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13 꼬마 성수가 타겟인 이유

★은하수★ 2008. 5. 7. 13:09
 

 D-13 꼬마 성수가 타겟인 이유


 시궁창에 쳐 박아 놔도 시원치 않을 것들! 감히 지상계에서 기습을 쳐? 바로 결계를 쳐서 성수의 모습과 싸움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엄청 혼란스러워졌을 거다. 이제 15살 현무 혼자서 400살은 족히 된 비룡과 난조를 상대해야 한다니 기막힐 기자다. 둘이 3급 성수면 좀 괜찮겠지만 비룡과 난조는…… 1급에 가까운 2급 성수란 말이지. 수천파에서는 자룡이 거두지 못한 내 목숨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작 내고 싶은가 보다. 어차피 곧 있으면 알아서 죽을 텐데 기다릴 줄 모른다.

 [쿠과광!]

 [쿠구구구]

 비룡의 공격에 땅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옆으로 피한 덕에 난 무사하지만 산 중간에 큰 구덩이가 생겨서 마음이 아프다.

 “기습은 그렇다 쳐도 타 성수의 영지를 훼손하다니 매너가 꽝이잖아.”

 [부앙]

 육탄전에선 말이 필요 없다고, 대꾸도 안 해? 그리고 치사하게 뒤에서 날개로 내동댕이치려 하기까지. 상대가 싸움에 아주 노련한 2인(2수…)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당해 버릴지도 모른다.

 [콰앙!]

 싸움에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느끼고, 눈치를 잘 살펴서 가장 적절한 때에 공격 혹은 방어를 해야 한다. 지금도 나와 비룡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동시에 공격을 했다. 허공에서 두 공격이 맞부딪혀 폭발하고 그 파장이 주변으로 퍼졌다. …이번엔 또 난조군. 벽화탄(碧火彈)이라…….

 [콰광!]

 상대적으로 무지무지 조그만 내 몸뚱이가 저 벽화탄을 직격으로 맞았더라면 …혹시 ‘령’까지 소멸되지 않았을까? 성수를 노리는 성수의 공격은 령이든 육체든 다 치명타를 입히는 터라 빗겨 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성가신 꼬맹이……. 벽화탄!”

 [콰광!]

 뭐, 내가 ‘엄청난’ 꼬맹이긴 하나 급을 따질 수 없는 사성수 중 수장 현무로서 저들에게 당할 순 없지.

 “환몽수수경(幻夢數水鏡).”

 한 녀석이라도 제대로 발을 묶어 놓으려면 역시…… 힘 아끼지 말고 제 26주술을 써야겠지. ……난조는 영특한 성수라는데 환몽수수경에 스스로 걸려들 줄이야. 솔직히, 비룡이 걸릴 걸 생각하고 동선의 중간에 암문(暗文 : 일종의 지뢰 같은 것으로 그 위를 지나가기만 해도 미리 걸려 있던 주술이 발동한다.)을 쳐 논건데 왜 난조가 걸린 건지…. 상관없지.

 [쿠과광!]

 [쿠구구구]

 평범한 기포도 사용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진도8에 육박하는 지진을 낼 수 있구나. 무서운 놈.

 “제이산우(除夷酸雨).”

 [쏴!]

 구름도 모으지 않고 이런 멋있는 산화비를 뿌릴 수 있어? 흐응. 꽤 괜찮은 주술이네. 그런데 이 정도의 산성으론 내 보호막을 부식시킬 순 없단 말이지. 게다가 감히 내 앞에서 ‘물’을 사용하다니 너무 물렀어.

 “역류(逆流), 진류(進流).”

 낮은 톤의 조용한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긴장감을 준다. 본인에게는 충분한 위엄을 안겨준다. 한 순간이라도 그 분위기에 밀리면 가차 없이 당해버린다. 그것도 제 주술에 제가 당하는 아주 불상한 처지가 되어서 말이다.

 [치익]

 “크읏.”

