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6 각성 ①

★은하수★ 2010. 1. 22. 10:50

[제 6 각성]

 

보스가 원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사나흘 간, 길드 가디안스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도시 복구 작업 참여에, 길드 에덴 견제에, 길드 크루세이더 견제에, 보스의 기습 부재에, 배신자의 귀환에, 제 3천왕의 패닉 쇼에, 엘더 피스크의 깜짝 방문에, 죽었던 길드원의 부활에, 아주 파격적인 사건들이 그 짧은 며칠 사이에 쓰나미처럼 길드를 강타했다.

배신자 강 솔리와 사망자 신 휴의 컴백이 길드에 혼란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사기 충만의 플러스 효과도 톡톡히 불러냈다. 암살 부대 최고봉이자 4천왕과 유일하게 맞먹는 인재, 그리고 전 제 3천왕. 고급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보스가 특별히 내쳤던 두 길드원은, 그들의 활약이 민의 입을 통해 길드 전체에 퍼지면서 영웅이 됐다. 자연스레 4천왕 재구성이 긴급 화제에 올랐다.

“뭘 또 바꿔? 어차피 또 밖으로 돌릴 녀석들인데.”

회복을 마친 시아의 반응이다.

길드로 되돌아온 2인도 길드의 큰 틀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분명 휴, 솔리의 컴백 소식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알려질 것이고, 길드 크루세이더에서 아주 민감하면서 과격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므로, 최대한 길드 내부를 안정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유능한 인재를 아무렇게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아나 본인들은 아무렇지 않더라도, 길드원이 그들의 우대를 원했고, 귀찮긴 하나 튼실한 외관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시아는 기존 체제에 이 둘만 집어넣어 그럴듯한 조직계를 짰다. 별로 변한 건 없다.

 

│보스 - 진 시아

│제 1천왕 - 류 민, 암살 부대·특수전투 부대 총대장

│제 1천왕 휘하, 암살 부대 대장 - 강 솔리, 특수전투 부대 대장 - 윤 솔아

│제 2천왕 - 디레스 엑서스엘, 정보 부대·수색 부대 총대장

│제 2천왕 휘하, 정보 부대 대장 - 플릿 엑서스엘, 수색 부대 대장 - 레스 무스크

│제 3천왕 - 밀리엄 브롤, 진격 부대 대장

│제 3천왕 휘하, 전담 고문 - 엘더 피스크

│제 4천왕 - 크리세이스 하갈, 후방지원 부대 대장

│제 4천왕 휘하, 전담 고문 - 신 휴

 

크게 보스 그리고 4천왕 체제인 건 변함이 없다. 거느리는 부대 역시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제 1천왕과 제 2천왕은 특별 부대를 2개씩 거느린 관계로 휘하 대장이 한 부대 당 한 명씩 있다. 제 3천왕과 제 4천왕은 세력도 상대적으로 작고 천왕 개인적인 능력치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관계로 전담 고문이 한 명씩 붙여졌다. 4천왕 내에서 숫자적인 서열만이 아니라 상위 클래스와 하위 클래스가 분명하게 나뉜 것이다. 관습적으로 인식하던 것이 형식적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암살 부대와 후방지원 부대는 각각 자신들의 히어로가 자신들에게 돌아온 것을 기뻐했다. 특히 후방지원 부대 및 제 4천왕 소속 길드원은 신참을 제외하고 모두 신 휴를 대장으로 섬겼었다. 호칭 문제로 난감하던 찰나에 시아가 멋진 해답을 던져줬다. 고문. 전 대방과 현 대장 사이에서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보스 너무해. 어떻게 솔리에게 배신자 역할을 시킬 수 있어?”

밀리엄은 패닉에서 해방되지마자 시아의 집무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마침 집무실에 있던 솔리가 과감하게 그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내쳤다. 그는 쭉 날아가서 마침 뒤이어 오던 크리세이스의 발치에 걸렸다.

“꼴사납습니다. 밀리엄 브롤.”

