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히바하루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항상 쓰던 히바하루와는 다르게 이번엔 하루를 주연급으로 만들어 봤습니다.(만들 예정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Il violetto 란 이탈리아 어로 '보라색'을 뜻합니다.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9
4.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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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배고픔의 공포는 그 어떤 고문보다 두렵고 잔인하다. 본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는 괴로움이 바로 배고픔이다.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생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식에서 빗나가고 제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극도의 허기 속에서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못할 것 하나 없다.
사와다 일가가 강대한 군사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이런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덕분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이나 패망국의 노예들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 군대의 창고에 가둬놓고 굶겼다. 그냥 굶겼다. 아무것도 없는 빈 창고에 수많은 사람들을 빽빽이 가둬놓고 방치했다. 그리고 2주 후에 문을 열어 살아남은 자들을 병사로 삼았다.
고(蠱)술.
고대의 암살기술 중 하나로, 독벌레를 단지에 가득 채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독기가 출중한 단 한 마리의 독벌레를 ‘암살자’ 겸 ‘암살병기’로서 사용했다.
사와다 일가는 독벌레나 독뱀에나 사용하는 잔인한 독병기 제조술을 인간에게도 사용했다. 원래는 사와다 일가의 피로 이어져 내린 ‘초직감’에 대항하기 위해 무크로 집단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독기 품고 살아남은 인간이라도 사와다 일가의 초직감을 이길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보다 살아남기 위한 집착이 강할 뿐이었다. 병사로서는 오래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인재지만 인간으로서는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무크로 집단은 사와다 일가에게 굴복하고 그 아래에서 사와다 일가의 명령에 따라 ‘미친 병사’만들기를 계속 했다.
18번째 고술. 여기에 이용된 사람은 고아 16명, 패망국 노예 44명, 기타 출신을 알 수 없는 부랑자 37명, 총 97명. 2주 후에 살아남은 사람은 그 전 17번의 고술에서도 이루지 못한 꿈의 숫자, 완벽한 1명이었다.
고아 출신의 히바리 쿄야.
그는 자신을 속이고 생지옥에 던져 넣은 로쿠도 무크로를 극도로 증오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사와다 일가도 혐오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먹을’ 음식을 계속 부족하지 않게 주는 자가 지금의 다이묘라서 대놓고 대항할 수 없었다.
사와다 일가의 현 다이묘, 사와다 츠나요시는 히바리 쿄야를 자신의 직속 암살자로 뒀다. 그리고 다른 미친 병사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자유’를 줬다. 다이묘의 측근들은 철저히 반대했지만 다이묘는 자신의 직감대로 히바리 쿄야를 다뤘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사와다 츠나요시는 히바리 쿄야에게 자유를 준 듯 쥐락펴락했다. 히바리 쿄야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생지옥에서 살아남았어도 사와다 츠나요시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네댓 번 확인했기 때문에 그의 말만 따랐다.
"쿄야. 부탁이 있어.“
밥은 가족이 다함께 먹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사와다 일족의 다이묘는 곧잘 히바리 쿄야와 마주보며 밥을 먹었다. 이럴 땐 십중팔구 쿄야에게 암살자의 임무를 내릴 때였다. 하지만 츠나요시는 천연덕스럽게 ‘벗에게 하는 부탁’처럼 친근한 말투를 사용했다.
“미우라 일족의 다이묘를 죽여줘.”
[딱. 따그르르르르]
쿄야는 자기도 모르게 밥그릇을 떨어트렸다.
“내가 미친 병사라도, 지금 이 명령이 다이묘답지 않다는 건 알아.”
“확실히 나답지 않은 비정상적인 부탁이지.”
“왜 하필 미우라 일족의 다이묘지?”
“그의 아들이 더 재밌다고 들었거든. 지금 다이묘가 죽으면 그 아들이 다이묘가 되겠지. 그와 싸워보고 싶어.”
“역시 이상한 사람이야.”
“칭찬 고마워, 쿄야.”
미우라 일족의 6대 다이묘가 정치를 잘못해서 영지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실은 딸이지만)은 기대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첩자를 심어놔 새 소식에 빠른 츠나요시는 현재 미우라 일족이 현 다이묘파와 아들파로 나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리 봐도 아들이 유능했다.
쿄야는 츠나요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가 진심으로 마우라 일가의 다이묘 후계자에게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츠나요시가 관심을 가진 것 중에서 재미없거나 어정쩡한 것은 없었다. 이번 일도 분명, 누구나 라고는 말 못해도, 쿄야 역시 끌릴만한 매력적인 것이 분명했다.
“한 번 싸워본 다음에 내가 죽여도 되지?”
츠나요시는 화들짝 놀랐다. 표정을 숨길 이성적 여유를 가지기도 전에 전부 얼굴에 드러났다. 쿄야가 서스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드러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츠나요시는 이것을 기뻐하며 바로 허락했다.
“응. 어차피 적이니까 재미는 한 번이면 돼. 그 다음엔 쿄야 마음대로 해.”
사람 일은 아무도 내다볼 수 없는 법이다. 하늘이라 해도 사람의 일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히바리 쿄야가 미우라 일족의 다이묘를 죽이기 위해 사와다 일족의 밖으로 나간 후, 사와다 일족의 다이묘를 죽이는 것이 다음 임무가 되리라곤, 이때의 쿄야도 츠나요시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미우라 일족의 영지에 발을 들인 쿄야는 츠나요시가 준 지도를 보고 다이묘의 저택에 도착했다. 그믐이라 빛 하나 없는 시커먼 밤이었지만 쿄야에겐 대수롭지 않은 어둠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발놀림과 기척을 내지 않는 몸놀림으로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파악했다. 세심하게 하나씩 신경 쓸 필요 없이, 예리하게 다듬어진 감각으로 짧은 시간에 저택의 구조 및 퇴로 계산을 끝냈다.
