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가정교사히트맨리본 판타지입니다!
2. 야마하루 NL커플이 기본입니다.
3.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4. 전에 쓴 중편 [환상곡]이 츠나요시 군 중심, [오페라]가 무크로 군 중심, [교향곡]이 히바리 군 중심, [칸타타]가 고쿠데라 군, [랩소디]가 람보 군 중심이었다면, [녹턴]은 야마모토 군 중심입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6. 이번 편은 커플을 설정하면서도 절대 로맨스가 될 수 없는, 그렇다고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한, 코믹도 어정쩡한, 장르를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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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춤
오후 2시. 라임 과수원에서 매일 조그만 인형극이 열린다. 꼬마 아이들은 쿄야와 같이 둥글게 모여 앉아서, 가운데 텅 빈 무대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인형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루도 일하다가 중간중간 인형극을 구경한다.
“쿄야의 인형극 어때? 내 인형극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재밌지?”
“빈말이라도 타케시의 인형극이 재밌다고 해야겠지만, 쿄야 씨의 인형극이 압도적으로 더 재밌어요.”
“이해해. 그나저나, 난 쿄야가 아이들 앞에서 인형극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여.”
타케시는 쿄야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인형술사라는 특이직업은 뒷세계에서 암살 의뢰, 절도 의뢰를 주로 맡는다. 인형술사 자체가 흑주술 중 하나라서 뒷세계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끊을 수 없는 인연. 그래서 보다 먼저 빛을 접한 타케시는 친구 쿄야가 의뢰를 한 무더기씩 맡을 때마다 안타까웠다. 타케시에게 이끌려 억지로 빛으로 나왔을 때는 사람을 직접 대하는 것이 서툴러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만 살던 쿄야를 빛과 연결해준 것이 바로 인형극이었다. 인형술사에게 인형극은 감각 유지용 장난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빛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어젯밤에 마을 밖으로 나갔었죠?”
하루의 기습 질문에 타케시가 뜨끔했다. 마스터 리본의 정보력을 통해 뒷세계의 의뢰를 받고 이것저것 가능한 것들을 최대한 빨리 해결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여태껏 인형술사로 살면서 들킨 적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루에게 매번 들켰다. 자신이 해이해진 건지 하루가 날카로운 건지 분간할 필요 없는 문제인데, 분명 자신이 해이해졌기 때문에 하루에게 지적당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자신이 해이해졌다거나 실력이 형편없어지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모순이 생겼다. 하루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디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을까.
“콘실러로 가려도 다 보인다구요.”
하루는 타케시의 이마를 손으로 슥 문질렀다. 그의 피부색과 동일한 색의 화장품이 그녀의 손에 묻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생긴 붉은 상처가 드러났다.
“콘실러도 알아봐?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화장품이 이렇게 잘 들켜서야, 실용성이 없잖아.”
“화장을 자주하는 여자들은 곧 잘 알아봐요. 그 전에, 얼굴 중 한 부분만 두꺼우면 누구든 의심한다구요.”
“콘실러는 두께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두껍지 않아.”
타케시는 하루의 작은 등에 슬며시 기댔다. 그녀는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손에 묻은 콘실러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한 순간의 알콩달콩한 대화가 지나간 뒤에 평화로운 침묵이 주변 공기와 섞였다. 쿄야의 인형들과 구경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연인들의 귀에 닿았다.
타케시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조그만 목각 인형이 머리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좌우를 둘러본 후 꼼지락꼼지락 기어 나오기까지 했다. 타케시의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간 다음에 하루에게 살포시 넘어가는데, 중심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팔을 파닥거릴 틈도 없었다. 인형은 굴하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정말이지. 장난은 어린애처럼 하면서, 하는 일은 무서운 것만 하고. 이중인격자 같아요.”
하루는 목각 인형을 두 손으로 폭 감싸듯이 조심스럽게 잡았다.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다음에 타케시 대신에 인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타케시는 인형의 눈을 통해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애절하리만치 깊게 슬픈 눈을 하고 있으면서, 얇은 입술과 여린 피부가 파르르 떨리면서, 용케도 부드럽게 미소를 만들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는 게 이 세상이잖아.”
