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보석전쟁록

한 달 간의 보석전쟁록 : D-22 인형 속의 보석 (1)

★은하수★ 2011. 1. 2. 10:48

 

D-22 인형 속의 보석

 

방랑벽이 심한 잭이 그나마 가끔씩 들러 잠깐 동안 머무른다는 거처는 클라마 왕국의 극북지역에 있었다.

그곳은 사자의 망령도 방문을 꺼린다는 르마인 숲이 유명하다. 사안(邪眼)의 던전으로도 불리는데, 그곳에 서식하는 식물들은 하나같이 할로윈 장식용 괴기 식물처럼 생겼고, 곳곳에서 독기가 흩날린다. 르마인 숲 전용 나침반이 없으면 기습적으로 나타나는 독기 덩어리에 녹아내리기 십상이다.

잭의 거처는 르마인 숲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리벤이 10살도 되기 전, 막 잭의 제자가 되었을 때 고생의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에서 한 발자국 나가는 것 자체가 죽기를 각오한 한 걸음이었다.

처음부터 독하게 단련한 덕분인지 거처에서 나온 후로 어려움 없이 지냈다. 밖이 르마인 숲보다 안전하다보니 웬만한 것들은 다 만만해 보였다. 그리고 매일 죽음을 염두한 각오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에 임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그런데 르마인 숲보다 더 무서운 것이 스승 잭이었다. 그를 따라 걸어가다가 두 눈 부릅뜬 채 그를 놓치는 것이 다반사였고, 그를 찾으러 다니는 도중에 별별 종류의 인간들과 마주치는 것은 수련 여행의 필수옵션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친분을 맺는 것보다 성가신 불량배들을 처리하는 경우가 세 배로 많다는 점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점이었다. 이것 때문에 잭과 수차례 말다툼을 했었는데 당하는 쪽은 100% 리벤이었다.

리벤은 극북지역을 향해 말을 몰면서 자신이 무의식중에 옛 생각을 할 줄 몰랐다. 과거 기억을 더듬는 자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크게 웃어 젖혔는지 말이 놀라 우왕좌왕했다.

“워- 워-.”

말을 진정시키고 방향을 고쳐 잡았다.

상공을 자유롭게 날며 따라오던 윌이 리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왜 그래?”

단순히 궁금할 뿐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윌은 리벤이 몸 상태가 안 좋거나 심리적을 불안해 보이면 직접 묻지 않아도 쉽게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일수록 말을 아꼈다.

“그냥 옛날 생각을 좀 했어. 늙은이 같지?”

“그게 뭐 어때서. 추억거리에 빠진다고 해서 늙었다고 안 해.”

윌은 리벤과 나란히 가면서 손가락으로 리벤의 볼을 쿡 찔렀다. 갓 구워 폭신한 빵을 찌르는 것과 느낌이 비슷했다.

“이 탄력 있는 피부 좀 봐. 역시 젊어.”

“쿡. 피부가 젊은 거랑 정신이 늙은 거랑 비교할 수 없지.”

리벤과 윌은 긴 여행길이 지루하지 않게 서로에게 장난도 치고 다양한 얘기 거리로 대화를 끌고 나갔다. 서로 조용할 때도 있었다. 장난이나 대화 소재가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주변 경관이 괜찮다 싶으면 하던 것을 멈추고 눈요기에 매진했다. 둘은 한 모태에서 같이 태어난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닮았다.

“잭 아저씨는 어디 있을까?”

윌은 리벤의 스승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불렀다.

“살아만 있으면 어디에든 잘 있겠지. 워낙 알 수 없는 사람이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나 안 끼치면 좋겠는데. 원래 폐를 끼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본의 아니게 바보짓을 해서…….”

리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잭은 국사로서 최적의 인재지만 평범한 지인으로서는 나사 한두 개 빠진 전형적인 은둔형 현자다. 그래서 제자로 있던 시절부터 스승 걱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제멋대로 바람 따라 물 따라 길 따라 돌아다녀서 착실한 심부름꾼은 기대할 수도 없고. 사제 되는 아이는 생겼으려나. 아마 없겠지. 있었으면 일찌감치 너구리 영감한테 데려가서 소개했을 거야.”

