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나름 글렌 바스커빌과 레이시 커플링이랄까요? 레이시가 실존했던 여성이라 가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3.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4.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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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 공작가는 ‘뒷세계의 일’을 그들의 사명으로 여겼다. 어둠 속에서 위험하고 위법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을 가급적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왕가나 여타 귀족가는 바스커빌가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앞에서는 공작가로써의 예우를 다 하면서, 뒤에서는 더러운 가문이라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이긴 하지만 말이다.
외부와 쓸데없는 접촉을 하고 뒷세계의 일을 은밀하기 하기 위해, 바스커빌가의 본 저택은 외지고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왕가와 다른 귀족가만이 본 저택의 위치를 알았고, 그들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었다. 방문 전에 서신을 보내서 저택 통행증이나 마찬가지인 답신을 받고, 그 답신을 들고 와야 저택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된다. 바스커빌가의 본 저택에 방문하는 것이니만큼 방문자는 대개 뒷세계의 일 때문에 바스커빌가의 당주를 찾아온다.
특별한 승인 없이 왕래가 자유로운 자가 있다면 ‘바스커빌가의 백성’ 혹은 ‘어비스의 사자’라 불리는 자들뿐이었다. 그들은 바스커빌 공작가의 가신으로, 붉은 망토를 유니폼처럼 맞춰 두르고 다닌다. 그리고 ‘어비스의 사자’라고 불리는 만큼, 어비스의 생명체인 ‘체인’을 하나씩 무기처럼 부린다. 그들은 당주 글렌의 명령에만 복종하며, 바스커빌가에 주어진 뒷세계의 일을 처리하는 주 청소부라고 할 수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도 당주의 명령이라면 두 말 없이 해내야 하는 것이다.
당주 글렌 바스커빌은 육체는 인간이다. 그것도 타인의 몸. 그는 어떠한 영혼체로서, 보통 인간은 불가능한 것을 두 가지 정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방금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육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비밀 의식을 통해 살아 있는 그릇(인간)에 영혼이 들어가는데, 그릇의 본 주인은 ‘글렌 바스커빌’의 이름으로 살면서 차츰 진짜 글렌에게 영혼을 잠식당한다. ‘잠식’이라고 해서 나쁜 뜻은 아니다. 당주답지 않던 자가 점점 당주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비스의 체인 다섯 개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단 하나의 체인과 계약할 수 있다. 그런데 글렌은 계약인지 지배인지 어떠한 방법으로 다섯 개의 체인을 소유하고 있다. 레이븐, 그리폰, 도도, 아울, 자버워키. 이 체인들 자체가 ‘글렌 바스커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비스와 필연적으로 엮인 운명이다.
“방이 마음에 드십니까?”
글렌이 직접 레이시를 안내했다. 모든 사용인을 물리치고 단 둘이 저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마지막으로 레이시가 쓸 방에 도착했다.
그녀의 방은, 과장을 좀 하자면, 여염집 단층 전체 넓이만큼 넓었다. 싱글 보다는 퀸 사이즈에 가까운 침대엔, 하늘색 얇은 실크레이스 캐노피가 달려 있어, 순백 시트의 단조로움에 화려함이 가미되어 보였다. 화장대, 테이블, 의자, 심지어 램프 등 모든 가구는 진갈색 고급 원목제품이었다. 소위 말하는 ‘앤티크’에 해당할 것이다.
“너무 예뻐요.”
레이시는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짧고 조용히 감탄사를 내비쳤다. 어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라 흥분이 작게 일렁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것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워서가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가구들을 능숙하게 다뤘다. 서랍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열어보고 램프도 켜봤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 물건들의 존재 자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녀의 것이었던 것처럼.
“이상하군요. 전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당신과 잘 어울립니다.”
글렌의 눈에도, 방의 모든 것과 레이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였다.
그 방은 바스커빌가의 저택에 있는 수많은 빈 방 중에, 아직 어느 손님에게도 내준 적 없는 유일한 방이었다. 저택이 지어진 이래로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의아한 곳이었다. 방과 관련된 괴담이나 금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레이시가 방의 주인이 될 것이니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그 방은 레이시만의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마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 방의 존재가 모든 신비스러움을 자아냈다.
“커다란 거울…….”
레이시의 키를 훌쩍 넘는 전신 거울이 방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잠깐 잊고 있던 것이 레이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가 거울 면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만이 손끝에 느껴졌다.
