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1 각성 ①

★은하수★ 2009. 3. 18. 09:17

보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쓰는, 아니, 다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충직한 키메라가 임무를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오자마자 보스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리지널 모습이라 다행이지 플러스 모습이었으면 지나쳐간 키메라나 순종들이 그녀의 마기에 눌려 오늘 하루를 그대로 마감했을 지도 모른다.

[벌컥!]

“보스! 그 개념 없는 녀석, 내가 죽여도 돼?”

시아는 민이 정리해 놓은 서류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솔아의 갑작스런 출연에 심장이 철렁거렸겠지만, 시아는 익숙해지고도 남아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솔아는 말 잘 듣는 강아지마냥 쪼르르 시아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시아의 말을 기다렸다.

“류 민. 윤 솔아의 죄명은?”

“보스의 집무실 무단 침입죄, 무고한 키메라 살생 예비·음모죄. 두 가지에요.”

“합당한 처벌은 윤 솔아의 직속상관인 너한테 맡긴다.”

“Ja, Für Sie, meine Boß.(네, 당신을 위해, 보스.)”

멍하니 서 있는 솔아를 향해 민은 빠르고 강한 잽을 날렸다. 하지만 주먹은 관자놀이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캐, 캡틴…….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 알겠으니까, 보스한테 반성하고 있다고 해줘.”

조금전가지만 해도 기운이 펄펄 넘치던 아가씨는 어디 가고 강자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가련한 인간 하나가 식은땀을 흐리며 있었다.

“그렇다는 데요?”

“알면 됐어.”

[똑똑]

솔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또 다른 방문자가 나타났다. 등에 앙증맞은 비취색 날개가 달린 꼬마 숙녀였다.

“보스, 무례한 손님이 크리세이스한테 죽어나가고 있어.”

차마 어린 아이가 할 말이 아닌 듯한 어휘구사였다.

“멜로즈님. 그런 말은 미스 하갈에게 배우셨나요?”

민이 말하는 미스 하갈이 멜로즈가 말한 크리세이스를 뜻한다.

“보스. 멜로즈님을 미스 하갈에게 맡기는 건 역시 잘못된 거라니까요.”

“그 얘긴 나중에. 멜로즈, 크리세이스가 누굴 상대하고 있지?”

시아는 민의 말을 능숙하게 걷어냈다.

무안하게 서 있던 솔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는 자신의 상관을 위로했다. 마이페이스인 보스를 보좌하는 일이란 어지간한 정신노동이 아니었다.

“오리지널이 인간인데 플러스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키메라인 건 확실해. 남자 하나 여자 하난데, 남자는 보스를 꼭 만나야 한다고 난리야.”

멜로즈의 비취색 날개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보일 듯 말듯하게 움찔 거렸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도 날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더 멜로즈의 귀여움을 돋보였다.

“그래, 크리세이스가 인간에게 채찍을 휘두른다고…….”

“아니, 로열룬이 아깝다고 맨주먹으로 열혈난투 중이야. 크리세이스가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보스. 나보단 크리세이스가 더 문제 같은데?”

솔아는 괜찮은 먹이를 낚은 매의 눈으로 출입구를 흘겨봤다.

[딱!]

“아야~.”

민의 손가락이 솔아의 이마를 가격했다. 상관의 부하를 향한 애정 어린 한 방이었다.

“4천왕의 이름을 그렇게 막 불러?”

“나한테 캡틴은 캡틴 류, 한 명 뿐이야. 그 S프린세스에게 ‘캡틴’을 붙이기엔 내 혀가 아까워.”

분명 솔아는 시아와 민보다 연상이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을 향한 솔아의 고집적인 충성심은, 가끔 보면, 솔아가 연하로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을 다 바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적이 아닌 이상 누구든 안으로 들이는 것이 가디안스의 철칙. 합당한 이유 없이 그걸 어긴다면 4천왕이라 해도 용서하기 힘들지.”

시아는 직접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민에게 가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보스의 비서이자 4천왕 중 제 1천왕인 류 민. 보스의 명령을 들고 먼저 집무실을 나섰다. 4천왕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서열이 있기 때문에 제 4천왕인 크리세이스 하갈을 민에게 맡긴 것이다.

“크리세이스가 정문을 담당하는 날이면 날 이렇다니까. 안 그래, 보스?”

“민이한테 혼나놓고도 또 그렇게 불러?”

“디레스랑 밀리엄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데?”

