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히트맨리본!/리본! 팬소설作

[히바하루]Il violetto -제5장

★은하수★ 2013. 4. 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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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바하루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항상 쓰던 히바하루와는 다르게 이번엔 하루를 주연급으로 만들어 봤습니다.(만들 예정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버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Il violetto 란 이탈리아 어로 '보라색'을 뜻합니다.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9

4. 제4장부터는 일반 ver. 과 15/19금 ver. 으로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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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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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금 ver.

 

해가 떠오르면서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쿄야는 눈을 붙이고 편히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숙면을 했는지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일어났다. 그의 옆에는 하루가 반나체로 누워있었다. 달빛 속에서도 뽀얗게 보였는데 아침 햇살에도 흰 피부가 눈에 쏙 들어왔다.

“내가 만든 자국…….”

하루의 어깨와 가슴, 허리, 그리고 허벅지에 작고 붉은 자국이 한두 개씩 있었다. 쿄야는 자국을 따라 손끝으로 그녀의 피부를 미끄러지듯이 매만졌다. 간밤에 손이 기억한 그녀의 부드러움이 다시 그의 심장과 의식을 달콤하게 자극했다.

“하루 공주. 정말 아름다워.”

쿄야는 그녀의 뽀얀 어깨에 입을 맞췄다.

“쿄야?”

하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쿄야의 그림자 덕분에 눈이 부시지 않고 편안하게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곧 시종이 올 거야. 옷 입어야지.”

그는 그녀의 팔과 어깨를 잡고 일으켜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 더욱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고 입술을 몇 번이나 탐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가볍게 빨아들일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간질거리는 소리가 차근차근 귓가에 전해졌다.

“으응- 쿄야.”

“이제 깼어?”

마지막으로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띠는 안 매더라도 옷을 걸치고는 있어야지.”

쿄야가 하루의 옷을 입혀줬다. 그녀는 완전히 잠이 깨자 스스로 옷매무새를 마무리했다. 그도 자신의 흐트러진 부분을 툭툭 털듯이 정리했다. 그녀에 비하면 무난했다. 대신 옷을 입은 채였기 때문에 새로 생긴 잔주름이 몇 개 있었다.

별채에 누군가 들어온 기척이 느껴졌다.

“오늘 밤도.”

쿄야는 하루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이고 나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담을 넘어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후우-.”

하루는 심호흡으로 두근거림을 진정시켰다. 생각만큼 쉽게 진정되지 않았지만 사사가와 쿄코가 들어오기 전에 얼굴의 홍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낮은 목소리는 쿄코가 아침인사를 건네기 직전까지 하루의 귓가에 수십 수백 번 맴돌았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붕 뜬 기분도 오랫동안 남았다.

쿄코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하나가 가져온 아침상을 받으면서 차츰 평소의 미우라 하루로 돌아갔다. 쿄코와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어렴풋이 눈치 채긴 했지만 하루는 술 탓으로 돌렸다. 으레 짓는 가벼운 미소였기 때문에 그 이상 의심받지 않았다.

고쿠데라가 가져온 문서를 읽으면서, 측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간밤의 일을 수십 번 떠올렸다. 그가 몸에 남긴 것은 붉은 흔적만이 아니었다. 야릇한 감각까지 고스란히 남겼다. 장면장면마다 천천히 되새길 때면, 그 때 그가 입 맞추거나 쓰다듬은 곳이 마치 맥박이 뛰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면서도 빨리 그에게 닿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다.

소망을 버려야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욕심을 버려야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 이 사실들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그를 원했다.

“주군. …하루 도련님.”

넋 놓고 있다가 고쿠데라의 목소리를 겨우 알아차렸다. 고쿠데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앉아 있는 카와히라도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까부터 가슴께를 부여 쥔 모양새가 심히 걱정됩니다.”

