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1 각성 ②

★은하수★ 2009. 3. 18. 09:22

디레스는 서둘러 집무실로 돌아가는 보스의 등을 향해 방긋 웃으며 회답했다.

“자, 다들 자기 일로 돌아가. 솔아는 플릿을 보스 집무실로 보내줘.”

“Ja, mein Kapitän.(네, 나의 캡틴.)”

솔아는 상관의 (부탁에 가까운)명령을 안고 발랄하게 뛰어갔다. 충성을 다 바치는 캡틴의 명령이니 속행이었다.

“미스 하갈.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겁니까?”

“누가 멍 때린다고……. 가자 ,멜로즈.”

“응-.”

크리세이스는 디레스의 눈치를 슬슬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멜로즈는 크리세이스의 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종종종 뛰어야했다.

민은 그렇게 주위를 정리하고 나서 새 식구가 될 두 사람을 쳐다봤다. 첫인상부터 플러스로 변해 제 4천왕을 제압하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다정하고 친절한 얼굴로 대했다. 딱 봐도 대외용 얼굴이었다.

“그쪽은 나와 이미 면식 있는 사이지?”

보스의 비서는 자신이 존대할 필요성이 없는 상대면 서슴없이 말을 놨다. 반말과 낮춰보는 시선. 그게 타인의 시선에선 무섭게 보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기준에 맞춰 확실하게 언행을 일치시켰다.

“민아, 아이들이 무서워하잖아. 앞으로 너흴 사.육.할. 디레스 엑서스엘이다. 가디안스 4천왕 중 두 번째고 정보부대의 총사령관이지.”

“단어 사용이 적절하지 않아요.”

민의 말대로 부적절한 단어의 사용으로 새 식구가 될 방문객 2인은 바들바들 떨었다. 키메라는 누구 할 것 없이 순종과 키메라를 구별할 수 있고 순종에 한해서는 그 종족을 꿰뚫어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디레스가 레드 드래곤 순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드래곤이 자신들을 ‘사육’한다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헤?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양육이라고 하셔야죠.”

“인간의 언어는 어려워서 탈이야.”

배시시 웃는 낯이 일부러 그 단어를 사용한 듯했다. 자기 딴에는 두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거였는데 농담의 핀트가 엇나가는 바람에 더 겁주고 말았다.

“근데 보스한테 안 가 봐도 돼 어차피 얘네는 내가 담당할 텐데.”

“지금은 정식 길드원이 아니니까 스승님이 담당하시는 거지만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죠. 그리고…… 훗. 사제, 사매… 라고 부를 이들이니까 제가 신경 쓴다 해서 이상할 거 없고요.”

디레스는 ‘그렇군’하며 손뼉을 쳤다. 그리곤 민의 머리를 요란하게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내 1호 제자 류 군. 많이 발전했지, 암. 하하. 나도 제자가 셋이 되는 셈이군.”

가디안스 내에서 제자 양성에 힘쓰는 길드원은 디레스와 또 다른 순종, 두 명이다. 그 또 다른 순종은 이미 제자가 10명에 다다랐으며 전원 제 3천왕의 휘하에 있다. 참고로 그 순종도 제 3천왕 소속이며, 심지어 제 3천왕도 그 순종의 제자 10명 중 한 명이다. 학연이나 지연이라 보인다면 오산이다. 일부러 같은 부류로, 특정 성향이 뛰어난 이들을 골라서 더 특출하도록 양성한 것이다.

제 2천왕은 민은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제자가 한 명 뿐이나 위의 10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으니 두 패를 함부로 비겨할 수 없다.

<얼른 안 오고 어디서 놀고 있는 거야?>

보스의 착 깔린 목소리가 민을 불렀다.

“보스의 호출이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민은 새 식구 2인을 한 번 곁눈질로 본 다음에 보스의 집무실 쪽으로 움직였다.

“수고까지야. 알아서 잘 클 텐데. 그치? 에구…….”

디레스는 방긋 웃었지만 그들은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마냥 얼음상태였다. 두려움이 가득한 두 쌍의 눈동자. 그것은 막강한 순종을 두려워하는 키메라의 본성이었다.

“드래곤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 마냥 서있는 것도 그런데……. 내 집무실로 갈까?”

이번에도 고개로 대답하는 그들이었다.