크리세이스는 밀리엄을 꾹꾹 밟으며 오던 길 가던 길 일직선 그래도 걸어갔다. 그리고 솔리 앞에서 멈춰 섰다. 멜로즈를 재윤에게 맡기고 왔기에 양손이 다 여유로웠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솔리를 살포시 안았다.

“어서와.”

“고마워, 크리시.”

그렇다. 휴와 솔리의 부재 후 특수전투 부대에 있던 트리세이스가 제 4천왕이 됐다. 아니, 암살 부대에서도 활약한 능력자였기에 제 4천왕이 될 수 있었는데, 이 사소한 건수는 넘겨두고, 솔리와의 관계를 보자. 제 1천왕 민을 대장으로 모시는 대원으로서, 크리세이스와 솔리는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이자 허물없는 동지였다. 솔리의 사촌 솔아가, 역시나 같은 천왕 아래면서도, 더 솔리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솔아는 원래 솔리와 거리감이 심했기에 솔리가 돌아온 후에도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쳐도 솔리 쪽에서 먼저 못 본 척 지나갔다. 솔아는 뒤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크리세이스는? 솔리는 너무나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약혼자마저 발로 차버리면서 크리세이스에겐 무한히 따뜻하게 대했다. 애칭을 부르면서까지 말이다.

“자기. 너무 하잖아.”

“닥쳐. 방구석에서 버섯이나 키우고 있었으면서. 애인이면 제일 먼저 반겨줘야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당황스러운 게 먼저야, 반가운 게 먼저야?”

밀리엄은 솔리에게 철저히 밀렸다. 애인에게 제대로 삐친 솔리는 크리세이스를 데리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너네도 참 국보급이다. 서로 얼마나 걱정했는지 빤히 알면서 좋은 말 한 마디 못하냐?”

시아는 잠시 펜을 내려놨다. 그에 맞춰 민이 차를 내왔다. 문 밖에서 옷을 털고 있는 밀리엄 몫까지 탁자 위에 놓았다.

“미스 하갈과 미스 강은 오늘 밤새 회포를 풀겠군요.”

“그러고 싶습니다만,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많아서 지금으로 만족해야합니다.”

“미스 하갈.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몸에 안 좋아요.”

“이게 다 전 캡틴, 당신에게서 배운 겁니다.”

크리세이스의 멋진 한 방이었다. 시아는 브라보를 외치며 손뼉을 쳤다. 민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후방지원 부대가 부쩍 바쁘더라? 희귀현상이야.”

“진격 부대가 빈둥거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던데, 일관성 있어 보기 좋습니다.”

시아는 웃다가 책상 위로 쓰러졌다. 틀린 말 하나 없는 크리세이스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4천왕 중 두 명이 꼼짝없이 당하는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표정 관리가 안 되서 쩔쩔매는 모습이 최고였다.

“보, 보스. 허파에 바람 들어갔어? 왜 그렇게 웃어?”

밀리엄은 시아에게 민망함을 풀었다. 시아는 실컷 웃은 후에 크리세이스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크리세이스. 통쾌한 홈런 두 방에 경의를 표해.”

“과찬이십니다.”

민이나 밀리엄이나 민망함을 떨쳐내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시아는 계속 실실 웃으면서 차를 마셨다. 밀리엄이야 항사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는데, 민의 풀린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타인의 포커페이스를 깨는 거나 깨진 표정을 감상하는 거나, 이처럼 호쾌하고 통쾌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터 브롤은 헛소리 하러 오셨을 테고, 미스 하갈은 무슨 일이죠?”

민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밀리엄은 ‘헛소리’발언에 발끈했지만 솔리가 탁자 아래에서 다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반박 타이밍을 놓쳤다.

“그게…….”

막상 본론을 꺼내려니 아까와 같은 입담이 쏙 들어가 버렸다.

“뭘 부탁하고 싶은데?”

보스는 곧바로 간파했다. 크리세이스가 타인에게 부탁이나 요구를 잘 못하는 성격이기에 시아가 먼저 말을 터 줘야 했다. 재윤이 크리세이스의 성격 중화제로서 비서가 되기도 했지만, 뭐든 혼자 해치우려는 성격 때문에 점점 커지는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했다. 후방지원 부대가 매번 대장 혼자서 일을 처리하게 된 것도 크리세이스의 ‘남에게 맡기지 못하는’ 내성적인 면모 때문이었다.