하루는 아차 싶었다. 미칠 듯이 고동치는 심장 때문에 저도 모르게 손을 가슴 위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손을 내리자니 움직임이 어색해서 의심받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넘길 방법을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중책을 맡아서 나도 모르게 계속 긴장하나보군.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중압감이 강해.”

가슴 위의 손을 그대로 둔 채,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쓸쓸한 듯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상냥한 검은 눈동자에는 우수가 깊게 차오른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평생을 타인을 속이며 자신을 감춰왔던 덕분에 측근마저도 어렵지 않게 거짓 표정으로 속일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충성심에 사로 잡혀서 주군을 의심할 줄 모르니 더더욱 속이기 쉬웠다.

“잠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남은 것들은 그리 급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아, 그래야겠어. 필요하면 하나를 통해 부르도록 하지.”

고쿠데라와 카와히라는 하루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별채의 다른 방에 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루가 다이묘 대리로서 업무를 관장하는 지금, 그들은 측근답게 본채와 저택 외부 전부 틈틈이 살폈다. 지금도 하루는 쉬게 두고 자신들은 본채 경비를 살피러 갔다.

하루는 그들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표정을 풀었다. 소꿉친구 혹은 허울 없는 벗이기도 한 가신에게 불안정한 자신을 들킬까봐 오전 내내 얼굴 근육에 긴장을 가득 담고 있었더니 평소의 10배로 피곤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쿄야와의 일을 되감아 기억했고 심장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줄기차게 과하게 고동쳤다.

그녀는 천천히 마루로 걸어 나가 바깥 공기를 직접 쐬었다. 심호흡도 했다. 하지만 가슴에서 손을 떼기엔 부족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몇 년을 쌓았는데, 여염집 아이면 한참 세상을 모르고 철없을 나이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고단하게 나를 지켜왔는데, 이제 와서 남자에 흔들릴 수 없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여자를 버렸는데 그 한 사람 때문에, 한 순간이지만, 다시 여자를 거두었다는 건 이 미우라 하루 평생의 수치야. 언니들을 죄 잃고 나 하나만 지켜내신 어머니께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인가.”

일부러 입밖으로 단어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자신을 책망했다. 자신의 한 순간의 판단과 잠깐의 행동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지탱해 준 소중한 이들의 안전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짧지 않은 시간을 버텼으면서 아직 여자로 살고픈 욕망이 위험천만하게 남아 있었다. 완전히 버리진 못했어도 가슴 속 깊숙이 숨겨져 웬만하면 드러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표면 가까이에서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내가 나를 망가트릴 순 없어. 어머니의 한과 이 땅의 사람들의 한과 벗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가슴을 쥐어 잡던 손을 힘겹게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높게 치켜들어 얇은 구름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하늘을 매섭게 노려봤다. 어금니를 심하게 깨물어 턱이 아릿하듯, 아래로 내린 두 손을 과하게 주먹 쥐어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는 듯했다.

“탈선은 한 번으로 족해. 한 번만으로도 모두를 배신한 셈이야. 또 죄를 늘려선 안 돼.”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을 향한 독한 꾸짖음이었다.

“가슴으로 피눈물이 흐른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인내의 괴로움 때문에 그녀의 표정이 깊고 깊게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억지로 한계까지 참는 그 표정을 오로지 하늘에게만 보여줬다. 한심스러움이 극치에 달하는 지금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지만, 하늘에게만은 전부 내보이며 자기 자신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속으로 거듭 채찍질했다.

아프다.

가슴이 계속 욱신거리지만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 가슴을 제 손으로 달래줄 수 없었다. 여기서 굴복하여 스스로에게 어리광을 보리면 이제껏 쌓아온 모든 인내가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 같았다.

무섭다.

지금 바로 쿄야가 나타나면 그에게 달려들어 생전 보이지 않은 약한 모습을 바닥이 드러나도록 다 쏟아낼 것 같았다. 그가 이것을 약점 잡아 자신을 협박한다든지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겨우 하룻밤 허락한 상대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사소한 것까지 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드러낼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쌓였다.

