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 장미꽃에 이슬이 맺히는 이유
혼자 학교 옥상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인간이란 참 작은 존재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저쪽에서 옥상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니는 귀신도 나처럼 느낄까?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뭐해?”
“세상 구경.”
류등은 용케도 내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성수의 제자들은 다른 성수의 제자를 찾을 수 있다는 데 난 전혀 모르겠다. 하긴 이제 일주일 된 초짜가 알면 뭘 안다고. 어제도 기에게 별별 강의를 들었지만 피부로 깨닫기 전까진 영영 이해 못할 거다. 너무 어렵단 말이다!
“혼자 끙끙 앓으면 뭐가 풀려?”
읏. 얼굴에 표가 났나?
“어제 해무사(海武寺)에 갔었다면서? 빙황의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더라.”
나보고 먼저 집에 가라더니 류등과 성에게 갔었구나. 화풀이를 성한테 다 한 건 아니겠지? 기의 성질을 받아주느라 류등과 성이 고생 좀 했겠다.
“어머니의 성을 못 봐서 아쉬워?”
“조금은. 하지만 기가 싫어하는 걸.”
기가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양 다리가 저절로 후들후들 거려서 혼났다. 그런데 수호령 천은 대담하게 기와 맞섰다. 성수와 수호령의 계급 차이만 해도 얼만데, 천이 참 대담하거나 쓸데없이 용기가 가상하거나 둘 중 하나다.
“넌 선대 현무의 딸이잖아. 그의 의견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텐데?”
어제 분노의 경지에 이른 기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기의 압력을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그런 말 함부로 못할 거다.
“기의 의견은 내게 절대적이야. 내 스승이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엄마의 유산을 봐 봤자 별 감회도 없을 거고.”
먼저 집에 돌아가서 엄마 사진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머리에, 온 몸에 열이 펄펄 끓어올라 쓰러질 때까지 운 걸로 기억한다. 겨우 정신이 들어서 보니까, 아빠가 내 옆에서 얼음주머니와 물수건을 번갈아 내 이마 위에 올려놓으며 열이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열이 내리고 나서 아빠와 늦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 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저녁 식사동안 내내 아빠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울다 쓰러진 걸 또 자기 탓이라 생각했나 보다. 난 그저, ‘엄마’라는 단어가 슬프게 느껴져서 운 것뿐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표정은 왜 그렇게 복잡해?”
이놈의 상판은 너무 많은 걸 드러내서 탈이다.
“그렇게 얼굴을 문지른다고 이미 표 난 걸 지울 순 없어.”
은근히 얄미운 말이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면 웬만한 걸 꿰뚫고 지낸다지만 나하고 류등은 내가 너무 숨길 줄 몰라서 류등이 다 아는 걸 거다. 난, 류등의 표정을 전혀 알 수 없는걸.
“뭐 하러 온 거야?”
“해무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소감을 들어 보려고.”
사람 속을 뒤집으러 온 건지 위로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할 말 없어. 소감은 무슨, 그냥 다녀온 거지.”
“한 5년 전인가? 성이랑 같이 해무사에 갔었는데 그 곳의 수호령에게 단 번에 쫓겨나 버렸어. 아무리 백호라 해도 현무의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고 하더라고.”
“5년 전? 넌 언제부터 성이랑 같이 다닌 거야?”
5년 전이면 우리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 어린 나이에 성하고 암렵을 하며 다녔단 거야? 나름 무서운 인생을 살아온 녀석이었잖아 이거.
“난 태어나면서부터 성한테 묶여 있었어. 아버지도 성의 제자시거든. 그러니 자식인 나도 저절로 제자가 된 거야.”
부자가 한 성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아저씨는 지금 충실히 회사원으로 살고 계신데 그 뒤에는 암렵 업무도 있다는 거군. 그런데 대학 교수도 회사원이라고 해도 되나? 역시 실례겠지? 아무튼, 류등은 이제 암렵을 혼자 할 수도 있겠네? 진짜 긴 시간동안 성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많이 배웠겠지. 가지가지 것들을 많이 보고.
