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1 각성 ④

★은하수★ 2009. 3. 20. 18:05

참고로 다스 엔데는 절대 키메라, 펜타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펜타곤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가 다스 엔데에서 얻어진 것이기도 하다. 아직 해독되지 않은 정보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가디안스와 크루세이더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곧잘 드나든다.

“이상한 건 제 4기사가 혼자 있었다는 거야. 크루세이더는 2인 1조 체계잖아. 아무리 보스나 츠뵐프 리터라 해도.”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안스는 일에 따라 변칙적으로 수를 조절하는데 크루세이더는 2인 1조를 기본 틀로 몇 개 조가 움직이는가에 치중한다.

“무단으로 단독 행동을 하기엔 다스 엔데는 들키기 쉬운 곳이라고. 이래저래 이상해.”

“뭐, 의심할 만 해. 그런데 한 때 약혼자였다고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시아의 말이 밀리엄의 가슴을 세차게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동공이 커지고 움직임이 멈췄다. 시아가 한 번 더 찌르면 눈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원 없이 쏟아질 것 같았다.

“……1년 반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 모양이야?”

“보- 스-. 크어어엉!”

“우는 소리가 왜 그래?”

밀리엄은 시아의 책상에 엎어져서 거하게 울어댔다.

마구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 점점 책상 위를 점령해가자 무뚝뚝한 보스는 젖을 만한 물건은 등 뒤의 창틀로 옮겼다. 밀리엄을 달래야겠다는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냥 울게 놔뒀다.

“아아이에 이서는데, 크읍, 알도 못 부여써어-, 흐아앙!(가까이에 있었는데 말도 못 붙였어.)”

적대관계에 있는지라 몰래 훔쳐봐야 하는 현실이 무진장 서글펐나 보다. 길드원들 사이에서 고품격 천왕이라 불리는 제 3천왕이 보스 앞에서 스스로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캡틴 밀리엄이 쳐 울었다’라는 소문이 퍼지면 대부분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 나오겠지만 밀리엄을 아주 잘 아는 몇몇은 확인 사살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흐읍, 나의, 나의 솔리가, 흐으으…… 날 버리고, 크읍, …어흐!”

현재 크루세이더 제 4기사 강 솔리는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가디안스 소속이었다. 제 1천왕 휘하 윤 솔아의 사촌이자 제 3천왕의 약혼녀였다. 길드 내에서 꽤 높은 간부였고 길드원들과의 관계도 아주 원만했다. 보스도 그녀의 실력을 늘 칭찬해서(그 보스가!) 크리세이스를 내리고 4천왕이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디안스를 배신했다.

밀리엄은 가슴을 붙잡고, 어디까지나 보스의 시선에서, 꼴사납게 울부짖었다. 솔리가 가디안스를 등지던 날, 밀리엄은 그녀를 막아서다가 그녀의 자랑스러운 무기인 포비아에 당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보스가 친히 지휘하는 소수정예 암살부대에서 히든카드 같은 존재였던 터라 그 실력이 이미 4천왕과 맞먹으면 맞먹었지 그 아래는 아니었다.

“에휴. 숨어서 울 데가 없어가지고 여기에 온 거냐?”

“훌쩍, 응.”

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밀리엄을 타박하지 않았다. 혼자 풀릴 때까지 내버려뒀다.

“보스-.”

“말해.”

“나의 피앙세에게 새 애인이 생겼을까? 훌쩍.”

눈물을 겨우 그친 불쌍한 강아지가 차마 닦지 못한 눈물이 눈 안에 한 가득인 채 보스를 응시했다. 제정신이었더라도 밀리엄이니까 보스에게 위로를 구했을 것이다.

“글쎄다. 워낙 본판이 좋아서……. 주변에서 치근대는 놈들은 많겠지.”

“역시 그렇겠지?”

그렁그렁 고여 있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툭]

시아는 티슈 한 곽을 밀리음의 머리 위에 얹었다.

“제대로 치워.”

밀리엄이 코를 훌쩍이면서 난장판이 된 책상을 느릿느릿 치우는 동안에 시아는 차를 준비했다. 민이 있었으면 시아가 움직일 필요가 없겠지만, 원래 민이 비서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시아 혼자서 온 잡일을 했었기 때문에 능숙하게 도구들을 다뤘다. 뭐, 민이 있어도 가끔 시아가 직접 움직일 때도 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정작 행동은 부지런한 쪽이다.

벌겋게 부은 눈이 흰 피부와 어울리지 않아 얼굴이 전체적으로 우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아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피식’수준일 뿐 ‘푸후후’까지도 웃지 않았으리라.

