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프롤로그

★은하수★ 2009. 3. 16. 16:51

프롤로그

 

시아는 더블 침대에 엎드려서 전신 거울 앞에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여동생을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옷장 앞에서 삼십분을 고민하더니 이제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때문에 한 시간씩이나 소비하는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오래. 흐억! 작은 누나, 아직도 그러고 있어?”

남동생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다가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 작은 누이를 보고 뚝 멈춰 섰다.

“진 호아,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치. 어차피 누나들 방인걸. 남처럼 굴어서 뭐해.”

호아는 리아의 앙칼진 목소리를 피해 시아 옆에 가서 나란히 엎드렸다. 동생이라고 하면 예뻐 죽는 시아는 막내가 옆에 찰싹 붙어서 꼬물꼬물 귀찮게 굴어도 다 받아줬다.

“작은 누나. 그거 언제 끝나?”

“다했어.”

[툭]

리아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머리빗을 책상 위로 던졌다.

“가자.”

시아가 호아를 데리고 먼저 거실로 나갔다. 리아는 마지막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펴본 다음에야 식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오랜만의 외식이라 부모님도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분명 부모님은 동갑 부부인데 어머니가 워낙 동안이라 10살은 차이나 보였다. 자식들 입장에선 막내 이모 같은 어머니였다.

“큰 딸. 전에 사준 옷은 어쩌고 그거 입었어? 엄마가 사준 게 싫어? 그래도 성의 봐서 한 번은 입어 주지-. 특히 오늘 같은 날.”

시아는 본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헐렁한 청바지에 민소매 검정 후드티. 머리도 숏컷이라 모자만 쓰면 남자로 오해받을 법했다.

“그거 리아 줬어.”

“큰 누난 교복 외 치마는 절대 안 입잖아.”

막내가 크득크득 웃으면서 큰 누이를 거들었다. 어머니는 한 번 더 눈을 글썽이며 호소의 눈빛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그만 나가자.”

“거기 예약 안 하면 무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자식. 아빠가 누구냐.”

“오-.”

척 봐도 애들과 잘 놀아줄 것 같은 아버지는 어느 새 옆에 철썩 붙어 있는 아홉 살 철없는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지도록 거칠게 쓰다듬었다. 시아는 그 뒤로 조용히 가서 호아가 운동화를 신는 동안에 머리를 정돈해줬다.

아버지가 모는 승합차 안에서 시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광경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기도 하고, 처음 보지만 어떤 인물일이지 감이 오는 사람도 하나 보였다. 몸속에 흐르는 피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 떠들어대서 식당의 예약 석에 앉을 때까지 심기가 불편했다. 식구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포커페이스는 이제 기본 소양이 됐다.

[쿠과앙!]

한창 식사 중에 식당 벽이 뚫리는 일이 벌어졌다.

“꺄악!”

“괴물이야!”

쌍도끼를 든 미노타우르스의 등장으로 식당 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도망쳐 나갔고 다른 사람들은 미노타우르스와 가장 먼 벽으로 밀착하여 모였다.

“히잉-.”

시아에게 꼭 붙어있던 호아가 완전 울상이 되었다.

미노타우르스의 정체를 꿰뚫어 본 시아만 유일하게 혼란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남동생을 한 팔로 꼭 안고 사태의 범인을 가만히 지켜봤다.

[쾅, 콰광]

미노타우르스는 쌍도끼를 들고 미친 듯이 식당을 부숴나갔다.

“쳇.”

시아는 5년 동안 지켜온 것을 가족들에게 밝혀야 할지 고심했다. 광란자를 막을 수 있는 자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했다. 시아는 이를 악 물고 일어섰다.

“큰 누나.”

“호아야. 작은 누나한테 붙어있어.”

동생 사랑 일등인 진가(家) 장녀는 막내를 향해 한 번 싱긋 웃고 나서 미노타우르스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살기를 풍기며 당당하게 그에게 가까이 갔다.

“시아야!”

“언니, 미쳤어?”

“큰 누나.”

가족들의 목소린 이미 시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시아의 머리엔 저 불쌍한 미노타우르스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만 가득했다.

다섯 걸음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넌 뭐야!”

미노타우르스는 있는 힘껏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시아는 조금도 꿈틀거리지 않았다.

“살기를 그렇게 내뿜었는데 이제사 알아채는 넌 뭐냐?”

“인간 계집애 주제에…….”

“넌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군. 클로즈.”

유일하게 미노타우르스의 앞으로 당당히 나선 소녀는 두 팔을 나란히 앞으로 뻗었다. 언령을 내뱉은 직후, 소녀의 두 팔이 서로 맞붙더니 팔 전체를 감싸듯 구속하는 철갑이 생겼다.

“압장?”