“내 앞에서 참 잘도 그 입 놀린다.”

시아는 마지막 남은 서류를 뒤적거렸다. 보고서로 보이는 그 서류는 4천왕 중 제 3천왕, 밀리엄 브롤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그런데 작성자와는 다르게 별 볼일 없는 내용인지라 금방 내던져졌다.

“가입도 잘 안 시켜주면서 아지트에 온갖 녀석들이 들어올 수 있게 열어두는 건 모순 아니야?”

멜로즈는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여기가 ‘가디안스’의 아지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손꼽히는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길드 ‘가디안스’는 여타 전투형 길드와는 그 성격이 다른 편이다. 순종 및 키메라의 천적인 거대 길드 ‘크루세이더’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드로, 키메라와 순종의 혼합 구성이라는 점은 특이할 게 없으나, 구성원 하나하나가 전부 ‘체인’급 이상의 실력자고 가디안스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름 깨나 날리던 이들이다. 크루세이더로부터 순종과 키메라를 지키기 위해 결성되었고,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도 지킬 수 있는 자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입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리세이스의 불만이 뭔지 알잖아.”

“알지. 하지만 크리세이스가, 내가 보스라는 사실보다는 왜 보스 자리에 있는지를 기억하고 있으면 해.”

그저 곱게 자란 순종 꼬마 숙녀는 시아의 말이 이해될 듯 말듯했다.

“으응. 있지, 보스. 크리세이스가 민감하게 구는 건 그 녀석들이 입단하려고 해서잖아. 캡틴만 보내도 괜찮겠어?”

“아, 걱정 마. 안 그래도 천천히 나갈 참이었으니까.”

가디안스의 보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지개를 쭉 켰다. 민의 마기가 옅게 퍼져오는 걸 보니 강압적으로 상황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류 민이 저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다니……. 크리세이스 녀석, 한 번 날 잡아서 굴려야 하나?”

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새 방문객이 있는 곳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솔아와 멜로즈가 그 뒤를 따랐다.

진 보라색 틴트가 눈에 띄는 은발의 뱀파이어가 인간치고는 평균치 이상의 외모를 빛내고 있는 미녀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다. 크리세이스는 민에게 목을 붙잡힌 채 벽으로 밀려서 꼼짝도 못했다. 반대편 벽에는 낯익은 남자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상처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크리세이스 하갈. 네 자리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고 경고 했지?”

시아가 다가오자 민은 오리지널로 돌아가고 뒤로 물러섰다. 보스의 살기는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스…….”

[쾅!]

시아의 주먹이 제 4천왕의 얼굴을 스치면서 벽을 강타했다. 엄청난 살기가 사방으로 분사되고, 크리세이스에게만 보인 보스의 눈은 블랙-레드 오드아이, 악마의 눈이었다. 크리세이스는 이것이 마지막 경고임을 확실하게 알았다.

“수고하셨어요, 캡틴.”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지.”

민은 몸 전체를 구속하던 결박이 사라지자 잘 따르는 강아지를 다루는 마냥 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스. 치료 끝냈어.”

“잘했어. 크리세이스에게 멜로즈의 경호를 맡겼더니 멜로즈가 크리세이스의 뒷감당을 하는구나.”

“상부상조야.”

비취색 날개가 보스의 칭찬에 맞춰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민의 마기에 이어 시아의 살기 때문에 구석으로 멀찍이 도망가 있던 길드원들은 겨우 숨을 돌리고 제 갈 길로 바쁘게 움직였다. 언뜻 순종도 보였으나 역시 대개 키메라였다. 오리지널도 다양해서 모하게 복잡하게 보이는 풍경이었다.

“하……. 너 여기 가입조건은 알고 있어?”

시아의 눈에 들어온 낯익은 남자는 전날 저녁에 본 키메라였다. 시아와 민을 알아봤는가 싶더니 가디안스의 아지트를 알아내서 찾아온 것이었다. 유명한 길드니까 무턱대고 가입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가디안스의 보스가 짐작한 바와는 달랐다.

“체인급 이상만 받는다는 거 알아. 아니, 압니다. 그래서 딱가리로라도 있으려고 왔습니다.”

“딱가리?”

멜로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시아를 올려다봤다.

“심부름꾼. ……그래, 어떻게든 가디안스 안에 있고 싶다?”

시아는 무릎 꿇고 앉으려는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남자가 허리를 세운 순간에 정확하게 따귀를 갈겼다.

[짝!]

