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히바하루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항상 쓰던 히바하루와는 다르게 이번엔 하루를 주연급으로 만들어 봤습니다.(만들 예정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Il violetto 란 이탈리아 어로 '보라색'을 뜻합니다.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9
4.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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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른 아침부터 미우라 일족이 다스리는 조그만 영지 전체가 귀에 거슬리도록 어수선했다.
―사와다 일족이 드디어 미우라 일족을 향해 진심으로 칼을 빼들었다.
사람들을 뒤흔드는 문구가 간밤에 사방팔방 흩날린 탓이었다. 대문 앞 땅바닥에는 땅을 긁어서, 담벼락에는 먹으로, 부잣집 목제 대문에는 칼로 새겨서, 눈을 돌리는 족족 어디서든 이 문구를 볼 수 있게 한 만행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6대 다이묘의 통치로 지친 백성들이 대세력 사와다 일족을 환영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뜩이나 영지 내부에서 6대 척살을 위한 폭동의 조짐이 꿈틀거렸는데, 이번 일이 도화선에 불을 당긴 격이 됐다. 어떤 무리는 사와다 일족에게 충성을 표하기 위해 스스로 미우라 일족을 몰살하고 그 목을 전부 사와다 일족에게 바치자고 부르짖는 극단적인 성향까지 보였다. 평화로운 수습은 유언비어가 퍼진 순간부터 이미 불가능했다.
억지로라도 무게를 잡고 백성들을 진정시켜야 할 상류층-미우라 일족의 가신들-조차 심히 동요했다. 그간 내내 염려하던 민중폭동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터지겠구나 싶어 무사히 빠져나갈 궁리에 몰두했다. 하지만 조그만 영지에서, 사방이 적투성이거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숨을 곳이나 피할 구석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하다니.”
“목숨이라도 건지면…….”
가신들이 모두 다이묘의 저택에 모였다. 하지만 6대 다이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길을 가로막혀 저택 마루 위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하루는, 가신들이 모두 모였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들에게 가려는 부친의 앞길에 족제비처럼 순식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부친의 눈을 올곧게 쳐다본 후 무릎을 꿇어 앉아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이 땅의 다이묘시여, 소자의 아버님이시여. 이번에 일어난 하찮은 소동을 소자에게 맡겨주십쇼. 소자,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옵니다. 아버님의, 이 땅의 다이묘의 힘이 되고 싶습니다. 이미 충분히 그만큼 자랐습니다. 이 하찮은 유언비어 따위 한 번에 이 땅에서 없앨 수 있습니다.”
6대 다이묘는 ‘아들’이 갑자기 본채에 나타났다는 사실 이전에,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벌써 이만한 청년인가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과 매우 다른 지금의 분위기, 인상 등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별채에서만 살아온 네 놈이 뭘 안다고 가볍게 입을 놀리느냐.”
“적어도 아버님께서 최근에 백성들의 폭동이나 불순분자의 암살에 대비하여 술을 멀리하고 칼을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소자, 아버님의 유일한 자식으로서 아버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하루는 두 무릎을 꿇어앉고 허리를 깊게 숙여 이마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한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서 약간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두 손도 마룻바닥에 딱 붙여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비키거라. 넌 아직 미숙하다.”
“미숙하기 때문에 하찮은 일부터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소자, 할 수 있습니다.”
고쿠데라는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은 음지에 숨어서 이를 지켜봤다. 다이묘가 하루를 받아주지 않을까 걱정 되고 긴장되어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두 손도 주먹을 꽉 쥔 채 가늘게 떨렸다. 여기서 다이묘가 허락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계획대로 술술 진행할 수 있었다.
“네 눈에는 지금이 하찮은 것으로 보이느냐?”
“굳이 아버님께서 나설 것도 없이 하찮습니다.”
6대 다이묘는 ‘아들’에 대한 정이나 신뢰가 없는 건조한 눈으로 하루를 내려다봤다. 그동안 외면하며 지냈던 것을 감안하면 그가 하루를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억지로 뿌리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집적으로 끈질기게 노릴 가치가 있었다. 그동안 참아 온 시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버텨야 했다.
“일어나라.”
하루는 부친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맹목적인 ‘아들’인양 고분고분 따랐다. 그러나 눈은 살아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서있다는 사실을 그 눈빛이 증명했다.
“따라와라.”