디레스는 집무실로 가는 내내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그들은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여자 쪽은 긴장이 덜 풀린 건지 수줍음을 많이 타는지 남자에게 대답을 미뤘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다시 말하지만 난 디레스 엑서스엘. 이름을 부르든 성을 부르든 상관없지만 앞에 ‘캡틴’을 붙여서 불러. 그게 여기의 규칙이니까. 가끔 그걸 무시하는 간 큰 아이도 있지만, 너희 같은 경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아, 민이처럼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다. 어때? 호칭 고민할 필요 없고 괜찮지?”

“……네.”

안심을 시켜야 할 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니, 디레스는 본인도 모르게 은근히 상대를 기죽이는 언어를 구사했다.

“자, 이제 너희 차례야.”

“네?”

“이름말이야.”

“저는…… 강 지원입니다. 이 아이는 박 세나. 성은 다르지만 사촌입니다.”

“사촌끼리 성이 다를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야. 종족도 다를 수 있는 걸. 처음엔 닮은 구석 없는 남녀가 꼭 붙어 다니기에 연인인 줄 알았는데 사촌이었군. 뭐, 좋아. 나도 친동생이 여기 길드원이야. 귀염성이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지. 하긴, 남자 아이에게 귀염성을 요구하는 건 좀 무리일지도.”

디레스는 자신의 동생을 생각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디레스의 동생이니 디레스처럼 수려한 외모일까? 외모만큼은 귀여운 측이나 행동거지는 외모의 10%도 되지 못한다는 여담이 있다.

“지원 군은 보스보다 나이가 많지? 탄탄히 단련된 근육이 완전히 성인 분위기를 풍겨.”

“올해 21살입니다.”

“역시. 우리 보스는 17살. 참고로 사형이 될, 아니 사형인 류 민도 17살이야. 세나 양은?”

세나는 지원과 팔짱을 낀 채 팔꿈치로 지원의 허리를 툭 쳤다. 걷는 것도 지원에게 꼭 붙어서는 끌려가듯이 겨우 걷는데, 제 3천왕의 물음에 대답을 한다는 건 조금 무리였다.

“세나는 15살입니다.”

“어려 보인다 싶더니 한창 꼬마 아가씨군. 근데, 세나 양. 자기 질문엔 자기가 대답해야지.”

꼬마 아가씨는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지원의 팔을 더 꽉 잡았다.

“죄송합니다. 저희 길드를 부순 키메라가…… 플러스가…… 레드 드래곤이었던 터라…….”

그 순간 디레스가 걸음을 멈췄다. 인자하게 웃고 있던 표정은 진지하게 변했다.

“플러스가 레드 드래곤? 크루세이더 소속에?”

“네.”

지원은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자세가 다시 딱딱해졌다. 자신들을 향해 뒤로 돌아선 디레스의 눈은 의구심과 약간의 분노로 술렁거렸다. 저절로 시선을 피하게 됐다.

“그 키메라 혼자서 너희 길드를 부순 건가?”

“온 건 두 명이었지만 모두를 죽인 건 그 자 한 명 뿐이었습니다. 오리지널이 악마면서…… 충분할 텐데 굳이 키메라가 된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번거롭게 플러스가 돼서 일을 저지른 것도……!”

디레스의 표정을 본 지원은 심장이 최대로 팽창했다가 확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입은 가만히 다물고 있었지만,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은 붉은 홍채가 타오르는 불처럼 맹렬하게 이글거렸다. 다양한 붉은색 시세포가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디레스의 분노를 보여줬다. 주먹을 꽉 쥐고 참았지만 눈은 솔직했다.

“그 자의 이름을 아나?”

낮은 톤의 목소리는 주위를 지배하듯 장엄하게 울렸다.

“사마엘… 이라고 했습니다.”

디레스의 분노를 끄집어낸 이름이었다. 디레스는 ‘당연하겠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한 명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있나?”

“오리지널이 인간이라는 것 밖에……. 4, 50대 되는 남성인데 그…… 사마엘이라는 자와 친분이 깊어 보였습니다.”

“원 세훈이라는 자다. 혹여 나중에 보게 되더라도 절대 부딪히지 마라. 크루세이더의 수뇌 간부, 츠뵐프 리터(zwölf Ritter : 12기사) 중 제 1기사야. 그리고…… 사마엘. 클러치 사마엘은 크루세이더의 보스다.”

예상외의 무시무시한 사실에 지원과 세나가 충격을 크게 받았음은 당연하다. 그들은 크루세이더의 보스 손에서 살아남은 것이었다. 정말 간이 철렁할 사실이었다.

“캡틴, 신참인가요?”

