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신의재림-두번째라그나로크(완)

신의 재림 : 외전 1

★은하수★ 2009. 5. 7. 17:21

~외전(제 2의 세계) 제 1장 …제가 로키입니다.

 

이런……. 끔찍하게도 높군. 하필이면 성질 고약한 요툰한테 걸려서 이게 무슨 망신이람. 친구들이 이 꼴을 보면 뭐라고 놀릴까? 흐억!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난 인생을 곱게 살지 못할 팔자인가 봐.

“자네는 아주 작은 거인이군.”

호오. 저기 괜찮게 생긴 아저씨가 날 부르고 있잖아. 후후후. 생긴걸 보아하니 인간인데, 마력을 보아하니 수준급이군. 장난 상대로 딱 좋겠어.

“거인치고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당신과 비교해보면 작은 게 아니야.”

내 말재주는 내가 들어도 정말 신통하단 말이지. 이래서 다른 거인들한테 욕먹는 거긴 하지. 보통 거인족은 머리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말로 잘 구슬리면 그 순간은 잘 면한단 말이야. 다만 오늘처럼 딱 걸리는 날에는 뼈도 못 추리게 되지만. 아……. 도망치다가 변신이 풀리는 바람에 이 절벽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중이었지.

“거기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걸 보면 자네는 귀도 정말 밝군.”

아, 하기사. 저 까마득한 아래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저 끔찍한 아래서 움직이는 아저씨를 보고. 이건 타고난 야성 때문에 그래. 몸집이 큰 거인이라면 겁날 게 없어서 이런 게 발달하지 않겠지만 나처럼 몸집이 작은 거인은 아무래도 천적이 바로 옆집이다 보니 별별 감각 기관이 발달 할 수밖에. 애처로운 내 신세야. 잘 듣고, 잘 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란 말이지.

“나만 귀가 밝은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내 목소리를 들은 당신도 귀가 밝군.”

그런데 내가 뭣 때문에 이 높은 곳에서 저 아래로 큰 소리로 소리쳐야 하지? 굳이 저 아저씨를 상대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야. 장난 상대로는 좋지만 이렇게 장난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이렇게 내내 소리만 지르고 있으면 내 고운 목소리가 몸집 큰 거인들처럼 걸걸하게 되거나 저기 죽어가는 시체처럼 쇳소리를 낼지도 몰라. 야……. 그러면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예쁜 아가씨들이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말거야. 뭐, 가든 말든 난 상관안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소리 지르고 있는 건 싫단 말이지.

내가 저쪽으로 내려가자니 있다가 그 녀석이 또 나타날까봐 무서운데……. 그래도 저 아저씨가 왠지 마음에 든단 말이야. 내 말을 척척 받아 주는 걸 보면 장난 상대가 아니라 괜찮은 대화상대가 될 거야. 아, 저 아저씨보고 여기로 올라오라고 하면 되겠군. 마력이 상당하니 마법 실력도 괜찮겠지. 그러면 변신술이니 하늘을 나는 마법이니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아저씨. 여기로 올라와 보지 않을래? 경치가 정말 끝내주거든.”

“정말 그렇군.”

흐익! 갑자기 내 옆에 서 있는 건 또 무슨 징조래? 음. 나는 이 아저씨가 올라오는 건 못 봤는데. 너무 빨라서 내가 시야에서 놓쳐버린 건가? 공간이동 같은 걸지도 모르고.

“놀랐잖아.”

“미안하군.”

그렇게 웃는 얼굴로 미안하다고 하면 더 이상 뭐라고 따질 수가 없잖아. 나 참.

“그런데 아저씨. 여기엔 어떻게 올라온 거야?”

“그러는 넌 어떻게 여기로 올라온 거지?”

이런 걸 보고 받아치기라고 하지. 후훗. 정말 괜찮은 대화 상대야. 재미있잖아. 말이 끊이지 않고 술술 나오는 걸 보면 상당한 재담꾼일거야. 이거 내 인생 43년 만에 대단한 자를 만났어.

“난 새로 변해서 여기로 날아왔지.”

“난 문을 만들어서 왔다네.”

