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5 각성 ④

★은하수★ 2010. 1. 12. 11:43

[구구구구- 쿠콰앙! 쿠광! 쾅. 쾅. 구구구구구구구. 콰광!]

아지트 근처에서 화려한 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건물을 부수는 소리와 건물과 대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같이 들렸다. 그럴만한 일이 없을 텐데, 별안간 나는 소음 때문에 시아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민의 포커페이스는 가볍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이기 때문에 시아와 상반돼 보였다. 그래도 그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 역시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는 뜻이었다.

[쿠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

재개발 한답시고 낡은 주택을 부술 때 나는 소리와 흡사했다.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밖으로 나가니 이미 아지트 안에 있던 길드원 중 절반 이상이 밖에 나와 있었다. 아지트 주변에 있는 건물 중 굵직하게 큰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 후였다.

“저 살덩어리가……!”

“백화점 행사기간이라 저 안에 사람들도 많을 텐데.”

“평일이라서 사무실에도 사람들이 잔뜩일 거야.”

정보 부대, 수색 부대, 후방지원 부대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인명 구조에 뛰어들었다. 특수전투 부대와 진격 부대는 아지트 근처에서 질척하게 기어 다니는 괴물 살덩어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보스의 명령 없이 그들의 의지대로 할 일을 찾아나갔다.

살덩어리 15개체의 난동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시아는 대뜸 주박을 풀었다. 오른손 검지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목표물을 한 번 가리킨 것으로 악마계 고유 소멸 마법 중 고위 마법을 명중시켰다. 플러스로 변하는데도, 고위 마법을 쓰는데도, 입술을 달싹거리지 않았다. 마력이 넘쳐나는 실력자에게 주문은 불필요한 장식이었다. 그래도 주문은 정확도. 주문이 없다면 목표물을 가리키는 정도는 해줘야 한다.

건물의 1/3이 파손된 사무실용 고층빌딩을 향해 그 빌딩의 반만 한 살덩어리가 맹렬하게 기어갔다. 진격 부대 중 한 명이 플러스-쿼터 엘프-로 변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화를 아직 진정시키지 못한 시아가 오른손 검지로 그 살덩어리를 지그시 가리켰다. 살덩어리는 건물에 닿기 전에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 연기가 닿은 부분부터 천천히 잠식됐다. 살덩어리는 끝까지 건물 부수기에 집착하며 앞으로 기어 나갔지만 결국 코앞에 목표물을 남겨두고서 완전 소멸됐다. 영혼이 아닌 육신을 이 세상에 없던 것으로, 완전히 지워버리는 그 마법은 시아의 분노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에 적격이었다. 쿼터 엘프는 보스의 분노를 눈으로 목격하면서 가늘게 몸을 떨었다.

“전면전을 선포하자마자 이런 과격한 선물을 보내다니, 센스가 아주 기똥차게 훌륭해서 눈물이 다 나오겠어.”

어금니와 송곳니를 바드득 갈았다. 민은 시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주변의 움직임을 살폈다. 시아의 분노와 살기에 휘말리지 않게 일부러 와인드급으로 각성했는데, 얇은 살갗의 안쪽에 모여 있는 감각계 신경이 따끔거렸다.

“보스께서 직접 전부 소멸시키는 편이 빠르겠지만 그러면 세간 평판이 시끄러워질 거에요.”

“길드를 이끄는 보스가 채신머리없이 설치고 다니는 건 최고의 가십거리잖아. 나도 알아. 그래서 시급한 걸로 두 개만 없앴다구. 아주 손이 근질거려 죽겠어.”

가디안스의 유능한 인재들은 보스의 속사정을 아는지 빠릿빠릿 움직였다. 화타가 발명한 ‘괴물 살덩어리 포착용 주문 결박’ 덕분에 특별한 충돌 없이 살덩어리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거인도 끊을 수 없는 얇고 질긴 비단에 룬 문자를 빼곡히 적어 만든 그것은 차근차근 살덩어리의 동력과 생명력을 빼앗는다. 제대로 묶기만 하면 따로 손댈 필요 없이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화타는 에덴에서 뿌린 독에 대항하여 해독제를 만드는 것을 접고, 구역질나게 생긴 살덩어리를 제거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에 전념하고 있다는 증거다.