디레스 소속의 길드원 하나가 가까이 왔다. 그런데 상관의 무시무시한 분노에 기가 눌려서 상관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미안. …레스, 이들을 집무실로 데려다 줘. 난 보스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Ja, mein Kapitän."

부하에게 그 둘을 맡긴 디레스는 텔레포트로 곧장 보스의 집무실 문 앞으로 갔다. 문을 열기 전에 크게 한 번 숨을 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보스, das Herz(가디안스의 은어 : 중요한 사건).”

보스의 집무실에는 보스의 비서 외에 디레스의 귀염성 없는 동생, 플릿도 있었다. 얼마 전 수룡왕의 레어에서 있었던 ‘와인드’급 키메라의 폭주사건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플릿은 디레스 소속이면서 저오부대 대원이기 때문에 보스에게 특별 명령을 받아 사건 전반을 조사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아도 따로 조사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은 die Zeitbombe(가디안스의 은어 : 긴급한 사건).”

시아는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디레스는 시아의 코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펜타곤에 관련된 거면 될까?”

“헛소리면 죽는다.”

시아는 악마의 눈을 번뜩이며 디레스의 멱살을 잡고 자기 쪽으로 쭉 끌어당겼다.

“당연하지. 누구 앞인데.”

제 2천왕은 보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확신했다. 눈싸움 같은 아이컨택트가 몇 초가량 지속되고 나서야 시아의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정확한 건 신참에게 들어야 할 거야. 그 애들이 펜타곤의 다섯 슈튀크(Stűck : 조각) 중 하나랑 관련된 것만큼은 확실해.”

“그- 녀- 석- 들- 이-?”

시아는 디레스의 말을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슈튀크와 같이 대단한 존재와 신참 두 명이 관련이 있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민도 마찬가지였다.

“플릿, 아까 얘기나 마저 하자.”

“클러치 사마엘과 원 세훈이 관여한 일이야.”

시아의 시선이 플릿 쪽으로 이동하다가 크루세이더의 보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움직임을 멈췄다. 제 1기사의 이름까지 언급되자 시선이 다시 디레스에게로 고정됐다.

“어떻게?”

“두 아이들의 길드를 부순 키메라가 클러치 사마엘이래. 오리지널이 악마면서 왜 플러스로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안 된다더군. 그리고 동행자의 외관은 원 세훈이 틀림없어.”

“레드 드래곤의 힘이 필요했다…… 라는 건…….”

시아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기가 살벌해졌다. 시아는 주체하지 못하고 살기를 있는 대로 뿜었다. 그 때문에 아지트 전체가 긴장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고, 모든 길드원이 보스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아가 진심으로 살기나 마기를 방출하면 가디안스 내에서 그걸 견딜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 전원이-오늘 들어온 두 명 제외하고- ‘체인’급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보스의 기에 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움츠리고 있는 게 고작이다. 길드의 거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보스, 애들 죽일 셈이에요?”

민이 말려야 겨우 살기를 진정시켰다.

“그래, 그건 곤란하지. 하……. 그나저나 그 녀석들은 사마엘 손에서 살아남은 거야? 진짜 억세게 좋은 운줄을 타고 났군.”

“다른 쪽으로 보면 그렇지.”

“받아들이길 잘한 것 같네요.”

“음. 마음엔 안 들지만.”

시아는 지원과 세나를 받아들인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결정한 일이고 펜타곤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펜타곤 중에서 발견된 건 하나 밖에 없죠? 디 페라이터루흐(die Vereitelung)였던가?”

“맞아. 나랑 사마엘이 싸우는 사이에 여유롭게 사라졌지.”

통칭 ‘페라이’를 수색할 때 시아가 플릿 외 세 명을 데리고 직접 움직였었다. 벌써 1년도 더 된 이야기. 하지만 시아와 플릿은 그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특히 시아와 사마엘의 싸움을 제일 가까이에서 본 플릿은 당시 시아의 힘을 뼛속 깊숙이 새겼었다. 확실히 사마엘보다 시아가 월등히 강했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전설인줄만 알았던 펜타곤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증명됐고, 크루세이더의 무차별 만행이 업그레이드 돼버렸죠.”

크루세이더에 악감정이 많은 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스 앞에서는 가급적이면 부정적인 표정을 짓지 않겠다는 신조 때문이었다.

시아는 민이 억지로 좋은 표정을 지으려 할 때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건 길드원 중 누군가가 그래도 마찬가지다.