다이묘는 하루를 데리고 가신들이 모여 있는 대담실에 들어갔다. 고쿠데라는 본채의 시종들의 눈에도 들키지 않게 그림자처럼 조용하고 민첩하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자신의 주인, 하루가 잘 해내리라 믿으면서도 6대 다이묘가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 좀처럼 쉽게 안심할 수 없었다. 여차하면 하루를 곤란한 상황에서 빼내기 위한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했다.
가신들은 다이묘의 늦은 출석과 더불어 하루의 등장에 곱절로 의아해했다. 민중폭동을 앞두고 일각이 급한 시기에 예상 밖의 전개가 이어지자 머리에 피가 쏠리며 화부터 났다. 영지 내 분위기가 최악이라느니, 이 와중에 후계자 얘기가 나오냐느니, 유언비어처럼 정말로 사와다 일족이 침략해 오면 어쩔 작정이냐느니, 평소 제정신이면 쉽게 내뱉지 못할 말들을 험한 분위기 속에서 곱지 못한 말투로 남발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6대 다이묘도 하루도 이정도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다.
6대 다이묘는 가신들을 향해 한 마디도 일절 않고 평소처럼 점잖게 자리에 앉았다.
하루는 그가 자신에게 사태를 정리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하는 것임을 바로 눈치 챘다. 이것도 계산 내였다.
“미우라 일족의 가신이란 작자들이 고작 유언비어 하나에 채신머리없이 흉한 꼴을 보입니까?”
‘그’로 알려진 ‘그녀’는 가신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면서 더욱 화를 돋궜다. 그러나 그들이 화를 내뿜을 틈을 주지 않았다.
“겁먹고 구석에서 떨고나 있는 무능한 당신들에게 바라는 것 따위 없습니다. 전부 제가 말끔히 처리하겠습니다. 미우라 일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나 도움이 못되는 자 모두 내 손으로 정리할 것입니다.”
대담의 자리에 처음 발을 들인 하루는 건방지리만치 당당했다. 가신들은 그녀의 위압에 눌려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6대 다이묘와 하루를 번갈아가며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 어쩔 셈입니까?”
“다이묘의 자식에게 하는 말 치곤 거슬리는 말투십니다. 뭐, 아버님의 신하이지 제 신하는 아니니 지금 한 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 위에 차가운 눈동자. 무심코 입을 열었던 가신은 어깨를 움찔 거리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17이 되도록 한 번도 대담에 나오지 않더니…….”
“누가 병약한 도련님이라는 거야? 내 아들놈보다 더 대장부구먼.”
“평소에 무술연마를 한다던 소물이 사실인가?”
가신들 중에는 지금 다이묘에게 실망하고 빨리 차대로 넘어가길 바라는 세력이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후계자의 병약함’을 믿고 미우라 일족의 미래를 걱정하던 중에 실제 하루를 보자마자 그 걱정들을 싹 버렸다. 12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차기 다이묘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하루는 자기에게 큰소리 내지 못하는 가신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부친의 정면에 당당하게 앉아 고개를 꼿꼿이 들어 시선을 맞췄다. 부친을 향한 악감정을 숨기면서 부친과 마주보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는 자신의 계획을 무사히 성사시키기 위해 인내했다.
“네가 하찮다고 말한 이 혼란을 어찌 할 생각이냐?”
자신밖에 믿지 않는 다이묘의 말투는 뒷목이 저릿할 정도로 냉정했다. 사람의 말만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말투였다. 제아무리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라도 이 말투 앞에서는 자신이 혹여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아이러니한 의심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속으로 다시 한 번 제 마음을 굳히고 꿍꿍이 같은 건 없는 충신인 척 야무진 입을 열었다.
“미우라 일족의 건재함을 알리면서 유언비어를 역으로 이용할 생각입니다. 다이묘시여, 아버지시여. 부디 소자에게 전부 맡겨 주십쇼. 미우라 일족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일족에 폐 없이 일족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루는 자신이 혈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서스름없이 사용했다. 불신주의자인 다이묘에게서 티끌만큼이라도 신뢰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자세하게 말해보거라.”
다이묘는 하루라든지 하루의 생각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차기 다이묘로서 재목인가 아닌가에만 신경 쓸 따름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적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친의 의중이야 어쨌든, 하루는 자신의 계획을 한 단계 진행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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