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외전2 ①

★은하수★ 2010. 4. 16. 18:13

외전 2

키메라의 영구한 번영을 꿈꾸는 거대 조직, 길드 크루세이더. 보스 클러치 사마엘을 필두로 12명의 초고위 간부가 길드를 이끌고 있다. 이 12명을 따로 ‘츠뵐프 리터’라고 부르며 제 1기사부터 제 12기사까지 각 숫자는 서열을 뜻한다. 다시 말해. 크루세이더의 츠뵐프 리터는 ‘길드의 최강자 랭킹 12’를 상징한다. 서열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간부 간에 실력 차가 크면 공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제 1기사는 길드 창설 시부터 바뀌지 않았다. 인간-가루다 키메라 원 세훈. 부동의 제 1기사는 언제나 보스의 옆에서 그를 위해 움직였다.

세상은 돌연변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혼혈도 겨우 인정하는 세계이거늘, 키메라까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것을 수용하기란 생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키메라를 배척하는 존재는 세계의 생명체 중 거의 대부분이라 할 만큼 수두룩하지만, 가장 심한 존재는 뭐니 뭐니 해도 천상계의 유사 신족이다. 그들은 키메라를 세계의 불순물이라고 정의했다. 다행히 천상계의 유사 신족은 지상의 악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일생의 거의 전부를 천상계에서 지낸다. 키메라가 천상계로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만큼, 서로 만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천상계에서 키메라를 발견하면 경고도 없이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키메라 중에 한쪽 종족이 천상계 소속 종족인 경우, 천상계에 있을 때마다 유사 신족과 맞닥들이지 않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 이렇게 유사 신족이 키메라를 눈엣가시 이상의 성가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시 예외도 있다. 원하든 아니든 키메라를 만드는 유사 신족이 있기 때문에 그쪽 키메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길드 크루세이더의 제 1기사는 지상계의 하급 가루다를 통해 키메라가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천상계 가루다 다섯에게서 오성 의식을 받았다. 이 진실을 아는 자는 천상계 상급 가루다와 지상계 하급 가루다의 차이를 아는 극소수 실력파뿐이다. 세훈은 키메라가 된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그 다섯에게 무한히 감사했다. 그들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생명의 은인에게 변고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천상계 가루다 일족 내부에 조그만 항쟁이 일어났고 그 다섯이 우연찮게 휘말려서 목숨을 잃었다. 당신이 세훈이면 어떻게 하겠는가? 천상계-천상계 키메라라고 할지라도 ‘키메라’인 순간 지상계 존재다. 지상계 존재가 천상계에 간섭할 수 없는 법. 세훈이 은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애도하는 것밖에 없다.

길드 가디안스의 제 4천왕도 플러스가 가루다다. 오리지널이 갓블러드이고 각성 후라서 충분히 강하다. 그러나 그녀는 멜로즈를 지키기 위해 가루다 왕족에게서 오성의식을 받고 키메라가 됐다. 그녀도 세훈처럼 개인적인 빚이 있었지만, 키메라가 되어 빚이 생긴 것이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 키메라가 됐다. 세훈 다음으로 가루다가 섞인 키메라가 됐고, 그녀 이후로 아직까지 가루다를 한 쪽으로 가진 키메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급 가루다를 통해서도 키메라가 나오지 않건만, 상급 가루다를 통해 키메라가 된 존재가 둘씩이나 한 시대에 공존하는 것은 신기함을 넘어 수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상계 가루다 일족은 소수면서, 그 안에서도 단 5%만이 천상계와 지상계 모두를 아우르는 왕족이다. 수치상으로는 전 가루다 중에서 0.5%가 왕족인 셈이다. 길드 가디안스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멜로즈’는 현 가루다 킹의 외동딸이며 유일 왕위계승자다. 그러나 ‘가루다 왕가 혈통 몰살 작전’사건 이전에는 여덟 명의 왕위계승 후보 중 첫 번째였다. 어리지만 직계 자손이기 때문에 순위가 높았다.