“밀크 티야. 다 진정하고 나가. 꼴사나우니까.”

밀리엄은, 말은 거칠게 해도 세심하게 챙겨주는 보스가 고마웠다. 그래서 누구도 아닌 시아에게 찾아와서 한없이 울었던 건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조만간 다스 엔데에 다녀올까 했는데 필히 가봐야겠어.”

밀리엄이 오열하는 바람에 끊긴 대화가 이어졌다.

“아까 말한 크루세이더의 누군가 때문에?”

“응. …너도 알아 두는 게 좋겠다. 오늘 신참이 들어왔어. 당분간은 디레스가 키워야 하지만. 그 녀석들 사마엘 손에서 살아남은 애들이야.”

“으어어어!”

방금 전까지 울어 젖힌 건 어디 가고 반응이 즉각즉각 나왔다.

“사마엘이 제 1기사랑 같이 움직였대. 그러면 뻔하잖아. 녀석들 펜타곤의 새 단서를 찾은 거야.”

크루세이더의 얘기를 할 때면 시아의 눈은 저절로 매서워졌다. 공공의 행복을 위해 가디안스를 결성했지만 거기에 보스의 사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시아 역시 사적인 원한이 있었다.

“그러면 그 대단한 신참들부터 조사해봐야겠네.”

“디레스가 데리고 있으니까 간단한 신상정보는 금방 나올 거야. 내일 내가 직접 그 애들이 소속돼있던 길드를 탐문하기로 했어.”

정보 싸움도 육탄전 못지않게 치열했다. 사소한 거리라도 잡기 위해 부산하게 행동했다.

“다스 엔데는 언제 갈 거야?”

“내일. 신참들 만나고 바로.”

“혼자?”

“누굴 데려 간다고 해도 넌 아니야.”

밀리엄은 자기도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또 크루세이더의 제 4기사를 만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예정에 없던 조사니까 혼자 갈 거야.”

“사마엘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일단은 4천왕이기 때문에 보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가뜩이나 가드안스의 보스가 단독행동을 밥 먹듯 해서 허구한 날 4천왕을 가슴 졸이게 하는데, 펜타곤에 대해 조사하는 일은 크루세이더와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했다.

“남작 꼬맹이 하나 못 이길까봐?”

사마엘의 오리지널은 이미 앞서 나왔듯이 악마다. 귀족 직급을 가지고 있는 상급 악마지만 5귀족 중 마지막인 남작이다. 그에 비해 시아의 플러스는 후작급 악마다. 각성을 어느 정도 푸느냐에 따라 시아와 사마엘 사이의 힘의 차이가 달라지지만 소울 테이커까지 각성을 마친 시아에게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꼬맹이라니? 클러치 사마엘이 그 긴 세월을 그냥 살았을……. 보스…….”

“내가 녀석과 진심으로, 전력으로 붙은 적이 두어 번 있었지 아마?”

“그래도…….”

블랙-레드 오드아이가 밀리엄은 흉내도 못 낼 위압감을 풍겼다.

“사마엘이 플러스를 레드 드래곤으로 선택한 건 펜타곤 때문이야. 그 종족으로는 아무리 영박을 끊어도 날 이기지 못해. 더욱이 녀석은 궁극의 키메라를 추구할 뿐 나와 싸울 생각도 없고 녀석을 죽이지 않는 건 필요 없는 살생을 하기 싫어서야. 내가 항상 말하잖아.”

“만인에게 해로워도 누군가 한 명에게라도 이롭다면 그 이유만으로 죽일 수 없다.”

시아가 길드 전체에 철저하게 당부한 싸움수칙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상대가 자신이나 무고한 자를 죽이려할 때뿐이다. 간혹 이 어려운 규율을 어기는 자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는 명목으로 대개 용서된다. 하지만 시아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어려워 보이는 이 규율은, 실은 아주 교묘하게 쉬운 것이다. 만인에게 해롭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수 없다면 다른 이유를 붙이면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문제는 적당한 이유를 붙여 핑계를 댈 수 있는 머리가 있느냐이다. 그러기에 머리가 좋은 길드원은 이 규율을 어기지 않고 얼마든지 살생을 할 수 있다.

가디안스의 구성원은 신참 제외 전원이 체인급 이상이기 때문에 저절로 두뇌도 따라준다. 보스인 시아는 오죽할까. 그래도 시아 손에 죽은 적은 거의 없다. 핑계는 어디까지나 핑계.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절대 살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마엘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길드 하나 파탄 내는 것쯤이야 다른 잡놈들도 할 수 있어. 순종을 강제로 키메라로 만드는 것도 크루세이더가 아닌 곳에서 비밀리에 많이 일어나잖아. 사마엘이 펜타곤을 달성할 때까지 녀석을 죽일 이유가 생기지 않을 거야. 솔직히, 이 보다는……. 내가 골치 아파져서 그래.”