문이라……. 처음 들어보는 걸. 마법 중에서 문을 만들어서 높은 데로 올라갈 수 있는 마법이 있단 말이야? 탐나는 걸. 배우고 싶어. 한 번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하지만 초면한테 곧바로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건 실례지.

“당신 정말 대단해. 문을 만들어서 올라오다니 말이야.”

처음에는 상대를 칭찬하는 것으로 기분 좋게 만든다.

“난 기껏해야 조그만 참새로 변해서 헉헉 대며 여기로 올라오는 것 밖에 못하는데 말이지.”

다음에는 상대에게서 동정을 살만한 말을 한다.

“배우고 싶나?”

아직 몇 단계가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선뜻 대답해 버리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뭐, 어떻게 돌아가든 상대가 내게 가르쳐 주겠다고 할 때 낼름 집어 먹는 것도 좋지. 초면에 괜히 점잖 빼는 것도 꼴불견이거든.

“응. 배우고 싶어. 아주 쓸 만한 마법인걸.”

나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면 대답했다. 왜냐. 난 작은 거인이기 때문에 대대로 얼굴이 수려하고 용모가 단정하다. 게다가 귀염성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순진한 표정이나 어린아이 같은 표정은 여러 모로 잘 통한다. 몸집만 거대하지 머리에 든 게 없어서 무식한 요툰들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지만.

“그러면 내가 가르쳐 주지.”

그 대답을 좀 뜸들인 후에 하는 것도 대화의 스킬. 역시 이 아저씨는 뭔가 있다니까. 이런 자를 만나다니 난 행운아야. 어디까지나 아까 요툰한테 쫓겨 다닌 것을 제외하고 말이지.

“그러면 내가 당신을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한 가지라도 배우면 그 자는 나의 스승님. 내가 좀 약은 성격이긴 해도 갖출 건 갖춘다. 교류관계라는 건 쓸모 있는 교류를 최대한 확보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아주 작은 베풂도 잘 기억하고 상대를 대우해 줘야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다시 요긴하게 부탁할 수 있지.

“아니 그럴 필요 없다네.”

흠…….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편하게 대하지. 그래도 부르는 호칭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내 이름은 로키. 당신은?”

“오딘.”

아무래도 정말 대단한 위인을 만난 것 같다. 오딘. 절대 낯선 이름이 아니다. 분명히 들어 본 적이 있다. 아스가드르에 살고 있다는 최고 신. 마법에 능통하고 지혜롭다는 신을 지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먼저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 감동? 그래, 감동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쩐지 내 말을 쉽게 쉽게 받아넘긴다 했어. 신에게서 그것도 최고신에게서 마법을 친히 배울 수 있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진짜 재수 좋은 모양이다.

“당신이 정말 오딘이라면 이때까지 당신에게 반말한 것은 모두 사과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정중하게 대하는 자는 이때까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자존심이 문제겠는가. 상대가 그 오딘인데 말이다.

“글쎄. 난 자네가 날 편하게 대해줬으면 하는데.”

이런 이런. 상대는 신이고 나는 거인인데 어떻게 신을, 그것도 최고신을 편하게 대한단 말인가. 그리고 원래 신족과 거인족은 틈만 나면 으르렁 거리는 사이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마주 대하는 것도 약간 거북스럽구먼.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 오딘을 편히 대하겠습니까?”

“본인이 그렇게 청하는데도 어려운가?”

아……. 본인이 허락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여간 찝찝한 게 아니라서 말이지. 뭐, 말하는 투며 내용이 최고신이라고 하기에 가벼운 편이라서 생각보다 쉽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는 중에도 엄청난 마력에 의한 중압감으로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되어 버린다. 어쩌면 좋을까.

“자네의 실력이 굉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러니 자네는 나를 편하게 대할 자격이 충분이 있지.”

내가 머리가 좋고 마법 실력도 꽤 좋은 편이라 거인족 사이에서는 유명인사라 자부하지만 설마 신족에게 까지 내 이름과 실력이 전해졌을 리가 없지. 단순히 나를 떠보기 위함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들은 것인지 알아둘 필요는 있어.

“오딘이시여, 한낱 작은 거인이 어디에 실력이 있겠습니까?”

“작은 거인 로키여, 자네의 이야기는 알프헤임의 요정들에게서 들었고, 자네의 실력은 드워프들에게서 알았으며, 자네의 존재는 요툰헤임의 작은 거인과 요툰들에게서 느꼈다네.”