“엄청난 핏줄이야. 부자가 모두 혈이 열려있었다니 말이야.”
“너야말로 성수의 딸이잖아. 혈이 봉인돼서 그렇지 피의 진하기로 따지면 네가 더 대단하다고.”
그러고 보니까 나도 남 말할 처지가 못 되는 구나.
“만약에 엄마가 계속 살아있다면 난 기의 제가가 아니라 엄마한테서 직접 모든 걸 배웠을까?”
“그게 문제라고 하더라.”
순간 류등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 것 같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한 번 생각해 봐. 현무 희님은 우리가 7살 때 돌아가셨잖아. 네가 7살이 되기까지 아무 것도 가르쳐주신 게 없을까? 성수의 딸이라 천성적으로 혈의 상태도 최상급인데.”
류등의 말이 일리가 있다. 혈의 개방 상태가 너무 좋아서 귀신과 얽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내게 여러 가지를 알려줬을 지도, 아니 일부러 날 가르치려 했을 거다. 내 혈이 봉인 당한 것도, 기억도 같이 봉인 당한 것도 이것 때문이라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다.
“기는 내 혈과 기억을 봉인한 게 성수라고 했어. 내가 엄마한테 뭔가를 배웠다면 진짜 쓸모 있는 인간일 텐데 왜 일부러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든 거지?”
기에게 내 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다. 기가 분명하게 가르쳐주지 않아 난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다.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될 텐데 기는 너무 뜸을 들이고 있다.
“성이 그러는데, 널 봉인한 성수는 자룡이래. 자칭 개천파 중 하나야.”
“무슨 파?”
“개천파. 지금 성수들은 수천파와 개천파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어. 참고로 현무 희님은 성과 빙황처럼 수천파였다고 해.”
아읏. 골치 아픈 이야기네. 성수들이 두 파로 갈라져 있었다니, 이거 위험한 이야기잖아. 엄마가 수천파였고, 내 혈과 기억을 봉인한 성수가 개천파라면 지금의 나는 성수들 간의 싸움 때문에 생긴 상처라는 거군. 아주 조금이지만 알 것 같다. 기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내가 왜 지금 이 모양인지 빨리 알 수 있었을 거다.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새버렸네, 네 이야길 들어보려고 온 건데.”
꿈도 커. 내가 내 이야기를 남한테 해 주는 성격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으면서 무지 아쉬운 듯이 얘기하고 있어. 어제 일은 절대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아 그래도 유린이 계속 추근덕거려서 귀찮은 판에 류등까지 붙어버렸으니. 정말이지 골치 아픈 일은 사절이다. 복잡한 일에 끼어드는 것도, 그걸 설명하는 것도 싫다.
“그런데 성이랑 빙황은 왜 해무사의 수호령을 싫어할까? 아주 치를 떨던데.”
하긴. 어제 기가 천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생각해보면 천이 기를 화나게 할 만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기가 갑자기 살기를 드러내며 화를 냈다. 수호령과 성수의 사이 자체가 좋지 않은 걸까? 이렇게 생각하자니 전에 기가 분명히 성수는 수호령과 공생관계라고 했던 말이 모순이 돼버린다. 나 참. 사적으로 빈정 상하는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기의 과거지사를 알려 해 봤자 나만 피곤해질 텐데 뭣 하러 신경 쓰나 몰라.
“정말로 끝가지 나랑 말 안 할 거야? 이 근처에서 성수의 제자는 나랑 너 밖에 없다고. 동지끼리 조금은 터놓아도 되잖아.”
“곧 죽을 건데…….”
“응?”
못 들었으면 됐다. 혼자 중얼거린 거니까 알아들을 걸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자룡이 널 봉인하고 나서 계속 불안했는지 널 죽일 계획까지 세웠대. 그래서 수천파에서 알아채고 기를 너한테 보낸 거야.”
