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각성
평범한 10대 소녀인 척 학교에 다니랴, 손꼽히는 최강 길드의 보스로서 부하들을 통솔하랴, 악마계 대공작 후보이자 로키의 보물 소지자로서 위엄을 지키랴, 진 시아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유능한 비서가 학교와 아지트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덕분에 쓸데없이 지치는 일은 없었다.
시아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신 휴는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는 슈튀크 플루를 거의 매일 볼 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시아와 민에게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시아의 편이 되겠다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신용할 수 없었다. 펜타곤이 인간 순종과 거부감 없이 잘 지내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지만, 고작 하나의 생명체의 아군이 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길드 가디안스에 돌아온 기존 길드원이며, 새로 들어온 길드원이며, 모두 지금의 길드에 익숙해지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가급적 빨리 적응하고, 빠른 시일 내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자신들을 거두어 준 보스에 대한 보은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개별 임무에 매진하고 있다.
[벌컥!]
“보스, 솔리가 없어졌어!”
[빠악!]
제 3 천왕 밀리엄 브롤이 보스의 집무실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런데 노크 한 번 없이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 것 등의 명목으로, 솔리의 주먹이 그의 머리를 고속으로 세게 내리 꽂혔다.
“거기 있는 아가씨는 솔리의 껍데기인가?”
“어헝-. 솔리야.”
시아가 솔리의 존재를 지적하기 무섭게, 밀리엄이 솔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솔리는 팔을 뻗기 편할 만큼 그를 밀치고서, 왼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오른손은 무얼 했느냐고? 밀리엄의 머리와 어깨에 돋아 있는 버섯을 우악스럽게 잡아 뜯었다. 줄기가 손가락 굵기 만한 것뿐이라서 뜯어내기 쉬웠다.
“이왕 하는 거 살살해줘. 살가죽이 땡겨서 아파.”
“보스 앞에서 추태 부리지 마. 그리고 난 네 벌초 담당이 아니야.”
“우웅- 하지만.”
“보스, 지금 저기압이셔.”
솔리는 밀리엄의 목을 바짝 끌어당겨 그의 귀에 직접 속삭였다. 밀리엄은 그때서야 시아와 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봤다. 책상 위에 몇 개의 서류를 어지럽게 흩어 놓은 것도 별일이거니와, 주변 아랑곳하지 않고 살기를 드러내는 것도 평소에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것도 주의하지 않고 실컷 본능대로 행동했다.
“먼저 와 있었군.”
나머지 4천왕, 디레스 엑서스엘과 크리세이스 하갈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밀리엄이 솔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사이에, 시아의 심부름꾼이 흩어져 있는 4천왕에게 소집 명령을 전달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밀리엄이 솔리를 찾으러 시아의 집무실을 찾아온 것이 타이밍 좋은 우연이 됐다.
“무슨 일이야?”
“어이, 애인이 돌아온 후로 더 해이해진 거 아냐?”
디레스가 주먹을 쥐고 손등으로 밀리엄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그래도 밀리엄이 자유분방함을 넘어, 방약무인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라서, 그의 무관심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에 솔리가 밀리엄의 옆에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밀리엄을 신경 스는 이들과 대조적으로, 크리세이스는 그를 깨끗하게 무시하고 시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본디 그녀가 이끄는 후방지원 부대는 화타 중심의 연구진을 빼면 피둥피둥 노는 녀석들뿐이다. 그런데 최근 정보 부대가 일손이 부족해서 후방 지원 부대의 대부분이 정보 수집 임무에 배치됐다. 덕분에 정보 부대 못지않은 정보력을 갖추게 됐다.
“길드 에덴의 아먼드 지부가 하룻밤 사이에 시체 산과 피 바다로 변했다고 합니다. 여기도 최근에 생긴, 순종으로만 구성된 지부입니다.”
“이번에도 ‘에덴 부수기’군.”
포커페이스가 벗겨진 시아의 얼굴에 핏발이 섰다. 민의 미간 주름도 깊어졌다. 길드 가디안스의 일이 늘어난 건 아니지만, 경계대상의 활동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신경이 곤두 설 수밖에 없었다.
‘에덴 부수기’ -이것은 길드 크루세이더가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 사업 이후에 내건 두 번째 대형 사업이었다. 길드 에덴의 ‘키메라 몰살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겉모양새만 보면, 가디안스 입장에서는 잘 된 일 아니냐며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에덴 부수기’에 사용되는 병기를 알고 나면 이것이 은근 골치 아픈 사건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먼드 지부에 파견된 ‘좀비’는 단 한 개체였습니다.”
