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보석전쟁록

한 달 간의 보석전쟁록 : D-24 후원(後苑) 보석

★은하수★ 2010. 12. 21. 10:57

 

D-24 후원(後苑) 보석

 

기사단이 전날, 사냥 대회에 이어 연달아 스페셜 지옥 훈련을 했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임식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네리가 왕성 서고에 콕 박혀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샤샤는 오랜만에 리벤에게 개인교습을 받고 있었다.

조그만 체구의 소년이 적정 길이보다 한 뼘 더 긴 목검을 들고 안정적인 자세로 대련에 임했다. 리벤이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검을 휘두르든 상관없이 척척 막았고, 리벤에게 틈이 보이면 놓치지 않고 공격했다. 어느 한 순간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다음 동작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점이 일품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특별 수업을 받은 10대 중후반 소년들보다 우수하다 못해 지금 당장 실전에 내보내도 충분했다.

한 홉 한 홉이 빠르고 무게 있었다. 리벤이야 제 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정도로 임했지만, 작고 어린 소년에게는 위협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전력으로 모든 기량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샤샤만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탁 탁 탁 타악 탁 탁 타닥]

목검끼리 부딪힐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노란 장미 정원으로 끌어들였다. 사용인, 하급 관료, 근위병, 기사 등 모여든 사람들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들 중에 샤샤가 리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리벤과 목검을 맞대는 소년이 대단하게만 보였다.

“이런 걸 보고 영재교육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에드워드가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나타냈다. 포르포냐 모자를 제외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머리와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가 머리를 들라고 명하는 중에도 목검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리벤이 트리오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무례하다고 떠들든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억지로 머리를 숙였을 것이다.

마침 공중을 날아다니던 윌이 에드워드의 앞을 막아섰다.

“방해하지 마, 바보 에디. 샤샤는 지금 수업 중이라고.”

“알아.”

에드워드는 자신의 탄생정령 파이어 드래이크와 함께 나란히 서서 대련수업을 참관했다. 대련이란 참관하는 쪽에서도 유익하기 때문에, 리벤이 직접 지도하는 대련수업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는 자로서 아둔한 처사였다. 그리고 쥬엘 나이트 포함 기사의 신분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이 대련이 흥미로울 것이다.

“숲에서 자라서인지 몸이 날렵해.”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동체시력과 육감도 이미 어엿한 기사야.”

구경꾼 중 리벤의 테스트를 통과하여 기사(Knight)를 유지한 자들이 서넛 있었다. 그들은 샤샤가 훈련관 리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샤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봤다.

“헌팅 소드나 투 핸드 소드가 아닌 경우에야 쥐는 법을 즉흥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검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지. 그런데 저 아이는 이미 검을 두 손으로 쥘 때와 한 손으로 쥘 때를 본능에 새겨 넣었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지지대 발과 진행 발을 적재적소에 딛을 줄도 알아. 키 차이나 무기 길이 차이 때문에 생기는 거리감을 보폭으로 조절하는 센스는 여간해선 기르기 어렵단 말이지.”

샤샤는 순식간에 주목 대상이 됐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스무 명 남짓 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고요한 숲에서 자란 어린 소년에게 그 정도 시선과 소음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충분했다. 그래서 리벤이 샤샤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전에 대련을 임시 중단했다.

“지금 놀고 있는 걸로 보여?”

리벤은 목검의 끝이 관중을 향하도록 팔을 곧게 내찔렀다. 그녀에게 지목된 자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반응이 없는 자가 있다면 그녀를 잘 아는 에드워드와 그녀를 파악하기 시작한 기사들 정도였다. 그러나 트리오라는 존재에 높은 경외심을 가진 자들은 천적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새끼 사슴마냥 극도로 긴장했다.

“오호라. 한가한 녀석들이군. 앞으로도 한가할 수 있게 네 놈들의 두 팔을 전부 부러트려주마.”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크고 넓게 울려 퍼지면서 금방 공포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얼굴이 새하얘지도록 겁먹은 소시민들을 구해낸 것은 에드워드였다.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야. 자, 어서.”

그는 산뜻하게 손뼉을 두 번 치며 분위기를 중화했다. 리벤인 진심으로 화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발산한 위장 분위기도 겨우 한 번 일순간이었기 때문에, 에드워드 혼자 충분히 소시민들을 리벤의 덫에서 빼낼 수 있었다.

“이왕 멈춘 김에 잠간 쉬자.”

“네.”

