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무크롬처럼 보이는 히바크롬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L'indaco 란 이탈리아 어로 '남색(감색)'을 뜻합니다.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9
4. 제목에선 표기하지 않아서 여기서 미리 말씀 드리겠는데, 17금으로 지정하고 싶습니다. 17금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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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 여섯 잎
밀피오레 백작가에서 주최하는 성대한 만찬회. 만찬회가 열리고 있어야 할 곳이 절대수비를 자랑하는 밀피오레 백작의 성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화염 속에서 당황하지 않고 타깃을 노리고 있는 자가 두 명 그리고 노려지는 자가 두 명이었다.
“히바리 공작. 오랜만에 만나 반갑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인사할 때가 아닙니다. 비켜주시죠.”
“널 죽이고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얌전히 죽어줘야겠어.”
히바리 공작은 밀피오레 백작을 쫓는 로쿠도 무크로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의 발밑에는 무크로가 데려온 켄과 치구사가 까맣게 그을려가며 쓰러져 있었다. 숨은 일찍이 멈췄다.
“제가 원래 당신과 사이가 나빴지만 더 나빠질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밀피오레 백작은 봉고레 왕가에 필요 없는 고름이 아닙니까?”
“그보다 더 크게 곪은 과오가 네 녀석이라서 말이야. 어차피 밀피오레 애송이는 다른 공작이 처리하기로 돼 있어. 아까 성에 도착했으니까 벌써 제거했을지도.”
“당신네들은 대체 어디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적성이 풀리겠습니까? 시궁창에 살고 있는 것조차 안 된다니, 심하게 무자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폐하의 목숨을 노렸던 주제에 자신은 살고 싶다고 발악하는 건가? 꼴불견이군.”
무크로는 히바리 공작의 비웃음 앞에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시선을 돌렸다. 불의 뜨거움도 연기의 매캐함도 치욕보다 괴롭지 않았다.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은 눈치군. 난 느긋하게 너와 싸우고 싶은데 말이지.”
히바리 공작은 슬쩍 무크로의 속을 떠봤다. 무크로는 속을 읽혔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덕분에 히바리 공작의 가느다란 미소를,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다. 의심했지만 아니길 바랐다.
――크롬
무크로는 잇몸에서 피가 배어오를 정도로 이를 악 물었다. 여유로운 척 괜찮은 척 무관심한 척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나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어린 여자아이를 이용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애석하게도 반대야. 그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도와주고 있는 거야. 나야말로 그녀가 손에 피를 묻히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
“마치 애인인 것처럼 말하는…….”
“공작의 애인에게 손을 댄 감상이 어때?”
무크로는 속이 울컥했다. 히바리 공작이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인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만큼, 그가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 현실보다 과장되게 말하고 있다고 억지로 믿고 싶었다. 하지만 히바리 공작이 한 말인 만큼 현실과 어긋날 리 없었다. 배알이 꼬인다는 말을 이리 실감나게 느낄 줄이야, 자신의 꼴이 웃기지도 않게 짜증났다.
“나 같으면 애인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뜻을 거스르고 다른 공작에게 밀피오레 애송이를 맡기고 내가 널 상대하는 거야.”
“고고한 공작 어르신이 소매치기를 애인으로 뒀다는 걸 세상이 알면 비웃을 겁니다.”
“소매치기 기술이 좋을 뿐이지 소매치기는 아니야. 부유한 집안의 영양이라고.”
히바리 공작은 무크로의 도발을 여유롭게 하나씩 바로 받아넘겼다. 이미 스스로에게 수없이 했던 말이고 이미 깔끔하게 결론을 내린 말들이라 타인이 아무리 찔러도 아무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 크롬이 그에게 직접 대답한 것들이었다.
그녀에게 정체를 드러낸 그 때,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서 ‘괜찮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것이 마치 주문처럼 가슴에 스며들어와 그의 망설임을 깨끗하게 녹였다. 그의 결심이 굳어졌다. 그녀를 향한 마음에 솔직하게 마주 설 수 있게 됐다. 그러니 그녀의 한을 걸고 그녀 자체를 걸고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아무리 네 녀석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댔어도 그녀가 얼마나 따뜻한지 전혀 모르겠지. 그녀의 온기는 오로지 나를 위한 거니까.”
