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이것은 PandoraHearts(판도라하츠) 팬소설입니다!
2. 나름 글렌 바스커빌과 레이시 커플링이랄까요? 레이시가 실존했던 여성이라 가정하고 쓴 소설입니다.
3.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4.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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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e Welt(별세계)
화가 바짝바짝 났지만 용케 웃고 있는 소녀와, 소녀가 죽도록 무섭지만 용케 웃고 있는 소년. 붉은 망토를 두르고 달려 있는 모자까지 뒤집어 쓴 소녀와, 어깨에서 발끝까지 오는 검은 망토를 걸친 소년. 그들은 처음 보는 것들 때문에 말없이 둘러보기만 했다.
말도 없는데 차체가 혼자 길을 지나다니고, 더불어 바퀴 없이 공중에 떠다니며, 더욱이 가벼운 나무가 아니라 무거운 철로 만들어졌다. 길은 넓게 정돈되어 있고, 양쪽으로 지붕 없는 건물들이 하늘 높이 연이어 서있었다. 창문이 빼곡하게 수두룩하고 육각 상자처럼 생긴 건물들은 전부 성처럼 높고 고대해서 그 아래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당장이라도 덮칠 만큼 위압감이 느껴졌다. 거리에서 간간히 음악이 들리기도 했다.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가 섞여 있어 듣고 있자니 거북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제각각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남사스러우리만치 짧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에 한 손에 쏙 들어가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모양도 제각각이고 색도 제각각이었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지만으로 계속 꾹꾹 누르는 사람도 있었고 빤히 쳐다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글렌, 여기가 대체 어디야?”
소녀는 낯선 풍경에 시선을 박아두고서 한 손으로 소년의 멱살을 덥석 잡았다. 소년은 소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살기 때문에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글-렌-.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
드디어 소녀가 소년을 노려봤다. 그리고 목이 졸리도록 양손으로 소년의 멱살을 최대한 세게 휘어잡았다. 소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소녀의 손목을 살짝 감싸 잡았다. 멱살을 잡히니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코, 노코 마애. 크에, 노코 마애.”
“뭐?”
“이크어, 이거 조음.”
소년은 소녀의 손을 툭툭 쳤다. 소녀는 분한 마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지만 부들부들 떨며 꾹 참았다.
긴 검은 망토를 걸친 소년의 이름은 글렌 바스커빌. 바로 어제 체인 다섯 개를 모두 받고 당주가 됐다. 붉은 망토를 두른 소녀의 이름은 레이시 바스커빌. 선대 당주의 여식이며 어비스의 사자 중 한 명이고, 소년을 당주로 세우기 위해 길거리에서 찾아낸 당사자였다.
선대 당주는 글렌 바스커빌에게 영혼을 먹히기 전에, 아니, 처음부터 글렌의 의지와는 별도로 자신의 의지로 바스커빌 가를 이끌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자식까지 뒀다. 외동딸 레이시. 그러나 글렌의 의지를 자신의 육신 속에 재워둔 채 다섯 개의 체인을 다스리자니 몸에 엄청난 부담이 쌓였다. 결국 새 육체를 찾기 전에 선대 당주의 영혼이 소멸했고 글렌의 영혼이 육체에 갇히는 꼴이 됐다. 그래도 덕분에 글렌이 100의 순례를 탈 일이 없어졌다. 새 육체로 들어갈 때까지 현세에 무사히 안주할 수 있었다. 선대 당주의 외동딸은 여자라서 글렌의 영혼을 받을 수 없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친부의 육체에 갇힌 글렌과 교감하면서 글렌만을 따랐다. 그녀가 떠돌이 소년을 데려온 것도 다 글렌을 위해서였다. 소년과 소녀가 아닌, 글렌과 소녀는 둘도 없는 서로의 이해자였다. 어비스의 사자들은 그 틈에 낄 수 없었다. 절대로.
“글렌 바보! 아직 몸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서 자버워키를 쓰니까 이렇게 됐잖아.”
레이시가 원래 심술부리고 고집부리는 여아가 아니었다. 이제 글렌이 부친의 몸에서 해방되고 새 육체를 통해 자신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뭐든 같이 하고 싶고 언제든 같이 있고 싶었다. 불현듯 이런 욕심이 생겼다. 잘 해주고 싶은데, 좋은 말만 해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미안. 너무 오랜만에 체인을 사용해서 그런지 어렵네. 감각이 무뎌졌나봐.”
[꼬옥]
“뭐하는 거야!”
레이시는 글렌을 밀치고 재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뒤집어쓴 모자 덕분에 얼굴에 그늘이 졌지만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나 새빨간 두 뺨이 두드러져 보였다.
“방금 레이시가 너무 귀여웠는걸.”
글렌은 새 육체는 어리지만 영혼은 3~400년을 살아서 레이시에 비해 포옹에 익숙했다. 그렇다 해도 바스커빌 가의 평범하지 않은 당주가 타인에게 애정을 가졌던 적이 없어서 간단한 포옹조차 실제 경험이 몇 번 안 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레이시를 껴안은 건 글렌 본인으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 몸으로 애 취급 하니까 기분 나빠. 나랑 동갑이잖아.”
“나는 한 번도 나의 레이시를 어린애 취급한 적 없어.”