정말 이 신은 방방곳곳을 다 돌아다녔나 보군. 나 로키의 존재를 다른 종족들도 알고 있다면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할 지 좀 곤란하다고 해야 할 지 난감한걸. 그건 둘째 치고 오딘의 말솜씨는 과연 예술이야.

“오딘이시여, 그들은 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잘못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작은 거인 로키여, 자네의 숨겨진 재능 또한 나는 알고 있다네.”

하핫! 이거 참. 아무래도 오딘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신 것 같아. 숨겨진 재능은 좀 틀린 표현이지. 내가 일부러 숨겨 놓은 재능이니까. 불을 다루는 능력이 바로 내 특별한 재능이라 함부로 밖으로 드러낼 수가 없어. 자이언트 엠퍼러가 알게 되면 아마도 날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내 머리가 이 몸뚱이에 붙어 있을 수 있느냐 마느냐가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겠지.

“오딘이시여, 그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마셨으면 합니다만.”

“작은 거인 로키여, 자네의 재능은 곧 세상에 알려질 것이야. 자네는 드워프들에게 자네의 능력을 많이 보여줘 버렸거든.”

아무래도 내 실수인 것 같다. 드워프들이 금속 제련이나 보석 세공을 할 때 불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종종 그걸 도와주곤 했다. 그걸 이유로 은근히 그들에게서 뜯어 낸 것이 좀 있지만 그래도 양심적으로 그들과 교류를 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아무래도 이 드워프 녀석들이 입이 가벼운 것 같단 말이지.

“오딘이시여, 당신에게 마법을 배우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이만 가보지요.”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갈 때는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 그리고 여기에 더 있다가는 그 요툰과 또 만날지도 모르니까 안전한 곳으로 잽싸게 가야지. 마력도 꽤 회복된 것 같으니까 변신해서 가야지.

“성미가 급하군.”

읍.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조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마력이 주변을 휘감는 걸 보니 오딘이 발을 묶는 마법을 쓴 모양이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가지 않겠나?”

잠시만……. 아스가르드라니? 나보고, 이 로키보고 아스가르드로 가자는 것이야? 아니 이 오딘께서 그런 무서운 말을 하다니!

“오딘이시여, 전 거인의 몸. 어떻게 아스가르드로 간단 말입니까?”

“스스로 마력을 일부 봉인하고 재미있는 능력도 감추고 있는 뛰어난 인재를 내가 그냥 보내줄 거라 생각했나?”

역시 마법의 신이라 불릴 만 해. 내가 마력을 봉인했다는 사실을 버젓이 알고 있잖아. 마력에 능통한 흐림두르스에게 찍히지 않고 자이언트 엠퍼러에게 미운 눈총을 받지 않고 무사히 이 요툰헤임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마력을 최소로 감추고 살아야지. 난 단명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오딘이시여.”

“그냥 오딘이라고 편하게 부르게.”

이거 정말 난감하고 곤란하네. 내가 말을 좀 잘하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오딘은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다. 내가 확실히 불리하니 이거야 원.

“저를 아스가르드로 데려가서 어쩌려는 것입니까?”

거인족이 아스가르드로 들어간다는 건 이때까지 없었던 일이다. 에시르 신족이나 바니르 신족이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저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너 아스가르드로 들어갈 수 없다. 하물며 신족과 원수지간인 거인족은 아스가르드에서 곱게 맞아주겠어.

“이 오딘이 데려가는 것인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보세요, 오딘. 그런 걸 보고 권력 남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작은 거인이지만 엄연히 거인족이기 때문에 어떤 신도 고운 눈으로 날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오딘의 등을 업고 잠깐 갔다 오는 거라면 괜찮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한 번 구경은 할 수 있겠습니까?”

“난 자네를 신으로써 아스가르드로 데려가겠다고 한 것이네.”

……. ……!

“오딘!”

잠깐만. 잠깐만! 나를 아스가르드의 신으로 데려가겠다는 거야? 난 거인족이라고. 신족과 나란히 어깨를 맞추고 아스가르드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정말 오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게다가 난 오늘 오딘을 난생 처음 만난 거라고. 오딘은 친분도 제대로 쌓이지 않은 자에게 그렇게 막말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건가? 단지 다른 종족에게서 내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날 판단한 것인데 그걸 근거로 아스가르드로? 이거 정말 세상 막나가자네.