“오늘 밤엔 그를 내칠 수 있을까?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나면 난 어떻게 될까?”

하루는 하늘만 바라보며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자문자답이 지금 제일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래야 잡생각을 떨치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을 끊임없이 입술을 움직이며 곱씹었다.

“그에게 응석부려선 안 돼. 그는 그의 명령을 따르고 나는 나의 소임을 지키는 거야.”

억지로 찌푸렸던 표정이 점점 서글프게 풀렸다. 꽉 쥔 두 주먹도 힘이 빠지면서 양 어깨가 중력에 순응하듯이 하래로 축 쳐졌다.

허점투성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미우라 하루를 묘사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전부 허점투성이였다. 그녀를 지켜줄 방패가 주변에 하나도 없는데다가 스스로 십몇 년 동안 만든 방패조차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빈틈투성이.

똑같은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자신에게 빈틈이 넘치고 있단 걸 자각하면서도 방치하는 중이다. 이 때 쿄야가 나타나면 가슴 한 가운데나 머리 한 가운데가 시원스레 뻥 뚫릴 텐데, 자기 자신을 속절없이 허술한 그물처럼 멋대로 내던졌다.

“미우라 일족의 직계는 내가 마지막이겠지. 성별을 속이고 있으니 혼인은 고사하고 방계에서 아이를 입양해야겠지. 그러면 더더욱 나는 나이기를 포기해야겠지. 살기 위해서 거짓된 삶을 선택했으니 죽을 때까지 진실된 자유에 가까워질 수 없겠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수록 쿄야를 원하는 마음이 커졌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 많은 생물(인간)로 태어난 이상 쉬이 멈추지 못했다.

“조부님의 금욕을 물려받았다면 죽을 때까지 나와 나의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방탕함을 물려받았다면 다이묘에 오르고 얼마 안 있어 타락하고 말 거야. 아아- 나의 벗들이 실망하겠지. 아아- 이 땅의 사람들이 떠나갈 거야. 아아…….”

하루는 하려던 말을 목구멍 속으로 삼켜버렸다. ‘그의 손에 죽게 될 거야’라는 말은 아무래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

“일일이 그의 손을 더럽힐 정도로 타락할 순 없지. ……아니지 오히려 실력자가 날 죽이는 편이 떳떳하려나? 민중들 손에 죽는 쪽이 더 바람직할 지도. 그래도 그가 날 죽이려한다면 납득 못하고 그에게 안기려 들지도 몰라. 추악한 본성이 분명 나를 나락 밑의 나락으로 던져 넣을 거야.”

욕망을 이기고 지금처럼 고행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 버리고 진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이 두 개의 극과 극의 모순을 안고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현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쳇바퀴만 무한히 굴리고 있어 점점 지쳐갔다. 급기야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어. 어차피 계속 살아가는 것에 별 미련도 없고.”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향해 케득케득 웃었다. 그러더니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좌우로 뒤뚱뒤뚱 천천히 바보스럽게 흔들었다. 고개도 몸을 따라 까딱까딱 엇박자로 흔들렸다.

“아아- 난 역시 날 기다리는 사람들을 저버릴 수 없어. 아아- 쿄야가 내 사람이면 번뇌할 필요가 없는데.”

순간 몸의 흔들림이 딱 멈췄다.

“쿄야가 내 사람이 되면 지금까지 내 고민과 걱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거야.”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담뿐인 정면을 깊게 응시했다. 심장이 다시 쿠궁쿠궁 격하게 뛰었다.

“그가 내 것이 된다.”

하루는 미소를 주체할 수 없었다.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이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답을 이끌어내기까지 스스로 어리석다 폄하할 정도로 얼마나 번뇌했는가.

“쿄야가 나만의 것이 된다.”

