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 무크롬처럼 보이는 히바크롬 NL커플링이 기본입니다
2. 팬소설에는 너무나 실력이 미약한 저인지라 졸작이 싫다 하신 분은 ‘뒤로’퍼튼이나 ‘백스페이스’를 살포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3. 제목의 L'indaco 란 이탈리아 어로 '남색(감색)'을 뜻합니다.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9
4. 제목에선 표기하지 않아서 여기서 미리 말씀 드리겠는데, 17금으로 지정하고 싶습니다. 17금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5. 타 사이트에서 장편 판타지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관계로 연재 속도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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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 네 잎
밀피오레 백작령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봉고레 왕가에서 고쿠요 단을 섬멸하기 위해 밀피오레 백작령에 직접 최측근의 유능한 인재를 파견한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미 파견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쿠요 단과 천하의 로쿠도 무크로마저 살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봉고레 왕국이 소국이라도 대륙을 주름잡는 중심세력이라는 사실로 보아, 왕가와 그 측근 귀족이 상당한 능력자들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다. 그 봉고레 왕국에 사는 고쿠요 단이니 왕가에서 움직인다는 이야기에 반응을 보일만 했다.
“단장. 6대 공작가 중 하나는 아니겠죠?”
“도적단 하나 잡는데 그런 주요 인사를 쓰겠습니까?”
“히바리 공작이 움직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 사람 소문이 납니까?”
요 며칠, 무크로의 미간이 펴질 날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크롬이 무크로에게서 떨어져 혼자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멋대로 시가지에 나가서 본업-소매치기-에 충실하고 돌아와도, 단원 중 누구도 그녀의 외출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도 아지트에서 빠져나가 유유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과 한 알정도 슬쩍 해서 배를 채우는 것 정도야 손재주가 좀 있다는 소매치기라면 애교에 속하는 장난이었다. 직업병이랄까, 눈은 사람이나 거리의 풍경이 아니라 팔아서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쫓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내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있지만 손이 뻗질 않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생긴 감이었다.
“이봐!”
누군가 크롬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두다다다다다 다닥다닥다닥 다다다다다다다]
말 두 필이 끄는 사륜마차가 그녀가 있던 곳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크롬은 낯선 이에게 안긴 채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정신을 차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험한 거리에 몸 얇은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고 배우지 않았나?”
말투는 딱딱하지만 크롬이 진정할 때까지 자신에게 편히 기댈 수 있게 해줬다.
“코르셋을 입고 다니는 여자들보다 몸이 더 얇군.”
“아…… 아……. 죄, 죄송합니다.”
크롬은 급히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후에 느낌이 왔다. 그에게 맞붙었던 부분과 그의 손이 닿았던 부분이 욱신거렸다. 마주보고 있는 그가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게다가 그에게서 귀족이 즐겨 뿌리는 고급 향수 냄새가 여리게 났다. 어디서 묻어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뿌리고 시간이 지나 옅어진 향이었다. 신경이 예민한 크롬은 그렇게 짧은 순간에 그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가 허름한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지만 크롬의 감에서 자신을 가릴 수 없었다.
“사과 받으려고 구해준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아, 고맙습니다.”
“여전히 재미있는 여자군.”
짧은 흑발과 흰 피부 그리고 차가워 보이는 무표정 속에서 엷은 미소가 슬쩍 보이는 순간, 주변에 산재한 냉기가 그에게 모여드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스쳐지났던 이 감각 크롬의 기억을 화르륵 일깨웠다.
“아.”
크롬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양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겁먹고 당황한 얼굴을 그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 안 좋은가? 아니지. 상대가 나니까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거겠군. 나기.”
그는 처음부터 ‘그녀’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했다. ――그가 바로 봉고레 왕가의 최측근 공작가 중 하나, 히바리 가를 이끄는 히바리 공작이었다. 타인에게 관심일랑 가지지 않고, ‘자기 외의 사람은 적이거나 사용인’이라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소문대로 봉고레 왕국의 여섯 공작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 때문인지 히바리 공작 본인과 그가 이끄는 사병이 ‘최강’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쿠데타를 일으키면 왕조를 뒤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속에, 그가 워낙 개인주의라서 지금의 지위조차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세상이 어떻게 흐르든 자기 내키는 대로 사느라 바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저 수수께끼 속 인물이었다.
“날 고용한 잘난 공작님이군요.”
“처음 만났을 땐 목소리가 변조되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용케도 알아차렸군.”
“그야……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뒷골목 출신이니까요.”
“감이 발달했다는 얘긴가?”
히바리 공작은 망토를 슬쩍 들어서 크롬을 가렸다. 그들의 옆으로 당나귀 한 필이 끄는 수레가 거칠게 달리면서 흙먼지를 과하게 풍겼다. 그들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왕국에 있는 여섯 공작가를 모두 알고 있나?”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 했지만, 크롬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고쿠데라, 야마모토, 히바리, 사사가와, 보비노, 캬발로네. 상식이잖아요.”
“캬발로네 이전은?”
“카와히라…….”
“그 전은?”
“로쿠도………….”
“로쿠도 가에서 캬발로네 가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
크롬은 히바리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고쿠요 단을 이끄는 단장, 로쿠도 무크로가 4년 전에 봉고레 왕가를 배신하여 왕가 및 공작가들에 의해 귀족에서 서민으로 강하한 로쿠도 공작이다.