“일은 내일 오전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멜로즈는 재윤에게 맡기면 됩니다.”

“내 관심사는 네 용건이야.”

크리세이스는 보스와 민과 솔리의 눈치를 한꺼번에 살폈다.

“에버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에버른은 크리세이스의 고향이자 신 하갈의 갓 블러드가 모여 사는 곳이다. 약 170명 중에서 진짜 갓 블러드로서의 능력자는 10명 안팎이다. 크리세이스가 바로 그 능력자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 눈짓을 받은 세 명은 크리세이스가 왜 고향에 가려 하는지 대강 감을 잡았다.

“정보 부대에서 급보를 받았습니다. 크루세이더의 츠뵐프 리터 중 두 명이 에버른을 노리고 있다 합니다. 제 2기사 연 호우, 그리고 솔리가 경고했던 제 11기사 알프레드 파트만이라 들었습니다.”

그녀의 눈매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민 아래서 임무를 수행하던 시절, 그녀가 가장 잔인했던 그 시절의 눈이었다. 지금도 간간히 S프린세스라고 불리지만 제 4천왕이 되고 나서 많이 온화해졌다. 임무 수행 중에도 예전처럼 강한 살기를 비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고향이 최대의 적에게 노려진다니까 전의 포스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크리세이스.”

“네.”

“너, 언제 한 번 살풀이 좀 해라.”

“네?”

시아는 진심으로 측은하게 크리세이스를 쳐다봤다.

“멜로즈를 맡는 바람에 츠뵐프 리터 중 오웰 슈나이더랑 포일러 미마이드를 사적으로 경계해야 하잖아. 근데 거기에 연 호우랑 알프레드 파트만까지 더해지면, 츠뵐프 리터 중 1/3이랑 사적으로 담치는 거라고.”

“연 호우와는 전부터 담 쌓은 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너도 천연기념물이야.”

크리세이스의 문제에 시아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 길드의 간부와 사적으로 악감정을 쌓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길드 관계에서 경계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개인적으로도 경계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속칭, ‘숨겨둔 비밀’이라든지 ‘개인 사업’이라고 한다.

“갓 블러드는 종족의 안녕과 유지를 위해 ‘비밀’이 많다면서요?”

“조상신은 다르지만 연 호우도 갓 블러드라서 저희 ‘비밀’을 금방 알아낼 겁니다. 저희가 약한 종족이 아닌 이상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겠지만, 여기에서 앉아 기다리는 건 못하겠습니다.”

“그 마음 이해해요.”

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누구든 크리세이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 11기사의 목적은 가디안스의 정신적 근간을 흔드는 거라, 쓸데없는 짓이지만, 왜 에버른에 가는지 않겠어. 그런데 제 2기사는 단순히 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것 같지 않단 말야. 매력적인 꿍꿍이라도 있나?”

시아는 의심부터 하고 봤다. 연 호우는 크루세이더에서 보스 사마엘, 제 1기사 세훈 다음의 세력가다. 한참 아래인 제 11기사를 돕기 위해 그가 직접 나서는 건 어딘가 찝찝해 보였다. 그가 움직일 만한 메리트가 있는 일인지, 메리트 자체가 에버른에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크리세이스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시아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절 끌어내려는 겁니다.”

“파트만은 네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갓 블러드의 성역으로 들어가고, 연 호우는 널 떨구기 위해 잠시 장단을 맞춘다. 그냥 대놓고 쳐들어오면 될 걸 뭘 그리 짜증나게 구는 거야. 인생 복잡하게 사는 피곤한 것들.”