“가뜩이나 키메라가 극소수인데 에덴의 몹쓸 장난 때문에 수가 더 줄어들게 생겼어요.”

“아. 괴물 하나당 키메라가 최소 여섯 개체가 필요하다는데 대책 없이 괴물의 수를 늘리고 있어. 녀석들은 키메라의 멸종을 바라는 건가?”

“펜타곤이 있는 이상 불가능하잖아요. 게다가 자기네도 절반은 키메라일 텐데 약간의 죄책감도 없는 걸까요?”

“그러면 약에 빠져 사는 저급한 놈들은 필요 없다는 거겠지. 암만 그래도 숨 쉬는 생명체인데 말이야.”

살덩어리들이 전부 진압되자 구조대가 안심하고 사고 현장으로 모였다. 군경은 뒤늦게 나타나서 큰소리를 쳤다-이제 다 끝났으니 안심하십쇼. 어차피 길드 가디안스의 아지트는 인간 순종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왕국에서 인간 순종만 취급하는 도시에 있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인간 순종들을 열심히 도와준다 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역 수비대 등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떡 얻어먹는 꼴이다.

인간이란, 키메라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아니기만 하면 배척하는 나쁜 습성을 천성처럼 가지고 있다. 엘프가 우연히 인간이 사는 곳을 지나면 그 엘프는 반드시 봉변을 당한다. 공무원에게 검문 차 끌려간다거나, 어디서인지 모를 곳에서 날아오는 돌에 맞거나, 인신매매단에게 붙잡히거나. 만약 전투 종족 중 낭인족이 나타나면, 그 수가 하나든 둘이든 그 이상이든, 군경이 촤르륵 나타나서 그를 저지한다. 이러니 다른 종족이 인간 순종과 얽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키메라 중에서 오리지널이 인간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타종족에 대한 동경 혹은 인간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탕!]

[화륵]

건물 옥상에 있던 특공대 저격수가 시아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굵고 단단한 총알은 시아의 둘레에 쳐 있는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흠집을 내기는커녕 방어막에서 흐르는 마력 때문에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다.

“난동의 주범인 키메라들은 들어라. 지금 당장 얌전히 투항하고…….”

군용 헬기가 하늘을 배회하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지껄였다. 무슨 사건만 났다 하면 용의자 제 0순위가 키메라였다. 이골이 난 길드 가디안스는 귓가에 앵앵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파리가 상당히 성가시게 구는군요.”

민은 헬기의 진행 방향에 맞춰 워프를 열었다. 헬기는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워프에 들어갔다.

“어디로 보냈어?”

“왕족 제 2별장 상공에요.”

“멀리도 보냈다.”

가디안스를 견제하기 위해 전투대형으로 모여들었던 군경은 지휘관의 명령이 전해지지 않자 무장을 풀고 구조대를 도왔다. 아무리 봐도 인명구조를 하는 쪽이 가디안스를 상대하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살덩어리들의 폭주가 무서워서 가디안스가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린 주제에 뒤통수를 치다니, 어린애가 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관을 둔 그들에게 동정심이 생기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길드 가디안스도 제법인데? 상당히 빨리 일을 정리했어.”

“인명구조까지 끝내야 정리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초면부터 반말 찍찍 날리는 형씨.”

길드 에덴 소속의 키메라가 당당하게 시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사건의 주모자였다. 드라켈프. 아주 희귀한 종족이었다. 대단한 종족을 오리지널로 두면서 어떤 종족을 플러스로 선택했는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보스. 화이트 드래곤의 드라켈프라면 랄프 이미디아스 밖에 없습니다.”

“그 소문의 화이트 드래곤-퓨어 엘프 혼혈?”

