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5 옛 파트너와 다시 손잡는 이유

★은하수★ 2008. 5. 22. 09:47

D-5 옛 파트너와 다시 손잡는 이유

 

수천파의 수장은 금봉이라도 실질적인 행동 지시며 작전 지휘는 백호가 하기 때문에 그 주변에 은근히 경호원(?)들이 많다. 왕이 나타나서 수천파를 치겠다고 발표한 시점이니 유난히 심한 것 같다. 비룡, 난조, 창호(滄虎) 등 네, 다섯 성수가 성을 지키고 있다. 비룡과 난조를 빼면 모두 5급(마지막 계급)성수다. 나도 1대 1로 상대할 수 있는 정도다.

“왕의 명령에 의하면 성만 상대하랬지 다른 성수는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기가 염려하는 대로 우리는 성만 상대해야 한다. 타 성수는 일절 손대지 말라는 것이 황룡이 내 건 조건이다. 수천파는 금봉과 백호가 없으면 저절로 무너지는 조직이라……. 뭐, 성수계의 주력들이 거의 개천파에 몰려있어서 수천파가 그동안 조용히 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성을 저들에게서 끌어내는 가를 생각해야 한다. …좀 위험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어려울수록 원시적으로 해결하는 게 모든 문제의 풀이법이라지?”

“뭐, 생각난 거라도 있어?”

“미끼.”

“미끼?”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챈 것 같다. 여기서 미끼란 성을 호위하는 성수들의 눈을 돌리는 미끼가 아니라 성을 자발적으로 끌어낼 미끼를 말한다.

“우리가 직접 빼올 수 없다면 귀한 분이 직접 나오셔야지 않겠어?”

“이래저래 내가 그 미끼로 적격이라는 거군.”

다른 건 몰라도 이쪽 일에 대해서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익숙할 대로 익숙해서 그런 지도 모른다. 기의 눈이 이렇게 진지하게 강해 보이는 건 오랜만이다. 내가 멋모르고 기의 제자가 됐을 때 봤던 눈이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기를 하향 평가해서 기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기분파에 주관적 성향이라는 건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니 이 문제는 일단 패스.

“솔직히 지상계에 있는 백호의 성은 이번에 처음 와 봐.”

“천계의 본성도 두, 세 번 가본 게 고작이라며.”

“성 자체가 제자들 집에 얹혀사는 생활을 즐겨서 그래.”

본가를 무기한 비우는 집주인이셨군. 하긴, 그러니까 류등네처럼 부자가 전부 성의 제자가 되지. 헤. 류등은 잘 지내나? 이름 없는 제자라도 사성수 중 서방 우백호의 제자인데 격조 있게 수행에 임하고 있겠지. 암렵이 또 위험도가 높아서 이름을 받기 전까진 성이 꼭 붙어 다녀야 하니 타 성수들의 타깃이 될 일도 적을 테고. 성수계 전쟁의 진실을 모르니 더 다행인지도 모른다.

“성을 빼올 수 있겠어?”

“오늘 내로는 무리야. 그래도 일단 한 번 찌르면 성의 성질상 금방 반응할 거야.”

이, 삼일 내에 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대답이다. 속행일수록 나야 좋다. 끌어내고 처리하는 것까지 하는 것이 우리의 특명이니 말이다. 수천파의 타 성수들이 모르게 성을 제거해야 한다. 한순간 한순간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개천파의 대부분이 천계에 모여 있고 수천파는 거기에서 쫓겨나 지상계에 몰려있기 때문에 다들 주변 경계나 눈치 보기에 집중하고 있을 거야. 그걸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르겠지.”

“응. 수천파는 아직 내가 정확하게 어느 쪽인지 헤매고 있어. 정보 제공을 빌미로 접근하고 조용히 불러내는 방법하고, 여전히 개천파와는 인연 없는 척 자연스럽게 옛날처럼 행동하는 방법이 있는데 뭐로 할까?”

“전, 후자 다 위험한 걸.”

전자는 수천파의 누군가가 성을 따라 몰래 나올 수도 있다. 후자는 기가 이미 성과 사이가 약간 틀어져서 수천파의 시선을 점점 좋지 않게 받는 터라 처음부터 의심을 살 수 있다. 성이 사성수의 일원이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그래도 나은 전자의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거나 저거나 기가 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게 관건이긴 하다.

“저 성 안에 들어갈 때 다른 성수들의 눈치를 보고 판단해야 할 거야. 들어가고 나서도 주변 분위기와 성의 눈치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할 거고.”

미끼가 될 기가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대가 뭐라고 하겠는가.

“난 성이 혼자가 된 후에 얌전히 목 따는 일이나 해야지.”

“것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거 알지? 성이 좀 많이 난폭해야 말이지.”

“그거 내 말투 아니었나?”

“말투에 니 거 내 거가 어딨어.”

쳇. 맘대로 하세요.

성이 얌전히 머리를 들이 밀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자기를 제거하러 온 밀사들에게 누가 대범하게 자발적으로 장렬하게 목숨을 맡기겠냐는 말이지. 사성수 중에서 문의 성질머리가 제일 고약하지만 성도 비슷하다. 호족의 수장이니만큼 자체 가지고 있는 위세며 기량이 상당하다. 그 때문에 더 사나워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움직이는 게 얼마 만이냐.”

성수 주제에 겨우 이정도 시간에 얼마 만이냐니. 날 배려해서 일부러 말을 고른 것 같지 않다. 흠. 성수라서 날짜 관념이 없다보니 긴 시간이 짧게,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한 순간에 별별 일이 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는데 언제 그런 걸 세고 있겠어.”

“큭. 명답이군.”

아니, 웃는 거야? 웃고 있는 거야? 설마 비웃는 거야?

“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난 그냥 네 대답이 내 생각이랑 같아서 웃은 것뿐이야.”

지금 내게 번쩍 든 말은…… ‘농락당했다!’ 이런 초 심각한 배경 속에서 재미없는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세월이 가르쳐 준 긴장풀기의 노하우일까? 이런 면에서는 아빠랑 기가 은근히 겹친다.

“결정 됐으면 움직여야지. …성을 성공적으로 빼내고 나서 어떻게 할이지 생각하고 있어. 무사귀환 할 테니까.”

“이번 일 제대로 못하면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항의서 올릴 거야.”

감히 ‘피식’이라는 김빠지는 소리를! 진짜로 항의서 올릴까 보다. 소수형이라 그런지 제 딴에는 힘차게 달아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안 보인다. 백호의 성에 가까이 가서는 인간형으로 변하겠지만 그래도 위풍당당하게는 안 보일 지도. 모습이 어떻든 무사히만 돌아와라. 그러면 나도 힘내서 성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뭐든 시작이 중요하단 말이지. 특히 협동이 필요한 일에서는 선행이 잘 풀려야 뒷일이 잘 풀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현무검이 공명한다. 드디어 왕의 비밀 작전이 시작됐다. 우리의 특명이 천천히 또는 빠르게 발을 하나 둘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