어차피 곧 얼마 안 있으면 죽을 목숨인데 이제 성수를 보호자로 붙여 봤자…… 지금 와서 모든 사실을 알아 봤자 다 필요 없는 것들뿐이잖아.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죽으면 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죽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가득 안고 죽어야 한다니, 지지리 복도 없다. 이제 귀신 성불이고, 성수고…….
[화르륵]
“뜨거!”
“주작!”
나와 류등 사이에 갑자기 불덩이가 날아왔다. 류등은 무서운 눈으로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류등이 저런 눈을 할 때도 있구나. 하긴, 암렵을 하다보면 저절로 거칠어지겠지. 워낙 위험하고 드센 일이니까.
“벌써 백호까지 달라붙은 거야? 시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한 장신의 여성이 한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성수에게서 이름도 받지 못한 하찮은 제자 놈이 감히 다른 성수에게 접근해?”
어제 기가 화났을 때 낸 압박만큼 굉장한 압박이 심장을 짓눌렀다. 주변이 화끈거리고 공기도 데워져서 숨쉬기 힘들다. 안 그래도 나한테 숨 쉬는 일 정도의 움직임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할 정도로 힘든데 이거 완전히 곤욕이다.
“아무리 성가셔 보이고 시건방져 보여도 다른 성수의 제자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흥. 아주 잘 나셨군.”
학. 학. 제길. 남은 옆에서 숨 끊어지기 직전인데 잘도 기싸움은 하고 있군. 차라리 여기서 확 죽어버릴까? 읏, 물수건?
“숨쉬기 편해질 겁니다.”
류등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여자가 데리고 온 남자는 내 코와 입을 물수건으로 덮어줬다.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마에 성수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스승에게서 인정받은 제자가 한 사람의 당당한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증표로 받는 것이 성수의 인장이다. 성수의 일을 인간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성수마다 인장이 다르게 생겼다는데 이 남자가 스승으로 모시는 성수의 인장은 참 역동적으로 생겼다.
“우리가 한 눈 파는 사이에 빙황과 백호가 붙을 줄이야. 현무에게 쓸데없는 소릴 한 건 아니겠지?”
뜨겁다. 이제는 피부로도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겨울인데 여름에도 느끼기 힘든 폭염을 겪다니.
“전 성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시건방진 꼬맹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더 있겠어? 문인(刎刃), 현무를 잘 잡아라.”
“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머리까지 아프네. 이 남자는 왜 나를 들어 올리는 거야? 몸 전체에 힘이 없어서 발버둥도 못 치겠네. 뭐, 뭐야. 고, 공중으로 뜨고 있잖아. 열기에서 벗어나자마자 겨울의 냉기가 엄습한다. 코트도 안 입고 마의 뿐인데 감기 걸릴라.
“납치인가요?”
“우리가? 흥. 널 뺏겼던 건 도리어 우리 쪽이야.”
이건 또 어디로 굴러가는 이야기람.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뺏기네 안 뺏기네 말 하냐고. 이렇게 사람을 데려가 버리는 게 납치가 아니면 뭐라는 걸까-요? 옆에서 비행 중인 성수 주작의 말과 대보면 ‘수거’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왠지 나 혼자서 나를 물건 취급하는 것 같잖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될 대로 되라지 식이다.
“현무님. 제가 조심하시라고 일러 드렸는데도 빙황과 접촉해 버리셨군요.”
언제 만난 적이 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게다가 난 현무의 딸이지 현무가 아니라고. 또, 기와 같이 있는 게 뭐 어때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건가? 나 참. 밑도 끝도 없이 알 수 없는 얘기만 해대니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성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까지 전부 뒤섞일까봐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그만 두고 남자의 말을 계속 들었다.
“저들은 현무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현무님의 힘을 실컷 이용한 후에 제거할 생각입니다.”
“양쪽에서, 상대편이 날 죽이려 한다고 말하면 난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 거죠? 최근 며칠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요. 그리고…….”
“현무님이 믿을 수 있는 분께 진실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지?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남아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말을 못 믿을 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그런데 왜 자꾸 절 현무라고 부르세요?”