샤샤는 꽤 의연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당연히 당황했지만 리벤이 그들에게 화를 내는 척 할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진정됐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포르포냐님께서 기사단을 허술한 바보집단이라 부른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기사 한 명이 졌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으며 포르포냐 모자에게 다가왔다. 다른 기사 두 명도 느긋하게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안식일인 만큼 복장이 가벼웠는데 본인 무기는 빠트리지 않은 채였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전사로서, 비상시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준비를 매순간마다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런데 리벤은 절대 샤샤를 기사단에 넣지 않을 거야.”

에드워드가 웃으면서 단호하게 대신 응했다. 그는 이미 샤샤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어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샤샤는 에드워드의 면전이라 어색하게 미소 짓는 것이 고작이었다.

“샤샤의 장래희망이 기사이긴 한데, 왕성 기사단에 들어갈지 말지는 본인이 정할 일이야.”

“에에에에?”

리벤의 언급에 에드워드가 과장되게 반응했다. 그리고는 미간에 주름이 생기도록 눈에 힘을 주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로 샤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샤샤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었지만 에드워드가 양 어깨를 꽉 쥐고 있는 터라 가만히 당해야 했다.

“샤샤는 훌륭한 기사가 될 거야. 하지만 왕성 기사단에는 들어가지 마. 썩어빠진 귀족들이 득실대는 곳이거든.”

“왕자님. 그 말씀은 저희에게도 포함되는 것입니까?”

“그대들은 자신이 썩어빠진 귀족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리가요.”

“그러면 일일이 따지지 마. 얘기가 끊어졌잖아.”

샤샤는 에드워드가 기사들 쪽으로 주의를 돌린 사이에 그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리벤의 뒤에 숨었다. 아무리 의젓해도 어른이 무서운 꼬마아이였다.

“샤샤, 샤샤. 내가 저 바보 에디를 혼내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랬다간 에드워드 왕자님의 정령이 화낼 거예요.”

윌과 샤샤는 두 손을 마주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샤샤가 자신에게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포르포냐님. 따님은 쥬엘 나이트인 것 같던데 같이 수련하지 않는 겁니까?”

“그 애는 부친을 따라 제약사가 되는 게 꿈이야.”

“대자연의 축복을 받은 타고난 재능이 아깝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우선이야. 정해진 대로 사는 건 재미없잖아.”

리벤은 보는 사람도 속이 시원해지도록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려 활짝 웃었다. 이것은 경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네리의 결정은 생모도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니 제 3자가 입에 담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사들은 속뜻을 알아듣고 충분히 이해했다.

샤샤는 윌의 보호를 받으며 노란 장미 정원을 아장아장 돌아다녔고, 에드워드는 그 뒤를 성큼성큼 따라다녔다. 쫓기는 입장에서 무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리벤이 기사들을 돌려보낼 때까지 에드워드와 샤샤의 술래잡기는 끝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순수하게 샤샤가 귀여울 따름인데 샤샤는 호의 충만한 에드워드가 무서워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겼다.

“적당히 해. 애가 경기 일으키겠어.”

리벤이 에드워드를 막아서면서 쫓고 쫓기는 꼬리잡기가 끝났다.

“윌. 샤샤를 방에 데려다 줘. 샤샤. 저녁 먹고 야간 연습을 할 테니까 푹 쉬고 있어.”

샤샤는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에 윌이 샤샤의 손을 잡고 에드워드를 경계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그들의 뒷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볼 뿐 손을 흔들어 보인다든지 잘 가라고 크게 외친다든지 샤샤가 더 놀랄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조카한테 사족 못 쓰는 바보 삼촌 같아.”

“실제로 조카들에게 꼼짝 못한다고.”

제 2왕자 에드워드와 제 1왕녀 에덴은 미혼이지만, 제 1왕자 레이먼드는 일찍 결혼해서 자식을 두 명 두었다. 실은 에드워드와 에덴이 왕족으로서 혼인이 늦은 것이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약혼녀마저 없는 상태였다.

“아-. 이름이 ‘헬렌’이랑 ‘루비트’라고 했지?”

“응. 7살이랑 4살이야. 그러고 보니 헬렌이 쌍둥이랑 동갑이군.”

에드워드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 애들도 서쪽에서만 사는 거야?”

“형수님이랑 애들은 자유롭게 다녀. 형이 서쪽에만 있겠다고 멋대로 정했을 뿐이야.”

“반역자로 찍힌 녀석을 잘도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르는구나.”

“반역자 건 살인자 건 형은 형이야.”

