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라그나로크 이후) 제 2장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드래곤족의 수장이자 운명의 여신 노른 중 한 명인 스쿨드는 오늘도 흐시온체셔를 노리는 무법자들을 처치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해서 ‘믿음직스런 수장’이라는 호칭을 달게 됐는데…… 성별 논란 때문에 육체를 버릴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스쿨드-,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는 그대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아스가르드로 귀환하고 나서 20년간 잠만 자던 우르드는 얼마 전에 깨어나 바로 일에 복귀했다. 그녀의 즐거움은 스쿨드 자체였다.
“누구 놀려요, 지금?”
“넌 언제 여자로 돌아갈 건데?”
“윽…….”
환생한 신들이 일찌감치 육체를 버리고 본 신으로 돌아간 지금, 스쿨드만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30대도 청년이라면 청년. 딱 나이 30이 되니까 그간 예쁘장하던 외모에서 남성의 포스가 물씬 풍겼다. 영혼은 분명 여자지만 육체 때문에 확실하게 남자처럼 자라서 지금 육체를 버리면 남자로 살 때의 생활 습관을 쉽게 못 버릴 것 같았다.
“흐시온체셔를 노리는 자들 중에 드래곤도 있다면서?”
“지배자가 되고 싶은 건 종족 불문하고 마찬가지니까요.”
우트가르드 로키가 사용했었기 때문에 타 종족에서 눈독들이긴 했지만, 흐시온체셔는 원래 드래곤족의 물건이라 드래곤이 노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자기네 수장에게 대들어야 했으므로 죽음을 피한다 해도 평생에 걸쳐 비난 공세를 받아야 했다.
위험한 물건인 만큼 파기하기 쉽지 않았고. 막상 큰맘 먹고 없애자니 이제는 크리스털 드래곤이 10개체 채 남지 않아 현존하는 흐시온체셔가 마지막이자 유일한 것이 될 지도 몰라 많이 망설여졌다. 그래서 신족이나 드래곤족 수뇌부에서 흐시온체셔의 보존으로 의견을 모았다. 덕분에 스쿨드는 가뜩이나 바쁜 중에 거의 매일 싸움까지 응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이제 노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위그드라실 아래서 죽치고 살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살맛나는지 몰라.”
베르단디라는 존재는 초기의 아움드라로 돌아가 이미르를 이끌고 위그드라실의 안에서 영겁의 잠에 들었다. 과거·현재·미래를 각각 맡아 위그드라실 아래에서 실을 잣던 노른이 이제 우르드, 스쿨드 둘이 남게 됐다.
“그 덕분에 몇 배로 바빠졌는지 알고 있는 거에요?”
비밀 속에 묻혀 지내다가 밖으로 드러나자 새로운 할 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스쿨드야 원래 드래곤의 수장이었던 터라 본래의 일이 많이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우르드는 처음으로 그녀만의 일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그래서 우르드가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 뒷감당을 스쿨드가 도맡아 해서 우르드가 바쁘면 덩달아 스쿨드도 바쁘게 됐다.
“시간을 관장하는 우르드. 새로운 시간의 계약자가 좀 특이하다면서?”
“로- 키-.”
로키가 나타나자마자 스쿨드가 단박에 달려갔다. 나이 30먹은 청년이 20초반 얼굴의 화사한 미청년에게 들러붙으니 조금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나이 30먹은 청년이 원래는 예쁘장한 숙녀분이니 그 모습을 투영해서 봐야 할지도.
“야, 스쿨드, 징그러워.”
로키는 스쿨드를 간신히 떼어냈다.
“오늘도 멋진 활약상을 보였다면서? 날이 갈수록 늠름해지니 이거 누가 감히 드래곤 수장 자리를 이어받겠어?”
로키가 팔짱을 끼고 키득키득 웃자 스쿨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스쿨드는 말을 더듬거리면서 로키의 본 화제를 이어갔다.
“우, 우르드. 그 계약자, 어, 어떤 사람이에요?”
“사람이 아니라 인어야. 달의 진주를 줄 테니 20년 전으로 자신을 보내달라고 했어.”
