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마왕보좌록(완)

한 달 간의 마왕보좌록 : D-22.5 [외전1]고양이씨, 야습하다?

★은하수★ 2009. 4. 14. 17:19

D-22.5 [외전1]고양이씨, 야습하다?

 

서류는 왜 처리하고 처리해도 줄지 않을까? 곳곳에서 계속 서류가 올라오고 난 계속 분류하고 바알님께 일일이 결재를 받아야한다. 단순 노동이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 줄 몰랐다. 어른들이 왜 학생시절로 돌아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된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이 경노동보다 훨씬 만만할 거다. 물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공부하기 싫다고 투정부리겠지만, 그건 그 때 일이고.

[니야옹]

오늘 일을 마무리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교양이 소리가 들린다. 고,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 보단 성 안에서 한 번도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방문도 방금 열쇠로 열은 건데 어떻게 방 안에 고양이가 있는 걸까. 여기는 마계니까 이런 일도 과연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나?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니야옹]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잽싸게 고개를 돌렸는데 책상 위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 잿빛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도 탁한 회색이다. 그 눈과 털 사이에 숨겨진 입이 날 향해 비웃는 것 같다.

[냐앙]

가까이 오라고 부르는 걸까. 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나를 보는 동글동글한 눈은 분명 내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경계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고양이가 우아한 여왕님처럼 걷고 도도하고 자존심이 센 동물이라지만 자신보다 몇 배나 더 큰 인간을 만나면 우선 경계하면서 슬금슬금 피하기 마련이다.

[냐앙]

하지만 저 고양이는 되레 날 부른다. 울음소리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나 왠지 날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가까이 가자니 원래 고양이 자체가 무서운지라-어떤 동물이건 다 무서워하지만 고양이는 특히나- 벽을 따라 째깐째깐 걸으면서 침대로 향했다. 비서 일지와 펜을 책상 대신에 침대 옆에 있는 낮은 서랍장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니야옹]

내가 가지 않은 게 섭섭한가 보다. 시선을 계속 내게 두고 절대 다른 곳은 보지 않는다. 고양이의 시선이 사람 시선만큼 부담스러울 줄 몰랐다.

저걸 어떻게 밖으로 내보낸담. ……아니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지 고민 중이었잖아. 고양이 울음소리를 한 번씩 들을 때마다 조금씩 내 사고가 아닌 고양이의 의지대로 사고가 조작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거… 위헌한데. 혹시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 어떤 마족이 변신한 거라면 이 성에 사는 누구일까? 외부인일까? 하필 내 방에 들어온 건 그냥 우연? 혹시 날 노리고 온 거라면 내가 ‘인간’이라서 호기심에? 최악은 내가 ‘인간’이라서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될 것이다. 글너 작자가 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티야아옹]

울음소리가 길게 들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읏, 정신 차리자. 역시 저건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다.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해야…… 움직이지 않는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굳어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냐앙]

뭐지, 고양이가 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정신만큼은, 의식은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힘들다. 점점 혼미해진다. 감각이 무뎌지고 정신 회로가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