가루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천상계 종족은 상급 이상이기만 하면 천상계와 지상계 어디에서든 거주가 가능하다. 그러나 하급은 선택받지 않으면 천상계로 갈 수 없다. 천상계의 상급 존재가 지상계로 갔을 때 신분을 속이기 위해하급으로 격하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지상계에서 그들의 진짜 등급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 격하된 계급을 다시 올리기란 몇 십, 몇 백 년 걸려도 한참 모자라리만치 어려운 일이나, 유사 신족으로 분류되는 천상계 상급이 지상계에 내려가서 하급이 됐다가 다시 천상계로 올라가면 곧바로 회복된다. 그래서 천상계 상급이나 여타 유사 신족이 특수한 존재인 것이다.

종족 가루다를 통솔하는 왕족은 당연히 유사 신족으로 분류되는 상급이다. 가루다 자체가 용을 잡아먹는 종족인데 그 종족의 상급이라면 얼마나 강할 지 상상이 되는가? 그런데 그 왕족을 몰살시키려는 지상계의 어떤 존재가 있었다.

일족 내부 항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왕족을 노리는 불순분자가 둘 셋씩 작은 규모로 끊임없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왕족에게만 허락되는 힘 덕분에 작은 불온한 움직임을 곧장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위계승서열 1순위가 너무 어려서 한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있는 강한 보디가드가 필요했다.

아직 마법에 서툴러서 자신의 지금 형태만 겨우 유지하는 어린 공주님. 가루다의 본래 형로는 어른들이 잡아다 주는 짐승이나 한 통 가득히 쌓인 과일을 주위 시선 아랑곳 하지 않고 추잡하게 먹어치우는 것이 전부였다. 날개 대신 손과 팔이 있고, 몸집도 작아지면 신체 연비가 향상되면서 갖가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가루다는 가루다. 가끔 본체로 용을 잡아먹어야 본래의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몸과 손이 편하다지만 자신의 본래 몸이 그보다 더 편한 것이 당연지사다. 그러니 외동딸로써 오냐오냐 자란 멜로즈는 좀처럼 형태 변형 마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부르셨습니까?”

“크리세이스 하갈을 찾아 데려와주게. 그녀에게 공주를 맡기겠네.”

“그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가루다의 왕은 신 하갈의 피가 흐르는 갓블러드와 아는 사이였다. 가족이 다른 갓블러드에게 침략을 당했을 때, 유일하게 각성한 크리세이스가 적들을 상대했지만 수적으로 심히 밀렸다. 그래서 쓰러지기 직전, 남은 마력으로 도박을 걸었다. 이계 소환술. 어떤 존재가 나올지 모르지만 남은 마력 전부를 걸고 용병이 돼 줄 존재를 소환했다. 그것이 가루다 킹이었다. 크리세이스의 가족은 유사 신족의 도움 아래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대신 크리세이스는 소환의 대가를 언제 어떻게 치를지, 매일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 상대가 유사 신족이었으니 만큼 부담감이 심신을 강하게 짓눌렀다. 각성한 갓블러드라도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나이라서 더욱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것도 가족들 모르게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미스 하갈. 우리의 왕의 명령에 따라 당신을 데리러 왔습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가루다의 왕이 보낸 사자가 크리세이스를 찾아왔다. 크리세이스는 갓블러드의 각성한 힘 덕분에 인간의 모습을 한 사자가 본래 가루다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긴장 속에서 다시 마음을 굳게 다잡고 사자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난생 처음 천상계에 들어갔다.

천상계에서 가루다의 영역은 거대한 신전 도시 같았다. 천상계의 대부분이 신전 도시의 형태를 가졌다지만, 가루다의 영역은 기암절벽을 깎거나 뚫어서 만든 듯했다. 하얀 대리석이나 웅장한 신전은 없지만, 하나로 이어진 절벽은 집이며 제터며 석상이며, 신전 도시에 있을 법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크리세이스의 눈에 별천지가 보였다.

영역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양쪽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점차 넓게 뻗어나가는 절벽이 단단하고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일반 성년 가루다보다 10배는 더 거대한 가루다 모양의 석상이었다. 절벽과 절벽 사이 공간 중 정 가운데를 차지하고 입구를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다. 활짝 편 날개는 양쪽 절벽과 평행을 유지하며 곧게 뻗었고, 꼬리는 왕이 머무는 곳을 향해(입구와 정 반대 방향) 45도 각도로 치켜 올렸다. 꼬리 길이가 몸길이 만하기 때문에 절반가량은 나선으로 둥글게 말렸다.

