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성전수호록(완)

한 달 간의 성전수호록 : D-10 혈안왕의 리바이브!

★은하수★ 2009. 3. 20. 16:45

D-10 혈안왕의 리바이브!

 

[구구구구-!]

광맥의 산 전체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철궤가 직접 지배하는 이곳에 지진이라니…….”

테스는 유래 없는 일에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지진 자체에 평정심이 흔들린 건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라나……. 결국 겉껍데기를 부쉈군.”

성전 플리의 슬픔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플리도 비스 성녀를 성전 세이버 못지않게 예뻐했다는데 그 만큼 그녀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형용하기 힘들 겁니다.

성전의 모습은 모두 각 종족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을 겉껍데기를 쓴 것이라 합니다. 육체 없는 영체가 성전의 실체고, 자신의 의지로 겉껍데기를 들락날락거리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영체로 있을 때 가장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겉껍데기에서 막 나왔을 때는 어린 아이처럼 약하기 때문에 겉껍데기에서 나오기 전에는 늘 주위를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릴 내보내줘.”

고요하게 분노의 오라를 풍기는 한 인물. 그는 붉은 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눈을 낮게 내리깔고 목소리 톤도 같이 낮게 갈았습니다.

“저렇게나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봐.”

딥데어족의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덕분에 별별 난봉꾼과 싸움을 몸소 겪어본 지브릴마저 폴의 분노에 기가 눌렸습니다. 항상 모두를 통솔하고 능숙하게 상황을 대처하던 그녀가 손을 쓰지 못하니까 저절로 겁을 먹고 말았습니다.

“너희가 먼저 움직이면 라나가 드렌필드를 인질로 앞세울 게다. 예정대로 그 아이가 내 몸을 부수기 위한 수하들을 보낼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라.”

“벌써 몇 시간짼데……. 벌써 나시아(곧 해가 뜰 거라는 뜻의 새벽별)가 빛나고 있는데…….”

분노의 오라가 점차 짙어졌고 플리의 내부는 공포 분위기에 휘감겼습니다.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숨소리도 최대한 작게 냈습니다. 이러다가 긴장에 사로잡혀 있는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이상한 걱정까지 했습니다.

“생체리듬이 엉켜서 민감해진 게냐.”

“그런 꼴사나운 종족이 아니잖아.”

“그러면 기다려라. 영체로 돌아간 드렌필드를 제압하고 나면 라나도 쓰러질 테니. 여기로 오는 건 하프 데몬 뿐이야.”

“제 어미가 죽어 가는데 가만있는 자식은 ‘불효자’라 부르고 ‘패륜아’라 낙인찍는다지?”

“우린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그러니 기다려라.”

침착하게 드렌필드의 아들을 다독이는 플리와 밖으로 계속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억누르는 폴의 범접할 수 없는 대화가 분위기를 한 층 더 살벌하게 했습니다.

[우드득]

주변이 심히 고요해서 폴이 손가락 관절에 힘주는 소리가 심장을 놀래킬 정도로 크게 들렸습니다.

“플리. 한 가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엄청난 분위기를 뚫고 패시가 입을 열었을 땐 ‘저런 강심장!’하고 감탄했습니다.

“하게.”

“성전의 겉틀이 거대한 건 영체를 담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비스 성녀가 지금 석관을 개고 드렌필드의 영체를 그녀의 수중에 두려하고 있는 지금, 드렌필드의 실체를 구속할 수 있을 만한 것이 광맥의 산에 있습니까?”

패시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 사고회로가 ‘팟!’하고 켜졌습니다.

성전이 실체가 된 후 약한 상태로 있는 건 아주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그를 구속하려면 성전이 선택한 겉껍데기가 아닌 곳에 넣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성전의 영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흔한 것도 아니라서 그 그릇을 찾는 것도 일이라면 일일 겁니다. 역으로 보면 그릇이 될 수 있는 걸 먼저 찾아내어 파괴하면 성전을 구속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흔하지 않으니 역의 입장이 정의 입장보다 유리할 수 있습니다.

“큭큭. 역시 내가 눈여겨 본 위인이야.”

한 순간에 분노의 오라가 사라졌습니다.

“여, 플리. 대답해줘야지.”

“글쎄……. 광맥의 산이 내 자식인데 외부에서 직접 가져오지 않는 이상 여기 어딘가, 어떤 것에다가 드렌필드를 구속하는 건 불가능하지.”