“소문보다는 역사적 존재죠. 대략 870살은 족히 먹었으니까요.”

“드라켈프의 수명이 그렇게 길었던가? 길어야 600년이잖아.”

“비과학적인 그들, 길드 에덴이잖아.”

공작급 뱀파이어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드래곤과 엘프의 혼혈이자 남성인 상대방도 그 미소에 홀려버렸다. 뱀파이어 자체가, 먹잇감을 취하기 위해 미인계를 무기로 쓰는 종족이라서 직급이 높을수록 외모가 수려하고 행동거지가 품위 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미소가 아름다워 보인다.

“민아, 너 지금 와인드급이지?”

“네.”

“페로몬을 너무 많이 방출했나보다. 저 녀석 완전히 맛이 갔어.”

드라켈프, 랄프 이미디아스는 눈이 반쯤 풀리고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어 축 늘어졌다. 급기야 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쩌죠? 전 남자한텐 관심 없어요.”

[딱]

민은 의도하지 않게 걸린 미혼 취향을 풀어줬다. 정신이 든 드라켈프는 바로 앞에 시아와 민이 있으니까 화들짝 놀랐다. 급히 뒤로 물러서는 것을 시아가 팔을 붙잡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상당히 유쾌한 일을 저질렀는데, 누가 시킨 거지?”

최면에 이어 심장이 오그라드는 압박감이 드라켈프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명색이 드래곤과 엘프 사이에 정식으로 태어난 혼혈, 드라켈프이고, 길드 에덴의 일원인데 민이나 시아의 힘에 쉽게 굴복했다. 비정상적인 수명을 영유하다보니 마저항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시아에게서 생애 최고의 공포를 느꼈다. 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보스…….”

이 한 단어가 터져 나오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무 싱겁다고 생각될 정도로 순순히 대답했다.

“간다르바 순종, 벡터스. 지금 길드 에덴의 수장이야.”

낯익고도 속 뒤집히는 목소리가 정면에서 시야의 신경을 자극했다. 시각은 청각이 시키는 대로 시선을 옮겨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그녀였다. 펜타곤 중 한 명이자 ‘거울 마녀’라고 불리는 슈튀크, 디 페라이터루흐(die Vereitelung). 통칭 페라이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아와 마주보고 있었다. 인기척 없이 여기저기 쏘다니는 건 여전했다.

“그동안 악마계에서 콱 박혀 지내더니, 어쩐 일이야? 페라이.”

“단순한 외출, 나들이, 바람 쐬기, 산책.”

그러기엔 표정이 무덤덤에서 점차 떨떠름으로 변했다.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할까? 인질한테서 알아내야 할 게 많거든.”

“보스가 직접 할 일은 아니잖아.”

“그렇군. 민아, 부탁할게.”

시아는 대뜸 드라켈프를 민에게 맡겼다. 민은 페라이를 훑어보다가 보스를 믿고 인질과 함께 아지트로 돌아갔다.

반쯤 무너져 내린 도시 상공에서 흑장발의 후작급 악마와 블루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거울 마녀가 재미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페라이가 용건이 있어서 시아를 찾아온 듯 한데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일관할 뿐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시아는 보는 입장에서 답답했지만 페라이와는 깊은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아,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못생긴 것들을 처리하느라 수고가 많네.”

“성가셔. 아주 성가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페라이가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불길한 낌새가 페라이에게서 풍겨졌다. 시아는 페라이가 난동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참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감정대로 움직이는 펜타곤에게 인내란 존재할 수 없는 단어였다.

“순종이 키메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일찍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개념이 없을 줄이야.”

어느 순종과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갑자기 언급된 그 이름이 페라이를 화나게 했을 것이다.

“길드 에덴의 보스랑 만난 적 있어?”

