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귀신이 귀신을 돕는 이유
지금이 몇 시냐고 한다면 새벽 1시 30분이다. 새벽이라기보다는 밤이라 해야 더 정확할 듯 싶지만. 이 시간까지 내가 자지 않고 몰래 집을 빠져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다행히 아빠는 한 번 잠에 빠지면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절대 깨어나지 않는 ‘신적인 깊은 잠’을 유지하기 때문에 집에서 빠져나오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보리를 위해서 내 수면 시간을 포기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정말 할 생각이냐?”
“그럼.”
기는 내 행동을 한심스럽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재밌을 것 같다면 이렇게 따라 나왔다. 기는 잠 못 잔다고 투정부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잠이 거의 없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성수라고 해도 체력을 보충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야 할 텐데 그간 계속 밤에도 밖을 돌아다녔다. 덕분에 잠이 얕은 나만 수면 부족 상태를 바라보게 되었다. 뭐, 학교에서는 내가 대놓고 자도 절대 터치하지 않으니까 부족한 수면이야 마음 놓고 보충할 수 있다.
내가 밖에 나온 건 돌아다니는 귀신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어제(라고 하기에는 기분이 묘하나) 내 말을 들은 경찰 언니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알겠다’고는 했는데 역시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세상에 15살짜리 여중생이 밖에 버려진 시체가 아니라 숨겨진 시체를 얘기하니 믿을 사람 누가 있을까? 숨기는 장면을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지구대에서 나오기 전에 심한 거짓말 하나를 해버렸다. 책 틈새로 사람 손을 봤다고.
“널 도와줄 귀신이 있을 거라 생각해?”
휴.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귀신의 도움을 받아 보리의 시신을 조금 드러내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에 지구대 대 누군가가 ‘영장 신청해’라고 했으니까 내 말을 진실로 만들어야 했다. 뭐, 도움을 청할 만한 귀신은 있다. 근처 아파트를 배회하는 젊은 오빠랑 학교에서 옥상 난간을 위험하게 걸어 다니는 여자애. 요 이틀 안에 알게 됐는데 서로 얘기가 잘 통해서 서로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이라면 내 얘기를 들어는 줄 거다.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보리보고 하라고 하지.”
“보리는 그 근처에 가는 것만 해도 무리라고. 무서워한단 말이야.”
보리는 혼자서 그 안에 못 들어간다. 6살짜리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도 잘못이다. 나보고 하라면 야 할 수 있지만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갈 수도 없고 방범 카메라도 있으니 무리다. 귀신의 도움을 받으려는 건 이 때문이다.
“지희구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기 전에 창우 오빠를 만났다. 근처에서 깡패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당하고 죽었다고 한다. 창우 오빠는 깡패가 사라지고 나서도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사인(死因)은 폭행이라기보다 과다출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널부러진 오빠를 보고 모르는 척, 못 본 척 방치했다 한다. 아무리 칼에 찔렸다지만 바로 병원에 가면 살 수 있었을 거라는데, 매정한 사회를 탓할 뿐이다.
“여자애가 혼자 이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해.”
“오빠한테 도움을 청하러 왔어.”
“그렇게 말하니까 징그럽다.”
난 신경 써서 정중하게 말했는데 창우 오빠의 반응은 그닥 좋지 않다. 상관없다. 난 내 할 말만 하리.
“나 심각해. 지금 꼭 해야 하는 급한 일이야.”
뚫어져라 창우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는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있다가 슬쩍 웃었다. 이런…… 구신이 웃으니까 등골에 소름 끼친다.
“흐응. ‘김보리’라는 유괴된 여자애 때문이야?”
이번엔 내가 멍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니 이 사람이…… 이 귀신이 그걸 어찌 알았지? 귀신이 곡할 노릇… 귀신이라서 아는 건가? 그건 절대 아니라 확신한다. 귀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기가 가르쳐줬으니까.
“지박령이 아니니까 나도 돌아다니기는 한다고. 오늘 우연히 너 보고 뒤를 쫓아다녔거든.”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늘…이 아니라 어제(자정이 넘어갔으니까.), 뜬금없이 ‘바쁘네’라고 말하더라. 내 사정을 좀 알고 있다면 말 꺼내기는 쉽겠다. 그래도 창우 오빠는 18살인데 시체보기가 무섭다고 거절할까. 피떡이 된 자기 시체를 봤다는데 좀 썩은 시체도 못 볼라고. 아니, ‘피떡’과 ‘부패’는 엄연히 다른 거니까 거절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부탁해 봐야지.