본채 근처에서 살기를 죽이고 있다가 문득 츠나요시의 말이 떠올랐다. 다이묘의 아들. 들은 바에 의하면 별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가 갑자기 신경 쓰였다. 츠나요시가 깊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자가 어떤 인물인지 한 번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돌렸다.
“나중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쿄야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한 본채에 들어갔다. 본채 내부에도 경비가 서있는 사와다 가에 비해, 미우라 가는 저택 외곽에만 경비가 있어서 특별히 눈치 볼 것 없이 수월하게 깊숙이 침입할 수 있었다. 다이묘의 저택이 아니라 마치 크기만 큰 민가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돈 많은 귀족가도 본채는 특별히 경비에 신경을 쓰는 시대인 것을 생각하면 미우라 일족이 아직도 다이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면 다이묘 스스로 자객에 대항할 수 있는지―라는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이묘가 지내는 방에 가까워질수록 전에 없던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동물의 직감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촉각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복도 중간에 우뚝 멈춰 섰다. 전신의 온 감각을 총동원해서 경비 한 명 없는 고요하고 컴컴한 이 공간을 경계했다. 천하의 자신이 긴장하다니 헛웃음도 안 나왔다.
“조금 더 가까이 왔으면 내 칼날이 닿았을 텐데 유감이야.”
정면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쿄야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쿄야는 양손을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옮겼다. 사와다 츠나요시가 그를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한 한 쌍의 소도(小刀)가 주인과 함께 차갑게 숨을 죽였다.
“조사가 허술한 탓이야. 안타깝게도 다이묘는 어제부터 자리를 비우셨다.”
소년의 맑은 목소리가 쿄야를 향해 곧게 뻗어왔다. 자객을 두고 당당하게 맞서는 소년. 눈치가 빠르다면 필시 미우라 가의 차대 다이묘, 요 근래 소문이 무성한 후계자 도련님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쿄야는 제 주인 츠나요시가 노리고 있는 새 먹잇감이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에 당황했다.
“주군의 명령에 따라 넌 죽이지 않겠다.”
쿄야는 하루의 실력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츠나요시의 명령이 그를 막았다. 주군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주군만을 위해 움직이는 암살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잔혹한 실험 속에 살아남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 충성.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은 아직 없었다. 대신 이 악독하고 지리멸렬하게 만들어진 주종관계를, 만들어진 이상 지키겠다는 의리 정도야 가지고 있었다.
“난 죽이지 말라고 했다니, 이름 모를 자객의 이름 모를 주군에게 감사를 표하지. 하지만 어설픈 자비는 결국 화를 부른다네. 난 당당하게 예까지 들어온 네놈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테니.”
하루는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쿄야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쿄야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이곳의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이 정도 거리면 자네도 내가 보이겠지.”
그(그녀)의 말이 마치 주문인 마냥, 감에 의존하여 어둠 속을 돌아다니던 쿄야에게 어느새 부터 하루의 모습이 거의 뚜렷하게 보였다. 나이에 비해 작은 체구지만 단정한 옷매무새와 곧은 자세가 ‘명실 공히 도련님’이라 가르쳐줬다.
“병?”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가 칼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손에 하나씩, 술병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칼날이 닿았을 것이라는 처음의 말은 그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헛말이었다.
“원래는 내 벗과 마실 술인데…… 손님이 왔으니 손님이 우선이겠지?”
하루는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주위가 워낙 조용해서 병 안의 술이 가볍게 찰랑거리는 소리가 귀에 분명하게 닿았다.
쿄야는 하루를 찬찬히 훑어봤다. 소문의 그 후계자가 자신의 주군과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체격에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약간 곤란해 했다. 왠지 이 자의 말도 꼬박꼬박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소곳이 다문 입술 안에서 위아래 이를 악 물고 한 번 더 하루를 구석구석 눈에 새겨 넣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 한 순간이나마 주군과 적을 동일 인물로 착각한 자신이 한심했다.
“술. 안 마시는 편인가?”
하루는 한 발짝 더 그에게 가까이 갔다.
―그 한 발짝. 그 잠깐의 작은 움직임.
쿄야는 위화감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루를 곧게 응시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걱정 마. 벗에게 먹일 술이었으니 독은 없어. 무기 하나 없는 내가 뭘 어찌하겠느냐. 그저 술친구를 한 명 더 두고 싶을 뿐이야.”
하루는 불안한 시선을 정면에 대하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살의까지는 아니지만 적잖이 날카롭게 경계하는 그를 그저 편안하게 마주 볼 따름이었다. 주인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잘 사육된 ‘개’라는 사실을 안 후로 대놓고 안심했다. 겉으로는 처음부터 태연한 척 했기 때문에 쿄야가 하루의 전신근육이 꽤 많이 편안해졌다는 것을 알아챌 리 없었다. 대신 하루는 쿄야가 지금 신경 쓰는 것에 대해 딱 하나 분명하게 짐작 가는 것이 있어서 아주 조금 걱정됐다.
“술을 마시지 않을 손님이라면 이만 나가주시게. 나나 자네나 쓸데없이 시끄러워지는 건 원치 않으니 말일세.”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사박
하루는 쿄야의 옆을 태연하게 지나쳐 갔다. 쿄야는 발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대까지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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