제 4천왕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집무실 안에 있는 모든 간부들이 그녀의 수상한 행동거지에 레이더를 발동시켰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그것은 엄연히 그녀의 비밀이고, 만약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다른 루트를 통해 싫어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말할 듯 말 듯 묘한 분위기라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길드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크리세이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시아를 향해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질끈 감은 눈은 눈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언제 길드 밖에서 친 사고 갖고서 해코지 한 적 있어? 길드 안에서만 헛짓 안 하면 그만이야. 인륜배반적인 짓거리만 아니면 밖에서 뭘 하든 다 받아 줄 수 있어. 츠뵐프 리터랑 제대로 한 판 붙든, 온갖 것들을 다 부수든, 적을 대량으로 끌고 도망쳐 오든, 네가 하고 싶은 일만 완수하면 되는 거야. 길드를 떠나서 너와 연 호우가 사적으로 어떤 사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적어도 달갑지 않은 사이일 게 뻔한데, 유쾌하지 않은 걸 들춰서 뭐에 쓰겠어?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두들겨 패. 그리고 죽지 말고 숨 붙은 상태로 돌아와.”

“Ta, für Sie, meine Boß."

크리세이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시아는, 연상의 여인이 연하의 보스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위엄을 유지해야 하는 보스가 연상의 부하를 엄마처럼 달래줄 수 없지 않겠는가. 거리낌 없이 맘껏 싸울 수 있게 등을 밀어주는 것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 도망치는 건 용납 못해.”

“이 크리세이스 하갈. 그런 수치스러운 짓은 스스로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아는 편히 마음 놓는 크리세이스의 얼굴을 보고 나서 다시 펜을 들었다. 서류 업무는 아무리 해도해도 끝나지 않았다. 한 무더기를 해치우면 한 무더기가 새로 들어오고, 제 2천왕 쪽 일을 끝내면 제 4천왕 쪽 일이 들어왔다. 길드 규모 확장을 계획하면서 자연스레 업무량이 늘었기 때문에 전보다 바빠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눈으로는 읽고 손으로는 쓰면서 입과 귀로는 다음 대화자를 상대했다. 짧게 말해, 뇌가 다각적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밀리엄. 솔리 일은 솔리한테 듣고, 얼른 수룡왕 건이나 정리해서 넘겨.”

매정한 내치기였다. 밀리엄은 급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솔리가 탁자 아래에서 발로 자신의 다리를 세게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보스에게 칭얼거릴 수 없었다.

수룡왕과의 충돌은, 가디안스의 입장에서 아주 지극히 매우 너무 귀찮은 잡무였다. 크림슨 카마엘이 가입하기 전에도 몇 차례 작은 충돌이 있었는데, 그 후에는 크림슨 카마엘을 핑계 삼아 수룡왕이 대놓고 가디안스를 자극했다. 크림슨 카마엘을 데리고 있고, 상당히 호전적인 길드원으로 골라 구성된 진격 부대는 기꺼이 수룡왕의 시비를 맞받아쳤다. 그런데 호전적인 그들마저 수룡왕과의 싸움에 질려버렸다. 수룡왕이 ‘왕’의 자리가 무한한 사치로 보일 만큼 어처구니없는 고집을 피워서, 진격 부대 입장에서는 끝나지 않을 성가신 잡무처럼 생각됐다.

보다 못한 용왕회에서 수룡왕에 대한 소환 재판이 이루어졌다. 수룡왕의 파렴치한 과거가 모두 드러났다. 그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왕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룡에게 있어 가장 수치스런 처벌인 ‘무기한 감금’이 내려졌다. 수룡왕은 길드 가디안스를 들먹이며, 그들이 감히 용왕의 화를 초래한 것이라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그 변호는 무용지물이었다. 용왕들은 수룡왕과 가디안스가 어떤 연유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다. 용왕회에서 수룡왕의 발언은 전부 쇠귀에 경 읽기가 됐다.

왕의 지위가 강제 박탈되고, 그의 레어에 무기한 감금될 날이 결정됐을 때, 수룡왕이 임시 감시 처소에서 탈출했다.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준 길드 가디안스에게 진정한 용왕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때 마침, 적룡왕의 아들들과 은룡왕의 애제자가 모두 아지트에 있었다. 디레스 엑서스엘, 플릿 엑서스엘, 엘더 피스크. 길드 가디안스의 대표 드래곤 순종 3인방이 아직 성룡급이건만, 훌륭하게 고룡급 드래곤을 제압했다. 이성을 잃고 자신의 야욕만을 위해 움직이는 드래곤은 그저 거대한 파충류 괴물에 불과하다. 가디안스의 드래곤 순종들은 드래곤의 고고한 긍지를 지켰다.