루시퍼가 귀띔한 적이 있다. 길드 크루세이더가 좀비를 부리는 탈리스만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이다. 시아는, 고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금기술에 손대는 것이기 때문에 대자연만이 그들을 재판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들은 그 자리에서 새하얗게 잊었다. 가디안스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안이하게 넘겨버렸다.
“좀…비? 좀비? ……. 보- 스-! 설마 ‘대자연의 군사’가 나타난 거야?”
“이 형광등아! 몇 건째인데 지금 그걸 묻는 거야?”
[푸다다다다다닥]
책상 위에 있던 서류가 전부 밀리엄의 얼굴에 정면으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책상 대신 바닥이 너저분해졌다.
“길드 크루세이더에서 만든 ‘가짜 군사’에요. 미스터 브롤.”
민이 차근차근 서류를 주웠고 밀리엄과 솔리가 그것을 도왔다. 밀리엄은 그 사이에 눈에 보인 몇 줄의 문장들을 빠르게 읽었다. 좀비가 길드 에덴의 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소수 정예를 고집하던 에덴이 갑자기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마냥 대규모로 커지면, 누구든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어. 크루세이더가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건 상당히 고마운 일인데 말이지, 이건 아니야.”
시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비아냥거렸다. 다들, 시아의 비위를 절대 거스르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까딱 잘못했다간, 길드 가디안스에게 딱 하나밖에 없는 이 아지트가, 누구도 아닌 보스의 손에 엉망이 될 지도 모른다.
“보스가 저렇게 저기압인 건, 크루세이더에서 만든 ‘가짜 군사’가 여타 ‘가짜 군사’와 다르기 때문이지?”
“형광등 주제에 순간 눈치가 좋군.”
“윽.”
밀리엄은 솔리에게 물었지만, 시아가 대신 대답을 푹 찔러 넣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겁먹은 밀리엄이 재빠르게 피했다. 천하의 방약무인에게도 천적은 있음이렷다.
“미스터 브롤. 이제까지 만들어진 ‘가짜 군사’중에서 가장 높은 근사율(진짜와 가까운 정도)이 얼만지 아세요?”
“보통 5% 정도고……. 최고치는 아마 파우스트가 달성한 20%일걸? 획기적인 근사율이라고 불리잖아.”
“크루세이더의 ‘가짜 군사’는 80%에요.”
“80? 장난해? 8%도 아니고 뒤에 0이 붙어? 말도 안 돼.”
밀리엄은 믿을 수 없는 수치에 경악했다. 이미 알고 있던 자들도 변함없는 황당한 수치 때문에 아연실색이었다.
“우, 우리의 수석 연구원께서는 어, 어떤…… 반응을 보였어?”
화타와 친한 시아나 직속상관인 크리세이스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가에 걸쳐진 그늘이 화타의 가볍지 않은 폭주를 가리켰다. 지금쯤 연구실 수리가 한창일 것이다.
“크루세이더에서 만든 좀비 제어용 탈리스만은 고대 때부터 이어진 좀비 연구를 그대로 따른 거야. 독자적인 발명품이 아니야.”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라는 피의 계약법이군. 파우스트가 고안한 연금술 비기 중 비기. 크……. 그걸로 80%까지 달성한 거야?”
밀리엄은 민과 디레스의 도움으로 현 사태를 어렴풋이 파악했다. 그러나 ‘현 사태’라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어이가 없어서 뒷머리를 거칠게 터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체를 파고들기 전에 길드 크루세이더가 생각 이상의 거물이라며 감탄부터 했다.
“좀비 제작은 관습으로 내려오는 금기가 아니라 대자연이 정한 금기라서 화타에게 모의실험조차 시킬 수 없어. 현상파악으로 근사율을 계산하는 것이 고작이라, 사건이 늘어날수록 배알이 꼬여.”
“강조하지 마, 보스. 무서워.”
“사실인 걸 어쩌라고.”
시아의 저기압 상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화타처럼 고삐를 슬쩍 풀고 한바탕하면 속이 좀 시원해지겠지만, 다시 고삐를 쥐고 재갈까지 확실하게 찰 자신이 없었다. 고작 남작이 대공작 후보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구니, 후작 어르신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길드를 책임지는 보스로서, 길드 간 암묵적 평화조약을 지키고 아랫것들의 평화를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참아야 했다. 진 시아가 누구던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보스다. 어떤 상황에서건 일의 우선순위는 바르게 판단했다. 두 개의 거대 세력 간의 마찰로 생긴 불똥으로 품 안의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만발의 준비를 할 것. 이것이 현재 급선무였다.
