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3각성 ④

★은하수★ 2009. 6. 3. 19:00

이토록 시아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데 디레스가 그녀를 데리러 나왔다. 안 그래도 수새 부대와 정보 부대가 속속 귀환하고 있는 차라 조만간 자신을 부르겠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역시나 디레스가 직접 밖으로 나왔다. 뭔가 건져낸 것이다. 길드 크루세이더가 가디안스의 영역에 신종 약을 뿌릴 때면 늘 흥미러우면서 역겨운 일이 따라오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뭔 대어를 낚았으려나?”

“직접 보면 알아.”

시아와 디레스는 크림슨을 데리고 화타의 거주지라고도 불리는 연구실로 순간 이동했다. 그 순간,

“왁!”

“히익!”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흰 가운을 입고 회색으로 탈색된 머리 위에 조그만 원숭이 한 마리를 얹은 화타가 신참을 놀래켰다. 바로 눈앞에 기괴한 노인이 얼굴을 들이미는데 안 놀래면 그건 이미 기절한 거다. 시아도 몇 차례 당해봤는데 이제는 면역력이 생겨서 크림슨 같은 반응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재미없는 샘플을 화타가 건드리겠느냐마는 그래도 시아 혼자 연구실을 찾아올 땐 빼먹지 않고 똑같은 짓을 한다.

“질버르 손이 필요할 만큼 재밌는 일이 어떤 거야?”

화타는 시아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실험용 샘플을 광속으로 낚아챘다.

“그럼 못 써, 보스.”

그리곤 시아가 또 건들만한 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치웠다. 시아가 연구실에 왔다 하면 온갖 것을 다 만지는 바람에 가끔씩 샘플에 이상이 생길 때도 있다.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것쯤이야 화타에겐 쉬운 일이지만 귀찮지 않은가. 게다가 시아가 샘플을 건드는 이유도 단순히 ‘신기해서’다 보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덕분에 화타의 운동 신경과 순발력이 조금씩 상승했다.

“보스, 뉘앙스가 좀 이상한데 말이지, 아르츠나이 군은 항상 여기서 충실하게 소임을 다한다고.”

“천재 구 화타께서 그렇게 감싸고돈다면야, 난 할 말 없지요.”

“보스!”

가까스로 위기에 처한 샘플을 구해냈다. 연분홍색의 투명한 입방체 젤리는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Gifte von Kreuzzug : 크루세이더의 독)의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화타가 2년에 걸쳐 만든 귀한 재료였다. 이미 개발된 흥분 억제제와는 기능이 다른 억제제다. 육체의 세포 변화를 억제하는 사상초유의 물질이란다. 길드 크루세이더에서 이제껏 만든 모든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에 대항할 수 있는 초특급 억제제이기도 하다.

“이것만큼은 만지지 말라니까.”

“그러면 빨리 이번 수확물이나 보여줘.”

상대를 슬슬 구슬리고 약 올리면서 시간을 끄는 화타와 속전속결·거두절미·단도직입을 추구하는 시아는 누가 봐도 상극이다. 성격상 상성이 전혀 맞지 않다. 이럴 땐 보스 자리에 있는 시아가 화타를 짓누르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게 보통이다.

“저 천사 군은 다른 데로 보내는 게 좋을걸? 이번 건 진짜 장난 아니야.”

화타가 크림슨에게 나가라고 손짓하자 그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원숭이도 따라했다. 코믹 멋의 일환으로 시아도 따라했다. 이 세 생명체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손짓을 하는데 어찌나 웃기게 잘 어울린지 모른다. 여하튼 연구실의 조수 중 한 명이 크림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질버르, 개봉박두 시간이다.”

신호를 받은 질버르는 투명 마법으로 숨겨둔 문제의 수확물을 선보였다.

“야-. 이건 또 뭐야?”

시아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것을 만져보려 할 때 화타가 그녀를 뒤로 확 잡아끌었다. 화타의 원숭이가 어디선가 고깃덩어리를 가져오더니 그것을 향해 던져서 얼마나 위험한지 가르쳐줬다. 흡수. 고깃덩어리가 그것에 흡수됐다.