의심은 했었다. 본디 그녀는 로쿠도 공작령, 지금의 캬발로네 공작령 출신이었다. 공작의 얼굴이야 한 번은 언뜻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이 많이 흐려져서 의심만 하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네 부모를 죽이고 네 눈을 앗아간 밀피오레 놈을 지옥으로 떨어트리려면 고쿠요 단도 같이 괴멸해야 해. 계약 내용은 기억하지? 난 밀피오레 녀석을 처단한다. 넌 고쿠요 단을 구석에 몰아넣는다.”
“알고 있어요. 기회를 보고 있어요.”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야. 만들어야지.”
히바리 공작이 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붉은 봉납이 가독이 찍힌, 귀족에게나 배달되는 초대장이었다. 더욱이 로쿠도 무크로가 덥썩 물을 만한 밀피오레 백작가의 만찬 초대장이었다.
“10년 전. 자신의 영지에서 자신의 백성이 다른 영지의 귀족에게 사고를 당해 불행하게 됐는데도 방치한 무능한 공작, 로쿠도 무크로는 직접 사고를 저지른 밀피오레 못지않게 죄가 커. 그래서 너의 원한은 밀피오레와 로쿠도 모두에게 깊지. 빨리 한을 풀어야 너의 눈과 부모에게 떳떳해지지 않겠어?”
크롬은 초대장을 받아들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어린 시절에 겪은 그 사고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고, 시력을 잃은 오른쪽 눈이 욱신거렸다.
사고 후 부모님을 잃고 집안이 망하고 홀로 뒷골목을 전전하면서 로쿠도 공작가가 몰락한 후에 아주 잠깐 카와히라 공작이 장원을 다스리던 시절. 마침 그곳을 지나던 히바리 공작에게 거둬졌다. 그리고 2년 동안 복수를 위한 모든 기술을 배웠다. 부유한 집안 아가씨의 생활을 다시 하면서 동시에 소매치기, 암살, 도박 등 속칭 뒷골목 잡기를 익혀야만 했다. 히바리 공작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을 당연히 눈치 챘다. 하지만 자신도 그를 이용했다. 인간보다 못한 생활로 추락한 자신을 예전 못지않은 풍족한 생활로 끌어올려준 나름 은인이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줬다. 처음 만났을 때만 가면을 쓰고 직접 만났고, 그 후부터는 심부름꾼을 통해 말을 전하고 전해 받았지만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 공작과 작위 없는 부유층 사이의 일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손에 기술이 익숙해지고도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러워졌을 때, 고쿠요 단에 접근하는 방법을 전부 자신이 계획했다. 오히려 공작이 반대했다. 그러니 지금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을 도와주는 히바리 공작을 야속하게 생각할 리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에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걸까?
크롬 자신이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변덕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거야 원. 그 동안 심부름꾼을 썼기에 망정이지 매번 겁먹은 소녀로 만들 뻔했군.”
히바리 공작은 난감하다는 듯이 앞머리를 뒤로 길게 쓸어 넘겼다. 시선도 크롬에게서 떼고 오른쪽 아래로 살짝 내리 깔았다. 신분 상관없이 평범한 청년(봉고레 왕국의 왕 그리고 여섯 공작들은 모두 20~30대로 젊다.)처럼 보였다. 그는 다시 곁눈질로 크롬을 보더니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슬슬 쓰다듬었다.
“얼굴을 처음 본다 치더라도 겁먹을 정도로 어려운 사이는 아니잖아. ……적당히 해 둬.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적-어도 아까 마차에서 구해준 사람이라고?”
마법일까? 그가 한 번 한 번 쓰다듬을 때마다 긴장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졌다. 편해지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함이 피어올랐다. 가족을 모두 잃은 후로 처음이었다.
“이제 괜찮아요. 아… 죄소…… 아, 정말 괜찮아요.”
크롬은 히바리 공작의 얼굴을 곧게 쳐다보며 생긋 웃었다. 공작은 잠깐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네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해봐. 난 네가 힘들지 않게 최대한으로 기회를 만들어 줄 테니까.”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을 내려 그녀의 볼을 살포시 감쌌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무표정인 듯 슬픈 듯 감이 좋은 크롬도 눈치 채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거의 분위기가 다시 차가워진 느낌이었지만 처음처럼 속수무책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내가 대신 로쿠도 무크로를 끌어낼 수 있어. 네 진짜 복수 대상은 밀피오레니까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고쿠요 단의 일은 내게 맡겨도 괜찮아.”
“지체 높은 공작님이 도적단에 들어가시면 아무리 뛰어나게 연기해도 금방 들켜요. 괜찮아요. 단장이 옛날에 로쿠도 공작이란 걸 알았으니까 그도 저의 복수 대상이에요. 공작님은 귀족으로서 귀족 밀피오레 백작을 처벌해주세요.”
크롬은 스커트 단이 무릎까지 오는 노란색 홑겹 드레스의 스커트 부분을 살짝 들고 무릎을 약간 굽히며 가볍게 인사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좋은 틈에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답답한 어둠 속에서, 허름한 차림이지만 빛나 보이는 천연적인 자태였다. 누구든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거나 부유한 집안 자제일 것이라고 생각할 고운 선이, 목선에서 등선을 타고 내려가 허리선을 휘감고 다리 선까지 굴곡을 맵시 있게 그렸다.
“네가 고쿠요 단에서 들키지 않은 걸 이해할 수 없어.”
히바리 공작은 다시금 망토로 크롬을 가렸다. 그리고 그 좁은 곳에서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도 보이지 않게 그녀의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머리를 깊게 숙였다. 고쿠요 단의 단원이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때까지, 그의 숨이 그녀의 목에 그녀의 숨이 그의 목에 규칙적으로 따뜻하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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