십 수 년간 가슴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담아온 새카만 응어리가 겉부분부터 스멀스멀 녹아내리며 그녀의 오감과 사고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자신이 지금 ‘조금은 비정상적일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찾은 답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힘껏 만끽했다.

“고쿠데라나 사사가와, 카와히라에게조차 비밀. 그래, 쿄야는 나만의 것이 돼야 해. 그들과 공유할 필요 없어. 아아- 나의 사랑스런 사람. 어떻게 사와다 일족에서 빼낼까? 어차피 그는 여기에 있어. 어떻게 그에게서 사와다의 흔적을 없앨까?”

그녀는 두 팔로 자신을 꼬옥 끌어안으며 넘쳐흐르는 희열을 아우라로 내보였다. 히바리 쿄야를 향한 순수한 동경과 애틋한 마음이 물질적인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숨겨져 있던 욕망의 응어리가 완전히 녹아서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그는 여기에 있어. 사와다 일족에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나의 히바리 쿄야. 나의 쿄야. 그가 내 몸에 남긴 흔적들은 그가 내 것이라는 증표가 될 거야. 그가 다시 오늘 밤 약속대로 다시 와준다면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흔적을 남겨달라고 해야지. 확인하는 거야. 그가 내 말이면 뭐든 들어줄지. 정말로 다 이루어줄지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면서 철저하게 확인하겠어.”

하루는 정면을 초점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슬며시 미소 지으며 허공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랜만에 상쾌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질구레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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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ver.

 

하루는 오전 내내 쉬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공무에 매진했더니 허리와 어깨가 뻐근해서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토닥였다. 방 안쪽에 있는 그녀와는 반대로 문 바로 앞에서 업무를 보던 고쿠데라는, 문 바로 바깥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쿄코를 불렀다.

“슬슬 점심상을 가져오겠습니까?”

“곧 하나가 가지고 올 거예요.”

사사가와 쿄코는 안 그래도 준비하고 있었다며 여유 가득한 미소를 보였다. 시종들의 이런 재빠른 눈치와 행동력이 지금까지 하루가 수월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 중의 일부일 것이다.

하루는 목운동을 하는 척 위를 올려다봤다. 보이지 않지만 쿄야가 바로 머리 윗자리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붕 다락은 좁고 어둡기만 할 뿐 오래 머물만한 곳이 절대 아니다. 이른 새벽에 챙겨준 주먹만 한 밥덩이 두 개로 해 떨어지는 시간까지 버틸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됐다. 이런 일에는 도가 튼 살인병기라지만 하루에게는 나름 손님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주군. 점심 진지상입니다. 들이시겠습니까?”

고쿠데라의 목소리가 뭉게뭉게 피어오른 잡생각을 파헤치며 그녀를 불렀다. 하루는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점심상 담당은 쿠로가와 하나였다. 좌우로 긴 상에 준비한 음식들을 차례로 늘여놓고 마지막으로 젓가락을 올렸다. 보통은 전신이 목제이나, 혹여 독이 들었을지 모르니 음식이 닿는 가느다란 끝부분만 손가락 한 마디만큼 은으로 만들어 목제 본체에 꿴 특제품을 사용한다. 참고로 은은 독에 닿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왕족 및 귀족이 사용하는 물건 중에 은제가 많다. 찻잔과 비녀가 대표적이다.

하루는 반찬과 밥을 번갈아 집어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이었다. 고쿠데라 등은 거리를 두고 다른 상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하루의 진지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부친이 돌아오거든 쿄야를 막을 것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쿄야는 사와다 일족의 살인병기지만 어째서인지 나(하루)에게 마음을 연 것 같다. 틈을 파고들 수 있을까.

―쿄야에게 부친을 처치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기꺼이 해줄 것이다. 다른 건?

―고쿠데라나 쿄코 등에게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를 드러낼까 아니면 지금 이대로 유지할까.