“굉장해.”

“보스. 감탄이 너무 약하잖아.”

“이정도면 꽤 세게 반응한 거야.”

느낌표를 붙이기 미안할 정도로 약한 감탄이지만 화타는 실망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보스니까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런데 이 괴상망측한 괴물(살덩어리로도 보이는 것)을 보고도 말짱하다니 비위가 강하다고 해야 할지 둔감하다고 해야 할지……. 우리의 보스니까 비위가 강하다고 좋게 말해주자.

수색 부대가 가디안스의 영역 동쪽 어드메서 가져온 괴생명체는 높이 5m, 너비 3m의 우람한 살덩어리였다. 곳곳에 머리가 종류별로 하나씩 해서 총 13개가 달려있고, 팔은 숫자 세기 귀찮을 정도로 많이 달려있다. 다리는 없고 울퉁불퉁한 살을 이용하여 달팽이처럼 이동하는 듯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본 것처럼 접근한 모든 생명체와 살덩어리를-살이 붙어있는 것이라면 뭐든- 흡수했다. 몸의 표면에 기분 나쁜 퍼런 액체가 줄줄 흐르는데 악취는 없었다. 다만 맨 이터(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생명체의 총칭)가 낼만한 달콤한 흥분제 냄새가 났다.

“이번에 퍼진 약 때문이야?”

크루세이더의 독은 종류별로 부작용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이런 합체형 괴물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꼭 슬라임이 변신하다가 실패한 것 같아.”

“그 말은 좀…….”

“적절한 비유야, 보스!”

“그치?”

디레스는 이 엽기적인 살덩어리를 두 번째 보는 데도 속이 좋지 않건만 시아는 되레 신기해하면서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더욱이 화타가 시아의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 시아의 흥분이 살짝 올라갔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 두 키메라 사이에서 순종만 두통을 앓았다. 얼른 화타를 비롯한 연구부에 넘기고 싶은데 보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속을 가라앉히며 기다렸다.

“원상 복구는 못하겠지만 어떤 녀석들이 섞인 건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어. 그리고 이거, 조만간 숨이 끊어질 거야.”

“독 먹고 이만큼 버틴 것도 용하지 뭐.”

시아는 봉인 마법 중 신체 결박 주문을 외워 화타가 편하게 조사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럴 일 없겠지만, 도중에 화타가 육중한 살덩어리에 먹혀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푸른 룬 문자 띠에 돌돌 말린 괴생명체는 움찔움찔 거리며 벗어나려고 애썼다. 수많은 팔이 허우적대며 주변의 물건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제압됐다. 시아가 만든 룬 문자 띠는 팔을 하나씩 천장에 매달거나 벽에 고정시키는 등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팽팽하게 잡아끌었다.

“일단 인간이랑, 웨어울프랑… 인큐버스도 있네?”

룬 문자 띠가 괴생명체와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족이 섞여 있는지 대강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리지널인지 플러스인지 분간하는 것은 화타의 몫으로 남았다.

“디래스, 넌 플릿이랑 같이 아까 그 신참 좀 맡아 줘. 플릿이 다 설명해 줄 거야. 바쁘면 민한테 넘겨.”

“Ja, für Sie, meine Boß."

디레스가 연구실을 불편해 하는 걸 알고 먼저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괴생명체를 관찰했다.

“490먹은 드래곤보다 보스가 훨 낫군.”

“응? 악마계에 가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이 많은데 이 정도 갖고 역겨워하면 쓰나. 근데 디레스는 아직 490이 안 되지 않았어?”

“487. 그게 그거지.”

“참 쓸데없는 숫자까지 정확하게 외우고 있구먼.”

시아와 화타는 ‘시간 끄는 정도’를 빼고는 대화 방식이 비슷했다. 상대에게 태클을 거는 방식도 대화를 구성·진행하는 것까지 시아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었다.