“오늘 밤은 나가지 마요.”
하루의 체온에 취해있던 타케시는, 예상치 못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타케시는 얼른 몸을 돌려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하루의 표정을 확인했다.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차있던 눈은 어느새 무언가를 굳게 결심한 후였다. 어디서 언젠가 본 적 있는 눈이었다.
“오늘 밤엔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아요. 일주일 내내 철야했잖아요.”
“하루…….”
타케시는 조용히 그녀를 안았다. 최대한 부드럽게, 포근하게,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살짝. 고는 자신의 이마가 그녀의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하도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는 눈이 아니야. 하루, 뭘 생각하고 있어? 무슨 일인지 말해줘.”
그녀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표정은 온화했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타케시는 그 고동을 그대로 느꼈다.
“하루는 날 걱정하지 않아.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어. 내 말이 맞지?”
“내가…… 날 무서워 한다고요? 말도 안 돼요. 난 그저 당신이 다치는 게 싫어서,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게 싫은 거에요.”
하루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타케시의 인형이 그녀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인형은 스커트를 타고 풀밭으로 미끄러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루를 안은 두 팔을 풀었다. 그리고 인형을 주워들고 다시 그녀의 두 손에 쥐어줬다.
“나중에 이 인형처럼 날 놓을 거야?”
대답이 없었다. 그녀와 마주보고 있던 타케시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생사를 판가름할 만큼 중요한 사항을 결심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와의 결별을 일찍이 마음 굳힌 것처럼, 말이 아닌 눈으로 그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너무 갑작스럽잖아.”
“그러니까 오늘 밤엔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아요.”
“협박 같아.”
“협박이에요.”
하루는 일방적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고 ‘인연’을 걸고서 그를 목 졸았다.
“내가 하는 일, 마스터가 일일이 가르쳐줘?”
“그는 아무에게나 정보를 파는 값싼 인간이 아니에요.”
타케시는 순간 등이 서늘했다. 그가 익히 들어온 말버릇이었다. 그녀에게서는 처음 듣는 말이건만 줄곧 그녀에게서 들어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런 하루는 처음 대하기 때문에 막막할 따름이었다.
“오늘은 꼭 마을 안에 있어요. 절대 나가지 말아요.”
하루는 목각 인형을 살포시 풀밭 위에 내려놓은 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눈동자며 어투 모두 애원하듯이 부드럽게 변했다. 고집 센 아이를 강하게 몰아붙이다가, 아이의 기가 꺾을 무렵 마지막에 조용히 타이르는 것처럼, 그가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열심히 달랬다. 이번에도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 묘-하군. 권태기라도 된 거야?”
쿄야의 인형이 촐싹대면서 연인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느 새 인형극은 끝나고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쿄야는 인형을 손질하면서 연인의 대화 사이에서 틈을 찾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타케시가 한참 불리해 보였던 것이다.
“어머, 벌써……. 오늘 장 봐야 하는데. 타케시, 오늘 하루만 내 말대로 해줘요. ……. 먼저 가볼게요.”
하루는 사긋사긋한 발걸음으로 시장을 향해 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뒷모습을 보며 타케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의 그녀는, 그가 모르는, 알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낯익은 듯 하면서도 아닌, 또 다른 존재였다. 2년 동안 알고 지낸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이, 타케시. 아직도 모르겠냐?”
쿄야가 타케시를 내려다봤다. 한심해 하는 건 아니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못 알아보는 건 알겠는데, 방금 그건 네가 알아봐주길 바란 거잖아.”
“알아봐? 지금 내 머릿속에서 알짱거리는 그 여자랑 하루가 동일 인물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걸 인정하라고?”
체념.
“오늘 ‘만큼’은 너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거야.”
위로.
“오늘 ‘부터’겠지.”
포기
“그녀 말대로 방관만 할 거야?”
충고.