크리세이스는 사자를 따라가면서 주위 풍경에 넋을 놓다가 문득 자신이 가루다 일족의 구경거리가 됐음을 알아차렸다. 유사 신족보다 더 드물다는 갓블러드다 보니 어딜 가나 눈을 끌었다. 외형은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천상계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력을 방출하다 보니 종족을 고스란히 들키는 건 별 수 없었다.

[우웅]

한 가루다가 거대한 본래의 모습으로 크리세이스의 위를 지나갔다. 그녀는 큼지막한 그늘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담담하게 구름으로 취급했다. 주변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천상계의 곳곳을 연결하는 빛 계단에서 마력의 흐름이 흐트러지면 발이 쏙 빠져버리기 때문에 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오늘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이 여자야?”

왕의 거처에 들어서자마자 키가 크리세이스만 한 가루다가 뛰어나왔다. 돌바닥과 돌 벽이 튼튼한 덕분에 진동이 적었지만, 커다란 몸이 궁궁궁궁궁궁궁궁궁- 뛰어오니 새끼 가루다라도 위협적이었다.

“공주님. 이 분은 갓블러드입니다. 호칭에 유의해 주십쇼.”

“갓블러드? 신의 자손? 대단하다-.”

멜로즈는 크리세이스와 사자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묵직하게 뛰어다녔다. 날갯짓을 했더라면 발소리가 덜 났을 텐데 두 날개를 몸통에 꼭 붙이고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실내에선 날면 안 된다는 왕의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잘 지켜서 뛰어다닐 때마다 소음이 상당했다.

가루다 일족의 어린 공주는 크리세이스와 사자의 앞길을 막으며 멈춰 섰다. 그리고 크리세이스에게 바짝 다가갔다.

“신의 자손이면 신의 힘을 쓸 수 있어?”

“각성한 자만이 일부 쓸 수 있습니다.”

“너는?”

“각성 했습니다.”

“우와-.”

공주는 털이 북실북실한 머리를 크리세이스에게 가까이 들이밀더니 볼을 맞대고 마구 비볐다. 너무 들뜬 나머지 크리세이스가 초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서 지인들에게 하던 어리광을 그대로 해버렸다. 크리세이스는 머리의 반 이상이 털에 파묻혀서 숨을 제대로 못 쉰 채 비빔질 이 끝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키가 비슷해도 몸집 차가 나름 심해서 크리세이스가 조금씩 옆으로 밀렸다.

크리세이스와 처음 만났을 때의 멜로즈는 누구에게나 어리광을 부리는 만년 꼬마였다. 크리세이스는 가루다 킹의 제안으로 키메라가 되고 멜로즈의 보디가드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멜로즈에게 제일 먼저 왕족으로서의 위엄을 가르쳤다. 얌전한 행동거지와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마법실력. 보디가드 주제에 가정교사 노릇을 한다고 당연히 비난 받았지만 간단히 이겨냈다. 주변을 의식할 것이었으면 천상계에 머무를 것을 처음부터 거절했을 것이다. 멜로즈도 처음 두 달만 거부하고 제멋대로 행동했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세이스를 믿고 따랐다. 공주-보디가드보다는 친구 관계로서 말도 편하게 놓고 속마음도 시원하게 텄다.

길드 크루세이더에서 ‘가루다 왕가 혈통 몰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천상계에 발을 들인 것은 3년 후였다.

제 1기사 원 세훈이 보스의 이름을 앞세워서 가루다 킹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마침 가루다 일족은 내부에서 소형 항쟁이 다시 빈번해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왕이나 신하들이나 지상계의 키메라가 까불면 얼마나 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드 가디안스가 만들어진 직후이자 크리세이스가 엘더 피스크의 권유를 받고서 가입을 망설일 때였다. 신생 길드의 넘치는 활기와 뜨거운 의지가 온몸의 세포를 자극하는 느낌이 좋아서, 멜로즈를 데리고 자주 놀러갔다. 가디안스는 이 특별한 손님들을 의아하게 보거나 특별 대접을 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자신들과 똑같이 대했다. 멜로즈는 형태 변화 마법을 익혔지만 날개만큼은 아직 완전히 감추지 못한 채 아지트 곳곳을 뛰어다녔다. 어느 샌가 가디안스는 크리세이스와 멜로즈에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됐다. 어떤 위험이 나타나도 아지트 안에 있거나 가디안스의 일원과 함께 있으면 안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보스(타 길드의 보스나 가디안스 내 길드원과 비교해서) 못지않게 핵심 인사 몇몇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강하고, 일반 길드원마저 키메라로서는 강한 측에 속하는 이들 뿐이었다.