“저는 거인족입니다.”

“그래서?”

아니, 이보세요. 그래서 라니.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좋은 바람이 부는군.”

갑자기 웬 바람타령? 일부러 이야기를 옆으로 빼는 거라면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마저 그렇게 나오는 건 사절이라고.

내가 아스가르드로 신으로써 들어간다면 에시르, 바니르 모든 신족에게 따돌림을 받을 게 뻔하잖아. 그건 싫다고. 여기서 요툰들에게 쫓기는 게 훨씬 낫겠어.

“로키. 자네의 실력은 아스가르드에 있는 여느 신보다도 뛰어나다고 내가 보장하지. 난 여태껏 그런 인재를 찾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던 중에 자네를 찾은 거야. 난 종족을 차별하지 않아. 물론 드워프 쪽은 좀 제외하자고.”

하하. 아량이 넓은 신이라도 드워프를 곱게 보지는 못한다는 거지. 나름 자존심이 세다는 드워프지만 아무래도 다른 종족의 눈에서 드워프는 뭐랄까 거의 종처럼 보이니까. 엣. 그건 뒤로 넘기고. 오딘은 단순히 실력주의라는 말인가? 뭐, 나도 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참 대견하다고 생각해. 자화자찬은 자기파멸의 지름길이라지만 내 주위에 있는 거인들을 보라고. 내가 봉인만 풀면 그깟 요툰쯤이야 금방 니플헤임으로 보내버릴 수 있단 말이지. 하긴 지금도 가능하지만 큰 일 벌이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입니다. 신족이 거인족인 저를 곱게 보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데려가는 것인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정말이지 오딘은 직권 남용이 심한 것 같단 말이야. 은근히 자기 위세를 좋아하는 것 같아. 싫지는 않지만…….

“아스가르드로 가고 싶지 않은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갈 생각인 거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감히 싫다고 대답해. 하. 아스가르드라. 모든 생명들이 가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신들의 나라. 함부로 건널 수 없다는 비프로스트를 건너서 아스가르드와 다른 세상을 왕래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고 나름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지. 그러니 아스가르드로 가길 싫어할 리가 없지. 하지만 역시 거인족인 내가 신들의 무리에 끼어 들어간다는 건 찝찝해. 나를 경멸하듯이 볼 신들의 눈이 상상이 가.

“정말 제가 아스가르드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고 보십니까?”

“물론.”

왠지 모르지만 저 짧은 대답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내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이것이 최고신의 힘일지도 모른다. 모든 만물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던가. 거인족은 그 말에 대해서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역시 최고신은 최고신이야.

“다른 신들과 제가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자네의 사교성과 사술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역시 난 오딘에게 못 당한다. 속는 셈 치고 아스가르드로 한 번 가 볼까? 재미있을 것 같아. 어차피 나는 적응 능력이 뛰어난 편이니까 아스가르드에서도 잘 지내겠지.

“그렇다면 오딘을 믿고 가겠습니다.”

[쿵!]

이거 대단한 소리군. 몸집이 큰 거인이 뛰어 내린 것 같은 소리야. ……! 맙소사. 그 녀석이다. 이때까지 날 찾으러 돌아다닌 것 같은데?

“로키!”

걸렸다!

“네 녀석을 당장에 박살내 주마!”

저 더러운 성격을 어떻게 하면 좋아. 그러니 같은 요툰이라고 해도 같이 놀아주는 요툰이 없지. 애인도 없고. 쿡쿡. 아……, 이렇게 웃을 때가 아닌데.

“자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나에게 보여주지 않겠나?”

“시험하시는 겁니까?”

설마 같은 종족을 죽이라는 건 아니겠지? 그거라면 사절이야. 난 다른 종족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고.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그런데 어째서 오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까…… 오딘은 외눈이다. 어째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 외눈을 보니 뭔가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역시 같은 종족에게 함부로 손대는 건 못하겠네요.”