시아의 양 팔을 구속하는 철갑을 알아본 미노타우르스는 팔 근육이 씰룩거렸다.

난봉꾼의 반응을 예상했던 시아는 무표정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아주 쉽게 철갑을 깨부쉈다.

[챙, 휘이이익!]

산산이 부서진 철갑은 공중에서 소멸되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시아의 발밑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시아의 몸을 빠른 속도로 휘감았다. 시아가 그렇게 연기에 싸여 있는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고 금세 악마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도 키메라였냐.”

“뭐, 보다시피.”

악마의 모습으로 내뿜는 살기는 인간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미노타우르스는 살기만으로 뼈마디가 욱신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상대가 ‘강하다’가 아니라 ‘위험하다’고 알아차렸다.

“솔직히 ‘락’만으로도 널 이길 수 있지만, 주변 판단을 할 줄 모르는 녀석을 좀 기죽이려고 친히 ‘클로즈’ 상태가 된 거야. 소감은?”

살기뿐만 아니라 기의 압박까지 미노타우르스의 전신 세포를 자극했다. 압각을 넘어선 통각. 미노타우르스는 오른쪽 도끼를 앞으로 들고 상대 키메라를 경계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소- 감? 크릉. 락하고 클로즈는 겨우 한 단계 차이야. 너 같이 얄쌍한 여자애랑 이 내가…….”

미노타우르스는 하마터면 도끼 두 자루를 모두 손에서 놓칠 뻔 했다. 시아의 살기가 점점 짙어질수록 미노타우르스의 눈도 점점 커졌다. 동공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도끼를 꽉 쥐고 오기로 버텼다.

“그래. 락과 클로즈는 겨우 한 단계 차이지. 하지만…….”

[딱]

시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공포가 미노타우르스를 집어 삼켰다.

“으아아아!”

키메라였던 미노타우르스는 아주 쉽게 시아에게 제압되고 강제로 오리지널-인간-으로 되돌아갔다. 플러스에서 해제되자 그의 양 손목에는 수갑보다는 두껍고 튼튼한 압슬이 채워졌다. 기력이 회복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키메라의 표식이었다.

“악마와 미노타우르스의 차이는 ‘겨우’가 아니지 않나?”

포니테일로 높게 묶였어도 머리칼 끝이 허리선까지 닿는 흑장발에, 왼쪽 눈은 루비를 닮아 붉은 색을 머금은 블랙-레드 오드아이를 가진 아름다운 악마는 보기만 해도 두려운 손으로 인간이 된 자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으으…….”

인간의 몸으로 악마의 마기를 견디는 것은 고문이었다.

시아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봤다. 충분히 즐겼다 싶어 여유롭게 오리지널로 돌아갔다. 힘을 거의 쓰지 않아 양 팔을 불편하게 구속하는 압장이 금세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풋, 꽤 신나게 뛰어놀았나봐? 압슬이 아주 단단히 매어있어.”

“그러게요. 뒤처리하기 힘들겠어요.”

짧은 은발에 드문드문 보이는 진 보라색 틴트.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뱀파이어 한 명이 식당 입구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서있었다. 아름다운 악마를 모시는 비서였다.

“내가 할 거 아니니까 상관없어.”

“보스. 보스랑 관련된 온갖 일들은 다 제가 뒤처리 한다구요.”

“새삼스레 뭘.”

뱀파이어의 보스는 그의 가벼운 한탄을 쉽게 받아쳤다. 평소에 오가는 상투적인 대화인 듯 했다.

뱀파이어의 등장 후 난봉꾼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더니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니, 비장해졌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악마 보스를 따르는 뱀파이어……. 저 진 보랏빛 틴트……. ‘와인드’급 뱀파이어, 류 민…….”

플러스가 미노타우르스인 키메라는 매력적인 뱀파이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 뿐, 실제로 보는 건 당연 처음이었다.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시아와 뱀파이어 민의 귀에 분명하게 닿았다.

“보스, 나 유명한가 봐요.”

“응. 그래도 솔아만큼 할까.”

시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난동 속에서 부서지지 않은 의자와 탁자를 하나씩 세우며 천- 천히 정리해나갔다. 악마에게 너무 쉽게 제압된 광란자가 시아의 정체를 알아보고 시선을 계속 그녀에게 박고 있었지만, 시아는 그 시선 역시 흘겨 넘겼다.

“여기 사람들, 기억 지워야겠죠?”

“알아서 해.”

“보스의 가족 분들은?”

“……놔 둬.”

민은 시아의 지시가 예상했던 대로라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식당 안에서 뿌연 안개가 사라지고, 키메라들과 시아의 가족들은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일이 되었다. 오리지널-인간-로 돌아간 민은 시아의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뛰어난 포커페이스를 하고 밖으로 나온 그녀를 데리고 그들의 아지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