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5 각성 ②

★은하수★ 2009. 12. 3. 13:04

혼자 생각에 빠진 시아를 두고 디레스와 크리세이스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민은 시아가 자기 생각 속에서 나오길 기다리면서 피로를 푸는데 효과가 좋은 차를 준비했다. 레몬꿀을 더하여 그 효과와 향을 높였다.

“아, 민의 차. 얼음의 대지에서도 이게 그리웠다니까.”

차향이 풍기자 시아가 정신을 차렸다.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민이 내미는 찻잔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카리스마 보스 이미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수업 중 필기는 언제 베끼실 거에요?”

“내 거까지 다 정리했으면서 뭘 물어?”

“이번엔 안 했다면요?”

“저 서류 중에 네 공책도 섞여 있겠지. 그런데 내 거 밖에 없던걸?”

“그것까지 보셨어요? 그냥 대충 훑어보신 줄 알았는데.”

시아는 한 번도 서류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눈으로 쭉 양을 재보기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류마다 표시된 색으로 어떤 일이 얼마큼 있는지 파악했다. 민이 미처 종류별로 나누지 못한 것도 눈짓 한 번으로 파악을 끝냈다.

“지금 내 나이에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수많은 서류에 파묻혀 산 세월이 얼만데. 그리고 너랑 같이 지낸 시간도 그 세월하고 맞먹잖아.”

차를 마시는 내내 얼굴에서 행복한 표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민은 보스가 얄미운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 표정 하나로 전부 용서됐다. 지금 눈앞에서 무사히 평온하게 있다면 어떤 심술을 부리든 다 감내할 수 있었다.

민은 윗옷의 가슴 부분을 꽉 주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실은 옷이 아니라 가슴 자체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보스가 돌아온 후부터 계속 가슴이 답답했다. 불쾌한 감각이 피부를 타고 흐르는 것 같고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원인모를 이현상 때문에 그의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결국 포커페이스가 무너지고 시아 앞에서 불편한 표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악마가 아니더라도 자극적이나 보네. 신의 보물이니까 그런가? 하긴, 로키는 마족에게도 영향력이 강했지.”

[달각]

시아가 찻잔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민의 고통이 사라졌다. 짙뿌연 안개가 한 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얼음의 대지에서 인재만 얻지 않았어. 정말 우연한 기회에 로키의 보물 세 개도 전부 손에 넣었어.”

작은 주머니 가방에서 왕의 반지, 사안의 반지, 저주술 비서를 꺼냈다. 보물이 자체적으로 마력을 발하기 때문에, 시아가 그녀의 마력으로 바리어를 생성하지 않으면 근처에 있는 악마족이나 일반 마족이 그 영향을 받는다. 민은 플러스가 일반 마족 중 뱀파이어라서 당연히 로키의 보물과 무의식적으로 마력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다. 로키의 보물을 바라보는 민의 표정이 멋지게 굳어버린 건 두 말 할 것도 없다.

“사라진 신의 유물인가요?”

“응.”

“악마족 안에서 어떤 세 가지를 가지면 절대적 왕이 된다는 그 전설 속 보물인가요?”

“응”

“얼음의 대지에서 얻은 보물이 무려 로키의 보물인가요?”

“응.”

시아는 민의 뻔한 질문에 생긋 웃으면서 꼬박꼬박 대답했다. 질문 하나, 대답 하나가 끝날 때마다 민의 낯빛이 점점 하얘졌다. 시아는 장난으로 보물에 두른 바리아를 재빠르게 거뒀다가 다시 쳤다. 민은 순간적인 위협 때문에 자동적으로 몸이 흠칫거렸다.

“후작께서 왕의 상징을 갖고 있으면 반역죄잖아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 나온 것은 역시나 ‘걱정’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하고, 누구나 당연스레 걱정해볼 만한 일인데, 민은 걱정하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보스는 절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앞으로도 걱정 따위는 안 할 것이다. 이것은 예상도 기대도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미 로키의 보물이 나를 새 주인으로 인정했는걸. 우리의 왕에게 가져다준다 해도 소용없어.”

“역시 먼치킨이세요.”

민은 오른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신의 유물을 일개 피조물이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힘을 빌리넌 형식이면 몰라도 신의 유물 자체가 신이 아닌 지상의 피조물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주인이 될 수 있어도 보물에 휘둘릴 뿐이지 보물을 자기 의지대로 다룰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의 보스는, 그들의 보스는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는 세계의 예외였다. 신의 유물이 그녀를 따랐다. 이 소문이 밖으로 나가면 한동안 심하게 시끄러워질 것이다.