“사마엘이 직접 움직였다니까 크루세이더 전체가 조만간 대대적으로 활개 치겠지. 그 땐 가차 없이 쓸어버리자고. …그래, 그 두 녀석은 내일 오전 중에 나한테 보내. 지금은 아직 플릿하고 얘기가 안 끝났으니까.”

“Ja, Für Sie, meine Boß.”

디레스가 나가고 나서 시아는 등받이에 등을 붙여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펜타곤이라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사마엘의 욕심, 크루세이더의 목적이 전부 펜타곤에 집중되기 때문에 가디안스도 어쩔 수 없이 불분명한 그것에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보스, 수룡왕의 레어에 몇 명 배치해야 할 거에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번 건은 수룡왕이 자리를 비우면서 방어를 허술하게 쳐둔 바람에 일이 커진 거니까. 그 분 입장에서도 좋은 교훈이 됐을 거야. 우리가 신경써야할 건 신분 확인이 안 되는 그 녀석이야.”

겁도 없이 수룡왕의 레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와인드급 키메라는 시아와 플릿이 동시에 추적해도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리지널이 역천사, 플러스가 블랙 드래곤, 각성은 4단계 주박까지 깰 수 있는 키메라라는 표상적인 정보뿐이었다.

“와인드급은 흔치 않아서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시아가 그 키메라를 찾으려는 건 길드원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수룡왕과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고 해도 그의 레어까지 챙겨줄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러고 싶지 않은 사이라 ‘침략행위’는 수룡왕의 눈에만 보일 뿐이었다. 시아의 눈에는 그 키메라의 ‘대담함’과 흔치 않은 ‘각성 단계’가 강렬하게 들어왔다.

“종족의 조합도 상당히 흥미로워서 구미가 확 당겼는데, 아주 꽁꽁 숨었어요.”

플릿도 상당히 아까워했다.

“역천사급 천사면 천상계에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요?”

“누가 그걸 몰라? 나랑 플릿이 천상계에 갈 수 있는 몸이 아니잖아.”

“재윤님을 보내시죠?”

[팡!]

시아는 손바닥으로 책상 위를 세게 내리쳤다. 그리곤 손이 얼얼해서 설레설레 흔들었다.

“보… 스…….”

“아야-.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키메라 중에서 오리지널이든 플러스든 한쪽이 천사인 키메라는 완전히 극소수다. 타 종족과 얽히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는 종족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가디안스 내에는 플러스가 주천사인 키메라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이 플러스로 변한 걸 본지 몇 년 됐잖아요. 잊어버릴 법하죠.”

플릿도 재윤을 생각해낸 민을 내심 대단하게 여겼다.

“하기야 크리세이스 소속의 녀석들은 플러스를 볼 기회가 드물지. 혹여나 그쪽에 일을 준다 해도 크리세이스가 다 하니까 지금처럼 필요한 인재를 잊어버리는 일이 생긴다고.”

“미스 하갈의 밑에 있는 길드원들은 대부분 후방지원이니까요.”

“쯧. 다스 드릴라움(das Drillraum : 훈련실)에 있는 녀석 중 대부분이 걔네야.”

시아는 책상 위에 양 팔꿈치를 올려놓고 손을 깍지 껴서 턱을 받쳤다. 그리고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플릿. 우리가 그동안 한 일은 그저 삽질이었던 건가?”

“삽질까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주요 활동 구역이라든지 신체특성이라든지 탐색 폭을 많이 줄였잖아요.”

플릿은 조사 결과를 다시 한 번 훑어봤다. 시아의 조사와 플릿의 조사를 합쳐서 정리하니까 2차 조사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천상계에서 조사하는 것만큼 결정적이고 확실한 건 없으리라.

“천상계 조사는 천사가 아니더라도 유사신급이나 천상계 소속 종족이면 괜찮지 않나요?”

“그런 키메라가 전체 키메라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도잖아. 우리 쪽에 있는 건 가루다뿐인데, 그나마도 감사한 거지만, 그 녀석은 사정상 천상계로 갈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군요.”