타케시는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적으로 간주했던 사령술사가 그녀라니, 이건 깨어나고픈, 깨어나야만 하는 악몽이었다. 2년 동안 줄곧 붙어 다녔으면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완벽하게 평범한 아가씨 행세를 했기 때문에? 아니다. 그가 외면해왔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자신이 그 사령술사라는 힌트를 일부러 보란 듯이 내놨다. 오늘처럼 노골적으로 자극했지만 그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겉에 보이는 ‘미우라 하루’만을 봤다. 그런데 오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을 밖 가까운 대도시에서 대대적인 카니발이 열린다. 그 소동에 섞여 위험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타케시가 맡은 일은 그 사건을 일으키는 것.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분명 그녀가 방해할 것이다.
“여태껏 미우라의 은혜로 무사히 목숨을 유지했잖아. 이번에도 그 은혜를 입으면 살겠지만…….”
“이번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한 쪽이 반드시 죽어야하는 일이 일어날 거야.”
“그래도 갈 거잖아.”
“난……. 미우라 하루의 연인이기 전에 뒷골목에서 시궁창을 헤치고 다니는 들쥐니까.”
암살을 생업으로 하는 흑주술사에게 행복한 생활이란 그저 한 순간의 꿈이었다. 꿈은 반드시 끝나고, 현실이 더 비참하게 다가온다. 타케시는 털썩 소리를 내며 뒤로 드러누웠다.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씨야.”
타케시는 여전히 무명의 사령술사와 미우라 하루 사이에서 헤맸다. 이번 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연인을 실망시키지도 배반하고 싶지도 않다. 쿄야는 타케시의 이런 복잡한 표정을 진지하지 않게 무표정으로 내려다 봤다.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타케시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이기에, 쿄야는 그저 비극이든 희극이든 훗날 일어날 결과만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야속하리만치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깊은 호수의 색으로 타케시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저 하늘처럼 모든 일이 없었던 것으로 깨끗하게 지워졌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을 조용히 웅얼거렸다. 그 소망에 간절함 따위는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인간상만 내비쳐질 다름이었다. 타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형. 타케시는 숨도 쉬고 심장도 뛰지만 인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와의 2년은 사치였다. 온통 사치투성이인 행복을 끝낼 때가 왔다. 그녀를 제대로 마주볼 때가 됐다. 뒷골목의 더러운 쥐로 돌아갈 대다. 이 이상을 바라서는 안 된다.
“심장이 깨질 것 같아.”
타케시는 두 팔을 지면에 붙인 채, 자신의 가슴을 하늘을 향해 훤히 내보이고선 본인의 심장을 위로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욱신거릴수록, 더 아프도록 방치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등 돌리는 것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와 같은 마음이고 싶었다.
“울고 싶어. 그런데 눈물이 안 나와.”
몸을 일으켰다. 쿄야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래도 눈물을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이럴 때면 자신이 인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갖곤 밀피오레의 보스를 처치할 수 있겠어?”
“나 대신 가주겠단 소리는 절대 안 하지?”
“자기 밥그릇 뺏기는 일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녀석인데, 내가 뭣 하러 그래.”
쿄야는 흥밋거리를 놓칠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와 타케시는 친구이기도 하면서 친구가 아니기도 하다. 지금의 그들은 사업상 동료일 뿐이다. 서로를 편리한 도구로 생각할 따름이다. 그 이상의 정을 두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쿄야는 동료로서, 타케시가 뒷세계의 규칙을 잊고 한 명의 여성에게 무한히 마음을 내준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잘못됐다고 탓할 수 없다. 절대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는 진실이 분명하지만, 끝까지 봐주는 것이 인간이자 동료로서의 도리. 그저 타케시가 몸이든 마음이든 심하게 망가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비극의 순간은 어느 때보다 빨리 온다. 오지 않길 바란 밤은 어느 때보다 빨리 오고 어느 때보다 길다. 마치 끝없는 밤이 이 세상을 지배한 것과 같은, 슬픔의 시간이 구슬픈 세레나데를 처량한 레퀴엠으로 바꾼다. 달콤해야할 녹턴의 선율이 쓰디 쓴 교향시로 변해간다. 심장을 난도질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영혼을 구속한다. 그렇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허무맹랑한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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