“크루세이더에서 선전 포고라고?”

시아는 크리세이스에게서 가루다의 왕이 받은 선전포고문에 대해 들었다.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 확산 계획이 명실 공히 개념 없는 일이건만, 천상계에서까지 다른 무개념 행각을 벌일 줄은 몰랐다.

“키메라가 천상계 가루다에게 덤벼서 뭘 어쩌겠냐만은, 그래도 조심해야해. 가루다에게도 천적은 있는 법이고, 키메라 중에 와인드급 이상은 구성 종족을 막론하고 성룡급 드래곤과 여유롭게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하거든. 게다가 크루세이더가 벌이는 짓이야. 수 만 번 조심하고 경계하고 주의해도 모자를 만큼 빈틈을 약삭빠르게 찾아내는 녀석들이야.”

크리세이스는 시아에게 들은 것을 가루다 킹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하지만 왕은 타종족 보디가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멜로즈를 데리고 지상계에 다녀온 일에 대해 심하게 잔소리를 들었다. 크리세이스는 이것이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늘도 상급 가루다 세 명이 아바마마를 공격했대. 아바마마가 정말 폭군인 거야?”

날개는 축소만 하고 완전히 감추지 못한 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멜로즈가 크리세이스에게 다가갔다. 크리세이스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멜로즈는 그녀의 옆에 쭈그리며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두 팔로 두 다리를 바짝 끌어안고 머리를 크리세이스의 무릎에 슬며시 기댔다. 크리세이스는 멜로즈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었다.

“성령사도를 죽인 것 자체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야. 하지만 그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지상계의 가루다가 모조리 죽었을 거야.”

대자연의 의지를 읽고 신탁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자를 ‘성령사도’라고 부른다. 가루다 일족에게는 다섯 명의 성령사도가 있었다. 크루세이더의 제 1기사를 키메라로 만든 자들이다. 기들은 가루다 일족이 번영하고 유사 신족으로서 더 성스러워지기 위해서는 지상계로 타락한 가루다를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상계에 존재하는 것은 동족도 뭐도 아니며 그저 날짐승이라고까지 비하했다. 그런데 성령사도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가 상당수였다. 그들은 지상계의 가루다를 전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고 필요한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가루다 일족 전원의 번영과 존속을 책임져야 할 가루다 킹은, 성령사도와 그 무리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일족의 90%를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령사도를 죽이는 것도 대자연을 모욕하는 대죄다. 갈등? 왕은 깊이 갈등하지 않았다. 자신이 죄인이 될 망정 동족을 구해야했다. 결심을 굳힌 왕은 친위대를 이끌고 성령사도와 그 무리 중 일부를 제거했다. 이 때문에, 성령사도를 처벌하되 죽이는 것만큼은 안 된다고 반대했던 자들이 성령사도의 나머지 무리와 합쳐져서 왕의 죄를 묻기 위해 조금씩 오랫동안 항거해 왔다.

“내가 왕이 되도 다들 싸움을 멈추지 않을 거야.”

“새로운 성령사도가 나타나서 왕의 결백을 증명할 때까지 누가 왕이 되든 상관없이 무익한 일이 계속되겠지. 이미 수많은 목숨이 의미 없이 사라졌어.”

“크루세이더에서 길드원들이 쳐들어오면 막을 수 있을까?”

“외적이 쳐들어오면 내부가 튼튼해진다잖아. 좋은 기회일 수 있어.”

멜로즈는 크리세이스의 위로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엉망이 되어가는 일족이 크루세이더의 공격을 훌륭하게 막을 수 있을까? 심하게 다치고 수많이 죽어도 영역을 지킬 수 있겠지. 설마 그것마저 어려울까? 이번 일도 왕의 책임으로 돌아갈까? 속으로 수없이 질문했지만 대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은 하나 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