아직 레이시는 몰랐지만 글렌은 어린 레이시를 자기만의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아장아장 걷던 때부터 지켜보면서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었지만, 레이시가 자신인 아닌 주워 온 소년만 챙기는 모습을 본 후부터 소유욕의 정체를 깨달았다. 물건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품에 안을 여인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레이시를 보면서, 레이시의 보살핌을 받는 소년을 보면서, 여태껏 그렇게나 새 육체를 바랐던 적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 빨리 새 육체를 지배하고 싶었다. 레이시를 품을 몸이 하루 빨리 필요했다.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마.”
“응, 알았어. 집에는 제대로 돌아갈 거야. 레이븐을 쓰면 좀 더 안전하겠지. 그래도 이런 곳에 올 기회가 별로 없잖아. 구경하다 가자.”
“내가 보고 싶은 건 어비스였어.”
“아까 실컷 봤으면서 뭘. 어차피 집에 돌아갈 때 어비스를 거쳐서 가야 하잖아. 그리고 앞으로 질리도록 볼 텐데?”
글렌은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로 소녀의 허리를 감싸고 자기 쪽으로 살며시 당겼다.
레이시는 글렌의 미소 앞에서 더 이상 심술부릴 수 없었다. 소녀에게만 허락된 표정이라는 것을 소녀도 알고 있었다. 전 날 영혼이 옮겨진 뒤 눈을 뜬 글렌은 가솔들 앞에서 전혀 웃지 않았다. 자신과 있을 때만 웃었다. 특권을 누리고 있어서 이 이상 심술궂게 행동하면 자신이 나쁜 아이가 될 것 같았다.
소년과 소녀는 손을 마주 잡고 넓은 인도를 걸어 다녔다. 긴 망토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누구든 쉽게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최소한 그 거리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세상엔 별난 이들이 많으니까 소년과 소녀도 그 중 일부일 것이라고 가볍게 넘겼을 지도 모른다.
높디높은 건물을 하나씩 지나가면서 1층이 투명한 대형 유리를 통해 안이 훤히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것들이나 그보다 큰 뭔가가 줄을 지어 진열 돼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조그만 사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글렌과 레이시는 쇼윈도에 이마를 꾸욱 붙이고 그것을 쳐다봤다. 거의 노려보다시피 했다.
“환상을 보여주는 도구인가?”
글렌은 변화무쌍한 화면에 흥미를 가졌다. 오래 살면서 그런 물건은 처음이었다.
“여긴 진짜 언제의 어디일까?”
“글쎄. 재밌는 곳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둘은 다시 천천히 느긋하게 걸었다. 건물의 줄이 끝나는 곳에 십자형 큰 도로가 나타났다. 말도 없고 바퀴도 없는 차체가 씽씽 지나다니고, 사람들은 소년소녀가 서있는 곳과 그 맞은편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차체가 다니는 길에도 좌우로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전후로는 길 위에 정지해 있었다. 좌우의 흐름이 멈추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소년소녀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인파에 휩쓸려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손을 꽉 잡았다.
[찌르르릉]
요란한 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차도를 가로질렀다. 글렌과 레이시도 건너 인도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뒤에서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밀리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사블리에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
“그러게. 이런데서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정말 곤란하겠어.”
“왜 하필 그쪽으로 생각하는데?”
레이시는 손을 잡은 상태에서 글렌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글렌이 무얼 위해 존재하고 어떤 일만 해왔는지 알기 때문에 표정이 금방 어두워졌다. 하지만 글렌은 크득크득 웃더니 레이시의 손을 고쳐 잡았다. 살포시 부드럽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나의 레이시와 있을 때는 레이시만 생각해야겠는걸. 나만의 아가씨가 질투하면 곤란하다고.”
“질투라니……. 그리고 지금 모습으로는 애 취급 하지 말라니까.”
“애 취급 하는 게 아니야. 난 새 몸이 너와 같은 나이라서 좋은걸. 아주 마음에 들어.”
“무려 글렌님이 그런 소리하면 어떡해. 빨리 어른이 돼야지. 다들 위엄 있는 글렌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몸이 작아도 얼마든지 그들을 다스릴 수 있어. 난 그저 너와 같이 크고 죽 같이 옆에 있고 싶어. 나이가 같으면 같은 시선에서 같은 걸 겪고 똑같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잖아. 레이시만 옆에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옆에 있는 소년은 더 이상 그 날 거리에서 주워 온 소년이 아니었다. 동시에 부친의 몸 안에 갇혀 있던 글렌도 아니었다. 소년과 글렌이 묘하게 섞인 존재 같았다. 레이시는 친애하는 소년도 아니고 존경해 마다않는 글렌도 아닌 그가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둘에게서 각각 그랬듯이, 지금의 옆에 있는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자신이 보살펴야 할 것만 같았다. 거리의 소년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주고 여러 가지를 가르친 것처럼, 부친의 몸에서 외로이 때를 기다리는 글렌에게 말동무가 돼 준 것처럼, 지금의 소년 글렌 바스커빌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다. 그가 가진 깊은 외로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혼자 두자니 위태해 보였다. 고독에서 구제해주고 싶었다.
“정말 뭐든 할 수 있어?”
“응. 뭐든.”
레이시는 모자를 뒤로 걷어 젖히고 활짝 웃었다.
“그러면 여기서 더 놀다 가자. 나 지금 무지무지 놀고 싶어졌어.”
소녀가 소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때부터 소년에게 있어 세상의 중심은 소녀였다. 이전부터 마음속에 천천히 차오르던 소녀의 자리가 드디어 소년의 마음을 전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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