히바리 공작은 검을 쥔 채 한 발짝씩 천천히 무크로에게 다가갔다. 무크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가 따뜻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좌절 속에서 애타게 찾았다. 미열조차 자신의 기억 속에 없었다. 현실직시에 의한 열등감? 좌절? 몸에서 힘이 빠지는 무력감? 이게 어떻든 자신을 노리는 히바리 공작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제대로 본 적 있나? 없겠지. 그녀는 싫어하는 건 절대 똑바로 쳐다보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얇은지 아나? 모르겠지. 그녀는 기쁘지 않으면 성의 없게 말하니까. 난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췄어도 그녀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꼈는데, 다 드러냈던 던 아무 것도 몰라. 그녀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았나? 그랬나보군. 그러니 그녀가 널 거부했던 거야.”
히바리 공작의 목소리가 무크로의 뇌에 어지럽게 울렸다. 그리고 그의 검이 무크로의 뱃가죽을 지나 내장을 꿰뚫었다. 순간적으로 힘을 주자 칼끝이 무크로의 등을 뚫고 나왔다.
“뭐, 그래도 네놈의 무능함 덕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으니 간단하게 감사하다고 해두지.”
무크로의 귀에 더 이상 히바리 공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는 불이 무섭게 타오르는데도 자신의 육체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가 애초에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는 슬픔을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곱씹었다.
“뒷골목에서 도적질이나 하더니 전보다 더 무능해졌군. 정말 시시해.”
히바리 공작은 무크로의 살덩이와 피에 단단히 응겨 붙은 검을 억지로 뽑아냈다. 추하게 벌어진 틈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히바리 공작에게도 다소 튀었다. 그는 칼날을 따라 흐르는 피를 경멸스럽게 흘겨봤다. 그리고 어깨부터 팔꿈치를 지나 손목까지, 스냅을 이용할 수 있는 관절들을 휘두르듯이 튕겨 붉은 피를 불 속으로 뿌렸다. 역겨운 수증기가 아주 잠깐 피어올랐다.
한 순간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중요한 것을 지나쳤을 때 본능이 보내는 신호였다.
그는 노려보듯이 무크로의 시체를 내려 봤다. 하지만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밀피오레 백작의 성이 불에 견디기까지 그 시간이 촉박하게 남은 상태였다. 일단 성을 나가서 그녀와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불 속의 그림자
“큭.”
본능은 정확했다. 무크로는 살아있었다. 자신과 마주치기 직전에 기묘한 술법으로 도망갈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로쿠도 무크로의 18번인 것을 히바리 공작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절대 안 놓친다.”
히바리 공작은 불과 부서져 내리는 대리석 파편을 피하며 무크로의 그림자를 눈에서 놓치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졌지만 조금도 약한 면모를 보이지 않았다.
오감을 마비시키는 검은 연기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과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산재한 파편들. 재앙이 들이닥친 말로에 걸맞은 추잡한 광경.
이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가 있었다.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그 안에서 나오지 않은 채 시간이 무자비하게 흘렀다.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심장을 세게 옥죄었다.
“순진무구한 소녀가 설마 나를 죽이러 온 첩자였을 줄이야.”
무크로의 지팡이가 크롬의 등 뒤에서 그녀를 겨누며 날카롭게 번뜩였다. 평범한 지팡이 안에 숨겨둔 범상치 않은 쇠붙이를 해방한 것이다.
“공작은…… 쿄야 씨는…… 그 사람은 어디 있죠?”
크롬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자신의 말이 확인사살이 되어 무크로에게 일순간의 빈틈이 생겼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배신감
[툭]
“쿠훗, 쿠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무크로는 지팡이를 지면에 떨어트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무아지경으로 웃었다. 양팔로 제 몸을 감싸 안으며 심하게 떨기도 하고 전후좌우로 발을 헛짚으며 비틀거리기도 했다. 실성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날 노리고 접근했으니 배신도 뭣도 아니지요. 쿠후후후후후후후.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크롬 아니 나기.”
드디어 그녀를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그것도 철저한 타인으로 인식했다.
그녀는 무크로를 향해 돌아섰다. 조용히 울고 있었다. 양손에는 이미 단도가 한 자루씩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온 힘이 쏠려있었다. 그와 비등하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동그란 눈이 날카롭게 보일 정도로 살의를 드러냈다.
“부모님이 죽는 걸 방관하고 그 사람을 죽이고 대체 내게서 얼마나 더 뺏어가야!”
“나기.”
낯익은 음성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고 낯익은 손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다. 그가 살아 있었다.