그래. 험한 마법으로 다루는 것 보단 가볍게, 장난스럽게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오딘이 바라는 건 이걸 거야. 아마도. 그런데 계속 미소만 짓고 있으니까 내가 맞았다는 건지 틀렸다는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일을 한 번 해볼까? 요툰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기대되는 걸.

“여어! 오랜만이야. 한 1시간만이지?”

이건 아무래도 약 올리는 걸로 밖에 안 들리겠지만 저 요툰을 꾀어내기 위해선 별 수 없지.

“나 기억나? 너무 머리가 나빠서 1시간 밖에 안 됐는데도 잊어버린 건가?”

“로키!”

역시 아무리 머리가 돌이라는 요툰이라고 해도 1시간 밖에 안 되고 과히 신경 거슬리는 녀석을 잊어버릴 리가 없지. 안 그래? 휴우. 자칫 잘못하다간 저 엄청 우락부락한 몸에 깔릴 지도 몰라. 아니면 저 엄청 거대한 발에 짓눌릴 지도 모르고. 후훗. 그래도 재밌겠는걸.

“머리 위에 뭐가 있을까요?”

이미 요툰의 머리 위에 묵직한 바위 덩어리를 띄어 놓았다. 아주 단순한 마법(트릭에 더 가깝지만)이다. 근처에 있는 바위를 특수 소환해서 공중에 띄우는 마법을 부린 것뿐이다. 짓누를 생각은 없다. 그냥 겁만 주려는 것이다. 아무리 요툰이라지만 저런 바위에 눌리면 죽는다는 거지.

“저 정도는 내가 이 망치로 부숴버릴 수 있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 지 알 수가 없어요. 휴.

“정말로 부술 수 있어?”

“그럼!”

엄청나게 커다란 목소리. 거인족이 자랑하는 저 대단한 음량은 역시 거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거인의 유일한 장점이랄까?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역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그럼 장난삼아서 저것 보다 좀 작은 걸로 한 개 떨궈 볼까?

[쿵!]

아,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야. ……. 꿈이란 건 정말 무서운 것이다. 벌써 몇 백 년이 지난 이야기를 이렇게 꿈으로 꿀 수 있다니. 아무래도 오딘이 장난친 것 같다. 이거 이거. 의형제에게 이런 식으로 장난 쳐도 되는 거야? 하. 남 말 할 처지는 안 되는 군. 나도 항상 오딘을 상대로 장난을 치니까.

“오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난 낮잠을 즐기고 있던 나무에서 내려와 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던 오딘의 앞에 섰다. 오딘은 외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 때처럼 자상하면서도 의미가 있는 듯한 미소 짓고 있었다. 뭔가 또 시킬 게 있는 모양이다.

“이번엔 뭐죠?”

“나와 같이 미드가르드로 가보지 않겠나?”

미드가르드? 인간들이 사는 나라에 가서 뭘 하려는 거지? 나는 아직 오딘이 하려는 일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몇 백 년이 지나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딘의 미소는 나에게 너무 어렵다. 프리그 빼고 아스가르드에 있는 신이라면 모두 그럴 것이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형제.”

음. 오딘은 말이지 아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형제라고 부른단 말이야. 역시 꿍꿍이가 있어.

“오딘.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하하. 나의 오랜 친구 로키여.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그러네.”

이럴 수가. 오딘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오딘의 기분을 대충 감 잡을 수 있는 건, 뭔가 아쉬울 일이 있으면 늘 ‘오랜 친구 로키여’라고 부르고, 내 행동이 자기에게 좀 거슬린다 싶으면 ‘로키’는커녕 그 어떤 호칭도 붙여 주지 않는다. 이거 말고는 오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딘…….”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아스가르드에서 너무 힘들게, 바쁘게 지내왔거든.”

오딘이 가끔씩 아이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오늘은 더 심한 것 같다. 하긴 그래서 장난을 좋아하는 나와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후훗. 아, 전에 프리그에게 장난을 쳤을 때 오딘도 같이 즐겼었지. 프리그는 워낙 온화하고 순수한 사람이라서 장난을 그냥 장난으로 받아줬지. 토르에게 장난을 칠 때는 오딘도 낀다고 했지만 토르의 성격을 생각해서 둘 다 한숨을 쉬며 포기했었지. 안타깝다고 말이야.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오딘. 너무 그러지 말아요. 체면을 좀 생각하란 말이에요.”