 막을 치는 타이밍이 좀 늦어서 약간은 몸에 직접 닿았네. 크. 따갑겠다.

 [팟, 챙!]

 이렇게 빨리 환몽수수경에서 빠져나올 줄 몰랐는데……. 역시 힘이 부치는군. 타고난 핏줄도 나이가 어리면 쓸 없단 말이지. 아니, 쓸모없는 게 아니라 조금 힘든 거뿐이야. 에, 내가 좀 당황했나 보군.

 “회염중속광(回炎中速光).”

 “투사수침격.”

 [치이익]

 이런… 다 못 막았다!

 [쾅!]

 다행히 보호 주술에서 상쇄됐다. 그도 못했으면 뼈도 못 추렸을 거다. 앞으론 ‘해현사진격(海賢蛇進擊)’정도를 써야할 지도 모른다. 휴……. 아차.

 [콰앙!]

 다른데 정신을 팔다니 내가 미쳤지. 가딱하면 저 암벽처럼 박살날 뻔 했잖아. 생사가 달린 판에 방어만 하고 있어봤자 끝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치고 나가야 끝낼 수 있을… 빌어먹을!

 “아무리 현무라도 꼬맹이는 꼬맹이야.”

 영박(靈縛)을 쓸 줄이야. 이거 웬만해선 풀기 힘든데. 용족인 비룡의 짓이군. 비룡이든 난조든, 둘이 같이 하든 날 말끔히 제거하려면 주술 60번대 이상……까진 할 필요 없고 30번 대면 될 거다. 수련이 덜 된 어린 성수니까.

 “진뇌구(眞雷球).”

 [치지지지직]

 “끄악!”

 난조의 날개에 저렇게 확실하게 구멍을 뚫는 시원스런 공격. 이 기는 아빠다! 굿 타이밍! 아주아주 든든한 응원군이 오셨어. 아무튼 명은 짧아도 질기게 목숨 부지하는 운세란 말이지. 조금은 긴장을 놔도 괜찮은 걸까? 어이, 이봐. 지금 영박을 풀어야 할 거 아니야? 영박 때문에 근육도 괜시리 굳어가서 육체의 고통이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후.”

 일단은 평정심을 만들고… 기를 혈을 중심으로 활성화시킨 다음에 영에 채워져 있는 사슬을 조금식 천천히 풀어내면…… 풀렸다.

 “제법이네. 영박도 혼자 풀고.”

 “벌서 끝낸 거야? 역시 몇 백 년 묵은 성수는 확실히 다르구나.”

 난조에게 한방 먹인 걸로 죄다 후퇴시키다니 대단하다. 청룡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구나.

 “비룡은 내 얼굴만 봐도 기겁하는 걸. 저번에 천계 네 본성에서도 나한테 몇 대 맞더니 부지런히 도망쳤잖아.”

 아저씨. 그건 당연하잖아. 용족에서 황룡 바로 다음 서열인 걸. 까짓 비룡이 어떻게 청룡한테 대들 수 있겠어. 아무리 파가 달라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숨길 수 없다고.

 “으… 어지러워. 몸 상태도 영 아니다.”

 “성이 완전 엉망이지만 그래도 저기서 쉬어야겠지?”

 크윽. 수호령들이 열심히 경계를 쳤는데도 저만큼이나 부서진 거야? 어쩔 수 없지. 성수의 공격을 수호령이 막아봤자 어디까지 막겠어. 내가 능력이 딸려서 성가지 지키진 못해. 그걸 탓할 수밖에 없지.

 “싱겁게 끝났지?”

 “응?”

 “내가 짠하고 등장하니까 1초 만에 끝나버렸잖아.”

 “아니…… 내가 이 지경이고 성이 이 지경이고 영지가 이 지경인데 싱겁게 끝난 건 아니지.”

 이것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내가 좀 회복이 되면 내 힘으로 조금씩 복구할 텐데도 과연 그럴 여유가 내게 허락될까? 대부분을 수호령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우, 여기저기가 욱신거려.

