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나름 글렌 바스커빌과 레이시 커플링이랄까요? 레이시가 실존했던 여성이라 가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3.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4.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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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가 가끔씩 특별한 힘을 발휘할 때면 글렌이 그의 체인으로 그녀의 힘을 억제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어떠한 힘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점차 힘을 덜 사용하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갔다.
글렌은 눈을 뜨고 있을 때면 한 시도 그녀를 곁에서 떨어트리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 대한 독점욕이, 그녀가 그를 원하는 것보다 몇 배나 강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도 그의 독점욕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사교계에 그녀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철저히 입단속 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면 그녀를 그녀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그녀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답답할 만도 하건만, 그녀가 그를 거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바스커빌의 백성들은 글렌이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것은 무려 당주의 일. 캐낼 생각은 일절 없었다. 만약 글렌이 숨기고 있는 것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구구구-]
수도 사블리에에 지진이 일어났다. 진도에 비해 피해가 적어서 복구 작업이 수월하게 끝났다.
“글렌.”
장미 정원이 가장 초라해 보이는 계절, 겨울. 뽀얀 눈이 얕게 쌓인 그곳에서, 연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레이시가 글렌의 눈을 똑바로 진지하게 쳐다봤다. 눈이 너무 하얘서 일까. 그녀의 눈동자가 유독 붉어 보였다.
“어비스의 문이 열린 거지?”
글렌은 레이시의 기억이 돌아왔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바스커빌가 저택에서 멀지 않은 어느 곳. 지진 발생의 근원지에서 어비스의 문이 열렸다. 어비스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겠지만.
“역시 겨울이라 춥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망토를 길게 당겨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처럼 스스로 그의 품에 안기지도 않았다. 서있는 그대로, 그를 응시하는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로를 보며, 눈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레이시는 조용히 글렌을 밀쳤다. 결심이 굳은 눈으로 그의 눈을 말없이 다시 한 번 응시했다. 글렌은 그녀가 무엇을 결심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시대로 하게 놔둘 수 없었다.
“내가 어비스의 문을 닫겠어.
“당신은 할 수 없어.”
“내가 소유하지 않은 문이라도 충분히 닫을 수 있어.”
“당신이 아무리 다섯 개의 문을 갖고 있어도 ‘오즈’를 이길 수 없어.”
그녀는 어비스의 최하층의 절대 존재를 언급했다. 어비스의 사자를 이끄는 글렌조차 이름밖에 모르는 존재를 그녀가 알고 있었다. 어비스에서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 것이다.
오즈. 어비스를 구속하는 존재. 어비스에서 태어나는 체인의 수를 조절하고 어비스의 무분별한 성장을 억제하는, 감시관 같은 존재다. 실체는 없다. 어비스를 키우고 체인을 만드는 ‘어비스의 핵’처럼 어비스라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한 가지의 ‘힘’이다. 어비스의 핵과 오즈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어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부정기적으로 체인을 통해 어비스로 들어온 인간에게서 얻는다. 인간의 영혼은 어비스의 핵이 취하며, 육체는 오즈가 취한다. 그것이 긴 시간 축적되면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완전히 에너지화 되지 못하고 남은 영혼의 찌꺼기가, 어비스의 핵 주변을 떠돌다가 하나로 합쳐져서 ‘어비스의 의지’라는 하나의 영체가 된 것이다. 그것은 다시 어비스의 핵과 융합하여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핵-오즈 균형체계에서, 의지-오즈 균형체계로 바뀐 어비스. 그러나 의지의 힘이 점점 오즈보다 강해지고, 균형이 무너진 어비스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까지 엉망이 되고, 의지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오즈는 어비스 한 곳에서 의지 몰래 힘을 키워갔다. 언제나 자신이 직접 어비스를 통제했지만, 이제부터는 그와 같은 힘을 가진 체인이 그를 도울 것이다. 훗날 태어날 비-래빗과 매드 해터와 같은 대체인용 체인이.
“저 문은 오즈가 연 거야. 의지가 열었다면 수많은 체인이 쏟아져 나왔을걸? 그는 내가 어비스의 폭주 때문에 현실 세계로 튕겨 나간 체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무서운 목소리로 날 부르고 있어.”
레이시는 어비스의 문이 열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가진 힘이 점점 어비스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오즈는 널 없애려는 건가?”
“그게 그의 역할이니까.”