그녀는 원래 비위가 약한 소녀였지만 크루세이더에서 신약을 만들 때마다 시아도 발전해갔다. 악마계에 사는 생명체들이 지독해 봤자 독에 녹아내리는 모양이나 듣도 보도 못한 형태로 몸이 꼬이는 모양이나 그런 것들이 있을까. 그 약의 갖은 부작용 덕분에 웬만한 것에도 끄떡 않고 되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자연스럽게 화타에게서 많은 것을 듣고 배웠는데 그러던 중에 말투까지 전이된 것이다.

“해부도 하고 해체도 하고 분해도 할 거야.”

화타는 시아와 살덩어리 사이에 서서 그녀와 마주봤다. 시아는 더 보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화타가 팔로 가로막았다.

“이제 집무실로 돌아가야지.”

“좀 더 구경하면 안 돼?”

“내가 제 1천왕 손에 죽는 걸 보고 싶어?”

보스에게 잔인하고 역겨운 광경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추궁당하는 것이 귀찮았다. 추궁이라기보다 잔소리인데, 민의 솜씨가 마누라가 바가지 긁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게 아닌 만큼 절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4천왕 중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시아 혼자 연구실에 있다는 것도 잡힐만한 꼬투리로 충분했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화타는 시아를 쉽게 뒤로 돌린 다음에 출입구 쪽으로 밀면서 걸어갔다. 시아는 아쉬워하면서 그렇게 연구실을 나왔다.

“네가 그렇게 진을 치고 있으니까 쫓겨났잖아.”

연구실 밖에서 민이 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마력을 슬슬 풍겼다. 화타에게 보내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민의 -조금은 비뚤어 보이는-지극정성 덕분에 시아는 보스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지만 이런 부자연스러운 구속이 싫지 않았다. 좋다고는 더욱 못하지만 불쾌하다거나 짜증나거나 하지 않으니까 별로 마음 쓰지 않는 것이다. 민의 입장에서는 보스가 조용한 듯 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사람이라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시아는 자기가 보스니까 모두 챙겨야 한다고 말하지만 민은 생각이 달랐다. 이 얘기는 잡담이니까 그만 두자.

“카마엘 씨까지 스승님께 맡기셨다면서요?”

“응. 뭐 잘못됐어?”

“바로 캡틴 브롤에게 맡겨도 되잖아요.”

“그래도 신참 교육은 필요하니까. 거기에 디레스가 적임자잖아.”

두 키메라는 시아의 집무실로 나란히 걸어갔다. 도중에, 엔트에게 던져져서 날아가는 묘인족도 보고,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골드 드래곤과 하이 엘프가 마법 대결을 화려하게 펼치는 것도 봤다. 자세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갈 뿐이었다.

“많이 기다렸지?”

지금 이 시간은 시아가 직접 지원과 세나를 가르치기로 한 시간이었다. 신참 두 명은 집무실에서 보스를 조용히 그리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뒤엔 밀리엄이 방긋 웃으면서 버섯을 키우는 중이었다. 웃는 낯 뒤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민, 저 버섯 제조기는 여기 왜 있는 거야?”

“글쎄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시아는 밀리엄처럼 방긋 웃으면서 손 안에 응축시킨 마력을 그에게 날렸다. 밀리엄 본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쑥쑥 자라고 있던 버섯들은 창밖으로 날아갔다. 바람이 그치고, 포자가 남아 있었는지 그의 몸에 다시 새끼손가락만 한 버섯이 곳곳에서 솟아올랐다.

“지원아, 세나야. 오늘 수업은 기본 해독 마법이었지? 특별 보너스로 제초법도 가르쳐줄게. 잘- 봐.”

[우둑!]

[뻐억!]

우리의 보스는 주먹을 불끈 쥔 다음에 밀리엄의 아래턱에 어퍼컷을 정확하게 먹였다. 마력으로 싸인 주먹은 아주 단단해서 훤칠한 하이 엘프를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쳐올릴 수 있었다. 고개가 뒤로 꺾인 채 솟아오른 밀리엄은 가녀린 등판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척추가 으스러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바닥과 세차게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모든 버섯이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포자까지 털어졌다.

“특히 밀리엄 브롤의 특제 버섯은 최고로 끈질기기 때문에 제초제보다는 손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야.”