“보리랑 관련된 일이 맞아. 보리의 시신에 약간 조작을 보태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시신을 조작한다고?”
창우 오빠는 내가 말한 것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불쾌해 하는 표정이 아니라 관심을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럴 때 말을 밀어 붙여야한다.
“경찰들이 보리의 시신을 찾기 쉽게 아주 조금만 끄집어 낼 거야.”
“오-.”
“호오-.”
창우 오빠가 감탄사를 펼칠 때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등골이 서늘하고 기분이 찝찝한 것이, 이 근처를 지나던 어떤 귀신인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까 ……에? 에에? 엣!
“안녕!”
작년에 나랑 같은 반을 했고 지금은 옆 반이 되었으나 나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자타칭 어둠의 딸, 이유린 양이귀신의 형태로 내 뒤에 서있었다. 수식어가 무척 긴데 이건 내가 아주 많이 놀랐다는 증거다. 하아……. 어제도 멀쩡하게 나와 대화를 나눈 아가씨가 왜 여기에 이런 꼴로 서있을까? 귀신은 뭔가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도 있나 보다. 안 그러면 유린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기. 귀신은 변신도 할 수 있어?”
“못 해(X3)."
기와 창우 오빠와 유린으로 보이는 귀신이 동시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귀신은 정말 그 활달하고 팔팔하며 심하게 생기발랄한 이유린이란 말인가. 이 송지희도 살아 있는 판에 이유린이 죽는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나 유린이 맞아.”
유린으로 보이는 귀신은 당당하게 자신이 유린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퍽!]
“흐야아.”
심히 아프다. 기가 날개로 내 뒤통수를 세차게 휘갈겼다. 저 조그만 날개가 힘은 무식하게 세다. 본의 아니게 이상한 소리를 입 밖으로 나오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프다.
“왜 때려?”
“이걸 봐라.”
내가 맞은 곳을 붙잡고 항의하니까 기가 유린의 이마를 가리켰다. 유린의 이마에는 붉은 색으로 뭔가가 써있었다. ‘脫’ 탈?
“이건 육체 이탈을 한 영혼이란 뜻이야.”
기는 아주 짧게 그 글자의 의미를 설명해 줬다. 그러면 처음부터 말로 하면 되지 왜 폭행먼저 휘두르나 몰라. 내가 배웠다가 잊어버린 거면 몰라도 오늘 처음 보고, 처음 안 사실인데.
“정말 육체 이탈이란 게 존재하는 거야?”
“니 눈으로 보고 있잖아.”
유린은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자기가 육체 이탈한 사실을 놀라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 자의로 육체 이탈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아가씨 진자 호아당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네. 평소에 ‘오컬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왜 그런가 했더니 몸소 이런 걸 하기 때문이었구나. 아니, 지금 내가 이런 데에 정신 팔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내친 김에 유린이한테도 부탁해야겠다.
“야, 유린아 나 좀 도와줘.”
내 뒤에서 시신을 끄집어낸다는 말을 들었을 테니 내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의 핵심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설마 어둠의 따님께서 시체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땅 파야 돼?”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삽질을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아니야. 책장 뒤에 시신이 있어. 손만 책 사이로 보이게끔 하면 돼.”
유린은 육체 이탈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심란한 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시체에 손 대달라고 부탁하는 나도 기분이 찝찝한 데 부탁받는 입장이야 오죽하겠는가. 유린이 뿐만 아니라 창우 오빠한테서도 대답을 들어야 하는데 유린이에게만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도와줄게.”
창우 오빠를 돌아보는데 오빠는 내가 보자마자 긍정의 대답을 해줬다. 이거 너무 쉽게 ‘Yes'대답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정말 도와줄 거야?”
난 확인 차 다시 물어봤다. 시체에 손댄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되는 일이니까 비록 귀신이라도 중요하고도 위험한 일에 앞서 재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내 우려와는 다르게 창우 오빠의 밝은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응, 도와줄게.”