“귀족급 악마라서… 라고 했던가?”

“플러스 종족도 자기 종족이잖아. 공작이나 왕이 추궁하면 귀찮아진다고.”

어느 키메라든지 오리지널 종족과 플러스 종족의 구속을 받는다. 시아는 후작급 악마이기 때문에 악마들 사이에서 그 만큼의 책임을 져야했다. 영박을 풀면 그 힘은 여느 공작 못지않으나 다수가 덤벼들면 시아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길 수 없는 건 아니다. 주변에 적이 무수해지는 거다.

“난 가디안스의 보스야. 만약 혼자였다면 벌써 사마엘을 죽이고 왕의 심판을 받았겠지.”

가디안스의 보스는 몇 보 앞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수 명의 길드원들이 우선이었다.

“으음… 보스. 우리가 맘이 불편해. 보스가 막강하단 걸 모르는 애들이 어딨어. 그래도 보스잖아. 보스니까 혼자 가는 걸 걱정하는 거야.”

“몰래 조용히 다녀오면?”

“다른 녀석들 다 제쳐두고 제 1천왕이 날 죽이려 들 거야.”

보스를 향한 순수한 충성심. 시아가 이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가끔은 이것이 족쇄 같아서 답답했다.

“내가 먼치킨이라 불릴 정도로 강하다면 걱정 안 하려나?”

“이미 훌륭한 먼치킨이야. 보스-.”

밀리엄이 엄치를 치켜 올렸다.

“쯧…….”

생각해보니까 민이 옆에 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단독행동을 말렸을 거다. 그리고 혼자 다스 엔데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별별 잔소리가 터져 나올 게 분명했다.

“플릿도 재윤이랑 같이 보냈는데.”

“보스-. 그냥 아무나 데려가도 되잖아.”

[휙!]

시아가 보던 책이 밀리엄의 머리 위를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이왕이면 도움이 되는 녀석을 데려가야 할 거 아냐! 고대어를 해석할 수 있는 녀석이 그렇게 많아?”

투철한 실용·실리 정신!

“이 와중에도 그런 걸 챙기는 거야?”

“당연하지!”

역시 보스는 달랐다. 효율적인 인재 활용을 추구하는 정신은 진정 보스의 덕목일지니, 시아는 타고난 보스감이다.

“으음……. 보스-. 너무 빡빡하게 군다.”

[빠직!]

“네가 다 울었나본데, 그 입버릇 고쳐주랴?”

“아니, 절대 사양할게.”

밀리엄이 초고속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스에게 정통으로 맞으면 분명 뼈가 무사하지 못할 거다. 뼈만 문제일까. 살이 터지면 눈에 보이니까 금방 치료하겠지만 내장이 터지면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죽을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다음엔 질버르나 화타에게 빚을 질 지도.

“아, 그래. 스승님이 심심해하시던데. 다스 엔데 근처에 사시니까 보스나 스승님이나 편하잖아.”

“이제는 인제 양성 안 한다냐?”

“애들이 알아서 잘 큰다는데?”

놀고 있는 길드원이 있다는데 거부할 이유 없었다.

“엘더 정도면 자기 앞가림도 할 수 있고……. 낙찰.”

시아는 마력을 응용한 잡기술로 내던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했다. 원 위치로 돌릴 때는 움직이는 속도가 여유롭다고 할 만큼 느릿느릿했다.

“자기 앞가림 못하는 애가 어딨다고 그래.”

“있어. 그 표본이 크리세이스랑 솔아잖아.”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다.

“푸훗. 보스-, 솔아는 빼줘. 행동이 극단적이긴 해도 자기 앞가림은 잘해.”

제 3천왕은 같은 4천왕인 크리세이스가 아닌 상관 사랑 1등인 솔아를 거들었다. 시아도 그에 동의했다.

“하긴. 그러니까 민이 예뻐하지.”

“어? 나도 예뻐해, 보스-. 솔아가 날 무지 싫어하는 거라구.”

“누가 뭐래?”

잔을 다 비운 시아는 세척부터 건조까지 마법으로 한 번에 끝냈다. 차를 내올 때 한 번 빼고는 절대 부동이었다.

“참, 크리세이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까 슬쩍 보니까 완전히 풀 죽어 있더라? 보스가 뭐라고 했어?”