이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 ‘히바리 쿄야가 사와다 일족을 거스를 수 있을 것’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으면 쿄야가 가진 기본 사고방식을 거스르지 않는 채 미묘하게 흔들면서 고도의 두뇌 싸움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오래 그의 발을 묶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그가 하루에게 흥미를 가진 이상 어렵지 않아보였다.

“비장의 무기로 둘까? 카와히라처럼.”

저도 모르게 마음 속 말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행히 이 혼잣말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라면친구였던 카와히라가 실은 상당히 유용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2-3년간 하루가 측근들 몰래 접촉하고 거래했었다. 주로 바깥에서 활동하는 사사가와 료헤이가 ‘단순 라면친구’인 카와히라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 채면서 겨우겨우 ‘미우라 하루 파’에 들어오게 됐다. 이미 거의 3년이나 비밀첩보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그걸 3년 만에 측근들이 겨우 알아챘다고 해서 아쉬울 것 하나 없었다.

하루는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기지개를 쭉 켰다. 하나가 찻잔과 주전자가 올려져 있는 소반을 들고 발소리 없이 쪼르르 다가왔다.

“오늘은 감로차입니다.”

찻잔에 맑은 차가 차오르고 하나에게서 하루로 옮겨 가는 동안 쿄코와 고쿠데라가 점심상을 치웠다. 서로 동선이 얽히지 않고 일사분란했다.

오후 공무도 하루와 고쿠데라 뿐이었다. 사사가와나 카와히라는 기별도 없었다. 바깥에서 ‘하루의 사람’이 아닌 신분으로 은밀하게 하루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미우라 일족의 저택을 출입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별채에는 그들을 위한 숨겨진 문이 있기 때문에 불시에 깜짝 방문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오늘은 둘 다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채 주변도, 하루가 앉아 있는 방도 죄 고요했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폭풍전야의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것과 다르게, 정신과 마음이 절로 평안해지는 고요함이 별채를 가득 메웠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이며 지상에 내리는 햇빛이며 이보다 쾌청할 수 없었다. 이런 날은 공무보단 무념무상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진다.

“고쿠데라.”

“네.”

고쿠데라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하루에게 가까이 갔다. 책상의 오른쪽 옆에 무릎 꿇으며 앉더니 하루가 본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챙겼다. 남은 걸 슬쩍 보니 거진 끝났다.

“고쿠데라. 내가 이것들을 감질나게 남겨두고 카와히라한테 가면 어찌하겠느냐?”

“제 앞에서 보란 듯이 도망치시겠다면 화를 내며 잡으러 갈 것입니다.”

“누구를?”

“물론 카와히라입니다.”

고쿠데라는 하루가 그저 그를 떠보기 위해 내던진 가벼운 말에도 바로 발끈하며 눈에 힘을 가득 줬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바쁘신 주군을 밖으로 유인한 녀석에게 베풀어줄 자비 따위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독점욕에 가까운 맹목적인 충성이 기합이 되어 목소리에 가득 찼다. 하루는 그의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고쿠데라가 지나친 보호주의라서 가끔 숨 막힐 때도 있지만,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한 탓에 곧잘 이상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열성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이 질리지 않아 좋았다. 어쩌면 옛날 시동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그 일관된 모습이, 언제 정체를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사는 하루에게 몇 안 되는 ‘안심’할 수 있는 버팀목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네가 너무 철저해서 ‘내 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딱 다섯 손가락, 이 한 손에 꼽힌단 말이지.”

하루는 고쿠데라를 향해 오른팔을 곧게 뻗어 손가락을 쫙 펼쳤다. 고쿠데라 하야토, 사사가와 료헤이, 사사가와 쿄코, 쿠로가와 하나, 카와히라. 하루가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루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5인.

그런데 예전에 카와히라가 그랬던 것처럼 비장의 수단이 탐났다. 아무도 모르게 독점하고 곳곳을 교묘하게 파헤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고 싶었다. 히바리 쿄야가 그에 딱인데― 생각하자마자 가슴이 간지럽게 두근거리고 저도 모르게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주군?”