여기저기 그을음이 있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유령이 아니군요.”
“멋대로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아.”
“네, 네. 쿄야 씨는 강하니까요. 제일 강하니까요.”
그녀는 안심하며 눈물을 닦았다. 자연스럽게 미소 짓기도 했다. 몸 전체가 그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기쁘다고 말했다.
“정말 짜증나는군요. 머저리 국왕폐하와 가증스런 왕비전하랑 맞먹을 정도로 역겹습니다. 쿠훗! 천하의 히바리 공작이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다니 저 계집이 정말 대단한 여우인가 보군요.”
히바리 공작의 검이 무크로의 턱을 치켜들었다. 무크로가 피하거나 가로막을 틈도 없이 한순간이었다.
“누구도 나기를 모욕할 수 없다. 더욱이 너는 그녀에 대해 왈가발가할 자격이 없다.”
“한 때 인형으로 삼고 품에 안았던 주인인데도 말입니까?”
“말조심해요.”
무크로의 예상과 다르게 그녀가 먼저 발끈했다. 하지만 히바리 공작이 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자 치솟았던 감정이 쉬이 누그러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기가 감정을 안고 진심으로 대하는 상대는 나 하나뿐이다. 감정이 맞닿아있는 한, 적어도 내 감정이 계속 나기에게 향하는 한, 네 놈이 나기에게 무엇을 했건 이 몸은 영원이 나기의 편이다.”
히바리 공작의 온기 속에서 모든 증오와 슬픔 그리고 한이 유들유들해진 나기는 복수를 위해 그 동안 갈고 닦은 것들이 아깝지 않을 만큼 모든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피를 부르는 복수가 아닌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이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껴안아줄 포용력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심장이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가슴 깊숙하게 와 닿았다. 그러자 무크로에게 맨살을 쉽게 내보였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 그래도 자신을 감싸주는 히바리 공작에게 감사했다.
“어-이, 히바리. 밀피오레 애송이는 처리했다.”
멀리서 활발함이 넘치는 목소리가 곧게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언뜻 작게 보였다. 히바리 공작과 무크로는 그가 야마모토 공작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저 치까지 가세하면 정말 끝이다, 로쿠도 무크로.”
“안 될 말입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안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넓게 퍼지면서 짙어졌다.
“같은 수법으로 도망칠 셈인가?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된다.”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자식……!”
히바리 공작은 그녀를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한 치 앞도 못 알아볼 만큼 시야가 뿌옇게 짙어졌다. 대기가 우유색에 가까웠다. 인기척과 직감에 의지해야 할까―― 그러나 감각에 의식을 집중할 것도 없이 무크로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크로가 멀리 사라지면 자연스레 안개가 옅어지기 때문이었다.
“녀석을 놓친 건 분하지만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음엔 꼭 녀석의 머리를 너에게 바치마.”
그녀는 히바리 공작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 에필로그
햇빛에 반사되어야 보랏빛이 보이는 짙은 보라색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부모가 모두 월등히 아름다운지 6-7세로 보이는 소녀가 ‘미소녀’가 아닌 ‘미녀’를 먼저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리따웠다.
귀족가 영양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고급 드레스를 입고 머리장식이며 구두 모두 최고급품을 두른 채, 수백 가지 꽃이 만개한 들판을 이리저리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고삐 풀린 망아지도 소녀만큼 활기차지 못할 것이다.
[쿵]
“아야. 죄송해요.”
소녀는 두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자신보다 훨씬 큰 남자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나야말로 미안합니다. 아가씨가 작아서 몰라 봤습니다.”
그는 무릎을 굽혀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크롬…….”
“네?”
“아니에요. 제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모르는 사람하고 함부로 얘기하는 거 아니야.”
소녀보다 2-3살 많아 보이는 소년이 소녀를 제 뒤로 끌어당기면서 소녀와 남자 사이에 섰다. 날카로운 눈으로 낯선 그를 올곧게 쳐다봤다.
그는 소녀에 이어 소년까지 보자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났다.
“귀한 분들이시군요. 쿠후후후.”
소년은 기분 나빠하며 소녀를 데리고 그에게서 거리를 뒀다. 본능이 꿈틀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이 생기다니 스스로 놀랐다.
“역시 그의 아들입니다. 쿠후후후. 걱정 마십쇼. 해치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부친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당신들의 모친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는 안개가 사라지듯이 천천히 흐릿하게 사라졌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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