“그래. 바로 그 녀석. 신족도 아니고 유사 신족이면서 위대한 척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간다르파, 무슈후슈, 이런 녀석들은 머리가 나빠서 상종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런데 이 페라이님이 그 녀석한테 ‘무능한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어이가 없잖아. 스피가 만든 길드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쳐부쉈을 텐데. 속 터져, 짜증나, 미칠 것 같다구.”

드디어 페라이를 자극한 원인이 밝혀졌다. 길드 에덴의 보스, 간다르바 순종 벡터스. 길드 에덴이 원래 비밀주의지만, 보스에 대한 정보는 완벽하게 블라인드 처리가 돼서 에덴의 길드원조차 고위 간부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시아는 생소한 이름 때문에 심적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페라이의 상태를 보아하니 거짓 정보는 아닌 게 확실했다.

“그래서? 단순히 넋두리하러 온 건 아니잖아. 내가 너네 장난감이니까 가서 길드 에덴을 박살내라는 명령이라도 하려고?”

페라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큭큭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넌 플루의 장난감이지 우리 모두의 장난감이 아니야. 게다가 장난감 중에서 제일 무서운 장난감인데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몰상식한 명령을 하겠어? 그저 약간의 부탁을 하고 싶은 것뿐이야.”

장난감이 아니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펜타곤의 생명경시적 비하발언은 변함없이 구역질나지만, 페라이의 태도가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차분해서, 시아도 쉬이 울컥하고 속이 뒤집히지 않았다. 시아가 일방적으로 페라이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서로 간에 긴장감은 그다지 없었다. 긴장한다면, 멀리서 보스를 지켜보는 가디안스 일동들이 실컷 했다.

“그저 약간의 부탁이란 건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야?”

“날 기준으로 하건 널 기준으로 하건 별 차이 없을 텐데?”

페라이는 오른손을 슬며시 오른 뺨에 대고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선을 시아에게 박아둔 채 잠깐 무언가 생각하다가 생긋 웃었다. 역시 기준이 누구건 상관없다는 결론이었다.

“내가 벡터스를 길드 밖으로 유인할 테니까 네가 따끔하게 혼 좀 내줘.”

“의외야. 나한테 전부 떠넘기지 않고 네가 조금이라도 직접 뭔가 할 줄은 몰랐어.”

“조금이 아니야. 간다르바 순종 벡터스를 밖으로 빼내는 건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라고. 게다가 난 이미 그 녀석과 사이가 안 좋아서 꾀어 내기 더 힘들어. 그래도 벡터스나 길드 에덴의 비밀 장소를 모르는 너보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편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잖아.”

시아의 귀가 번쩍 뜨였다. 길드 에덴에게 아지트 외에 비밀 장소가 있다는 확실한 얘기를 처음 접했다. 말 그대로 ‘비밀’ 장소니까 그 존재 자체마저 정보가 새나가지 않았겠지만, 워낙 길드 전체가 비밀 덩어리라서 비밀 장소 한두 개 쯤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길드 에덴을 샅샅이 파헤쳐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지만 페라이가 정면에 있어서 최대한으로 감정을 조절했다.

“이왕 하는 김에 혼까지 내지 왜 나한테 미뤄?”

시아는 팔짱을 끼고 큰 날개를 한 번 퍼덕였다. 지루해지기 시작했다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이 제스처는 시아의 흥분한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짜였다.

“난 스피가 만든 길드에 손댈 수 없어. 그런데 넌 길드 에덴을 해코지 할 수 있는 명분이 있잖아.”

“그런 거라면 사마엘한테 부탁해도 되잖아.”

“녀석이 간다르파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힘겨루기 전에 머리싸움에서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밀릴 거야. 내가 장담해.”

페라이는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부정했다. 원래 사마엘을 못미더워했지만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단 두 명의 소울테이커급 키메라 중 한 명인데, 또 다른 한 명인 시아를 대하는 것과 그를 대하는 것이 천지차이였다. 시아는 자신과 사마엘을 같게 취급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을 더 괜찮게(차마 ‘높게’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평가해줘서, 나름 고마움의 뜻으로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에덴이 저지르는 만행은 온 천하가 다 알아. 길드의 책임은 보스가 져야 하잖아? 그리고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가 직접 나서면 다른 길드에서도 ‘길드의 시조’를 처벌하는데 반대하지 않을 거야. 방해물이 스스로 없어지는 거라고.”