“거울방을 생각하시나 보군요.”
“거울방보다는 체셔……. 체셔가 절 애타게 찾고 있을 거예요.”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다가 갑자기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러더니, 겁에 잔뜩 질리거나 숨이 멎을 만큼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이 최대한으로 커졌다. 글렌의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봤지만 거울 말고 그녀의 눈에 들어올 만한 건 없었다.
“레이시?”
“생각나지 않아요.”
그녀는 오른손을 거울면에 밀착시켰다. 손에 가려진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체셔의 얼굴이, 체셔의 목소리가, 체셔의 손이, 체셔의 온기가. 전부 기억나지 않아요.”
[파직]
손에 닿은 부분이 둔기에 맞은 것처럼 둥글게 그리고 여러 갈래로 금이 갔다. 글렌은 레이시가 체인과 유사한 힘을 가졌음을 느꼈다. 그저 체인과 유사한 힘이었다. 그녀가 체인은 아니었다. 인간이 어비스에 떨어지면 체인으로 변한다더니, 레이시는 그 중간 단계인가 싶었다. 체인이 되기 전에 우연한 기회에 어비스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글렌은 그녀를 다시 어비스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녀가 가진 힘을 보니 더더울 보내고 싶지 않았다.
“레이시!”
그는 일부러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거울에 닿아 있는 오른손을 낚아챘다. 작은 거울 파편이 박히거나 긁혀 지나가서, 추한 상처가 생기고 그녀의 눈동자만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리 와서 앉으십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아……. 어쩌다가…….”
글렌이 각 방마다 비치된 구급상자를 찾아 올 동안, 레이시는 제정신이 들어 손의 통증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가진 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무 오래 방치해둬서 거울의 유리가 약해진 모양입니다. 손님방에 저런 것을 그냥 두다니, 면목 없습니다.”
“아니에요. 겨우 손만 다쳤는걸요.”
“이 저택에 오자마자 피를 보셨습니다. 저택의 주인으로서 불경스러운 일에 책임 져야만 합니다.”
바스커빌가의 당주는 어비스에서 온 여성을 손수 치료해줬다. 손에 박힌 유리 조각을 뺄 때나 소독약을 바를 때와 연고를 바를 때도, 그녀가 통증을 덜 느끼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내내 안타까운듯 슬픈 얼굴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갑자기 일어난 거잖아요.”
“그래서 더욱 죄송한 겁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편히 지내셔야 할 방에서 뜻밖의 사고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든지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이 너무 애틋하여, 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얼굴이 붉어졌다.
“비난이라뇨. 당치도 않아요. 이렇게 직접 치료도 해주시는 분께 그럴 수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지 모르는 제게 지낼 곳을 주셨잖아요. 이 정도 상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이시는 차곡차곡 감긴 붕대를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다친 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했다. 언제나 체셔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이제는 형체도 기억나지 않는 체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체셔의 보호를 받아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가씨가 편히 쉬려면 저 거울을 먼저 치워야겠습니다.”
“가지 말아요.”
글렌이 거울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그의 망토를 붙잡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레이시는 그를 저지하고 나서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의아하여 두 눈을 동그랗고 크게 떴다.
“아…….”
왼손에 쥐고 있던 망토를 머뭇거리며 놨다. 글렌은 당황하지 않고 엷은 미소를 띠며 민망해진 그녀의 왼손을 슬며시 잡았다.
“알겠습니다. 저건 시종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우선 테라스로 나가시죠.”
그는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을 방 안으로 들였다. 그들은 커다란 거울이 방 밖으로 내보내지고 바닥에 어질러진 조각을 아주 작은 티끌까지 깨끗하게 치웠다.
글렌과 레이시는 기다리는 동안 의자 네 개가 둥글게 놓여있는 티테이블을 두고,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녀의 방에 딸려있는 테라스에서는 장미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면 장미의 향기도 진하게 풍겼다. 레이시의 방은 저택의 손님이 아니라 아가씨에게 어울릴 법한 최고의 경치를 가지고 있었다.
레이시가 어비스에 대해 잊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비스에서 나오고 만 하루 만에 자신이 어디서 왔었는지, 이방인이라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자신의 이름만 분명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껏 바스커빌가 본 저택의 자신의 방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글렌은 사용인들을 모조리 바꿈으로써 레이시에게 그녀의 기억 왜곡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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