“첩이 낳았는데도?”

“우리는 그걸 따지지 않잖아. 그래서 형이 ‘제 1왕자’인 거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리벤과 에드워드의 표정이 조금씩 씁쓸하게 변했다.

왕위계승서열은 정식 혈통을 따르지만, 측실의 자식이라도 일반 귀족으로 신분을 낮추지 않고 왕족 그대로 대우하는 점에서는 주변 다른 왕조에 비해 자비롭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왕족서열과 왕위계승서열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심리적 충돌이 발생해서 필연적으로 왕족 사이에 조용한 갈들이 일었다. 만약 레이먼드가 막내로 태어났다면 신분서열 때문에 갈등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제도 때문에 농락당하는 왕자님은 지금 자기 자리에 있으려나?”

“적어도 성 안에 있을 거야.”

“그건 당연히 알아. 최근 들어 외출을 안 한다면서. 서쪽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리벤이 인상을 힘껏 찡그리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에드워드의 이마를 꾸우우욱 밀었다. 그런데 리벤의 손가락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다.

“세상에…….”

에드워드의 등 뒤로 보이는 무언가에 리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점차 의기양양하게 변했고, 무언가가 에드워드를 앞질러 에드워드의 시야에도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과하게 미소 지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지.”

“레이 형?”

클라마 왕국의 제 2왕자는 제 1왕자의 예고 없는 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둘 다 오랜만이야. 리벤 스피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한심하게도 스스로 금기를 깨버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다들 이해해 주리라 믿어.”

“제멋대로 틀어박힌 주제에 말은 잘해.”

리벤은 예의를 차리는 말투가 낯간지러워서인지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우스운지 레이먼드의 정면에서 피식 웃었다. 레이먼드는 특유의 온화한 표정 그대로였다. 그 역시 리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말과 표정과 행동에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어제 내 부하가 저지른 무례를 사과하러 왔어. 리벤보다는 에디에게.”

레이먼드의 시선이 에드워드에게로 움직였다. 에드워드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레이먼드의 온화한 표정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일시적이지만 배 다른 형이 반역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어쩌면 레이먼드가 뻔뻔하게 성 안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그가 가진 특유의 온화함과 타인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감화력일지도 모른다.

“저 브라콤(브라더 콤플렉스:Brother Complex)이 감격에 겨워 울게 생겼어.”

“안 울어.”

“그러면 바보 같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대체 뭐냐?”

리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드워드를 놀렸다. 다 큰 어른이 나누는 대화 치곤 유치했다.

“건강해 보이는군. 리벤 스피어.”

“이 사람들이 정말……. 결혼해서 성을 바꾼 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스피어’라고 부르는 거야?”

대화 상대가 순간적으로 레이먼드로 바뀌었다. 리벤의 원래 목적이 레이먼드이긴 했지만 지금 그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 기억 속의 그대는 영원한 아르테미스거든.”

“애가 둘인 아줌마야. 철없던 시절의 이름은 잊어줘.”

“그래. 이제 그대는 어머니라는 존재지.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이로운 존재야.”

리벤의 시선에서 레이먼드는 아버지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고 자식의 수가 늘어날 때마다 관록이 붙는다더니, 천성이 점잖은 레이먼드가 포용력 큰 성인으로 보였다. 리벤은 착시일지도 모르는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돌려 말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야. 레이먼드. 난 널 죽이려고 수도로 돌아왔어.”

“오늘은 안부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알아서 직설적으로 나오는군. 무서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지 않겠어?”

“다음 기회가 오면 이미 네 부하 중 한 명이 나한테 아작 났을 거야.”

“그렇게 쉽게 당할 만큼 약한 자는 없으니까 너무 신경 세우지 마.”

레이먼드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실력자 앞인데도 태연했다. 대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자체가 일반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난다. 리벤 입장에서는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다.

“리벤 포르포냐. 난 이 클라마 왕국이 소름 끼치도록 싫어. 국왕을 보면 비위가 상하기도 해. 귀족들과 같이 있으면 내 정신이 썩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 하지만 그대는 아니야. 질리지도 않고 위선도 없어. 형편없는 세상 속에서 그대와 말을 튼 사이라 정말 다행이야.”

슬픔과 분노는 이미 예전에 초월했다.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도 지금 꾸미는 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하는 것도, 이미 그 예전부터 불가능해진 것이다. 레이먼드의 시선에 맞춰 세상을 보아 그를 이해하려 한들 이미 늦을 대로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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