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의 소설(Original)/Mutation-Kimera(리메이크)

Mutation - Kimera : 제 1 각성 ③

★은하수★ 2009. 3. 20. 18:01

한 편, 가디안스의 새 식구가 된 지원과 세나는 레스-디레스가 이 둘을 잠시 맡긴 길드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질 나쁜 괴롭힘이 아니라 장난이라 부르는 괴롭힘이었지만, 가디안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은 빨리 디레스가 돌아오길 간절히 빌었다.

“레스, 그 아이들은 정식 길드원이 아니야.”

“아, 캡틴.”

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지원과 세나도 따라 일어섰다.

“가디안스에 적합한 인재로 키울 귀한 원석이야. 그러니까 많이 도와줘. 장난은 치지 말고.”

“네.”

레스는 힘차게 경례를 한 후에 상관의 집무실에서 당당한 걸음으로 나갔다. 오리지널이 낭인족이라 뒷모습에서 보이는 꼬리는 윤기가 흐르고 선이 날렵했다. 늘 전력으로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모양새였다.

“자리에 앉아도 괜찮아.”

지원과 세나는 처음엔 디레스를 거북스러워하더니 레스에게 시달리고 나서는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뭐든 당해봐야 안다고,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던 길드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와 길드원 구성, 계급 구조 때문에 난생 처음 길드를 접해본 초짜 같았다.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본 이가 편하게 느껴지고 처음 접한 이는 두려움의 대상인 건, 그런 숙맥들의 공통 심리고, 지원과 세나가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가입하려고 온 것이겠지만 지금은 무리야.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예외 전례가 딱 한 건이 있었는데 너희가 두 번째 전례가 될 거야.”

두 사람이 머쓱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디레스는 그들에게 차를 내줬다.

“진정 효과가 있는 허브티야.”

“감사합니다.”

세나는 여전히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일 오전에 보스가 너흴 부를 거야. 질문에 대답만 하면 돼. 뭐, 너희가 질문해도 상관없어. 우리 보스는 길드원 모두를 무지 좋아하거든.”

지원은 차를 마시지 않고 찻잔을 든 채 엄지로 손잡이를 천천히 문지르기만 했다. 보스가 무슨 얘기를 할지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뜨거운 건 못 마시나?”

“아, 아닙니다.”

디레스는 일주일동안 아지트 밖에 있었기 때문에 최근 보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저 민의 말과 행동을 통해 민과 지원이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다.

내성적인 면이 천성인 세나는 지원이 찻잔을 입에 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도 따라 차를 마셨다.

“아직 체인급이 아니면 어디까지 각성했지?”

디레스의 질문에 지원은 적잖이 가슴이 뜨끔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앉아 있는 곳이 가디안스의 아지트이다 보니 체인급 이하의 각성 수준이 마치 죄인 마냥 느껴졌다.

“괜찮아. 제 1천왕은 락급일 때 보스에게 과감하게 덤볐었어.”

“그렇군요.”

조금은 안심이 됐다. 자신의 행동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과감’한 것이었다.

“전 인간-미노타우르스 키메라에 락급입니다. 그리고 세나는… 인간-네레이드 키메라에 클로즈급입니다.”

예상 외로 세나가 각성 단계가 높았다. 게다가 네레이드라 하면 물의 정령 중 상급 정령이라서 클로즈급이라 해도 충분히 훌륭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성격이 걸림돌이 되겠지만 가디안스의 가입 조건으로 성장하면 분명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지도 모른다.

“호-. 흥미롭군. 지원 군은 클로즈로 각성할 생각이 없었나?”

“한 번 했었습니다만…….”

“폭주했군.”

“네.”

지원의 눈이 아래로 깔렸다.

“그러면 이미 클로즈급이라는 얘기군. 폭주 상태가 되더라도 구속체를 끊을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렇다. 키메라의 각성단계는 ‘구속체를 끌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끊을 수 있는가.’로 정해진다. 힘을 주체하지 못해 폭주할지라도 어엿하게 그 단계로 각성했다고 본다.

“하지만 폭주는 쓸모없는 자의 낙인입니다.”

“그건 무지한 바깥에서 하는 얘기야. 폭주를 유용하게 써먹는 길드와 성숙해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길드에겐 통하지 않아.”

폭주를 유용하게 써먹는 길드가 바로 크루세이더고, 성숙해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길드가 가디안스다.