“근데 우리의 왕에게 얘기는 해야 해. 날 믿는 왕에게 비밀을 만들면 악마계에서 생활하기 힘들어.”

시아는 끝까지 왕의 반지와 사안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지 않았다. 사라진 신의 유물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이는 초극소수일 텐데도, 자신이 내키지 않아서일까, 시험 삼아서라도 껴 보지 않았다.

“언제 다녀오실 건가요?”

“지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네요.”

“금방 다녀올 거야. 그리고 서류는 착실하게 끝낼 테니까 걱정 마.”

“걱정 안 해요.”

체인이 끊어지고, 한 명의 아름다운 순흑의 악마가 아주 잠깐 시야에 들어왔다가, 저것이 악마구나 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높게 올려 묶은 악마는, 생기 있는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악마왕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을 닮은 한 쌍의 날개가 스쳐지나간 자리는 그 어떤 하급 악마도 감히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력 자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왕이시여. 시아 바르베리트-진 후작이 도착했습니다.”

전령이 급히 악마왕에게 고했다. 그자리에 마침 루시퍼 공작도 있었다. 모두 시아를 반기고 아끼는 자들이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우리의 왕, 악마들의 위대한 왕이시여. 신(臣), 시아 바르베리트-진, 태초의 땅, 얼음의 대지에서 막 돌아왔습니다.”

“수고 많았네. 후작.”

“루시퍼 공작께서도 안녕하셨습니까? 막내 자제분이 말썽을 일으키진 않았는지요?”

“하하하! 루시퍼 공작 가에 말써이 없으면 재미없지.”

생긴 건 지나치게 엄할 것 같은데, 상대가 시아라면 호탕하게 웃으며 이미지를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친 자식보다도 더 아끼는 정신적인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훈훈한 아버지로 보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가식과 진실을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얼음의 대지는 어떠하던가? 여전히 녹지 않는 눈과 얼음으로 건재하던가?”

“네. 왕께서 이야기해 주신 그곳과 제 눈으로 본 그곳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일치했습니다.”

악마왕은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비해 시아는 악마계에 들어선 순간부터 줄곧 무표정이었다. 좋은 기색도 싫은 기색도 그 어떠한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악마왕과 루시퍼 공작은 어린 아이가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갖추고 있는 것을 기특하게 여겼다.

“글라셰가 섞인 키메라를 찾는다더니 찾았는가? 순종도 만나 보았는가?”

“네. 그러기에 돌아왔습니다. 반갑게도, 키메라 1개체와 글라셰 순종 1개체가 새 식구가 됐습니다.”

“왕이시여, 역시 바르베리트-진 후작답습니다.”

루시퍼 공작은 억양이나 어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말 자체에 감정을 실어 감탄했다. 루시퍼 공작 가는 강한 정보력을 쥐고, 막강한 재력과 권력이 있어도 글라셰와 친분을 나누지 못했다. 보통은 그러지 못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악마왕은 루시퍼 공작의 진심어린 감탄에 동의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아를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시아는 이 자리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심히 일방적으로 자신을 추켜세우는 언행이 전부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시아보다 신분이 높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한 명이라도 청중이나 관객이 있었으면 부담감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우리의 왕이시여, 실은 아뢸 것이 있어 찾아왔나이다.”

로키의 보물 세 개가 시아의 발 앞에 일렬로 놓였다. 바리아를 거두자마자 보물의 마력이 옅고 넓게 확산됐다. 삽시간에 왕성 전체를 차지했다. 왕성 내에 있는 악마와 근처에 있는 악마 모두가 사라진 신의 유물, 그것도 로키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손에 넣으면 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가가선 안 된다는 압박감이 몇 십 배 더 강했다. 악마왕은 로키의 보물이 이미 시아를 새 주인으로 선택했음을 알아 차렸다. 아까워하지도 유감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만 로키의 보물을 진정시키게. 여린 동족들이 괴로워하지 않은가.”

“왕의 말씀대로.”

다시 숨 쉬기 편해졌다. 로키의 보물은 시아의 마력에 즉각 반응했다. 단순히 마력 발산을 그친 것이 아니라, 이미 내뿜은 힘까지 깨끗하게 자취를 남기지 않고 지웠다.

“바르베리트-진 후작. 악마계에서 찾을 수 없던 로키의 보물을 어디서 찾아냈는가?”

악마왕보다 루시퍼 공작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악마로서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물건이 눈앞에 있는데, 탐욕의 본능이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얼음의 대지입니다. 슈바르체트라움에서 독이 되어 대지를 괴롭히는 것을 제가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슈바르체트라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로키의 보물이 신(臣)을 주인으로 선택해버렸습니다.”