가디안스의 두 신참에게, 시아가 활짝 웃으면서 밀리엄의 뒷덜미를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 3천왕의 몸에서 수많은 버섯이 끝없이 자라나고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장면도 그의 이미지를 와장창 깨는 것이었는데 시아가 당연하고도 능숙하게 그를 처리하는 장면이 아주 약간 남아 있던 그에 대한 고급스런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쉈다. 그가 지금 괜찮은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인물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이 둘의 눈을 빛나게 했다.

“진격 부대 분들도 캡틴 브롤의 이런 모습을 아나요?”

“아니, 전혀. 나랑 보스밖에 모르는 건데, 우리 외에 다른 이에게 들킨 건 너희가 처음이야.”

민은 마지막으로 남은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밀리엄 때문에 방치된 신참 두 명을 상대했다. 시아는 정신은 다른 데에 버리고 온 밀리엄을 풍선 인형처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면서 노는 중이었다. 살아 있는 장난감을 5살 꼬마처럼 갖고 놀다가 바닥에 휙 던져버리고는 본업으로 돌아갔다.

“가끔씩 상태가 이상해져서 말이지. 자…… 본 수업으로 들어갈…… 꺼져!”

“보- 스-.”

밀리엄은 바닥을 기어 와서 시아의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시아는 잡히지 않은 발로 바닥에 배 깔고 밀착상태인 좀비를 머리부터 등까지 골고를 꽉꽉 밟았다. 그 박자에 맞춰 버섯이 다시 솟아올랐다.

“캡틴 류. 오늘 수업은 캡틴께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난 상관없는데, 세나는?”

“괜찮아요.”

모기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세나의 목소리보다 클 것이다. 민은 입 모양을 보고 세나가 한 말을 알아봤다. 그녀는 시아가 밀리엄에게 마법을 날렸을 대부터 긴장 때문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지원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다. 지원은 연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보스께서 처음으로 신참을 가르쳐본다며 기대하고 계셨는데 캡틴 브롤이 초를 쳤네.”

순간 시아의 마력이 반짝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까 시아가 손을 털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고 밀리엄은 보이지 않았다. 밀리엄이 기운이 생뚱맞게도 아지트의 남쪽에서 잡혔다. 시아에게 열심히 당한 것 때문에 그의 기운이 평소의 1/3밖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셨어요?”

“로프로 묶어서 지붕 끝자락에 매달았어.”

“로프라면 얼마 전에 드워프 계곡에서 구한 거요?”

“그거 말고 뭐 있겠어?”

드워프 중에서 유명한 몇몇이 있는데 대부분 따로 흩어져서 살고 있다. 그런데 드워프 계곡엔 그들 중 세 명씩이나 연합을 이루며 살고 있다.(여기서 ‘연합’이라고 한 이유는, 유명한 드워프가 식솔 및 제자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난 연합체이자 품질 보증·A/S완벽을 모토로 하고 있어서 길드 가디안스 뿐만 아니라 손에 꼽히는 길드 및 개인 용병 등이 무기 제작·수리를 곧잘 의뢰한다.

시아는 그녀의 파혼검 수리를 맡기러 갔다가 갓 완성된 튼튼한 로프를 발견하고 흥정을 했다. 폭주하는 키메라를 포획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 로프다. 생포기능, 충격마비기능, 진정기능을 갖춘 폭주 드래곤 포획용 로프와는 다르게, 충격마비기능 대신에 변형억제기능이 실려 있다. 이 뛰어난 신제품의 실용도를 시험해 보고자 일단 10m만 싼값에 샀는데 밀리엄에게 쓰게 됐다.

“드워프 쪽에서 비법을 조금만 공개해도 화타가 저 고생은 안 할텐데 말이지. 녀석들의 진정제는 진짜 최고라니까.”