크루세이더는 타 길드를 부수는 악행의 이면에 두 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하나는 순종을 억지로 키메라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체 개발한 약을 이용해서 키메라가 폭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키메라에게 광기를 주입하는 그 약은 폭주 끝에 키메라의 수명이 끊기는 부작용이 있어 지프테 폰 크로이추크(Gift von Kreuzzug : 크로세이더의 독)라 불린다. 진정제가 개발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 수단이다. 그래서 가디안스는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살아 있는 키메라를 데려다가 정기적으로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폭주를 조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물론 약을 먹은 키메라는 원래 수명보단 현저히 짧아진 목숨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그 만큼이라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가끔 그냥 죽길 바라는 자가 있는데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지원의 표정이 한층 편해졌다. 자신의 각성 상태에 적잖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중에 디레스에게서 구제 받았다.

“가디안스의 모든 규칙과 행동방침은 보스 혼자 만든 거야. 꼬마 보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지. 각성 후 폭주 건에 대해선 말이 많았지만 보스가 자신이 직접 맡겠다고 박아버린 덕분에 모두 군말 없이 따르고 있어.”

가입 때부터 체인급 이상이기 때문에 가입 후 와인드급으로 각성하면 폭주를 막는 일이 여간 큰 일이 아니다.(마지막 각성 단계인 ‘소울 테이커’는 현재 진 시아와 클러치 사마엘 뿐이다.) 다른 와인드급 키메라들이 단체로 제압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주변은 초토화가 돼버리니 폭주를 진정시키느니 죽이는 편이 두말할 필요 없이 합리적이다. 이는 기프테 폰 크로이추크를 복용한 키메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디안스의 밖에서는 폭주 자를 죽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궁극 단계까지 각성한 시아가 제압한다면 일순간에 끝난다. 그러니 가디안스에서는 시아가 만든 방침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는 클로즈급 키메라의 폭주 때문에 다칠 길드원은 없으니까 마음껏 폭주하라고.”

“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당차서 좋군.”

지원이 기운을 차리자 세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얼굴과 몸의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제 2천왕 쪽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다시 가디안스의 보스에게로 돌아가자.

시아는 민에게 임무를 쥐어주고 자신은 느긋하게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학생회에 제출할 동아리 보고서였다. 그 옆에는 민이 해야 할 학생회 안건처리 잡무가 시아의 필체로 깔끔하게 처리돼 있었다. 방학 숙제 전부를 시아가 대신해준 적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약과였다.

[똑똑]

흰 피부에 옅은 금방의 호리호리한 하이엘프가 트럼프 카드 한 벌을 들고 나타났다.

“보스-. 놀러왔어!”

[휘익!]

[쿵!]

밀리엄을 향해 던진 브론즈 상은 문과 충돌했다.

여유롭게 피한 밀리엄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일에 충실히 임하는 시아였다. 항상 있는 일이라 둘 중 누구도 서로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 도나봐?”

“난 언제나 여유만만 시간만땅이잖아, 보스-.”

촐랑대는 하이엘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분은 거수!

“민이 아니라 널 보냈어야 했어.”

시아는 보고서를 완성하고 책상 위를 정리했다. 학교에 제출할 민의 결석사유서도 써야 하지만 간단한 일이니까 지금은 밀리엄을 상대하기로 했다.

밀리엄은 의자를 끌어다가 시아와 마주보며 앉았다. 그리고 카드를 차근차근 섞었다.

“무슨 큰일인데 류 군씩이나 보냈어?”

“수룡왕 감시.”

“그 사건하고 관련된 거야?”

“들었어?”

“수룡왕의 레어를 침입한 키메라 이야기는 세간에서도 자자한 큰 건이랍니당-. 보스-.”

“알면 길게 얘기하지 마.”

“너무 하잖아, 보스-. 지금은 나랑 놀아주는 시간이라구.”

카드가 한 장씩 책상 위를 지나갈 때마다 대화가 한 마디씩 오고갔다.

“놀려면 다른 녀석들도 많잖아.”

“보스-. 그거 되게 진부하다. 여태껏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알아? 그것도 보스한테서만.”

“오늘까지만 놀아줄 거야.”

“그 말도 수백 번 들었어.”

밀리엄은 무표정으로 심술부리는 어린 보스를 귀여워했다. 차마 보스의 머리를 쓰다듬을 순 없지만 대신 보스의 말을 태클 수준으로 받아치는 것으로 애정표현을 남발했다. 보스가 무뚝뚝하게 무시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실러하고 일루지온은 좀 어때?”

“질버르가 성심성의껏 돌본 덕분에 다 나았어.”

“일루지온이 다쳤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케른이 난리를 쳤어.”

“사랑이란 뜨거운 거야, 보스-.”

최근 스트롬 길드 전원이 폭주하는 바람에 밀리엄과 그 휘하 길드원 10명이 특별 선발 부대로 나간 일이 있었다. 그 때 길드원 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아지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 케른 지프트필츠는 중상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애인이라는 소식에 안절부절 못했다.