그 표정과 어울리는 긍정의 대답을 다시 선사해 주었다. 크…….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도. 나도 도와줄게. 재밌을 것 같아.”
시체의 손을 꺼내는 일이 재밌을 것 같다니. 유린의 사고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도와준다니까 고마울 따름이다. 이 드 명이 같이 작업을 하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 그러면 지금부터 시신의 위치를 알려줄게.”
나는 창우 오빠와 유린에게 보리의 시신이 서점 내 어떤 책장 뒤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시신의 위치를 듣고 둘은 좀 놀란 눈치였지만 그 놀람은 금세 가라앉았다. 난 이 자리에서 기와 함께 기다리기로 하고 둘은 서둘러 서점으로 향했다. 그들이 서점을 출발한 건 2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4시간이 지난 지금. 오후 4시다. 난 기와 함께 서점 근처 길가에서 서점 주인이 경찰에 붙잡혀 경찰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오기 전에 보리의 부모님이 서점 주인의 멱살을 붙잡고 맹렬하게 흔들며 오열했다고 한다. 보리는 지금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자신의 엄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 곁에 서있다. 창우 오빠는 없지만 유린이 건너편 인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육체 안에 혼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창우 오빠의 설명에 의하면 보리의 시신은 허술하게 숨겨져 있었다 한다. 책장 뒤의 벽은 보리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곡괭이 같은 것으로 대충 파여 있었고, 벽과 같은 색의 천으로 보리를 가린 것뿐이라 한다. 그래서 천을 조금 찢어 보리의 손이 나오게 한 후에 다른 곳도 몇 군데 찢어놨다고 했다. 뭐, 천으로 가리고 책장으로 교묘하게 감춰놨으니 시체의 물이 새 나온 것도 당연하다. 다만 악취를 맡지 못한 것이 이상할 뿐이다. 악취가 약해서 책 냄새에 가려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보리의 시신을 찾고 범인을 찾은 마당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슬쩍 봤는데, 저 아저씨, 상습범이래.”
흐이익! 웬 남자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갑자기 들리니까 심장이 확 오그라들었다가 펴진 것 같다. 게다가 귀신의 냉기까지 등에 확 끼치고. 뒤를 돌아보니까 창우 오빠가 서있었다.
“어디 다녀왔어?”
“저기 경찰차 근처랑 지구대에.”
새벽에 작업을 끝내고 나서부터 창우 오빠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시체에 손을 댔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지금도 이 상태인 걸 보니 다른 이유가 있나보다. 서점 주인의 상습범 내력까지 알아내다니 은근히 이런 일에 열심이다.
“상습범이라면 어떤 건데?” “강간, 성폭행, 유괴 등…….”
창우 오빠의 대답에 난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전적이 화려한 인간이 버젓이 서점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 줄이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밀폐공간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러 왔겠지. 화나면서 소름도 끼친다. 보리가 어쩌다가 서점 주인에게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연민의 감정이 다시 싹튼다.
“지희야.”
유린이 길을 건너서 왔다. 육체로 혼이 들어간 상태에서는 귀신을 볼 수 없다더니 옆에 창우 오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까 유린이는 내가 왜 귀신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창우 오빠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귀신 성불을 돕기 시작했다고 말해서 본의 아니게 귀신을 보게 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유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말하는 새(=기)의 정체에 대해서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번거로운 일을 당하지 않으니 나야 편해서 좋지만 좀 찝찝하다. 그래도 유린이 일부러 입 다물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일일일 말할 필요야 없지.
“저쪽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있지.”
우리 넷(나, 기, 창우 오빠, 유린)은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지나가는 곳마다 서점 주인과 보리 이야기로 가득했다. 애들을 함부로 밖에 못 내보내겠다는 둥,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둥 부정적인 대화가 대세였다. 하긴, 긍정적인 말이 나오기엔 상황이 너무 글러먹었다.
나와 유린은 놀이터에 마련 돼 있는 벤치에 앉았다. 기는 내 왼쪽 어깨에 앉았고 창우 오빠는 우리를 보며 서있었다. 내가 모두를 여기로 데려오긴 했지만 막상 오고 나니까 무슨 말을 할 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희야, 혹시 여기에 창우 오빠 있어?”
유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정말로 지금은 귀신이 보이지 않는 구나.