“아……. 민한테 한 번, 나한테 한 번. 두 타로 혼났지. 제 4천왕 자리를 바꿀 때가 됐나봐.”

“보스가 하는 말이면 농담도 진담으로 들려.”

“진담인데?”

시아는 ‘뭘 새삼스럽게.’라고 덧붙였다. 자신은 농담을 안 한다는 식이었다.

4천왕을 바꾼다는 얘기에 밀리엄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했다.

가디안스의 체제가 완전히 잡히고 마지막에 생긴 것이 4천왕이다. 2년 전에 만들어진 4천왕은 딱 한 번 바뀐 바가 있다. 제 3, 4천왕 자리였다. 만들어진지 3개월만이었다. 그 때 제 3천왕이 빠지고 당시 제 4천왕이었던 밀리엄이 제 3천왕으로 승격, 크리세이스가 솔리의 양보 덕분에 제 4천왕으로 새로 올라오면서 지금과 같은 4천왕이 만들어졌다.

“걱정 마. 명색이 4천왕이야. 쉽게 바꾸면 그 이름이 뭐가 돼?”

밀리엄은 불안해하면서도 납득했다. 그 때 제 3천왕이 크루세이더의 츠뵐프 리터 세 명을 상대하다가 전사했기 때문에 4천왕이 바뀐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리고 밀리엄, 너는 암만 봐도 안전권이잖아.”

“보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자리에 연연하는 속물 같잖아.”

“지금 표정이 그런걸.”

그게 아니었다. 밀리엄이 걱정하는 것은 4천왕에서 밀린 크리세이스에 대한 처리였다. 예전 제 3천왕도 자기가 원해서 사지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속설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럴 만한 보스라서 해서는 안될 의심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여신-헬’로 통하는 보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거뜬히 방해물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아가씨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시아가 밀리엄의 눈을 꿰뚫어봤다.

“아니, 별로……. 그냥 크리세이스한테 조심하라고 말해줄까… 생각 중이야.”

“마음대로 해.”

밀리엄이 보스를 귀여워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진지모드의 보스는 속내를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4천왕이면 보스의 최측근인데도 보스는 거의 모든 것을 숨기다시피 한다. 제 1천왕만 보스를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다. 섭섭하다기 보다는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동시에 무서웠다.

“제 4기사는…….”

밀리엄은 눈을 피하고 있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에 자동적으로 시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솔리는 건강해 보였어?”

배신자라도 시아가 특별히 아끼는 길드원이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안부의 말’을 했다. 다른 길드원들이야 거의 매일 얼굴을 보니까, 아지트에 없으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있으니까 굳이 안부를 묻지 않지만, 그래도 솔리를 챙기는 시아의 목소리는 분위기가 달랐다.

“보스랑 맞먹는 포커페이스 소유자야. 게다가 플러스였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거 보면 문제는 없는 거겠지.”

“대답이 무성의해.”

“후웅-. 하지만 보스가 먼저 심술부렸잖아.”

밀리엄은 시아가 또 무심코 솔리의 이름을 말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뭐, 역시 감정변화가 빠르달까, 시아의 말 한 마디마다 적절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기분 상하는 일이 생겨도 금방 풀릴 타입니다.

“그 녀석 소식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으로 돼버렸어.”

시아는 아까부터 손을 꼼지락 거리더니 완성된 종이학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입김을 길게 불었다. 파란 색종이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종이학은 집무실 안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헤-. 솔리의 색이네.”

“서비스야. 기분 풀고 기만 나가 봐.”

종이학을 감싸고 있는 푸른빛은 솔리의 오리지널-하프 운디네-를 연상시켰다. 그녀의 머리칼처럼 부드러운 색은 종이학이 방을 한 바퀴 돌고 시아의 손에 돌아오고 나서 사라졌다.

“심술궂은 서비스야, 보스-.”

밀리엄은 양손을 허리춤에 대고 너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아는 더 이상 밀리엄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럼, 보스-, 푹 쉬어.”

[딸깍]

[화르륵]

제 3천왕이 나가자마자 시아의 손 위에 놓여있던 종이학이 검푸른 불꽃에 휩싸여 천천히 타들어갔다. 재도 남지 않고 완전히 소멸됐다.

“강 솔리. 이제 그만 놀고 들어와라. 내 인내심이 바닥나면 너도 신 휴처럼 될 거야.”

자기 입으로 생각도 하기 싫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니까 가슴이 무거운 돌에 깔린 듯이 갑갑했다. 밤도 깊어가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바짝 기댄 채 짧으면서도 긴 회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