이 사람들도 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현무의 딸이라 부르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계속 나를 현무라고 불렀단 말이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현무가 죽고 나서 현무의 힘을 가진 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게 당연하잖아.”
“제가 현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요?”
뭐,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엄마가 현무고 내가 그 딸이니까. 그리고 내 혈이 봉인되기 전에 다섯 개 모두 유효한 혈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더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정체 모를 자가 내 혈과 기억을 봉인하고 심지어 날 죽이려고 했다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현무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다음번 현무기 때문이라서 이런 난잡한 사태가 일어난 것.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꼬여 있던 것들이 조금씩 풀려 나가는 기분이 든다. 가슴이 점점 빠르게 두근거린다.
“흥. 네 녀석, 지금 봉인 된 상태지? 좀만 참아. 속 시원하게 해줄 테니까. 그 때까지 성에서 기다리고 있어.”
성? 그러고 보니까 벌써 해무사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무사 상공. 어제 여기에 올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 주작이 말한 성이란 여기에 숨겨져 있는 현무 제 2성을 말하는 거였어. 엄마의 성. 그리고 어쩌면 나의 성일지도 모르는 곳. 그나마 내가 제일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되겠지.
“여어, 천. 현무를 성으로 데러다 줘.”
주작은 생긴 것도 호탕하게 생겼고 성격도 참 시원시원한 것 같다. 말투가 딱 그렇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이름이…… 아, 문인이라고 했었지? 주작의 인장을 받은 제자. 내가 무게 좀 나가는데 용케도 여기까지 안고 왔네. 이 몸뚱아리는 쓰러지고, 토하고, 고꾸라지고, 피를 쏟아내도 체중이 줄지 않는다. 가끔은 정말 병든 육신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우린 일이 있어서 가 봐야 돼. 될 수 있는 한 빨리 올 테니까 성에서 함부로 나오면 안 돼.”
“네.”
주작과 문인은 다시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더니 우리가 온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날 납치한 사람들인데 내가 이렇게 고분고분 말을 들어도 되나? 여기로 데려왔으니까 날 해치진 않겠지.
“어제는 빙황 기님이 옆에 계셔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현무 정(碇)님.”
아, 아니, 그렇게 허리를 깊게 숙이면서까지 인사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이거 참 당황스럽네. 그리고 내가 현무라는 이야긴 진짠가 보다. 천의 말투나 얼굴에서 거짓을 찾을 수 없다. 현무 정. 그게 내 또 다른 이름이구나. 어제 기가 있어서 천이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라면 천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고, 기는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나의 …… 적.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건가? 주작의 이야기가 진실이고, 천의 말도 진실이라면 난 정말로 그 동안 기에게 납치돼 있었던 거야? 맙소사.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괜찮아요. 그저 갑자기 알게 된 너무 많은 일들 때문에 정신이 좀 오락가락한 것뿐이에요.”
그래, 여기 있자. 여기에 있으면서 천에게 얘기해 달라고 하자. 수호령이긴 하지만 내 외삼촌이라며. 천이 외삼촌이란 건 진자 같으니까,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천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를 듣자.
“현무의 성에는 각각 암호로 쓰이는 주술이 걸려 있습니다.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걸 알고 계셔야 들어갈 수 있으십니다.”
성수나 그와 관련된 기억이 다 봉인된 통에 그걸 기억할 리가 있나. 엄마가 가르쳐 준 것들은 모두 기억에 없는데. 어? 진짜로 다 기억 못하나? ‘엄마’는 기억하고 있는걸.
“현무 희께선 용의주도한 분이셨습니다. 누군가 현무 정님의 기억을 폐쇄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잃지 않게 하셨을 겁니다. 가령 옛날이야기 같은 곳에 말입니다.”
천의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하늘을 사랑한 장미꽃 이야기. 나중에 커서 알게 된 건데 엄마가 직접 만든 이야기더군. 그걸 알고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워 했는데. 뭐, 그 이야기가 성의 암호라면 이거지.
“화상첨로(花上添露).”
'은하수의 소설(Original) > 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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