제 4천왕 크리세이스 하갈이 플러스가 가루다고 멜로즈가 가루다 순종이다. 그런데 멜로즈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가루다 쪽에서 그녀를 지상계의 가디안스에 보낸 거고 크리세이스가 보호를 전담한 것이라 천상계에서 부르기 전까지는 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

민은 멜로즈가 들어왔을 때 기초적인 사실만 알고 그냥 흘려 넘겼기 때문에 그녀가 천상계와 지상계를 맘대로 오갈 수 없다는 것을 잊다시피 하고 있었다. 뭐, 당시의 민은 4천왕이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녀가 가루다 내에서 신분이 높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일한 가루다 킹 계승권자라는 사실은 4천왕이 되고 나서 알았다. 주변에 워낙 관심이 없었던 터라 길드원 전원이 아는 사실을 민 혼자서 뒤늦게 안 것이 이 외에도 꽤 많다.

“근데, 보스. 재윤을 데려가면 캡틴 크리세이스가 깨나 곤란할 거에요. 비서 겸 중화제잖아요.”

“풋!”

세 명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중화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크훗. 괜찮아. 얼마든지 데려가. 크리세이스는 아까 나한테 한 번 혼나서 당분간 조용할 거야.”

타인의 비서는 그 사람의 것이라지만 시아는 4천왕의 비서도 모두 자신의 길드원이라는 주의였다. 아니, 4천왕 중에서 비서를 두고 있는 건 가입 때부터 재윤을 데리고 들어온 크리세이스 밖에 없다. 처음부터 그녀의 중화제용으로 들어온 이였다. 그래도 필요할 때면 시아가 직접 재윤에게 명령을 내린 적이 ‘가입초기’에 몇 번 있었다.

“그러면 2차는 자와 재윤이 맡겠습니다.”

“응. 다녀와.”

“그럼 이만.”

플릿은 시아에게 한 번 인사하고 민에게도 가벼운 목례를 했다.

“류 민.”

“역시……. 시킬 일이 있으시군요.”

민은 플릿이 오기 전에 시아에게서 건네받은 서류를 서류더미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당분간 수룡왕의 동태를 살펴봐. 이번 일 때문에 닥치는 대로 키메라를 죽일 지도 몰라.”

시아는 민이 내민 서류에 찍었다.

“원체 키메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이잖아요.”

“그게 문제야. 본인도 키메라를 만드는 일에 거의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키메라를 싫어하다니, 모순이라고.”

가디안스의 보스는 수룡왕의 레어를 직접 조사하는 일은 일부러 순종인 플릿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변과 바깥 영역을 담당했었다. 쓸데없이 수룡왕의 고성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불편한 상대와 불편하게 마주치는 건 절대 싫었다.

“사흘 만으로 괜찮을까요?”

“응. 그 즈음에 용왕들의 정기모임이 있거든. 그리고 적룡왕에게 수룡왕을 진정시켜 주십사 부탁해 놓은 것도 있고.”

시아는 조그만 불빛을 오른손 검지 끝에 만들어서는 천천히 움직였다. 파도 모양으로 흔들어도 보고 원을 연신 그리기도 하고 벌의 춤을 흉내 내기도 했다.

“어지간히 손이 심심하신가 봐요?”

불장난을 하고 있는 손에 찻잔이 쥐어졌다. 꿀을 탄 찬 레몬 티였다.

“섭한 소리 마. 머릿속은 테러당한 것 마냥 복잡하다고. 정리를 하면 할수록 카오스가 되가는 것 같아.”

“인생이란 복잡한 법이죠.”

“내 말 재탕하지 마라.”

민의 보스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결재가 끝난 서류를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는 민을 흘겨봤다.

정말 많이 변했다. 민에 대한 시아의 첫인상은, 속된 말로, 더러웠다. 한없이 날카로운 눈매에 말 한 마디마다 빠지지 않고 섞여 있는 욕, 피로 얼룩져 있는 옥과 세상을 믿지 않는 살인귀, 그리고 절대 웃지 않는 얼굴. 시아도 잘 웃는 편은 아니지만 웃을 땐 작게나마 웃었다. 하지만 민은 길드에 들어오고 3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시아의 비서가 되고 제 1천왕이 되면서 천천히 웃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웃는 얼굴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렇다고 쓸데없이 실실댄다는 얘기가 아니다.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밝진 않아도 어둡지 않은 표정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주변 친구들의 말로도 민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중학교 초기에는 가까이 갈 수 없는 포스를 풍겼으나 지금은 주변에 친구들이 득실거린다. 처음엔 시아의 명령 때문에 형식적으로 친구를 사귀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의지로 진짜 친구를 사귀고 있다. 학교 행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중이다.

“발전이라고 해야 하나?”

동갑이지만 동생처럼 챙겨주고 키웠다. 시아는 민의 시선이 다른 쪽에 있을 때 혼자 몰래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