“잭 아저씨의 파트너는 오리에드라서 정령으로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의외로 어렵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나 오리에드나 숨어서 돌아다니는 데 도가 텄어. 원래 생업이 암살이었으니까 그렇겠지만, 무작정 돌아다닐 때조차 기척을 지울 필요는 없잖아. 흔적 하나 정도는 남겨줘야 비상시에 연락할 수 있지.”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나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처럼, 아줌마 수다에 ‘걱정’이라는 요소를 넣어서 한숨을 절묘하게 섞으며 재잘거렸다. 혀가 바쁜 대화일수록 주목 받는 법인데, 그들 주변에 수풀만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크으으읏!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을 찾은 다음에 왕성까지 무사히 데려가는 것도 만만찮게 어렵잖아.”

왕성까지 동행하는 도중에 잭이 갑자기 증발할 가능성이 100%였다. 리벤과 윌 말고도 왕성가지 같이 갈 감시원이 있어야 잭을 무사히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행자가 잭이나 리벤 못지않게 몸이 날렵하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다.

“상대가 잭 아저씨니까 꽁꽁 묶는 것도 못하겠네.”

“그랬다간 실컷 두들겨 맞을 거야. 오리에드한테서.”

리벤은 잭에게 맞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대련 중에 피하거나 막지 못해서 맞은 건 흔히 말하는 ‘맞았다’에 해당하지 않는다. 잭은 천성이 온화하고 거친 일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면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승의 사랑의 매는 잭의 탄생정령인 오리에드가 독자적으로 전담했다.

오리에드는 땅의 정령왕으로, 정령왕 중에서 힘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래도 우락부락한 거대한 몸집 치고 현명한 자를 좋아하는 지적인 성품이 강하다.

극북지역을 향해 북으로 올라가면서 마을을 벌써 다섯 개나 지났다. 커다란 도시도 두 개를 지났고 이름 있는 큰 숲도 한 개 지났다. 지금은 이름 있는 두 번째 큰 숲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만 지나면 마을 10개만한 대도시가 나온다.

[부슥 부슥 부슥부슥 부슥]

숲 길 왼쪽 덤불에서 요란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리벤은 잠시 말을 멈춰 세우고 들썩거리는 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윌은 어느 때라도 리벤을 보호할 수 있게 마력을 천천히 활성화시켰다.

“파핫! 안 보이잖아. 대체 어디에 떨어트린 거야? 가뜩이나 바쁜데 꼭 이렇게 일을 늘려야겠어?”

땅의 상급정령 클래이가 덤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리벤. 저 클래이, 이마에 암녹색 두건을 두르고 있어.”

“그러네. 암녹색 두건이야. 참 낯익은 물건이네.”

리벤과 윌은 이게 무슨 우연인가 싶어 흥미 깊은 눈으로 좀 더 지켜봤다.

서로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클래이는 자기 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리벤과 윌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핀! 정말 여기서 잃어버린 거 맞아?”

“일어버릴 만한 곳이 여기 밖에 없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나는 곳도 잘 자란 풀이 불규칙적으로 들썩거렸다. 언뜻 암적색과 라임색 옷자락이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풀에 가려졌다.

“꺄-! 클래이!”

윌이 참지 못하고 클래이에게 날아들었다. 비행 속도를 늦추지 않아서 그의 목을 꽉 끌어안은 채 엎어졌다.

클래이는 양 갈래 머리에 밝은 하늘색 리본을 묶은 빛의 상급정령을 보고 얼굴과 몸이 경직됐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반갑지 않아보였다.

“위, 윌-오-더-위스프…….”

“꺄-! 리벤, 들었어? 클래이가 내 이름 불러줬어.”

윌은 클래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당분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클래이는 상체를 잠깐 일으켰다가 다시 동작을 멈추고 뻣뻣하게 굳었다. 윌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목을 붙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여자한테 약한 건 여전하구나.”

“이것 좀 떼 줘.”

“왜? 오랜만이라서 반갑다는데.”

“날 심장마비로 죽일 셈이야?”

리벤은 소리 죽여 웃으며 즐거워했다. 못마땅한 듯 겁에 질린 듯 어색하게 굳은 표정이 꽤 볼만했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와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클래이의 파트너를 기다렸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어수선해? 물건은 찾았어……?”