명쾌하고도 시원스런 일타에 근처 이목이 죄 집중됐다.

시뻘게진 뺨은 금방 부어올랐다. 그는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건 그의 동행 쪽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듯 보이는 여자는 그와 꽤 많이 가까운 사이인 듯했다.

“보스, 그게 무슨…….”

“여기가 너 같은 녀석들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붙여주는 그런 허접한 길드인줄 알아?!”

“보스, 제가 처리할 테니까 들어가세요.”

“난, 난 여기에 꼭 있어야 합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꼭 여기어야만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각오가 가득 차 있었다. 오래 전부터 품어온 것들이 터져 나오는 외침이었다.

“어이가 없군. 좋아. 파다하게 널린 길드들을 놔두고 가장 까다로운 여길 고집하는 이유는?”

잠깐이지만 남자의 일행이 두려움과 슬픔이 섞인 눈을 했다. 그걸 알아 본 시아는 이들에게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거의 확신하다시피 했다. 일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그… 항크루세이더 길드(크루세이더를 상대로 싸우는 길드) 중에서 유일하게 녀석들과 실력이 대등하다고…….”

시아가 꼭 나올 거라 집은 단어, ‘크루세이더’가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 데자뷰를 보는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역대 길드원 중에서 길드 가입 절차가 제일 곤란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크루세이더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던가 그런 개인적인 복수심인가?”

5년 전, 가디안스가 창단 된 지 얼마 안 돼서 있었던 일이다. 시아는 그 때 그 무대포를 슬쩍 쳐다봤다. 이전 사건의 당사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옛날 일과 겹쳐지면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는 눈치였다.

“가족도 잃고 길드도 잃었습니다.”

“외삼촌이 길드 보스였고 간부 대부분이 가족들이었어요.”

축 쳐진 채 서있던 여자가 덧붙였다.

“그런 형태의 길드는 흔하고, 크루세이더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길드도 흔해. 너희 같은 녀석들이 흔하디흔하단 말이야.”

“아니, 전자는 맞는데 후자는 틀려요, 보스.”

민은 새 방문자들의 마음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연민이 아닌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크루세이더한테 걸리면 ‘전원몰살’이에요. 살아남아도 그들에게서 도망칠 수 없어요.”

“알아. 아주 잘 알아. 그걸 모르면 내가 여기 보스 하겠어? 그리고 누구씨 덕분에 이 골치 아픈 예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잘 알아.”

“화나셨어요, 보스?”

“어.”

시아는 만성 두통 때문에 죽겠다는 표정을 조금도 숨김없이 다 드러냈다. 겉은 세력 길드의 보스지만 속은 17세 여고생. 귀찮은 건 딱 질색인 평범하지 못한 평범한 숙녀분이라 이번 일에서 만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보스. 얘네 가입시킬 거에요?”

솔아는 정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상관이 어떻게 가디안스에 가입했는지 모르니 보스가 무슨 이유로 그런 초예외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제 4천왕 역시 머리 위에는 물음표를, 가슴 속에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길드 창단기부터 길드원이었던 제 2천왕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디레스 엑서스엘. 제 1천왕이 길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보스를 설득하고 그를 지금까지 키운 장본인이다. 지금 막 아지트로 돌아왔지만 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눈치 실력이 올라가는 보스는 디레스의 ‘빙그레’가 의미하는 바를 단번에 잡아냈다.

“야……. 얘네를 여기로 보낸 게 너지…….”

“표현은 정확하게 하자고. 저 아이들이 여길 찾아다녀서 가르쳐준 거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실은 500세에 가까운 레드 드래곤 순종이다. 그의 눈에 방문자들이 ‘아이’로 보이는 건 당연했다. 불꽃과 같은 붉은색의 장발을 뒤로 곱게 땋아 내리고 깔끔한 레드와인 빛 롱코트를 어깨에 살짝 걸친 그 풍채는 얼핏 봐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분으로 보였다.

“다녀오셨어요. 외출은 어떠셨어요?”

민은 양아버지이자 스승인 디레스를 반갑게 맞았다. 그에 비해 크리세이스는 슬금슬금 그를 피했다.

“외출이랄 거 뭐 있나? 언제나 비극을 수집하고 다니는데.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지.”

“그래, 그래. 보고는 있다가 하고 얘네는 네가 맡아.”

“Ja, Für Sie, meine Boß.”

시아는 민이 가입할 당시의 일을 또 겪고 싶지 않아서 디레스에게 후딱 넘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