 “에? 정아. 그럴 땐 ‘아빠가 히로인이야’라고 해야 하는 거야.”

 “‘해 줘야지’가 아니라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어?”

 “딸내미가 너무 정나미 없어.”

 “그걸 언어유희라고 한 거면 한 대 먹일 거야.”

 “엄만 아빠의 모든 걸 사랑해 줬는데 딸은 뭐든 무정해.”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는다고 누가 위로해 줘? 가뜩이나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도와준 걸 그렇게 생색내면서 장난을 쳐야겠어? …그래, 아빠잖아. 아빠니까 참아야지. 내가 너그러이 넘어가야지.

 “정님!”

 불쌍할 정도로  슬픈 얼굴의 소유자가 또 있었네. 수호령 중에서 자가 제일 정이 많고 감정 표현도 분명해서 ‘인간’처럼 보일 때가 간혹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가장 편하게 대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 뭐, 그래도 수호령이라서 스스로 선을 끊으니까 ‘도가 지나치다’이런 건 없다.

 “너흰 어디 다친 데 없어?”

 “위태위태한 정님 보다야 훨씬 낫죠.”

 어이, 주.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어?

 “주. 상당히 잔인하군.”

 역시 주는 아빠에게 약하구나. 바로 꼬리 내리고 천 뒤로 숨어 버리는 걸 보면. 아니지, 다른 성수한테도 다 그러지. 저거, 본 성격하곤 참 모순된단 말이야.

 “있지, 주. 천은 너보다 어린데 그 뒤에 숨으면 이상해.”

 잔인한 건 자도 만만치 않아. 이건 확인 사살에 맞먹는 공격이란 말이지. 봐. 주가 당황스러워하잖아.

 “혹시……. 아, 주. 난 네 맘을 받을 수 없어. 아내도 있었고 지금은 어엿한 딸이 있는걸.”

 “아, 아니에요.”

 [뻑!]

 주의 목소리와 동시에 아빠의 배가 내 주먹에 맞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생각 없는 인간이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이 없어!

 “자, 자, 장난이야.”

 “그런 저질 장난은 딴 데 가서 해!”

 소리 지르니까 두통이 더 심해지잖아. 누군가 내게 너희 아버지는 어떤 분이니라고 물어보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정신연령이 유아 수준이고, 행동은 유치원생과 맞먹는 겉무늬만 어른인 분이에요 라고 당당하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저 미소 지으며, 아니, 그저 평범하게 무뚝뚝한 얼굴로 그런 건 묻지 마세요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럴 거다.

 “정님. 안색이 안 좋으신데 들어가서 쉬시죠.”

 “응. 그래야겠어. 천. 미안하지만 청룡 지님을 해무사 문 바로 앞가지만 배웅해 드려.”

 “딸…… 잔인해. 아빠가 오늘 도와줬는데. …아, 째려보지 마.”

 물론 오늘 도와준 건 고마운데 끝가지 쿨- 하게 나가줬으면 좀 좋잖아. 아빠지만, 친 아빠지만 이건 좀 피곤하다고.

 “그래, 심하게 아프기 전에 쉬어야지.”

 지금처럼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 주면 아빠답잖아. 어렸을 땐 곧 잘 이랬으면서 왜 내가 커갈수록 아빠는 어려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아빠는 그 때의 아빠란 말이야. 지금 같은 모습이라고.

 “다음엔…… 좀 더 빨리 와.”

 “응?”

 “내가 힘이 달려.”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린 애다. 보통 15살, 이제 곧 16살이 될 아이들은 어른 행세를 잘 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간섭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어려울 땐 어른들이 도와주기를 기다린다, 바란다. 그래서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가끔 어른 행세의 자기 덫에 걸려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건 그 나이 때를 지낸 어른이다. 그 때는 친구가 좋다지만 그래도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 대가 지나서 노련한 어른의 손이 적격이다. 그래서 15, 16세 아이들이 변덕이 심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