고쿠데라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하루는 당황한 기색을 절묘하게 숨기고 온화함을 빙자한 여린 미소를 드러냈다.

“이것들을 마저 끝낼테니 쿄코에게 가서 다과를 부탁해줘. 이왕이면 양갱이 좋겠어.”

“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그는 주군이 확인을 마친 일감을 들고 방을 나섰다. 주군이 자신과 있으면서 다른 이를 생각한다는 것도, 주군이 일부러 자신을 내보낸 것이라는 사실도 전혀 의심치 않았다. 그저 주군이 자신에게 소소한 것이라도 다 맡겨준다는 사실에 자기만족감이 가득 차오를 뿐이었다. 의심할 줄 모르는 자, 이 어찌 마음 편한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내 사람을 늘리면 늘릴수록 고쿠데라의 간섭과 언성도 같이 쑥쑥 올라가겠지. 카와히라의 존재를 모두가 눈치 채는 바람에 천연덕스럽게 소개하던 그 날도 고쿠데라의 상기된 얼굴이며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계심은 과연 일품이었어.”

하루는 어느새 자신의 뒤에 조용히 서있는 쿄야에게 혼잣말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쿄야는 그녀의 오른쪽 옆 가까이에 그녀를 마주하며 앉았다.(즉, 하루와 쿄야는 서로의 상체가 향하는 방향이 직각이다.)

“곧 시중들이 올 텐데?”

“이 다다미 아래, 숨을 수 있잖아.”

그는 자신이 앉아 있는 다다미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하루가 앉아 있는 다다미와 바로 붙어 있는 것이었다.

“여길 수색한 적도 없으면서 용케 눈치 챘군.”

“보통 상석(신분 높은 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앉는 자리) 근처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구멍이 있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벽일 수도 있고 내 자리 사방의 다른 곳일 수도 있는데?”

“아까 그 자가 이 다다미만은 발끝조차 올리지 않더라고.”

하루는 쿄야의 관찰력에 감탄했다. 고쿠데라도 그렇지만, 별채를 드나드는 자들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의 안전을 위해서 그 다다미만큼은 밟지도 건들지도 않는다, 하루 역시 그 다다미에 물건을 올리거나 몸을 기대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다다미 아래에는 몸을 숨길만한 작은 공간이 아니다. 하루가 부친 몰래 준비한 지하 광장과 연결된 통로다. 즉, 다다미는 문이요, 검은 공간은 길게 길게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다. 미우라 일족의 저택에서 숨겨진 은신처라고 하면, 다이묘의 침실에만 있다. 게다가 이 사실은 다이묘와 하루만 알고 있다.

고쿠데라와 쿄코가 들어와서 쿄야가 다다미 밑으로 잽싸게 숨는다면 분명 비밀통로의 존재를 들킬 것이다. 혹시 모를 적을 대비해 미로처럼 파 놓았으나 잠깐 몸을 숨길 뿐인 쿄야가 여기저기 깊게 들쑤시진 않을 것이다. 어찌 되건 쿄야의 흥미를 끌어낼 것이다.

하루는 미간이 욱신거렸지만 애써 참고 온화한 가면을 지켰다.

“쿄야. 여긴 별채고 내 자리는 딱히 상석이 아니야. 아무 짝에 쓸모없는 버려진 곳이지. 미우라 일족에게 있어서는.”

“그러면 공주는 어떻게 몸을 지켜? 무조건 맞서 싸우는 건 싸움에 능한 다이묘도 하지 않아.”

쿄야는 사와다 일족의 다이묘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격렬한 몸 부딪히기 만이 싸움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하디 강한 그에게서 누차 들어왔다. ‘한 발 빼는 미학’이라며 그가 직접 쿄야에게 은신처를 보여줬었다.