“응. 앞에 서있어.”
“그래?”
유린은 눈을 감더니 내 쪽으로 픽 쓰러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육체에서 이탈한 유린의 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어도 그렇지 말 좀 하고서 육체 이탈을 하지, 갑자기 멋대로 그러니까 괜히 심장만 콩닥거리잖아. 가뜩이나 수명이 짧은데 더 줄이고 있어, 이게.
“안녕하세요.”
“응, 안녕.”
유린은 창우 오빠를 향해 발랄하게 인사했다. 창우 오빠도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줬는데 둘 다 내면의 표정이, 참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찝찝하다는 게, 둘을 보고 있는 나까지 표정이 애매해졌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을 겪고서 표정이 깔끔하다면 그 인간이 수상한 거겠지. 아, 근데, 유린 이 녀석, 은근히 무겁네.
“세상 참 각박하죠?”
유린이 내던진 한 마디는 좀 의미심장했다. 좀 엉뚱한 애이긴 해도 쓸데없는 말은 제일 안하는 녀석이다. 평범하게 들리는 그 한 마디도 예사롭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세상을 부정적이다 못해 더럽게 보는 창우 오빠에게 그런 말을 내던지다니……. 알고 했을 리는 없겠지.
“뭔가 알아낸 거야?”
난 유린이 그냥 말했을 리가 없다 판단하고 곧장 물어보았다. 슬며시 우울하게 변하는 유린의 표정은, 역시 무너가 알아낸 게 있는 것이다.
“우연히 아까 사람들 속에서 들었는데, 보리가 유괴 당한 날, 누군가 보리가 서점 아저씨한테 끌려가는 걸 본 적이 있대.”
“정말?”
나와 창우 오빠는 곧바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보리 유괴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대대적으로 매스컴이 떠들어댔는데, 목격자는 입 다물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뭣 때문에. 장소와 범인을 알면 바로 신고를 했어야지 그냥 나 몰라라 했다니. 눈과 입에 미련이 없나 보지? 바로 신고했으면 보리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목격자는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여자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짜 빌어먹을 세상이군.”
창우 오빠가 저렇게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오빠도 주변 사람들의 묵언으로 죽은 거니까. 나와 오빠 중에 누가 더 많이 화났냐고 하면 당연히 오빠다. 자기랑 닮은꼴로 죽었으니 더욱 분하고 가슴 아플 것이다.
“그래도 사정 모르는 아이를 도와주다니, 넌 그나마 제대로 된 녀석이군.”
그동안 우리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기가 입을 열었다. 기의 말이 일리가 있다. 창우 오빠는 보리가 유괴를 당하고 죽었다는 것 밖에 모른 상태에서 나와 보리를 도와줬다. 보리가 억울하게 죽은 사연은 지금 유린이 말해줘서 알게 된 거니까. 다른 사람이면 피하고 거절할 일을 오빠는 선뜻 해줬는데, 오빠가 너무 착한 사람이라서 였다고 하기엔 좀 무리라고 본다. 나름 도와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타깝잖아. 한창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거 많은 나인데 그렇게 죽은 거…….”
창우 오빠의 눈은 진심으로 슬퍼보았다. 어린 나이에 죽은 것은 그 부모님에게 불효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더 살아보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서 안타까움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본인도 죽고 나서 일찍 죽은 것을 얼마나 한탄하겠는가. 창우 오빠도 장래 희망을 정하고 여러 가지 생각해 놨을 거다. 어른도 못 되고 일찍 죽은 것이 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보리에 대한 동정으로 변하고.
“다시 태어나면 한 없이 오래 살아라.”
기가 툭 던지듯이 한 말에 창우 오빠는 피식 웃었다. 분위기가 곧 성불을 할 것 같다. 성불할 때는 한을 떨치고 해야지 현세에 미련을 두고 어떻게 저 세상에 갈까. 오빠도 다른 몇몇 귀신처럼 오래 박혀있지 않으려면 지금이 성불할 기회다. 귀신이 현세에 오래 있으면 성수 입장 상 귀찮을뿐더러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 입장 상 그닥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야지.”
창우 오빠도 기의 말에 맞춰 실없이 말을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보리 일로 화났던 얼굴이 많이 누그러졌다. 다 풀렸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내가 좋은 세상 보내주마.”
