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한달간의귀신성불록(완)

한 달 간의 귀신성불록 : D-9 닭이 우는 이유

★은하수★ 2008. 5. 7. 13:11
 

 D-9 닭이 우는 이유


 난 왜 항상 도움만 받는 걸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 치면 결과는 항상 내가 도움 받는 쪽이 된다. 부끄럽다. 자립하고 싶으면서 막상 일이 닥치면 누군가 날 도와주길 바라고 그럴 거라 믿는다. 염치없다. 이런 유치한 사고에서 독립할 때도 됐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려서, 현무가 된지 얼마 안 돼서라는 틀에 나 자신을 껴 맞추고 싶지 않다.

 황룡이 날 구해주고 나서 내 성을 복구해줬다. 내가 했어야 할 일들을 다 왕이 해줬다. 약하다는 사실이 분할 정도로 내 가슴에 각인됐다. 쓸모없는 녀석. 그저 빈자리를 채우는 장식품에 불과하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왕을 돕겠다고 까불다니. 뭐가 왕의 측근이야, 뭐가 사성수의 수장이야. 그저 ‘현무’라는 이름 밖에 없는 일회용 장기말이면서. 총알받이조차 못 할, 머릿수 채우기 위한 허수아비면서.

 “생혼귀령멸원진이었다며?”

 겨우 주먹만한 파란 병아리가 내 왼쪽 어깨에 무단으로 앉았다. 언제 성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천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내 명령을 어겼군.

 “이 방을 무지 좋아하는 구나. 며칠 전에 내가 왔을 때도 이 방에 있었잖아. 현무검이 봉인돼 있었던 방이라고 했던가?”

 이 방은 제 2성의 북쪽 끝에 있는 방이다. 그러면서 제일 중심에 있기도 하다. 제 2성의 영지 중에서 제일 중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근방의 영력의 흐름이 이 곳에 모이면서 이 곳에서 시작한다. 현무검이 여기에 봉인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이유 때문에 이 방을 좋아한다면 이유가 너무 빈약하다. 내가 상객하도 웃기지도 않은 것이다. 현무검이 봉인돼 있었던 방이라고 제일 좋아하고 매일 여기 박혀있는 건 유치한 짓이다.

 “가라.”

 “용족 넷이 붙어서 치료했는데 아직까지 상태 안 좋을 리 없잖아.”

 “용족…… 넷?”

 왕이 날 구해주고 몇 가지 뒷정리만 한 다음에 돌아갔는데 무슨 소리야? 아니, 그 후에도 성 안으로 들어온 성수가 없었어. 설마 누가 들어오는지를 못 알아챌 정도로 약한 상태였던 건가?

 “황룡이랑 청룡이랑 그 아래 흑룡과 백룡. 용족 중에서 성수가 된 우수 용족만이 와서 널 치료했어. 하긴, 생혼귀령멸원진에 당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를 수 있지.”

 금지된 주술. 생혼귀령멸원진.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영력을 뺏겼으니 회복할 때까진 평범한 여아였겠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용족에게 빚을 졌구나. 수호령들과 채강을 치료해준 것도 그들이겠지. 누가 우릴 돌봐줬든 다들 무사해서, 아니, 죽은 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 멀쩡한 얼굴로 이 세상 돌아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다.

 “너한테 그 주술을 쓴 건 금봉이야.”

 기는 인간의 모습으로 화현해서 왼쪽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쭈그려 앉은 모습이라면 기는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은 모습으로.

 “지금 성수 중에서 그 금기를 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수는 용족계 성수와 봉황계 성수뿐이야. 처음부터 그들만이 쓸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만 전승되던 거니까. 그래서 용족인 황룡이 ‘왕’의 권능으로 그 주술의 금기령을 내릴 명분이 있었던 거고.”

 성수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게 그 이름하고 효력뿐이었군. 원래 주술이란 게 복잡할수록 전승되기, 흉내 내기 어려운 법이니까 말이지. 난 성이 한 줄 알았는데 성은 결코 할 수 없는 주술이잖아. 마음으로 성에게 사과한다.

 “금봉이 수천파였을 줄은 몰랐어.”

 봉황족을 원망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목소리 톤이 좀 묘한데.