“에덴의 물상식한 짓 때문에 크루세이더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더니, 고스란히 갚는군. 그것도 아주 크루세이더답게.”
디레스가 짧고 굵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를 조사할 때보다 더 신경 쓰여. 아무래도 위험성이 극히 높으니까 별 수 없나?”
“제 3자 입장이라서 그런 거야. 어느새 우리가 구경꾼 쪽으로 벗어났잖아. 자세하게 파고들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를 견제하려니까 초점을 잃고 갈팡질팡 하는 거야.”
보스는 제 2천왕을 따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도 표정은 여전히 무서웠다. 대화 중에도 계속 앞으로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생각은 넘쳐나는데 정리가 안 되서 표정이 험악해진 것이었다. 유능한 비서, 류 민도 같이 고민 삼매경에 빠져 있어서 그녀의 저기압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다.
“에덴이나 크루세이더나 각자가 가진 무기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 전체가 혼란스러워 지는 거 아니야? 지금도 파급 효과가 꽤 커 보이는데 말이지.”
“나랑 민이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야.”
“다들 입 다물고 있던 걸 눈치 없이 까내면 어떡해?”
솔리가 팔꿈치로 밀리엄의 옆구리를 찔렀다. 밀리엄은 미간이 좁아진 보스와 자신을 흘겨보는 솔리 사이에서 도망갈 구석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난처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평소처럼 가볍게 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혓바닥이 시시각각으로 달싹거렸다. 솔리에게 얼마만큼 핀잔을 듣든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길드만 생각한다면 크루세이더의 좀비는 큰 위협거리가 못 됩니다. 영역 내의 순종들을 수호하는 것도 놓칠 수 없지만, 어차피 그동안 해온 일입니다. 사태가 잠잠해 질 때까지 키메라인 길드원이 앞장서면 됩니다.”
크리세이스의 발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디레스가 강하게 동조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주제에 영역 외의 불쌍한 자들까지 걱정하는 건 과한 욕심이야. 그런 의미에서 보스. 가짜 군사 문제로 끙끙대는 건 더 이상 하지 말자고.” “최소한의 대책은 필요해. 길드원 중에 너처럼 순종인 녀석들도 있고, 우리 영역 내에 있는 자들이 대부분 순종이니까.”
좀비, 크루세이더에서 만들어 조종하는 ‘가짜 군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중에, 순종이니 키메라이니 종을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자연의 뜻을 거스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좀비라 할지라도, ‘대자연의 군사’가 가진 본성을 그들도 고스란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한 번 사그라지면 다신 피어오르지 않는다. 한 번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대 규칙으로 보이는 것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드래곤 리치와 대자연의 군사다. 드래곤 리치는, 드래곤이 죽은 후 생전에 갖고 있던 지식이 고스란히 살아난 것으로서, 개별 종족으로 분류된 존재다. 대자연이 인식하고 있는 엄연한 종족이기 때문에, 죽은 육체에서 되살아난 존재라고 해도 ‘좀비’라고 부를 수 없다.
진짜 ‘좀비’는 ‘대자연의 군사’로서, 대자연이 힘을 부여하면서 재생을 허락한 ‘사체’다. 생전의 지식일랑 전혀 없이, 대자연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체 인형이 바로 ‘좀비’이며, 생전에 비해 생명력이며 육신의 능력이 60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군사’다. 대자연의 의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재생의 보상으로 받은 강력한 힘을 오로지 대자연을 위해 쓰는 고로, ‘대자연의 군사’라는 거창한 칭호를 달게 됐다. 이성, 지성, 감성, 본성이 없는 대신 파괴력만 무지막지 하게 가진 시체 인형이라서, 대자연을 흉내 내려는 자들이 당연히 ‘시체 회생’을 탐냈다. 좀비 제조를 대자연이 직접 금했다지만, 매력적인 군사력을 놓칠 수 없는 법이다.