길드 크루세이더에서 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주 제조자가 드워프라는 소문이 일찍부터 있었다. 그것도 드워프 일족에서조차 괴짜니 이단이니 배척당할 정도로 그 분야에서 천재라는데, 진실을 확인한 바가 없으니 시아에게는 아직 헛소문일 뿐이다. 제조자의 정체가 무엇이든, 드워프 계곡에서 나오는 진정제는 웬만한 독에 대항이 가능하고 화타가 만든 것보다 성능이 좋다. 드워프가 만든 것들은 타 종족이 비법을 캐낼 수 없다고, 화타는 그들의 것을 가장 가깝게 흉내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이 만든 것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진정제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값을 부른다. 그리고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가 생산되는 속도와 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진정제가 만들어지지도 못한다.

“자, 지금까지 집무실 안에서 보고 들은 건 절대적으로 비밀이야. 그래도 4천왕이니까, 4천왕이니까 사생활을 존중해 줘야지.”

“네, 보스.”

시아가 밀리엄을 달래주거나 그와 같이 놀아주는 건 극히 드물다. 대부분 지금처럼 그의 말을 한 마디도 들어주지 않고 물리적으로 실컷 혼낸 다음에 돌려보내거나 밖에 버려버린다. 그를 일일이 성심성의껏 상대했다간 아무런 일도 못하고 그에게 휘둘리기만 할 게 뻔하다.

“수업을 시작하자. 예기했다시피 해독마법의 일반을 가르쳐줄 거야. 그러니까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는 해독할 수 없어.”

“정령 마법으로도 안 되나요?”

이성은 물론이거니와 동성의 심정도 두근거리게 할 만큼 고운 목소리였다. 시아는 세나가 아지트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은 셈이다. 낯가림이 심하고 절대 자발적으로 먼저 나서지 않는 여아가 알아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시아는 이것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했다.

“정령 마법 중에 치유·해독 계열이라면 드라이어드 부류겠지. 애석하게도 그쪽은 우리 길드에 없어서 잘 모르겠는걸. 정확하게는… 아예 생각도 못해봤어.”

시아는 소파에 앉은 다음에 팔짱을 끼고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로 꼬아 올렸다. 세나의 말이 또 다른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보스, 세나 양은 정화 계열의 네레이드 아닌 가요?”

“네레이드 자체가 정화 계열은 아니지. 하지만 구사 마법 중에 정화 계열 마법이 많긴 하지.”

시아와 민은 세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세나는 양 볼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리고 지원의 뒤에 숨었다. 그는 괜찮다면 그녀를 앞으로 끌어당겼지만 그녀는 다시 그의 등 뒤로 숨어서 이제는 얼굴을 그의 등에 파묻기까지 했다.

“정령 마법은 마력 자체가 이질적인 정령만이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건 단편적인 내용뿐이야. 좋아.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를 정령 마법으로 해독할 수 있는가 하는 건 세나가 한 번 조사해 봐. 정식 길드원이 되고 내가 처음으로 내리는 명령이야.”

“네?”

“여기 있는 민과 지원이 증인.”

세나는 지원의 뒤에서 눈가지 보이게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시아의 온화한 미소를 보자마자 다시 쏙 숨었지만 이내 한 발짝 옆으로 나왔다. 지원의 눈치를 먼저 보고, 시아와 민의 눈치를 한 번씩 본 다음에 고개를 가볍게 두 번 끄덕였다.

“좋아. 어쨌든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 오리지널일 대 슬 해독 마법 몇 가지를 가르쳐줄게.”

가디안스의 보스가 신참들에게 가르쳐 줄 해독 마법은 인간이나 마족 혹은 마법을 쓸 수 있는 기타 종족이 보편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지원과 세나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르치려는 것이다. 두 사람의 플러스는 각각 마법엔 젬병인 미노타우르스와 이질적인 마력이 흐르는 정령이기 때문에 이 마법은 오리지널 상태일 때만 쓸 수 있다. 게다가 미노타우르스는 독에 대한 저항력이 인간에 비해 강하고 정령 중에서 특히 네레이드는 스스로 치유 가능하기 때문에 이 마법이 필요가 없다. 그러니 차마 각성 전에 상대의 독에 당했을 때 대처하기 위해서 시아가 직접 수고하면서 가르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