싸움의 형세가 점점 지능전으로 변했습니다. 한 수를 먼저 치려했더니 그 수가 모순 된 수라 다시 재 한 수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이물질이 들어왔으면 철궤가 몰랐을 리 없지. 더욱이 크기도 어마어마할 테니까.”

성전 플리가 팔 말을 티가 대신 집어냈습니다.

“에?”

‘머리 굴리는 것이 내 특기야.’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다니는 본인인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도 머리에 모터를 단 것 마냥 거침없이 막 돌아가더니 흩어진 퍼즐을 맞췄습니다.

“왜?”

저의 표정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치니비가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판단의 목적이 성저의 파괴잖아. 그래서 항상 성전 근처로 쳐들어오고. 이번에 드렌필드를 빼돌린 건 그 방법이 안 먹힐 나라니까 비스 성녀가 위험 감수하면서까지 저지른 일이라며. 그들의 본 목적을 생각해보면 성전의 겉껍데기를 부순다는 건데, 그 다음 성전의 영체는? 우리야 성전이 본래 영체라는 걸 몰랐으니까… 음……. 비스 성녀는 알고 있었잖아. 심판단의 뒤에 서있는 비스 성녀는 처음부터 영체를 어떻게 할지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성전 플리고 그랬잖아. 심판단을 받아들인 건 그들이 절반은 몬데비언의 피가 흐르니까 라고. 비스 성녀가 여길 아지트로 고른 것이 성전 플리의 심리를 이용한 그 단순한 이유 하나 뿐이고, 성전의 실체를 구속하는 수단은 그녀 나름대로 손 쓸 수 있게 준비했다고 가정하면, 거대한 겉껍데기 없이 성전을 구속할 수 있다는 결론도 충분히 나올 법 하잖아.”

혼자 정신없이 가설과 결론을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나니 주변이 싸-해진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모두의 얼굴은 어처구니없다가 아니라 지독하게 말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골 때리는 아가씨.”

이렇게 말하며 제 머리 위에 손을 얹은 폴이야말로 골 때리는 복잡한 얼굴이었습니다.

“이 아가씨 말을 듣고 생각나는 거 없어?”

“우선 윌랜드의 백성에게 경의를 표하지. 하지만 카슬로. 아무리 라나라고 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

성전 플리가 말한 ‘그곳’에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뭔가 진귀한 것에는 사족을 못 쓰는 직업병이 발동한 겁니다.

“네가 심판단을 철저하게 지켜온 것처럼 세이버가 키니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데 불가능할 리 없지. 그리고 키니가 직접 들어갈 필요도 없어. 덧붙이자면 그 애의 든든한 아군이 그곳에서 드렌필드를 붙잡을 지도 모르지.”

가능성. 제가 제시한 가설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실에 너무 가까웠나봅니다. 저희가 가까운 미래에 들어간 카오스가 폴과 플리의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너와 윌랜드의 백성이 말한 대로 생각하면 세이버가 최근에 자주 출타한 이유도 금방 나오긴 하지. 세이버가 양다리를 걸친 건가…….”

성전 플리가 세이버를 염려했습니다. 비스 성녀와 심판단을 저지하기 위해 네 성전이 결의했는데 성전 세이버는 제 딸을 위해 움직여왔고 계속 그러고 있으니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이제 내보내줘야지. 녀석들이 왔잖아.”

폴은 짓궂은 얼굴로 피식 웃었습니다.

[캉!]

날카로운 것으로 세차게 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성전 플리를 둘러싸고 있는 심판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플리가 9명의 대표들을 알아서 분산해 내보낸 덕분에 반대편에 있는 심판단원을 상대하러 이동할 수고를 덜었습니다.

[화르르륵]

[캉!]

일부가 화염 마법으로 성전 플리를 달구고 그 다음에 나머지 일부가 도기나 둔기로 그 부분을 사정없이 두들겼습니다.

“쟤네 머리 나쁜 거지?”

전 패시와 폴과 같이 심판단원의 수가 가장 많은 쪽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다는 걸 알고서도 덤벼들어서?”

“재미없어, 폴.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건 되레 쇠를 단단하게 만드는 거야. 물가지 끼얹으면 완벽한 담금질이라고.”

“확실히. 차라리 저 불보다 더 강한 불로 계속 지지는 게 빠를 지도.”

패시는 백색검기를 들고 상대의 위치와 움직임을 빠르게 읽었습니다. 3초도 안 걸리는 스캔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타고나기도 했지만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 집중력을 갈고 닦은 데에 대한 보상입니다.