“정말 멋지군!”

시아는 순간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악마왕이나 루시퍼 공작이나 로키의 보물을 들먹여 자신을 대공작 자리에 급히 박아 둘까봐 불안했다. 악마로서 최고의 힘을 가졌는데 이대로 후작으로 남겨둘 것 같지 않았다. 진짜, 아차 싶었다. 대공작의 자리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음을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을 무한히 탓했다.

“우리의 왕이시여.”

“공작. 잠시 가만히 있게.”

의외였다. 악마왕이 루시퍼 공작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시아는 속으로 잔뜩 긴장했다.

“이곳의 동지들은 내가 친히 입을 막겠네. 바르베리트-진 후작. 스스로를 로키의 나흐폴게르(der Nachfolger : 계승자)라 생각하며 로키의 보물을 지켜주게. 다시는 ‘사라진’ 신의 유물이 되지 않게 해주게.”

“왕이시여.”

“공작. 신의 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사라진 신의 유물 중에서 로키의 보물만 모습을 드러냈어. 천상계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네.”

왕이라고 칭송 받을 만큼 깊은 통찰력이었다. 루시퍼 공작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시아도 내심 감탄했다. 앞을 내다보는 거란 저런 것이라고 심장이 욱신거리도록 새겨들었다.

“후작이 사용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로키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자는 악마 외에는 없네. 자연히 소문이 퍼지는 쪽이 악마족의 천상계의 데미지를 덜 받아. 그러니 일부러 보물의 등장과 소유자를 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루시퍼 공작과 시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시 우리의 왕이시다’라고 진정한 존경심을 담아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그 누가 지금의 왕좌를 무능력하고 부실하며 나약하다고 외치는가. 왕은 대공작이라는 보조자가 없어도 충분히 훌륭하게 악마계를 통솔할 수 있는 인재였다.

“신 같이 어린 자가 신의 보물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보물이 그대를 주인으로 선택했고, 그대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고귀한 자야. 후작의 말은 우문이네.”

막 어른이 된 딸을 다독이고 밀어주는 인자한 아버지와 같았다. 악마왕이 바르베리트-진 후작을 편애한다고 널리 소문나도(이미 유명한 소문이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든지 시아를 우선시하고 매사를 격려했다. 그녀에게 갖고 있는 그의 자책감에서 편애가 나오는 것인지라, 그가 베푸는 모든 선의며 편의가 순수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점이 안쓰럽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로키의 보물을 그녀에게 전적으로 맡기려는 그의 마음은 순수한 그의 의지다. 로키의 보물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유치한 이유로, 자신의 ‘왕의 자질’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다부지게 걱정을 버렸다.

“그리고……. 동족끼리 분열이 생기는 것을 보느니, 키메라의 세계에 맡기는 거라 생각해 주게.”

시아는 심장이 욱신거렸다. 무익한 유혈을 싫어하는 악마왕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와 닿았다. 키메라의 일에 순종이 끼어들 수 없다는 대자연의 불평등한 원칙을 이런 식으로 유익하게 이용할 줄이야. 그만큼 악마왕은 키메라 사이의 싸움이 개입하기도 싫고, 로키의 보물 때문에 악마계가 어지러워지고 위험해지는 것을 환멸 했다.

“후-. 바르베리트-진 후작. 우리의 왕께서 정말 간절하신가 보오.”

가장 공정해야할 재판관, 루시퍼 공작은 왕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충성심을 훌륭하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한심하게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써 당연한 아이러니이건만, 바보 같게도, 당연한 사실을 두고 당연한 고민을 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시아를 대공작으로 지지하는 것은 사심이 일절 없는 재판관으로서의 판단인가? 웃기지도 않다.

“다른 귀족들이 알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 아니니 상관없네.”

악마왕은 재치 있게 시아의 마지막 우려를 받아넘겼다. 시아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게 미소가 생겼다.

“그러면 신은 마음 편하게 로키의 보물을 수호하고, 아깝지 않게 사용하겠습니다.”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는 원하는 것을 무사히 얻었다. 눈치 보지 않고 로키의 보물을 차지해도 되는 것이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천상계 따위,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로키의 보물에 혈안이 된 악마계만 조금 신경 쓰였을 뿐이다. 천상계에서 알게 된다 할지라도 키메라인 그녀를 건들 수 없을 것이고, 보물이 주인으로 선택한 그녀에게서 보물을 뺏을 수도 없다. 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