 한 곳이었던 미간척지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거야. 위그드라실의 세 개의 뿌리로 공간이 봉인돼 있었는데 지금 알다시피 봉인이 풀렸어. 아움드라가 숨겨 논 이미르를 찾으러 우트가르드 로키가 침입했거든. 침입한 건 둘째 치고 이미르에 손댔다는 게 더 문제야. 절대 이 공간 밖으로 나가게 해선 안 돼.”

회니가 지금 그들이 정말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아홉 세계의 혼돈 속에 감춰진 진짜 재앙이 아공간 안에서 고스란히 태동하고 있었다. ‘그’가 공간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지금의 혼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 최아그이 사태를 상상하다가 얼굴이 새색이 된 신도 더러 생겼다.

[쿵-]

또 다시 묵직한 소리가 전해졌다. 이제 이 소리의 정체를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의 발소리. 우트가르드 로키의 지배 하에서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그’의 발소리가 분명했다.

“라그나로크보다 더 스릴있겠군.”

“무서운 발언이세요.”

민혁이 본심과는 다르게 장난이 가득한 투로 말하자니까 옆에 서있던 헬이 같은 투로 말을 받았다. 헬은 민혁이 20년 인생 중 최고로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르와 우트가르드 로키를 제압할 때까지, 어쩌면 제거할 때까지 이 긴장을 계속할 것 같았다.

“지금 아이네의, 아움드라의 힘으로는 이미르를 막기 힘들어. 전처럼 위그드라실이 도와줘도 될까 말까인데 위그드라실이 아움드라와 공명할 생각을 안 해.”

빌은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제 품에 안겨 있는 아이네를 내려다봤다.

자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우트가르드 로키를 뒷조사하고 이미르를 경계하고 위그드라실을 설득하고…… 등등 바쁘게 보냈다. 제대로 먹거나 마시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눈에 띠게 말라서 더욱 불쌍해 보였다. 잠이라도 잘 잤으면 좋겠지만 선잠으로 짧게 쉬는 게 고작이었다. 때문에 늘 아이네 옆에 붙어있던 빌은 아이네의 몸무게가 매일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위그드라실을 불러내는 건 스쿨드가 해도 돼.”

민혁은 선우의 옆에 가서 소년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얹었다. 선우는 두려움에 몸을 가늘게 떨고 있다가 민혁의 차가우면서도 다정한 손 덕분에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아이네가 솔직하게 눈에 들어왔다.

“응. 위그드라실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간 민혁과 많이 친해진 선우는 믿음직스럽게 방긋 웃으며 민혁의 눈을 올려다봤다.

“그러면 헬. 니플헤임으로 돌아가서 대기해. 무스펠의 용맹한 전사 몇 명을 보내주는 거 잊지 말고.”

“무서운 생각을 하고 계시나 보네요.”

어둠에 익숙해졌어도 헬의 슬픈 표정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혼만큼은 헬의 아버지인 민혁은 감으로 헬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민혁은 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민혁의 불안한 마음을 확실하게 읽은 헬은 민혁의 손을 거절하고 니플헤임으로 돌아갔다.

“무슨 생각이지?”

“회니. 우리는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싸워왔습니다. 이번이 그 마지막이 되겠군요.”

이미르에게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한 것은 민혁, 진원, 선우 등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신이었다.

“너희는 김리궁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돼.”

회니는 이미르와 관련이 없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려고 나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빌도 회니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아이네는 진지한 표정으로 신들을 둘러봤다.

[쿵-]

“너흴 여기로 부른 건 위험성을 피부로 느껴보고…….”

“밸 없이 도망이나 가라고 불렀다는 시답잖은 이야기입니까? 평범한 인간이 아닌 신에게 그 얘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조용히 입다물고 있던 프레이르가 회니의 뒤통수에 대고 한심하다는 듯이 불만을 토했다.

[쿵-]

“여어, 절생긴 프레이르. 나설 땐 제대로 찔러주시는군.”

“진철 오빤 말보단 행동이에요? 아까부터 묠니르만 빙글빙글 돌리고나 있구.”

“나만 그러나? 여기 무기 들고 있는 녀석들은 모두 좀 쑤시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단 말이지.”

[쿵-]

진철과 미나는 라그나로크 직전이라고 하기엔 활달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심각한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두 신다웠다.

아이네는 자신 있게 때를 기다리는 신들을 둘러보더니 빌에게서 떨어져 스스로 몸을 추스르고 똑바로 섰다. 그녀는 신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고 그들의 결정에 시비를 따지지도 않았다. 멋대로 자신만만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휘감던 긴장이 서서히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손이 가슴 위에 얹어졌다.

[쿵-]

“다들 알아둬. 이미르는 마법에나 무기에나 방어력이 최상급이란 말이야. 왕년에 팔팔하던 아이네가 만든 최고의 골렘이니까.”

“우트가르드 로키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섣부른 행동은 피해야 합니다.”

민혁과 진원을 중심으로 -그 옛날의 로키와 오딘을 중심으로 신들의 결의가 모였다. 회니와 빌은 더 이상 두 번째 라그나로크가 될 지도 모르는 이 싸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들을 말릴 수 없었다.

[쿵-]

“작전은 없는 거야?”

인철이 일루션 아이를 개안하고 하드메탈소드를 꺼내 들며 민혁에게 물었다. 민혁은 사악하게 씩 웃었다.

“아이네가 이미르를 처리할 수 있는 마법을 완성할 때까지 무차별 공격… 이겠죠?”

[쿵-!]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