“폴은 마법으로 저들의 움직임을 봉하고 엑시델은 은촉 화살로 저들을 약화시켜.”

“라져.”

심판단이 저희를 알아챈 순간 폴이 그림자를 이용한 마법으로 그들의 파로가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트랩 오브 셰이드.”

[두두두두두두두두]

“윽!”

“이게… 억!”

“크윽.”

자동 난사가 단 몇 초 안에 화살통을 동내지만 솜씨를 화려하게 발휘해서 화살 하나도 빗나감 없이 전부, 제대로, 목표물에 박았습니다.

[타닥]

패시는 적기에 앞으로 나가 그들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죽이지 말아 달라’는 성전 플리의 부탁을 따랐습니다. 화살의 특제 은촉이 독으로 작용해서 그들을 서서히 죽이겠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그들이라면 속도가 느리더라도 자체 해독이 가능하겠죠.

패시의 아름다운 검무가 끝나갈 즈음에 그의 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낯익은 거구가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성전 플리 위에서 관전하던 혈안의 야수왕이 일방적인 싸움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패시! 뒤!”

폴이 ‘트랩 오브 셰이드’를 풀고 텔레포트로 패시와 혈안왕의 사이에 섰습니다. 저도 크로스보우에 새 화살을 채워 넣고 일반 모드로 바꾼 후 혈안왕을 겨눴습니다. 어차피 다른 놈들은 제대로 설 수 조차 없게 됐으니 3 대 1로 저희가 유리해 보였습니다.

딥데어족의 피보다 붉은 눈동자가 슈볼츠아웃 가의 막내를 노려보는데 그의 혈안은 드렌필드의 아들을 적의를 가지고서 마주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싸움꾼으로 보이는 그만의 무표정을 하고 옆에 텔레포트로 나타난 심판단원을 주먹 한 방으로 기절시켰습니다.

“뭐야…….”

제 눈을 의심하는 중에 다른 심판단원이 근처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르릉.”

자세히 보니 새로 나타난 녀석들은 혈안왕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전 크로스보우를 내리고 이 이상한 전개를 좀 더 지켜봤습니다.

“여, 무슨 사고라도 치셨나?”

“잔말 말고 그거 데리고 엑시델 크로네스테가 있는 곳으로 꺼져.”

혈안왕은 플리 위에서 저희의 등장부터 모든 걸 본 게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소드마스터인 패시를 ‘그거’라고 분명하게 말하다니. 역시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산 녀석 다웠습니다.

“엑시델보다 말버릇이 나쁜 자도 있구나.”

폴은 혈안왕에게 시비 걸지 않고 곧바로 패시를 데리고 왔습니다. 오자마자 패시의 말이 제 가슴을 찔렀지만요.

“배신자에게는 죽음뿐!”

아홉 명의 심판단원은 일제히 혈안왕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휘리릭]

[퍽, 퍽, 퍽, 퍽, 퍽]

혈안왕이 애용하는 무기, ‘리바이브’라는 이름의 채찍이 할연왕의 팔과 손이 이끄는 대로 허공에서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 속에서 심판단원 아홉 명은 살이 터지는 고통을 느끼며 단숨에 제압됐습니다. 힘과 실력의 압도적인 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리바이브, 오랜 만에 보네.”

폭풍 전야와 같은 분위기에서 2년 반 만에 본 혈안왕의 리바이브는 곧 닥칠 폭풍이 보통 폭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때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지만 리바이브를 보니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날 오후의 이야기

혈안의 야수왕에게서 비스 성녀의 근황을 듣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모친, 성전 세이버를 진주에서 끄집어내고 카오스로 억지로 밀어낸 것.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 따르는 심판단을 이용해 석관을 부수고 잠시 약해진 드렌필드를 사정없이 그곳에 던져 넣은 것. 금지된 마법을 사용하여 그곳의 문을 잠근 것. 전에는 절대 하지 않던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것. 예를 들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그걸 트집 잡아 폭행을 행사하고 조용히 살고 있는 하프 데몬을 억지로 심판단에 가입시키는 등 그녀가 마든 규율을 그녀가 솔선수범하여 깨부수고 있다는 이야기.

심판단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복종하지 않는 혈안왕은 강한 환멸을 느끼고 탈퇴할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 후, 소싯적 형이라 불렀던 슈볼츠아웃 형제를 찾아온 것이라 한다. 대표들은 -모두는 아니지만-기꺼이 그를 받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