또 저렇게 미소만 짓고 있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아무튼 오딘이야. 몇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자는 아홉 세상 어디를 찾아 봐도 없을 거야. 이 잔머리의 최고봉인 나 로키도 오딘은 너무 어려운 상대야. 그러니까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거지만.

“난 한 번도 내 체면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얼른 미드가르드로 가자.”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보채는 것도 오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지. 그래서 아내인 프리그가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야.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죄는 아니지. 오딘도 알고 있고.

“미드가르드에 가서 뭘 할 건가요?”

“별 거 없어. 그냥 사람 구경.”

그런 말을 잘도 웃으면서 말해요. 훗. 오늘도 변함없이 의형님 오딘이라는 뜻인가? 아무래도 그런 옛 꿈을 보여 준건 의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전에도 이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에이, 몰라.

“아무리 그래도 오늘 꿈은 좀 너무했어요.”

오딘과 처음 만난 날은 아무래도 좀 복잡하니까. 꿈이 중간에 끊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지. 아니, 나는 나름대로 꿈 때문에 심리가 복잡한데 오딘은 뭐가 좋아서 이렇게 빙글빙글 웃고 있는 거냐고.

“오딘. 정말 미드가르드에서 특별히 꾸밀만한 일은 없는 거죠?”

웃지만 말고 제발 대답 좀 해줘요.

“응. 오늘은 정말로 그냥 쉬는 거야. 걱정 하지 마. 정말 하루만 갔다 오는 거니까.”

오딘이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불안하다고요. 아무래도 오딘은 다른 신보다는 의형제인 나에게 이렇게 미스터리하게 행동하는 걸 더 즐기는 것 같아. 내가 그만큼 대하기 편하다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대하기 쉽다는 건지. 아, 그게 그건가?

“설마 프리그에게 말 안한 건가요?”

“말했을 리가 없지.”

이야. 이거 미드가르드에 함부로 내려갔다가 프리그가 고요하게 화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몰라. 오딘이나 다른 신들이 물 끓듯이 화낸다고 하면 프리그는 차가운 얼음처럼 화내니까 비교적 더 무섭게 보인다. 천하의 오딘도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프리그가 화를 내는 것이다. 차갑게 화내는 프리그는 아스가르드에서 최강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고요하게 화낼 때의 프리그의 말과 행동은 거의 절대적이다. 오딘도 그럴 때의 프리그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프리그가 알면 사태가 복잡해 질 거에요.”

“알아.”

단순하게 대답 하지 말아요. 난 프리그에게 찍히기 싫단 말이에요. 오딘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고 프리그에게 혼나기라도 하면……. 아,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너 혼자만 프리그에게 혼나진 않을 거야. 토르도 같이 가거든.”

이보세요, 오딘. 토르까지 휘말리게 할 생각입니까? 은근히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바쁜 신 중 하나인데 그를 미드가르드에 놀러 데려간다는 건 양심에 찔릴 일이 아닐까? 뭐 토르가 따라가 준다면 나중에 걸린다고 해도 보디가드가 동행했다고 변명하면 되니까 프리그의 고요한 분노는 대충 넘길 수 있지. 어쩌면. 역시 어쩌면 이야.

“토르가 순순히 같이 가 줄까요?”

“아버지가 가자는데 안 가고 배기겠어?”

“오딘, 그 말투 말이에요, 체통 좀 지키시죠.”

최고신이면서 ‘배기겠어?’가 뭡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들먹이는 건 친권 남용입니다. 자기 일 때문에 바쁜 자식을 부모가 억지로 데리고 다니는 건 엄연히 잘못된 일이라고. 아무튼 가끔씩 이렇게 자기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니까. 은근히 고집쟁이고 욕심도 많고. 자기 품위를 자기가 잘 떨어뜨리죠. 네.

“휴.”

“한숨 쉬지 말게. 나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미드가르드로 가는 게 이유가 있다는 거잖습니까. 그냥 놀러가는 게 아니잖아! 오딘과 내가 내려가는 것도 모자라 토르까지 데려가는 건 좀 굵직한 일이라는 건데 이거 너무 튕겨도 성질머리 나서 괜히 반항하고 싶어진다고.