일리 있는 말이고 가장 현실적인 말이었다. 시아에게도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귀찮은 일은 페라이가 한다는데, 성가신 에덴을 상대하는 입장으로서, 페라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시아는 쉽게 수락하지 않았다. 스피를 끌어내지 않고도 에덴을 동결시킬 수 있는 기회인데도, 마음 한켠에서 거울 마녀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간사한 슈튀크를 적대시하는 경각심이 점점 커질 뿐 한 번쯤은 믿어도 괜찮을 거라는 친절한 이해심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주변에서 가디안스의 길드원들이 부지런히 이리저리 움직였다. 생명력을 모조리 소진하고 순수한 몸 덩어리만 남은 거대한 짐을 공터 한 곳에 모은 후, 붉은 불로 활활 태웠다. 여러 키메라가 고루 섞인 살덩어리는 찌그덕찌그덕 소리를 내며 잘 탔다. 이제 진격 부대 등 할 일이 사라진 길드원들도 구조 활동에 힘을 가했다. 무너진 건물도 수 개고, 그 안에서 별안간 봉변을 당한 사람이 수천이라 여기저기서 인력이 동원돼도 일손이 모자랐다. 그나마 마법이 가능한 자들이 무너져 내린 자재를 옮긴다거나 작업 도중 2차 붕괴가 일어나지 않게 보조한다거나 해서 막힘없이 착착 진행됐다. 아무리 그래도 수많은 흉한 시체들이 시시각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키메라에게 닿으면 부정 탄다고 해서, 길드원 중 키메라들은 처참하게 짓이겨진 시신을 한 번도 쓰다듬어주지 못했기에 더욱 서글펐다.

“길드 에덴을 용서할 수 없어. 키메라를 농락하며 즐거워하는 변태들을 응징해야만 해.”

시아의 시선이 인명 구조 현장에 있을 때 페라이의 시선은 타들어가는 살덩어리 집합소에 있었다. 시아는 이미 약에 당한 키메라를 구제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흉한 살덩어리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들을 무사히 지켜내는 것이 그녀의 행동 방향이자 목표 자체였다. 약의 유통 경로를 철저하게 검문하고 방황하는 키메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우연히 약은 먹었지만 살덩어리에 흡수되지 않은 키메라를 찾아내면 즉시 격리시키고 개별 해독제까지 제공했다. 페라이처럼 추상적으로 키메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험한 세상에서 극소수를 지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사건이 진행 중일 때 주범을 처리하는 것은 솔직히 힘들다. 지금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을 진압하는 데만 해도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라이처럼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내버려두고 주범 먼저 처리하는 것은, 그 사이에 상처받는 이를 늘리는 일이 되고 만다. 시아는 이 때문에라도 스피를 끌어내고 싶은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할 일만으로도 벅찼다.

“스피는 키메라를 위한 길드를 만들었어. 그런데 순종이 보스가 되고, 키메라를 괴롭히는 사건을 벌이다니. 말도 안 돼.”

페라이는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시아는 가만히 기계적으로 들을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순종 주제에 감히 이 나를 부정하는 말을 해? 그 누런 싹수를 철저히 짓밟아야 해.”

“보스를 손본다고 길드의 만행이 사라질까?”

시아와 친분이 없다고도 못하고 있다고도 못하는 루시퍼가 페라이에게 시비조로 태클을 걸었다. 페라이는 순종의 등장에 기분이 팍 상해서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루시퍼는 휘파람을 짧게 불고서 멋있는 눈이라고 칭찬했다.

“진 시아. 대답을 들으러 내일 다시 오겠어.”

거울 마녀는 양팔로 몸을 꽉 감싸고 자취를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