과거를 관장하던 우르드는 시간을 지배하는 여신이 됐다. 그녀는 엄한 계약 과정을 통해 계약자에게 시간과 관련된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주고 있다. 페러렐 우주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년 전? 에엣! 라그나로크가 일어난 해가 20년 전이잖아요.”
“그나마 그 지옥의 일주일이 아니면 다행이게. 그런데 그 인어는 라그나로크 당시로 보내달라고 했어.”
“아니, 뭐 때문에 그 비참하고 어두운 때로…… 우트가르드 로키와 이미르가 폭주하는 모습이 눈앞에 뚜렷하게 그려졌다. 악몽보다 더 악몽이고 지옥보다 더 지옥이었던 라그나로크의 일은 기억해내는 것만으로도 몸을 오그라들게 했다. 스쿨드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계약자가 어느 시대, 어떤 시간을 원하는 지는 내 알 바 아니야. 관심 있는 건 ‘달의 진주’야.”
로키는 왼손 검지로 스쿨드의 이마를 꾹 밀었다.
“인어의 수명과 해저 광맥을 꿰뚫어 본다는 희귀한 진주… 였던 가요?”
스쿨드는 일전에 헬에게 놀러갔다가 달의 진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헬이 명부를 작성하는 데 있어 수명을 보여주는 물건들은 필수아이템이다. 그러니 헬이 달의 진주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마침 헬이 명부를 정리하다가 달의 진주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스쿨드가 주운 덕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만 말하면 누구나 탐낼 보석으로 밖에 보이지 않잖아. 달의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간을 알면 함부로 손 못 대지.”
“다시 말하면 일개 평범한 인어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우르드가 흰 주머니에서 은푸른색 진주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어의 순혈 왕족의 피를 제물로 삼아 그 결정을 이룬 귀한 진주였다. 인어의 왕족이 일곱 가문이 있으니 달의 진주도 일곱 개가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완성된 개수를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까 헬이 사용하지 않는 달의 진주는 오딘의 신전과 헬의 신전에서 세 개씩 보관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르드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훔친 거라면 도로 갖다놓겠는데 이건 그 어디 것도 아니야.”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진주를 도로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로키가 가볍게 가로챘다.
“그 말은 즉, 일곱 개의 새로운 달의 진주가 완성됐다는 거지. 이건 그 중 하나고.”
로키가 달의 진주를 빛에 비춰 보는 중에 묘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재밌는 장난거리가 떠올랐을 때의 미소였다.
“로키, 쓸데없는 생각 마.”
“이건 네 계약자에게서 받은 물건이고, 넌 그 계약자의 소원을 들어줬으니까 이젠 이건 네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이거 오늘 하루 빌려주면 안 될까?”
“안 돼.”
우르드는 이말 저말 다 필요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야,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한테 빌려주는 건 싫어.”
로키는 애정을 구하는 반짝반짝한 강아지의 눈동자로 우르드의 시선을 좇았지만 우르드는 냉정하게 달의 진주를 홱 낚아챘다. 로키의 표정이 금세 뚱해졌다.
“사근사근하던 우르드는 어디가셨나.”
“예전에 죽여 묻었다네. 나 간다.”
“조심해서 가세요.”
“변했어, 너무 많이 변했어.”
오딘의 의형제이자 토르의 둘도 없는 친구는 우르드의 냉대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입은 미소 짓고 있었다.
로키의 미소를 알아본 청년 스쿨드가 그에게 경고했다.
“우르드 성질 건들지 마요. 뒷감당을 어떡하려고.
“여기 듬직한 방패가 있잖아.”
[퍽!]
우악스럽게 후려치는 참에 스쿨드는 눈물을 찔끔 흘릴 뻔 했다. 로키의 애정표현은 날이 갈수록 토르의 애정 표현과 닮아갔다.
“그럼, 오늘도 앞으로도 수고-.”
꾀쟁이 신은 워프를 통해 유유히 사라졌다.
“결국 뭐 하러 온 거야? 후……. 으챠, 어디 순찰이나 다녀올까?”
-외전 제 2장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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