“토르는 어떻게 꼬실 겁니까?”

에, 또. 혼자 저렇게 빙글빙글 미소만 지으면 내가 그 속내를 알 턱이 없지. ……아니, 알 것도 같다. 토르를 꾀어서 미드가르드로 데려가는 방법. 아무래도 내가 전에 토르를 알프헤임으로 데려갈 때 썼던 방법을 쓸 모양이다. 토르는 워낙 사고가 단순해서 같은 수법에 여러 번 잘 걸리니까 이번에도 분명 걸려들 것이다.

“저보고 토르를 미드가르드로 가게 만들라는 겁니까?”

“어쩌면 말이지 토르도 미드가르드에서 재밌게 뭔가를 즐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음흉하게 말씀하시면 소름이 쫙 돋는단 말이죠.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드가르드로 가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이왕 내려가는 거 좀 바람직한(?) 일을 해야지, 안 그러면 귀찮게 비프로스트를 건너는 일을 하는 보람이 없어질 거 아닌가.

“그래서 미드가르드로 내려가시려고요?”

온화한 음성에 따뜻한 말투. 맙소사 프리그께서 여길 행차하시다니. 오딘, 당신 딱 걸렸습니다. 나도 같이 걸린 것 같은데 도망치긴 글렀군.

“안녕하세요, 프리그.”

“여어, 여긴 웬일이지?”

오딘은 프리그를 참 편하게 대한다. 부부로서 다정한 대화는 오딘에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체통이란 게 있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제 말투 좀 고칠 때가 되지 않았나 몰라.

“별 거 아니에요. 우연히 여기서 난나와 프레이야와 함께 담소를 즐기고 있다가 당신과 로키의 목소리가 들려서 와 봤지요. 대화 내용이 의도 아니게 귓속으로 잘 들어오더군요.”

프리그의 말을 해석해 보자면, 난나와 프레이야랑 담소를 즐기고 있었는데 오딘의 말이 귀에 들어 왔는데 마침 거치적거리는 내용이 섞여 있어서 몸소 오셨다는 것이다. 프리그에게는 아무 말도 안하고 조용히 미드가르드로 가려던 오딘의 계획은 이제 안녕이 돼 버렸습니다. 오딘, 이 난국을 어찌 헤쳐 나갈 것인지요?

“하. 프리그는 너무 귀가 밝아. 그치 로키?”

“아니 왜 저한테 대화를 돌리시는 겁니까?”

책임 전가는 또 누구한테 배웠소. 아마도 나일 거라 생각하지만.

“토르는 지금 요툰헤임에 가 있어서 아주 바쁜 몸이랍니다. 쓸데없이 미드가르드로 내려가시면 아니 되지요.”

프리그의 고요한 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난 몰라. 아무래도 프리그는 오딘이 미드가르드로 내려가려는 이유를 아는 듯싶다. 헤에. 부부싸움에 난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럴 땐 조용히 사라지는 게 상책이지. 동물로 변신해서 도망치는 수밖에. 가장 무난하게 사슴으로나 변하자.

“혼자 도망치면 쓰나.”

아니, 오딘. 혼나려면 혼자 혼나라고요. 내 옷은 왜 잡아당기는 겁니까. 다행히 프리그가 오딘만 보고 있는 걸 보니 나에게 화가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왜 항상 안 좋은 일에 걸리는 것일까?

“오딘. 로키를 놔 주시죠.”

“음. 프리그.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미드가르드로 간다니.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

한 입으로 두 말 하십니까? 오딘이 미드가르드로 가려는 이유도, 그에 대해 프리그가 화를 내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오딘이 진심으로 프리그 몰래 갔다 오려고 한 건 분명히 알겠다. 저렇게 되지도 않는 변명을 대는 걸 보니. 미드가르드 쪽에 사고라도 친 거 있나? 내가 알기론 최근에 오딘이 미드가르드에 관여한 일이 없었는데. 인간들 사이에 전쟁도 없었고, 새로운 오딘의 자식이 태어났다는 소식도 없었고 말이야.(프리그는 오딘의 어머니 다른 자식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건 뒤로 미루고.) 그러나 저러나 나는 부부싸움 사이에서 이렇게 오딘에게 붙잡혀 있어야 하나. 처량한 내 신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