드디어 클래이의 파트너 핀 아드카스가 리벤과 눈이 마주쳤다.

“리벤?”

그는 짧은 머리칼이 쭈뼛 서도록 과하게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무리한 고음으로 올라가고 끝 음이 거칠게 갈라졌다.

갈색 가죽 바지 위에 암적색 셔츠를 입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비스듬하게 걸쳐 묶은 라임색 천에 보석 두 개가 브로치처럼 달려있었다. 투명한 빛이 일품이라는 에메랄드와 루비였다.

세간에서, 에메랄드 트라이던트를 휘두르고 클래이를 데리고 다니는 쥬엘 나이트라고 하면 ‘핀 아드카스’라는 이름이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그의 이름은 여러 무용담을 남긴 설화 속 주인공만큼 유명하다. 본명보다는 ‘에르드퓨페-피르어르(Erdpuppe-Führer:흙인형사)’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오랜만이야.”

“페리아 숲에 마지막으로 놀러갔던 게 8개월쯤 전인가?”

핀은 페리아 숲 밖에서 리벤을 만난 것을 믿기 어려웠다. 얼떨떨한 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음-. 일단 클래이를 놔줄래?”

“싫어.”

윌은 클래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금의 클래이라면 거품을 물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핀은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윌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를 파트너에게 직접 데려다줬다.

“핀 못됐어.”

“클래이를 괴롭히는 주제에 나한테 그런 말할 처지야?”

“괴롭힌다니? 애정표현이야.”

“클래이를 죽일 셈이야?”

핀과 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리벤이 윌의 얼굴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오랜만에 재회하자마자 한 바탕 벌일 뻔했다.

“언제 봐도 기운 넘치는 청년일세.”

“할머니 같은 소리 하지 마.”

핀은 리벤의 미소를 뒤로 하고 전신이 축 쳐진 클래이를 겨우 일으켜 세웠다.

“애들은 어쩌고 여기에 있는 거야? 실물 리벤을 페리아 숲 밖에서 보는 건 8년 만이라고.”

“바보 왕과 똑똑한 왕자 사이에서 일어난 과격한 가족 싸움에 끼어들어 벌렸거든. 성가셔, 성가셔.”

리벤은 팔짱을 굳게 끼고 고개를 좌우로 휙휙 저었다. 윌이 좌측 뒤에서 그녀를 똑같이 따라했다.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래요? 전혀 모르겠어요.”

핀이 멋쩍게 웃었다.

갑자기 먼발치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릴 때 클래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처해하는 표정이 꽤 실감났다. 무슨 일에 얽혀서 도망 중이라는 냄새가 진하게 났다.

“너야말로 어디에 휘말리고 다니는 거야? 저쪽으로 날래 들어가.”

리벤은 발로 핀을 덤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클래이는 땅의 정령답게 땅속으로 숨었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대화가 전부 들리지 않지만 ‘아드카스’라든지 ‘쥬엘 나이트’같은 친숙한 단어가 언뜻 들렸다. 핀의 적은 아닌지 성내는 말투는 없었다.

리벤은 나무 하나를 골라서 말을 묶어 세워두고 윌을 상공으로 올려 보낸 후 나무 그늘에서 쉬는 척했다.

지방 관리로 보이는 자들이 리벤의 앞을 지나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정령을 데리고 다니는 성인 남자를 찾고 있었으니, 혼자 여행 중인 여성은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그리고 꽤 급한 모양인지 혼자 있는 젊은 여성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여자 여행자 중에서 솔로 여행자가 늘었다지만 이거 좀 아쉬운데?”

“여자를 혈족 유지용 제물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자들이야. 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구세대 정신 신봉자들이라고 해두지.”

핀은 리벤 쪽으로 기어 나왔다. 옷에 붙은 풀을 떼어내면서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봤다. 민간인을 상대로 너무 예민하다 싶을 정도였다.

클래이는 윌 때문인지 여전히 땅 속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다행히 윌도 리벤이 부르지 않으면 당분간 내려오지 않을 것 같았다.

“너도 참 물건이다. 만날 때마다 이상한 일을 달고 다니고 말이야.”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하긴. 쥬엘 나이트는 태어난 순간부터 선과 악에게 주목받으니까.”

“조용히 살고 싶어.”