“내 말은, 거기가 은신처는 아니라는 거야. 먼저 내려가 있으면 내가 조금 있다가 구경시켜줄게.”

쿄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루를 빤히 응시하다가 다다미를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이며 행동은 너무나 알기 쉬웠다. 하루의 예상대로 그의 흥미를 끌어냈다. 아직은 소소한 호기심에 불과하지만, 그가 그곳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금세 무한한 흥미가 솟아날 것이다. 하루는 가벼운 미소를 유지하며 가면 속에서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코다란 그물망처럼 여러 경우의 수가 차곡차곡 이어지고 분기되고 합쳐지며, 쿄야를 제 편으로 끌어들일 두뇌전을 신속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고도의 전략만으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영지를 지켜온 미우라 일족의 피가 하루를 탄탄하게 받쳐줬다.

방에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에 뒷목의 민감한 신경이 욱신거렸다. 쿄야는 자신이 앉아 있던 다다미를 걷어 젖혔다. 손을 끼워 넣을 수 있는 홈이 파인 나무 판이 드러나자마자 하루가 그 문을 열어줬다. 그가 좁고 어두운 곳에 미끄러지듯이 내려가고 곧이어 그녀가 문과 다다미를 거진 동시에 원상태로 되돌렸다. 고쿠데라와 쿄코가 들어올 때까지, 하루는 아무 일 없었던 마냥 가지런한 자세로 바로잡을 여유까지 있었다.

하루가 시종들과 도란도란 말을 나눌 때, 쿄야는 점차 어둠에 익숙해진 눈과 벽을 따라가는 민감한 손끝에 의지하며 좁고 긴 길을 따라 조심스레 걸었다. 밑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길이 한참 이어지는가 싶더니 평평한 길이 또 한참 이어졌다. 갈림길이 나타나도 개의치 않았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그 길을 계속 따라가다가 드디어 탁 트인 지하공간에 도착했다. 지상의 공기가 새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라도 있는지 숨이 탁 트였다. 하지만 그믐달 밤처럼 어두워서 아무리 어둠에 익숙한 눈을 가졌어도 섣불리 돌아다니기엔 이 생소한 공간이 아주 조금 버거웠다. 아니, 쿄야에게 이 정도 어둠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따라 들어올 하루가 자신을 찾지 못할까봐 넓은 공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좁은 길목 한켠에서 들을 기대 기다렸다.

고요.

바람이 틈새틈새를 지나다니는 엷은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물 한 방울, 천장에서 똑 떨어지는 소리조차 없었다.

적막.

방금 전가지 하루와 같이 있었던 그 짧은 시간이 ‘그립다’고 무심코 곱씹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피식하고 자신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자신보다 어린 아가씨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을 짊어진 그 모습이 자꾸만 안타깝게 보였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자들은 그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몰라도, 매일 매순간 긴장하면서 바동거리는 형상이 눈에 비칠 때마다 그녀를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주고 싶었다.

“여기보다 밝지만 더 조용한 곳. 여기보다 더 먼 곳. 공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 공주가 공주로 있을 수 있는 곳.”

쿄야는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의 생각 속에서 하루는 미우라 일족의 저택이 아니라 사와다 일족의 영지를 배경으로 고운 후리소데를 걸치고 있었다.

“쿄야.”

하루가 작은 초롱을 들고 나타났다. 작은 불빛 너머로 보이는 하루. 쿄야가 무사히 미로를 통과한 것에 적잖이 놀란 눈치다. 쿄야는 그녀를 빤히 보다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지금 스쳐 지난 생각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속삭였다.

“네 아버지를 죽이고 나면 널 데리고 가야겠어. 넌 역시 공주로 있어야 해.”

하루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의 목소리도, 뺨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도, 어딘가 어제와 다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 마디 말이 가슴을 세차게 휘저었다.

 

 

 

 

 

★은하수★의 망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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