“우수한 치료제가 있으니까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될 걸 가지고 호들갑이야.”

“보스도 애인이 다치면 똑같이 행동할 걸-?”

“그런 모습이 상상이 돼?”

“아니, 전- 혀. 그나저나 우수한 치료제는 또 뭐야?”

“질버르 아르츠나이. 우수한 치료제 맞잖아.”

“쿡. 그러면 구 화타는?”

시아는 밀리엄을 슬쩍 쳐다보다가 자신의 앞에 엎어져 있는 카드 패를 멋들어지게 뒤집었다. 스페이드6, 클로버6, 하트6, 하트Q, 다이아Q였다.

“특상품 치료제. 풀 하우스.”

“앗, 난 투 페어야. 특상품이라……. 적절한 비유야.”

본래는 시아가 카드를 섞어야겠지만 귀찮은 일은 지독히도 싫어해서 대신 밀리엄이 카드를 섞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때문이 아닌 듯 했다. 밀리엄이 카드를 스프레드 하는데 시아가 밀리엄의 손을 툭 쳤다.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보- 스. 겨우 한 판 했어.”

밀리엄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옆에 치워둔 결석사유서를 앞으로 끌어다가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적당히 지어낸 사유의 맨 마지막에는 b.G라는 약자와 함께 자신의 서명을 썼다.

b.G란 besonderes Geheimnis(특별 비밀)의 약자로 관공서의 사유서에 쓰는 은어 중 하나다. 길드원이 길드 임무 중이라는 뜻이다. 사유서에 적당한 가짜 사유를 쓰고 마지막에 b.G 그리고 상관의 서명을 쓰면 관공서는 곧바로 출석 혹은 승인 처리를 해준다. 어느 관공서든 은어가 들어간 서류를 처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길드원의 신상은 철저하게 보호된다.

“보스-. 안 놀아줄 거야?”

불쌍한 강아지 눈이 시아의 얼굴 바로 앞에서 놀아달라고 애원했다.

[붕]

밀리엄은 잽싸게 몸을 뒤로 젖혀서 위에서 사정없이 내려오는 두꺼운 책을 피했다. 암갈색 가죽으로 싸인 두꺼운 책은 책상 면에 닿기 직전에 낙하를 멈췄다. 그리고 책장이 파라락 넘어갔다. 모두 시아의 마력만으로 일어난 일이다.

[탁]

어떤 페이지가 펴지고 책이 힘없이 떨어졌다.

“할 말 있어서 온 주제에 자꾸 딴 짓만 할 거야?”

“역시 보스야. 눈치가 빠르다니까.”

“성의 없는 보고서를 제출했잖아.”

신참들을 만나기 전에 가디안스의 보스께서 갖가지 서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 중에는 밀리엄이 쓴 보고서도 있었는데 별 볼일 없는 내용이라 내던져졌다.

“크루세이더의 츠뵐프 리터랑 얽힌 일이라서 그래.”

“오늘따라 그쪽 얘기가 많이 나오는군.”

시아의 눈동자는 책의 글자를 따라 움직였다.

“12명 중에 누구 얘기를 들었어?”

“생각하기도 싫다. 내일 또 녀석들 이름이 나올 텐데,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무슨 일인데 그래?”

[슝]

시아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펜이 밀리엄의 왼쪽 관자놀이를 스치며 멀리 비행했다. 눈은 책에 꽂혀있었지만 손의 정확도는 변함이 없었다.

“네 말만 끝내고 빨리 나가.”

하마터먼 실명될 뻔한 위험을 겪은 밀리엄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알았어. 엄청 예민해……. 읏, 알았다고.”

시아는 다른 펜을 쥐고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했다.

“스승님의 레어에 갔다 오는 길에 다스 엔데(das Ende : 끝)를 지나왔는데 거기서 제 4기사를 봤어.”

“강 솔리?”

밀리엄이 가져온 이야기는 시아가 책에서 눈을 뗄 만한 것이었다.

“보스-. 이름으로 부르지 마. 가슴 아프다구.”

시아가 무심코 말한 여자 이름에 밀리엄은 다시 한 번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표정엔 장난기가 흘렀지만 그의 가슴은 진심으로 욱신거렸다.

“어, 그래. 계속 얘기 해.”

“채찍을 들고 있는 고고한 뱀파이어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고독을 만끽하고 있었어……. 농담이야. 이건 그저 내 희망 사항이고, 실은 매서운 눈으로 뭔가를 찾고 있더라. 꽤 샅샅이 살피던데?”

“제 4기사가 다스 엔데에서…….”

오늘 들은 사마엘의 이야기와 지금 이야기가 관련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속단하기엔 증거가 부족한 터라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