밀리엄은 그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놓치지 않고 전부 관람했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자로 발탁됐다. 그는 그저 오랜만에 스승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라 관전한 것인데 어쩌다보니 보고서를 쓰게 돼버렸다. 차라리 자신도 플러스(실버드래곤)로 변해서 참전할 걸 하고 후회했다.

“보스. 왜 그 때 보스가 안 나섰어? 로키의 보쿨이 있으니까 금방 끝냈을 거 아냐.”

“바보. 긍지 싸움엔 끼어드는 거 아니야.”

“간만에 드래곤끼리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잖아요. 다들 흥미진진한 장면에 넋 놓고 있던걸요.”

분명 드래곤끼리의 전투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 해결 속도나 상관하는 밀리엄이나, 긍지를 들먹이는 시아나,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찬양하는 민이나, 사건의 중대함에는 일정 관심이 없었다. 길드에 쳐들어온 수룡왕이야 누가 막든 막았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크리시가 나섰어도 금방 끝났을걸? 갓 블러드는 드래곤 대항 마법을 쓸 수 있잖아.”

솔리는 크리세이스를 향해 활짝 웃었다. 오리지널이 하프 운디네라서 물의 정령의 청순한 미소를 연출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 전사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뭐, 밀리엄이 그녀의 이 미소에 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도 그는 그녀의 미소를 보자마자 헤벌쭉하고 얼굴이 풀렸다.

“난 아직 18살이야. 쓸 줄이야 알지만 위력이 약해. 고룡급 드래곤은 한참 무리야.”

“겸손하네. 플러스는 드래곤을 잡아먹는 가루다면서.”

시아의 정곡에 크리세이스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다른 간부들은 ‘아’하며 뒤늦은 반응을 보였다.

“처음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암살 부대에 배치됐었지? 가루다의 힘은 전혀 쓰지 않고서 갓 블러드의 능력만으로 성룡급 아이언 드래곤을 초박살 낸 사건 덕분이지, 아마. 그 후 복수하러 온 다른 성룡급 아이언 드래곤은 가루다의 힘만으로, 마법 없이 순전히 힘으로 날려버렸고. 크리세이스 하갈의 입단 신고식만큼 화려한 신고식은 아직까지도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과거의 그 날, 그 사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갓 블러드는 신의 피가 흐를 뿐 인간이라고 비꼬던 길드원들이 단번에 크리세이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경외하게 된 에피소드. 길드 가디안스의 역사에 기록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인격적으로 불량하지만 실력은 간부로써(당시엔 4천왕 제도가 없었다.) 손색이 없다고 증명됐다.

“이번 일 때문에 신참들이 다른 간부들의 실력도 알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민이 시아에게 바람을 넣었다. 순간적으로 시아의 눈빛이 달라졌고 간부들이 긴장했다.

“크리세이스.”

“네?”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에버른 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와. 여기 일도 후다닥 끝낼 테니까.”

“잠-깐, 보스.”

“너도 빨리빨리 해치우고 자기 단련하면서 준비해.”

“보- 스-.”

시아는 밀리엄이 다른 소리 못하게 미리 박아버렸다. 의견 한 번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굳이 따지자면 제 1천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시아가 심히 속결해 버린 것이 간부들 입장에서는 미스였다. 민이 발언한 직후 보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과감하게 반격했어야 했다.

“공평하게, 난 심판만 할 거야.”

“보스께서 참가하시면 게임 끝이에요.”

솔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시아의 돌발 이벤트에 순순히 참가하겠다는 뜻이다. 그녀가 참가한다는데 밀리엄이 발을 뺄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 2천왕이나 두 고문께서 반대하실 것 같습니다만.”

“뭘 걱정하고 왜 반대할지 알고 있어. 넌 그냥 걱정 말고 에버른에 다녀 와.”

크리세이스는 제 1천왕의 눈치를 살폈다. 민은 속 모를 미소로 일관했다. 보스와 그는 이미 한통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