‘대자연의 군사’인 만큼 피조물들이 그 제조를 흉내 내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고대 때부터 이어진 연구로 수 천 가지 방법이 출몰했다 사라지고, 셀 수 없는 생명이 의미 없이 두서없는 연구가 난무하고 온갖 학살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 근사율은 5%가 고작이다. 길드 크루세이더가 무슨 수로 80%를 달성했는지는 몰라도, 파우스트의 20% 달성 이래로 10% 이상을 달성한 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좀비는 여전히 ‘대자연의 군사’고, ‘가짜 군사’는 가짜에 걸맞게 쉽게 부서졌다. ‘대자연의 군사’가 출몰하는 것은 재앙이지만, ‘가짜 군사’가 어기적거리는 것은 사건에 불과했다.
두 종류의 좀비에게는 재미있는 제한이 걸린다. 키메라의 사체로는 절대 좀비를 만들 수 없으며, 좀비는 키메라를 인식할 수 없다. 이것이, 좀비를 언급 할 때, 순종이니 키메라이니 종이 언급되는 이유다. 약간의 설명을 붙이자면, 종이 뒤섞인 키메라를 정당한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은 대자연이 좀비를 만들고, 키메라는 세포 하나하나가 대자연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종에게는 아주 위협적인 좀비가, 키메라에게는 부숴야 할 사체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키메라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좀비는 키메라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격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좀비는 키메라의 적수가 못 된다. ‘대자연의 군사’라는 칭호도 키메라 앞에서는 허울 좋은 단어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키메라는 좀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길드 크루세이더가 키메라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순종을 억지로 키메라로 만들고 광기에 취한 군대를 짰다. 그것은 순종을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그런데 좀비 제어 탈리스만 제작에 성공했다. 길드 에덴처럼 학살을 할 생각인가-.”
낯익은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들렸다. 그 목소리를 고성방가나 공사장의 소음보다 훨씬 더 싫어하는 민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볼펜을 곧게 던졌다. 서류 결재를 위해 오른손에 준비 중이던 것이었기 때문에 펜촉이 드러나 있었다.
“극진한 환영에 황송하오이다.”
루시퍼가 소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볼펜은 방어막에 가로 막혀 펜촉이 구부러졌다.
“사마엘 녀석이 학살 같은 한심한 짓을 할 것 같아?”
“역시 바르베리트 후작 나으리. 하지만 츠뵐프 리터는 학상쟁이들이라고.”
갑자기 출현한 악마 순종은 길드원인 마냥 자연스럽게 굴었다. 민을 포함해서 4천왕 전부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데도, 그런 마이너스 기류를 즐기는 종족이 다름 아닌 악마인지라, 어떤 구박을 해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 들지만 않는다면야 주변 눈치를 볼 것 없이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루시퍼. 길드 간의 일에 제 3자가 끼어드는 건 아주 큰 실례야. 너랑 놀아줄 여유 없으니까 얼른…….”
“왕의 명령이야.”
루시퍼가 크루세이더에서 만든 탈리스만을 오물 취급하는 마냥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고는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탈리스만에 쏠렸을 무렵에 탁자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정신계 종족이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용납되지 않잖아. 클러치 사마엘이 키메라가 됐어도 한 쪽은 분명 작위를 가진 악마야. 가짜 군사를 만들어 대자연을 농락한 벌을 받아야 해.”
“그래서 크루세이더의 만행을 악마계에서 저지하겠다?”
“그래. 그러니까 너희는 더 이상 이 건에 관여하지 마.”
“유- 감이야. 왕과 대판사가 이토록 머리가 나쁠 줄은 몰랐어.”
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루시퍼를 흘겨봤다. 본의 아니게 대화에서 배제된 4천왕과 솔리는, 허리를 꼿꼿이 펴 자세를 바로 잡은 후에 목례를 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보스의 존엄함 앞에서 지키는 예의였다. 그렇다. 지금 시아는 악마계의 시아 바르베리트-진이 아니라 길드 가디안스의 보스로서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드 가디안스의 길드원은 악마왕의 백성이 아니야. 그들의 수장은 나, 진 시아이며 한 종족에 얽매이지 않는 키메라야. 잘난 정신계 종족을 통솔하는 왕이라도, 제 백성이 아닌 자들을 간섭할 수 없는 법. 대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라지만 대자연의 이치대로 행동하는 우리가 그 자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불쾌하다. 꺼져라.”
그녀의 기백이 실로 압도적이었다. 루시퍼는 실컷 잘난 척하다가 단번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겨우 18살짜리 햇병아리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하고 자존심을 구박할 여유도 없었다. 상대가 진 시아로 결정됐을 때부터 각오했어야 하는데, 친분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무방비하게 굴다가 된통 당해버렸다.
“보스! 보스! 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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