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탄했다. 리벤은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가벼운 한숨을 쉬며 그의 등을 다독였다.

참고로 핀 아드카스는 죽은 테스탈로차 포르포냐의 죽마고우로 한 때 에드워드의 부하이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에 헤르겔의 눈에 들어서 에드워드와 함께 수련을 했고, 그 의리로 왕성에서 근위대 대장을 맡다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테스탈로차의 친구답게 그도, 여행은 좋아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었다.

“마을 항쟁에 나가서 상대 마을을 괴멸시켜 달라니, 그게 쥬엘 나이트한테 할 부탁이야?”

“돈이 궁하거나 싸움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선뜻 하잖아.”

“난 아니야.”

다시 사람들 소리가 났다. 핀이 몸을 숨기려는데 리벤이 팔을 붙잡았다.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니 숨을 필요가 없었다.

“힘도 있고 기술도 있고 지위도 있으면서 열심히 썩히는구나.”

“너도 마찬가지잖아.”

“최근에 복직했으니까 이제 아니지.”

리벤이 시원하게 생긋 웃었다. 핀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적잖이 수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소가 가식적으로 보였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핀은 긴장하면서 리벤의 대답을 기다렸다. 리벤의 복직을 본인 입으로 들은 마당에 예상할 수 있는 뒷이야기는 하나밖에 없었다.

-핀 아드카스의 왕성 귀환.

“난 안 갈 거야.”

“레이먼드 왕자가 반역을 대놓고 준비하고 있어.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에드워드 왕자의 힘이 되어주지 그래?”

리벤은 지금 레이먼드를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불안정한 시국을 설명했다. 왕성 밖에서 생활하는 관외자는 쉬이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누구든 ‘그 레이먼드 왕자가……’하고 먼저 현실 회피를 할 것이다.

“그런고로 난 그 사람을 찾으러 가는 중이었어.”

“그 사람?”

“스승님.”

“아, 홀 어르신.”

핀은 손가락을 딱 퉁기고 ‘아하하하’ 크게 소리 내며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뚝 끊어졌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사태가 심각한가 보다.”

“그 얌전한 레이먼드가 뒤통수치는 건데 상상 가능한 일이겠어? 그 예로 베시릴 타운이 부하라고.”

떠올리는 것부터 구역질나는 이름이 언급됐다. 그 이름을 입에 담은 리벤이나 귀로 들은 핀이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베시릴 타운의 존재 자체가 이들에게 악이고 죄였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취급하는 것조차 창자가 뒤틀렸다.

“날 왕성으로 데려가려고 꾸민 얘기야?”

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한없이 자유로운 여행자에서 벗의 복수를 꿈꾸는 전사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내가 미쳤다고 녀석 이름을 일부러 쓰겠냐? 왕성에서 마주쳐서 기분 더러운데.”

“왕성에 있다고. 그 썩어빠진 노인네가 왕성에 있다고…….”

핀은 자신의 화를 조절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 번 끓어오른 분노는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발산할 곳이 필요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주제에 피가 머리에 쏠렸다하면 호전적인 열혈청년이라니까.”

리벤은 핀이 이성적으로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잭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도중에 만난 인재도 시간을 투자해서 끌어들여야 할 만큼 중요했다. 핀의 스승인 헤르겔이 환영할 것이다. 그래도 에드워드보다 기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변이 고요했다. 바람 소리도 짐승 소리도 벌레 소리도 없이, 리벤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 주변이 조용했다.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령들이 각 파트너에게 돌아갔다. 둘 다 선뜻 말을 걸 수 없는 표정을 지었는데, 뭔가 경계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숲이 예민해졌어.”

땅 속에 있던 클래이가 숲을 읽었다.

“숲이 싫어하는 불청객이 지금 숲에 들어와 있어.”

클래이는 땅으로 땅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땅 위에 서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까지는 무리였다. 그것을 클래이가 손 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숲이 경계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잖아.”

“긴장해야 해. 쥬엘 나이트야.”

윌은 리벤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상대가 언제 공격하든 완벽하게 막고 반격까지 할 수 있게 집중력을 최대로 높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달각 달각 달각 달각 달각]

사람의 발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같이 들렸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먼 곳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은하수★의 다음 블로그

★은하수★의 다음 블로그

★은하수★의 다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