기는 머뭇거릴 것 없이 창우 오빠의 머리 위에 앉았다. 창우 오빠는 자신이 곧 성불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기의 몸에서 푸른빛이 나고 그 빛이 오빠의 몸을 감쌀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공중에서 흩어지듯이 창우 오빠가 성불하자 냉랭한 기운도 더불어 사라졌다.(유린이 거 빼고) 성불이란 건 의외로 허무한 거다. 눈에 보이던 이가 아무렇지 않게 현세에서 사라지는 모습은 내 마음까지 텅 비게 만든다.
“성불이란 허무한 거구나.”
유린도 나와 간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성불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게……지. 벌써 육체로 돌아가다니, 정말 서슴없이 육체의 내외를 왕래하는군.
“이제 보리도 성불하는 거야?”
“으, 응.”
그렇다. 아직 보리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이 상황을 참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다. 분명히 성불하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일 텐데 뭐 하나 신기해하거나 놀라워하는 구석이 없다.
“너는 나나 기가 이상하지 않아?”
무슨 대답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한 번 물어는 봐야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유린이도 전혀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뭐가 이상해?”
에? 유린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정말 이상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건가…….
“으음. 앵무새도 아닌 것이 사람 말을 아주 잘 하고, 또 성불하는 것도 그렇고.”
기에 대해서 말할 때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언제나 ‘새’가 아니라 ‘성수’라고 강조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정확하게 ‘새’니까 달리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그냥 ‘말하는 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쓸데없이 기가 ‘성수’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대충 훑어 지나가듯이 말하는 것뿐이다. 기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뭐, 어때. 나 자체도 충분히 이상한 걸. 더 이상한 일이 있어봤자 다 거기서 거기잖아.”
“아, 그래.”
하기사 육체 이탈을 제 편한 데로 맘대로 하는 것도 충분히 이상하지. 자기가 이상한데 다른 게 이상해봤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컬트한 것을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좋아하기까지 하니까 웬만한 일은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왠지 처음에 물어본 내가 바보 같다.
“너 말이야.”
갑자기 기가 유린에게 말을 걸었다. 유린은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기를 쳐다봤다. 에, 기가 이상하진 않아도 신기하긴 신기한가 보다.
“함부로 육체 이탈하지 않는 게 좋아. 정말로 유령 꼴로 이 세상 등질 수도 있어.”
이 세상을 등지다니. 기도 참 말을 험하게 한다. 그래도… 육체 이탈을 하다가 도중에 육체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야말로 진짜 유령 신세가 되는 구나. 귀신하고는 또 격이 다른 존재. 특이한 재주가 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네가 성불해 주면 되잖아.”
“그건 귀신뿐이야. 명부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유령은 명부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떠돌아야 해.”
“뭐 나쁠 건 없지.”
아무래도 유린은 죽는 걸 쉽게 생각하는가 보다. 육체 이탈을 할 수 있는 아이니까 혼 상태로 돌아다니는 게 일상적일 테니 유령이 되는 것도 쉬운 일처럼 여겨지나 보다. 그런 사고는 진짜로 죽은을 재촉하는 위험한 사곤데 말이다.
귀신과 유령의 차이점은 기를 만난 날, 가장 처음으로 배운 것이다. 어떤 건 성불하고 어떤 건 안 하는데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귀신과 유령의 차이를 가르쳐줬다. 산 사람이 죽어서 혼이 육체에서 완전히 불리된 것을 귀신이라고 한다. 귀신은 명부에 이름이 적혀 있고 성수들의 성불대상이다. 지박령, 부유형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유령은 산 사람인 채 혼이 분리된 것이다. 왜 분리됐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명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성불할 수 없다. 본래 수명까지 유령으로 살다가 유령의 상징인 목덜미의 붉은 줄이 사라지면 그 시점에서 귀신이 되어 성불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귀신과 유령을 모두 볼 수 있지만 팔찌는 귀신에만 반응한다. 그리고 목덜미를 살펴보면 되니까 귀신과 유령을 헷갈리지 않는다, …의외로 유령도 많다.
안전 불감증이라고 유린이 딱 그 꼴이다. 쓸데없이 유령이 되진 않아야 헬 텐데 말이다.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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