글렌은 오즈에게 따르지 말라고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니 화를 내기는커녕 무기력해졌다. 레이시는 어비스에 있어야 할 존재로서, 어비스에 복종해야 한다. 이 사실을 새삼스레 뼈에 사무치게 재인식했다. 그렇지만 존재가 소멸될 것을 알면서 어비스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진정 옆에 있을 수 없다면, 어딘가에서 살아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는 문과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픔과 괴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비스에 가겠다고 결심한 레이시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에서 흘러나오는 어비스의 힘은 강해지고, 레이시의 힘은 약해졌다. 레이시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쓰러지기 전에 글렌이 부축해 줬지만, 그 상태에서도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글렌은 축 처진 레이시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도 너무 달랐다. 그는 슬픈 만큼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이 그의 몸에 완전히 밀착되고, 그녀가 그의 힘 때문에 바스러질 만큼 세게 안았다. 따뜻하면서 떨리는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귀를 타고 내려가 목과 어깨에 닿았다. 그녀의 심장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온몸으로 그의 체온과 감정을 느끼고 나니 두 팔이 저절로 그의 허리를 둘러 안았다. 오즈를 따라야 한다는 결심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미련 없이 글렌을 떠나기로 한 결심이 너무 쉽게 사라졌다.
체인을 파괴하는 힘 때문에 어비스의 사자들은 문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체인을 꺼내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어비스에서도 문을 통해 체인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이 현세에 오래 열려 있을 수록 현세와 어비스 사이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러기에 필히 억지로라도 문을 닫아야 했다.
힘이 점점 약해지는 레이시. 어비스와의 유대가 완전하지 않은 덕분에 이나마 버티는 것이었다. 그래도 현세에 균열이 생기기 전에 그녀가 먼저 소멸할 것이다. 글렌은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이 인간 중에서 특별하다지만 역시 오즈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했다. 인생 최대의 패배감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체인이 모두 사라진대도 오즈에게 대항하겠어.”
무리한 오기였다.
“도박이라면 다른 것도 있어.”
레이시는 두 손으로 글렌의 얼굴을 살며시 감쌌다. 체온도 내려가서 차가워진 손은 글렌이 이성을 잃지 않게, 바짝 정신 차리도록 자극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글렌은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내리고 다시 그녀를 꼬옥 안았다.
“네 체인으로 어비스의 최하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줘. 의지를 만나서 소원을 빌 거야.”
“소원?”
“응. 소원. 의지는 어비스에 들어온 인간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했어. 핵이었을 때와 다르게 인간의 영혼을 마구 먹지 않거든.”
“들어줄까?”
“들어줄 거야. 난 그녀의 손님이었고, 체셔에게 대접받기까지 했는걸. 그녀의 무료함을 달래준 대가로 소원을 들어달라고 할 거야. 내가 당신을 만나기 전 시점에, 당신이 바스커빌가로 들어오기 전에 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그 때의 난 평범한 인간이었고 체인과 계약하기 전이었어. 당신을 그 때 만나면, 체인과 계약하는 누를 범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차있었다. 기대감도 있었다. 어비스의 의지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아무리 어비스의 의지가 만능해도…….”
“할 수 있어. 의지와 오즈는 어비스의 두 개의 힘. 시간이 뒤틀린 그곳에서 시간을 바로 볼 수 있는 존재. 의지는 나의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로 보내줄 거야. 그러니까 글렌. 의지가 있는 어비스의 최하층을 향해 문을 열어줘.”
-에필로그
과거가 바뀌고 미래도 바뀌었다. 글렌이 레이시를 발견하던 과거가, 레이시 바스커빌이 그릇이 될 소년을 발견하여 글렌 바스커빌로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비스를 통제하는 오즈가 레이시를 없애기 위해 어비스의 문을 연 미래가, 어비스의 의지의 폭주를 막기 위해 레이시가 스스로 재물이 되어 어비스로 들어간 것으로 바뀌었다. 레이시가 어비스로 가는 것은 변함없다. 하지만 글렌과 레이시가 함께 있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났고, 레이시를 향한 글렌의 집착이 그 이상으로 커졌다. 영혼이 어비스의 의지에게 먹히고 껍데기만 남은 레이시. 육체는 쉽게 죽지 않았다. 그 안에서 자라는 생명을 무사히 낳은 후에야 이 세상과 연을 끊었다. 의지의 장난일까? 레이시의 미련일까? 레이시의 영혼을 취한 의지는, 레이시의 몸에서 태어난 생명에 편승하여 몸은 하나나 영혼은 둘인 존재로 태어났다. 새 생명은 축복받지 못했다. 글렌에게 그 존재는 딸이 아닌 의지를 구속하기 위한 도구였다. 레이시가 그를 위해 만들어준 대어비스용 살아있는 무기였다. 과격한 성격에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앨리스. 하지만 사리분별능력이 뛰어났다. 의지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적절한 때에 몸을 내주거나 어비스로 돌려보낼 줄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알기 때문에, 망나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의지에게는 쌍둥이자매처럼 잘해줬다. 영혼의 쌍둥이 중 한 쪽. 두 앨리스 중 진짜 앨리스. 그녀는 레이시의 유산이었다. 어비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 레이시. 그리고 그 운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진짜 앨리스. ㅡ이것이 자크 베자리우스가 글렌을 만나기 전의 바스커빌가의 이야기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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