 “그가 노리는 건 나일 텐데 너한테까지 해를 입힐 줄이야…….”

 글쎄, 봉황족이 왕과 사이가 소원한 걸 보면 금봉이 중립이 아니라 어딘 가에 붙었을 거란 건 알 수 있지.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됐다면 지정된 상대를 해치워야만 하겠지. 뻔한 거야.

 “금봉이 수천파의 일원이라면 수천파의 진의를 알고 있다는 거네. 왕과 사이가 나쁜 금봉이 겉으로 왕을 지킨다는 수천파에 가담할 리가 없잖아.”

 “역시…… 금방 파악하네.”

 황룡에게서 진짜 이야기를 들었다면 서도 금봉의 움직임을 납득하지 못해 황룡에게 상황 설명을 다시 들은 모양이다. 숲과 나무를 적절히 보지 못하는 시선이 후에 좋은 왕이 될 거란 기대는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 왜 기를 상대하고 있는 거야? 죽을 때까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혼자 있고 싶다고 했는데 어째서 기의 말을 듣고 그에 답하는 거야? 왜 이렇게 매정하지 못하고, 모질지 못한 거야…….

 “내가 태어나면서 동시에 성수계가 두 파로 나뉜 건 알고 있지?”

 왕이 얘기 해 줘서 알고 있다. 금단아의 출생과 성수계의 혼란, 동시에 왕의 실성과 성수계의 분열. 도미노처럼 빠르고 차례대로 일어났다고 한다. 그 시작점이 ‘남아’ 빙황의 탄생이니 기가 우울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건 제 힘으로도, 다른 누구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고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내가 자룡의 저주에 걸리고, 금봉의 금지된 주술에 희생될 뻔한 것도 네가 태어 나서지.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안 그래도 찔리는 걸 꼭 짚고 넘어가야 해?”

 지금 왜 기를 상대하는 거야? 어서 내보낼 방법을 생각하지 못할망정.

 “난… 이렇게 태어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금봉이 직접 날 죽이려고 하기 전까진. 정말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어. 하지만…… 금봉이 그 주술, 생혼귀령멸원진을 쓰면서 날 죽이려 할 때 말했어. ‘너 같은 불량품이 태어나서 왕이 미쳤다. 성수계가 혼란스러워졌다. 너만 죽으면 된다.’라고……. 큭. 봉황족의 공동 수장이라는 자가 꼬마였던 나 하나 죽이려고 금기를 깰 줄이야.”

 순간 가슴이 크게 한 번 콩닥거렸다. 기가 잠시 후에 할 말이 과연 무얼까.

 “너랑 같은 나이에, 같은 이에게서 구해졌어. 그 때부터 난 왕의 손에서 컸어.”

 15살의 기가 금봉에게서 생혼귀령멸원진에 당할 때 황룡에게 구원받았다라……. 내가 15살이고 성수계가 다시 크게 움직이려하니까 왕이 기를 붙인 거구나. 나와 기를 이용해서 이 어쭙잖은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하나의 생명이라도 헛되이 죽게 하지 않으려고.

 “황룡이 그랬어. 수천파를 만든, 수천파의 수장이 금봉이라고. 개천파는… 현무였대. 227살의 나이에 모든 성수를 이끌었다고 해.”

 내 눈이 저절로 커진다.

 “개천파는 네가 나타날 때까지 지휘자 없이 버텼어. 널 끝까지 살리려는 것도 현무, 수장이니까, 사성수의 수장은 모두의 수장이야. 왕 다음이라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힘이 돼. 네가 할 일은 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자릴 지켜주는 거야. 그걸로 충분해.”

 다 죽어가는 아이를 성수로 만들어놓고,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부은 건 모두를 위해서…… 였구나. 뭔가 아주 복잡하다. 설명하기 미묘하게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생각하기 어려우면 그저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라고 하던데 그래야 하나 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은근히 짜증난다.

 “일주일 남았나?”

 “뭐가?”

 “내 수명.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나 죽고 나면 현무의 자리는 또 비게 돼. 그 땐? 개천파에서 어떡할까?”

 “새벽닭이 또 한 번 울기를 기다리겠지.”

 기는 당연하다는 듯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물어볼 가치 없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기는 멋대로 수렁에 빠진 날 꺼내주러 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